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약 2:14-26
1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다
약2:14-17) “내 형제들아 만일 사람이 믿음이 있노라 하고 행함이 없으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그 믿음이 능히 자기를 구원하겠느냐 만일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한 양식이 없는데
너희 중에 누구든지 그에게 이르되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하며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으리요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다.
무언가가 죽었다고 하는 것은 더 이상 움직일 수가 없는 것이다.
유익도 해함도 줄 수 없는 상태가 죽은 상태이다.
믿음은 사랑으로 역사한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효력이 없으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뿐이니라”(갈5:6)
“주 예수 안에서 너희 믿음과 모든 성도를 향한 사랑을 나도 듣고”(엡1:15)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사랑은 없고 율법으로만 역사한다면 그것은 바리새인의 믿음이다.
바리새인의 특징은 겉과 속이 다른 것이다.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차 있는 것이다.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 하셨다.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킨다고 하셨다.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면서도 그 안에는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게 한다고 하셨다.
입술이 하는 말과 마음 속이 다른 것이 멸망당한 이스라엘의 특징이었다.
씻지 아니한 손으로 떡 먹는 것을 보고 시비를 걸 때 주의 말씀이다.
“이르시되 이사야가 너희 외식하는 자에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기록하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7:6-8)
율법을 가지고는 할 말이 무수히 많으면서도 그 율법이 가리키는 사랑에는 행함이 없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롬13:8)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롬13:10)
“온 율법은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 같이 하라 하신 한 말씀에서 이루어졌나니”(갈5:14)
말로 하기 쉬운 것은 율법으로 사람의 잘못을 책망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율법이 사랑으로만 실천되고 완성된다는 것은 잊어버리기가 쉽다.
말썽꾸러기 자식이 아버지의 율법보다 어머니의 사랑으로 돌아오는 것을 본다.
율법은 있어야 한다. 율법은 하나님이 주신 지극히 선한 것이다.
그러나 율법은 그 자체로 죄를 이길 능력과 사랑의 힘이 없다.
그 율법을 실천하고 완성할 힘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에서 나온다.
같은 믿음을 가진 형제나 자매가 헐벗고 일용할 양식이 없는데
평안히 가라, 덥게 하라, 배부르게 하라 말은 하면서도, 그 몸에 쓸 것을 주지 아니하면
무슨 유익이 있겠는가?
그러면 어떤 사람은 이렇게 말할 거라고 한다.
“너는 믿음이 있고 나는 행함이 있으니 행함이 없는 네 믿음을 내게 보이라
나는 행함으로 내 믿음을 네게 보이리라 하리라”
이와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 행함이 따르지 않는 믿음은 그 자체가 죽은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믿는다면, 율법을 앞세우는 데만 급급하지 말고
사랑의 수고와 희생이 항상 동행하는 믿음이 되게 하자.
율법으로 사사건건 잔소리하는 사람들은 관계를 망쳐도
사랑으로 감싸주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관계를 살리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것을 본다.
율법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으로만 완성되는 것을 기억하자.
2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다
약2:20-24) “아아 허탄한 사람아, 행함이 없는 믿음이 헛것인 줄을 알고자 하느냐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내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하게 되었느니라
이에 성경에 이른 바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졌고
그는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았나니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니라”
‘허탄한 사람’은 ‘거짓이 많아서 미덥지 않는 사람’을 말한다.
믿는다고 하면서 행함이 없는 믿음은 헛것이고 허탄한 것이다.
믿음은 그의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믿음이 온전해짐을 강조하고 있다.
아브라함이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기셨다는 말씀이 이루어진 것 아니냐?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잖느냐?
그 행함이 따르고 믿음을 실천하였기에 하나님의 벗이라 칭함을 받은 것 아니냐?
이로 보건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은 아니잖느냐 하고 있다.
마틴 루터는 종교 개혁을 일으킨 사람으로써 그렇게 위대한 사람인데도
이 말씀을 크게 오해하여 야고보서 전체를 ‘지푸라기 복음’이라고 평가절하하였다.
의롭다 하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은총을 믿는 믿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지
구약의 행위언약처럼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구약 이스라엘과 카톨릭의 행위언약적 성격을 철저히 부정하고
바울의 로마서에 의한 이신칭의로 돌이킨 것이 바로 종교 개혁의 핵심이자 중심이었다.
혁명과 개혁의 시기에는 그 뜻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균형보다는 강조점이 두드러지게 마련이다.
사실 바울이 말하는 행함과 야고보가 말하는 행함은 다른 의미를 갖고 있다.
바울은 복음을 반대하는 유대인들의 율법에 따른 행함을 말하고 있고,
야고보는 복음을 믿은 이후 순종의 열매를 맺지 못하는 행함을 말하고 있다.
바울은 율법을 행함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유대인들의 행함에 대해 복음의 믿음을 강조하고,
야고보는 믿음에 반드시 따라야 하는 행함에 대해 복음의 믿음을 강조하고 있다.
우리가 의롭다 하심을 받게 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을 통해서 뿐이다.
그러나 우리의 의롭다 하심을 이루고 완성하기 위해서는
마지막 심판 날까지 선한 행위들을 계속해야 한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헐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마25:35-36)
성경은 서로 모순 되고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균형과 조화를 이루며 한 뜻을 이루어가고 있다.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 사람이 행함이 따르지 않는다면 그 믿음은 헛것일 뿐이다.
행함을 강조하다가 율법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다고 하면 그는 믿음이 없는 자일 뿐이다.
구약 이스라엘과 로마 카톨릭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보다 선한 행위만을 강조하다가
율법주의로 흐르고 위선자들과 바리새인들을 양산하고 부패와 멸망으로 끝이 났다.
종교개혁은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신앙을 로마서로 바로 잡고 돌이키는 운동이었다.
청교도 운동은 이 종교개혁의 믿음을 삶의 실천으로 옮기는 말씀운동 은혜역사였다.
그러나 그 전통을 이어받은 개신교는 또다시 행위와 도덕을 강조하는 운동으로 변질되어 갔다.
은혜가 떨어지면, 사랑이 부족하면, 괜스레 행함을 강조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믿음과 행위는 사실은 따로 놀 수 없는 성질의 것이다.
믿음은 형식적인 것으로 여기고 행함을 아무리 강조해 봐야
그 강조가 교회와 사회를 변화시킨 적이 없다는 역사적 사실에 눈을 돌려야 한다.
진정한 사람과 삶의 변화는,
먼저 마음이 변화되고 이어 행함이 변화되는 결과였다.
사람은 율법을 강조하는 머리와 입술을 따라 살지 않고 마음에 있는 것을 살기 때문이다.
사람은 그리스도 예수의 십자가 은총을 믿는 믿음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야 변화가 되었다.
마음으로 십자가에서 피흘리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입술과 행함으로 고백하는 사람이
진정으로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다.
이 변화는 사람의 교양과 의지의 결단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오직 하나님의 선물, 성령의 역사로만 이루어지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는 성령만이 하시는 이 믿음의 역사를 기다리지 못하고 구하지 못하고
믿음을 형식적인 고백으로 대치하고 그 위에 행함의 바벨탑을 쌓기에 급급해 하는 것이다.
로마서에서 마음으로 믿고 입술로 고백함으로 구원받는다는 말씀을 형식화하는 것이 문제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롬10:9-10)
이 ‘마음으로 믿어’는 입술의 고백, 영접 기도나, 지적인 동의 정도가 결코 아닌 것이다.
성경에서 마음은 영혼의 중심을 가리키고,
마음으로 믿는다는 것은 온 영혼을 다해 믿는다는 뜻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니라”(잠4:23)
영혼의 중심인 마음이 변화된다는 것은 사람의 부패한 본성과 의지로는 불가능한 것이다.
사람의 교양과 수양과 운동으로, 정치적인 혁명이나 구데타나 이데올로기로 되어진 적이 없다.
이해관계 앞에서는, 자기들 이익 앞에서는, 그것들은 다 허울좋은 헛것으로 끝나고 말았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그대로 헛것일 뿐이다.
정말 믿었다면 행함은 그대로 나타나야 하는 것이다.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믿었다면, 하나님의 명령대로 그 아들 이삭을 제단에 바치는 것이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으니 이것을 의로 여겼다는 말씀이 행함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믿음과 행함이 다르지 않았고 이해관계에 따라 따로 놀지 않았다.
그러나 그 행함이 있는 믿음, 행함과 함께 일하고 행함으로 온전해지는 믿음은
아브라함의 의지의 산물인가? 그의 교양과 수련의 결과인가?
결코 아니다.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로 믿음을 주신 것이다.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았기에 그 믿음이 광야의 훈련을 통해 행함으로 나타나는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8-10)
하나님의 선물로 은혜로 믿음을 받아서 믿고 구원을 받았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에 있어서 열매를 많이 맺도록 하는 계획에 따라 지으셨다.
선한 생활과 끝까지 거룩함을 지키는 가운데서 행하게 하기 위함이다.
은혜의 선물로 받은 믿음은 하나님의 주시고 만드셨기에
선한 행함이 따르고 실천되는 것이다.
성화를 위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회심의 믿음을 주신 것이다.
은혜로 받은 믿음은 아들의 형상과 삶을 닮아가게 한다.
3 행함이 없는 믿음은 영혼 없는 몸과 같다
약2:25-26)“또 이와 같이 기생 라합이 사자들을 접대하여 다른 길로 나가게 할 때에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이 아니냐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니라”
기생 라합을 예로 들어 다시 한 번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은 것을 말씀하고 있다.
기생 라합은 하나님이 주신 믿음이 있었기에 목숨을 걸고 나라를 배역하며 이스라엘 사자들을 도왔다.
라합의 그 행함이 그녀의 믿음을 증거로 보여 주었고 그녀와 그녀의 친족 모두를 구원하게 만들었다.
이제 야고보 사도는 믿음과 행함의 전체 문제에 대해 결론을 내리고 있다.
영혼 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라는 것이다.
영혼이 떠나가면 몸은 행동도 없고 다만 역겨운 시체가 되고 마는 것이다.
호흡이 생명의 동반자인 것 같이 행함도 믿음의 동반자이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시체처럼 아무 쓸모가 없고, 역겹고, 불쾌한 것이 되고 만다.
가장 좋은 행위들도 믿음이 없다면 죽은 것이다.
또한 가장 좋은 믿음도 행함이 없다면 죽은 것이다.
행함은 믿음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뿌리가 죽으면 푸른 잎도 내지 못하고 탐스러운 열매도 맺지 못하는 것과 같다.
선한 행위들은 믿음의 뿌리와 생명에서 나온 것이어야 한다.
믿음은 반드시 선한 행위의 열매를 맺어야 한다.
행함이 없다면 그 믿음은 영혼 없는 몸과 같기 때문이다.
뿌리가 푸른 잎도 내지 못하고 아무 열매도 맺지 못한다면 그것은 죽은 것과 마찬가지이다.
믿음은 뿌리이고, 선한 행위들은 열매들이다.
우리는 이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는지 항상 살펴보아야 할 것이다.
어느 것 하나만 가지고서는 의롭다 함도 구원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우리의 영혼과 마음을 변화시키는 믿음을 은혜로 주신 것을 삼위 하나님께 감사하자.
은혜가 왕 노릇하며 행함으로 성화의 열매를 맺어가게 도우시는 하나님께 감사와 영광을 돌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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