설교

12/7 주일설교, "바리새인과 세리"

강대식 2014. 12. 7. 14:17

본문: 18:9-14

 

1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지 말자

 

또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들에게 이 비유로 말씀하시되”(18:9)

 

이런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가?

좀 가졌다고 좀 높다고 좀 배웠다고, 의롭다고 믿고 다른 사람을 멸시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가?

자기 자신에 대해서와 자신의 선함에 대해서 대단한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다.

 

이들은 자기는 거룩하다 생각하고 나만큼만 깨끗해 보라고 큰 소리를 친다.

그들은 하나님 앞에서도 자신만만하다.

자기 의가 이러하니 구하는 것은 다 들어주시라고 요구한다.

 

하나님이 자기들에게 빚지고 있기 때문에 요구하는 것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다른 사람들은 아주 멸시하고 비교할 가치가 없는 자들로 여겼다.

 

오늘 본문은 비유라기 보다, 비교 대상자들의 상세한 묘사이다.

교만하게 자기를 의롭다고 하는 자들과, 겸손하게 자신의 죄를 인정하는 자들이 내놓는

성품과 말, 하나님 앞에서의 태도가 얼마나 다른가에 관한 묘사이다.

 

바리새인이 성전에 간 것은, 기도하는 모습을 사람에게 보이기 위해서 였다.

그들은 모든 행위를 사람에게 보이고자 하나니”(23:5).

얼마나 자주 기도하고, 오래 기도하는지를 보이고자 한다.

외식하는 위선자들은 오직 사람들에게서 인정을 받기 위해서 경건의 행위들을 한다.

 

세리가 성전에 간 것은, 성전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으로 정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바리새인은 자신을 과시하기 위해서 갔지만, 세리는 기도하기 위해서 갔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어떤 마음과 의도를 가지고 가느냐가 중요하다.

 

2 바리새인의 기도를 하지 말자

 

바리새인은 서서 따로 기도하여 이르되, 하나님이여, 나는 다른 사람들,

곧 토색, 불의, 간음을 하는 자들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나이다.

나는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고 또 소득의 십일조를 드리나이다 하고”(18:11-12)

 

바리새인은 자기가 의로움을 굳게 믿고 있다.

기도 내용을 보면, 기도라기보다는 자기의 자랑에다가 자기 찬양에 가까운 수준이다.

자신에게만 열중하여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께 대하여는 영광을 돌릴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자기가 행한 많은 선행들을 늘어 놓고 있다.

굳이 기도로 말은 않더라도 이런 생각으로 자부심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그는 추악하고 중대한 죄들을 범한 적이 없다.

 

그는 토색(돈이나 물건을 강제로 빼앗거나 억지로 달라고 함)을 하지 않았고,

고리대금이나 기타 어떤 일에서도 불의를 행치 않았다.

그는 공정하고 인자하였고, 누구에게도 해악을 끼치지 않았다.

그는 요즘 범람하는 간음도 행하지 않았다.

 

거기에다가 율법적으로도 흠이 없었다.

이레에 두 번씩 금식하였다.

바리새인들은 월요일과 목요일에 금식하였다.

이렇게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그뿐이 아니다.

율법에 따라서 소득의 십일조를 드림으로써 제물로서도 흠이 없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이 모든 것은 매우 잘한 일이었고 칭찬받을 만한 것이다.

 

우리 주님은 너희가 바리새인의 의보다 나아야 한다고 하셨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20)

 

그러나 이 바리새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열납되지 못하였다.

하나님께 형식적으로 감사는 하고 있지만,

그 감사가 자신을 과시하고 강한 자부심을 드러내는 교만을 포장하기 위한 것일 뿐이다.

 

하나님께 그의 의로움과 선함을 인정받고 확인받고자 하는 의도가 보인다.

자신의 그런 선행에 대해 스스로 흐뭇해하며 늘어놓고 있다.

우리가 금식하되 어찌하여 주께서 보지 아니하시나이까”(58:3)

 

그가 한 말 속에는 기도는 한 마디도 없다.

자기 의로움과 선함의 자랑과 도취에 빠져서 하는 말밖에 없다.

하나님의 은혜를 필요로 하거나 구할 필요가 없는 사람인 것을 본다.

 

바리새인은 또한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였다.

다른 사람들과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고 있다.

다른 사람과 같지 아니하고 이 세리와도 같지 아니함을 감사하고 있다.

 

마치 모든 사람들 중에서 자기가 제일 낫다는 듯이 말하고 있다.

다른 사람들을 모두 도매금으로 정죄하는 것이 문제이다.

세리가 토색, 불의, 간음의 죄를 저지른 사람인 것처럼 단정하고 있다.

 

그는 감사하나이다 하면서 세리는 악하고 자기는 선한 것이 기쁘다고 말하는 것 같다.

그가 얼마나 겸손과 자비가 부족하고 교만과 악의가 가득 차 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런 바리새적인 요소가 우리에게는 없는지 살펴보고 조심해야 할 성품과 언행이다.

 

3 세리의 기도를 하자.

 

세리는 멀리 서서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지도 못하고 다만 가슴을 치며 이르되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하였느니라”(18:13)

 

이 세리의 기도는 바리새인에 비하면 참으로 대조적이다.

교만과 허례허식으로 가득찬 바리새인에 비하면, 겸비와 자괴감으로 가득 차 있다.

바리새인은 의로움과 자부심으로 꽉 차 있었는데,

세리는 죄에 대한 회개와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심정으로 가득 차 있다.

 

세리는 무엇보다 이 기도를 통해서 회개와 자괴감을 표현하고 있다.

그의 자세는 매우 진실하고 겸손한 마음을 그대로 표현해 주고 있다.

통회하고, 참회하며, 순종하는 마음을 그대로 드러내 주고 있다.

 

세리는 하나님께 감히 나아갈 자격이 없다고 여겨서 멀리 서서기도하고 있다.

자기 같은 죄인이 기도할 수 있도록 허락하신 것만 해도 큰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듯하다.

세리는 감히 눈을 들어 하늘을 쳐다 보지도 못하였다.

 

그의 죄악들이 무거운 짐으로 그의 머리를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에 우러러 볼 수가 없었다.

수많은 재앙이 나를 둘러싸고 나의 죄악이 나를 덮치므로 우러러볼 수도 없으며

죄가 나의 머리털보다 많으므로 내가 낙심하였음이니이다.

여호와여 은총을 베푸사 나를 구원하소서 여호와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40:12-13)

 

몹시 슬퍼하고 애곡하는 자들은 가슴을 치는 것으로 묘사된다.

가슴을 치며 비둘기같이 슬피 우는도다’(2:7)

 

죄인은 마음이 먼저 회개하며 자신을 책망한다.

다윗은 그의 마음에 자책하였다.

다윗이 백성을 조사한 후에 그의 마음에 자책하고 다윗이 여호와께 아뢰되

내가 이 일을 행함으로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 종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삼하24:10)

 

세리는 바리새인과 달리 아주 짧지만 회개와 자신의 무너지는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그는 두려움과 부끄러움으로 인해서 많은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러나 그가 말한 내용은 아주 적절한 것이었다.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그런데 이 기도가 응답받은 기도로 성경에 기록되었다는 것이다.

이 기도를 드린 세리가 의롭다 하심을 얻고서 집으로 돌아갔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세리는 자기가 본성적으로 죄인인 것을 고백하고 있다.

또한 실제 말과 행위로 많은 죄를 지었음을 고백하고 있다.

바리새인은 자기 의로움만 보였지, 자기의 죄가 보이지 않았다. 인정하지도 않았다.

 

세리는 하나님의 긍휼 외에는 의지할 것이 없었기 때문에 오직 그것만을 의지하였다.

바리새인은 그가 한 금식들과 그가 낸 십일조의 공로를 내세웠었다.

세리는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알기에 내 세울 것이 없었다.

 

사람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을 뿐이다.

무릇 우리는 다 부정한 자 같아서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64:6)

하나님의 거룩한 의 앞에 사람이 어찌 의를 내세울 수 있겠는가?

 

세리는 하나님께로부터 긍휼하심을 받기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였다.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게 자비를 베푸셔서 내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나를 은혜로 받아주시고, 있는 그대로 받아주옵소서하고 있다.

 

세리의 기도가 하나님께 열납되었고 의롭다 함을 받았다.

하나님을 믿고 회개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

자기 의로움을 자랑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 아니다.

 

우리 주님은 분명히 말씀하신다.

저 바리새인이 아니고 이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고 그의 집으로 내려 갔느니라

 

바리새인은 자기의 기도가 열납될 줄 알았겠지만 거절당하고 가증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의롭다 하심을 받지 못하였고, 그의 죄를 사함 받지 못하였다.

그는 자기가 보기에 의로웠지만, 하나님 보시기에는 의로운 자로 열납되지 못하였다.

 

그러나 세리는 자기를 낮추고 겸비한 태도로 하나님께 기도 드림으로써 죄사함을 받았다.

바리새인은 세리를 자기 집의 개들만도 못한 자로 여졌지만,

하나님은 이 세리를 그의 집의 자녀로 대우하셨다.

 

그 이유를 우리 주님은 결론적으로 말씀해 주신다.

무릇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18:14)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벧전5:5)

 

스스로를 높이는 자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다.

그래서 그들은 반드시 낮아지게 될 것이다.

가버나움아 네가 하늘에까지 높아지겠느냐 음부에까지 낮아지리라”(10:15)

 

스스로를 낮추는 겸손한 자들은 하나님께 복종하는 자들이기 때문에 높아지게 될 것이다.

스스로 높아진 교만한 자는 낮추시고 스스로 낮아진 겸손한 자는 높이시는 것이 하나님의 법이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16:18)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함의 보상은 재물과 영광과 생명이니라”(22;4)

 

세리는 큰 죄인이었지만, 그 큰 죄에서 큰 회개가 나왔다.

바리새인은 큰 의인이었지만, 그 큰 의에서 큰 교만이 나왔다.

 

하나님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추시고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이시는 분임을 믿자.

지금 고난 가운데 낮아져 있는가?

그러면 그는 높아질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지금 매우 높아져 있는가?

그러면 이제 낮아질 일만 남아 있는 것이다.

 

높아져 있는데도 겸손하다면 그보다 아름다운 것은 없겠지요.

하나님이 높여 주실 때 우리는 교만하지 말고 더욱 겸손하고 하나님께만 그 영광을 돌리자.

 

한나의 기도는 우리를 위로해 주고 소망을 준다.

높이시고 낮추시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찬양하자.

유대인들은 예배 드릴 때 이 한나의 기도를 함께 암송한다고 한다.

 

함께 한나의 기도를 읽자. 역전케 하시는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자.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들을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니

이는 주 밖에 다른 이가 없고 우리 하나님 같은 반석도 없으심이니이다.

 

심히 교만한 말을 다시 하지 말 것이며 오만한 말을 너희의 입에서 내지 말지어다

여호와는 지식의 하나님이시라 행동을 달아 보시느니라

용사의 활은 꺽이고 넘어진 자는 힘으로 띠를 띠도다

풍족하던 자들은 양식을 위하여 품을 팔고

주리던 자들은 다시 주리지 아니하도다

전에 임신하지 못하던 자는 일곱을 낳았고 많은 자녀를 둔 자는 쇠약하도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

 

그가 그의 거룩한 자들의 발을 지키실 것이요

악인들을 흑암 중에서 잠잠하게 하시리니 힘으로는 이길 사람이 없음이로다

여호와를 대적하는 자는 산산히 깨어질 것이라 하늘에서 우레로 그들을 치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심판을 내리시고

자기 왕에게 힘을 주시며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삼상2: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