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9 장 자유
“그러므로 아들이 너희를 자유롭게 하면 너희가 참으로 자유로우리라”(요 8:36)
우리는 자유의 요람과도 같은 땅에 살고 있다. 그러나 우리 자신은 자유로운가?
1. 자유의 일반적인 탁월성에 대해서 말한다.
모든 사람들이 자유의 가치에 대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인들은 자유의 한 가운데 태어나서 그곳을 벗어나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자유의 가치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한다. 자유의 결핍은 이 세상의 모든 국가들의 비극을 초래하는 가장 충분한 이유였다. 오늘날 예술, 문화, 과학, 도덕, 사회적 행복에 있어서 큰 진보를 이룬 나라들은 참된 자유가 가장 확보된 나라들이었다. 영국인으로서 이 땅에서 누리고 있는 자유를 과소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하지만, 동시에 다른 한편으로는 그것을 과대평가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이 세상에서의 노예됨이 유일한 노예됨이 아니며, 이 세상에서의 자유가 유일한 자유가 아님을 잊지 말라. 여러분이 죄의 노예로 산다면, 영국과 같은 자유로운 나라에 산다고 한들 무슨 소용이겠는가? 이 세상에서의 그 어떤 자유보다 더 높이 더 멀리 바라보라. 하늘의 관점으로 ‘우리는 자유하다’라는 것을 생각해 보라.
2. 가장 최고이며 가장 참된 자유에 대해서 말한다.
자유는 그것을 소유하고자 하는 모든 아담의 자손이 얻을 수 있는 자유이며, 어떤 권세도 그것을 얻는 것을 금할 수 없으며, 그 무엇으로도 그 소유된 자유를 빼앗을 수 없다. 가진 소유와 학력이나 강함과는 관계없이 소유할 수 있으며, 율법도 우리에게서 그 자유를 빼앗아갈 수 없다. 한번 우리의 것이 된 자유는 영원히 우리의 소유이다.
참된 자유란 영적인 자유이며 영혼의 자유를 말하며, 그리스도께서 모든 참된 그리스도인에게 아무런 값없이 주신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자유롭게 하신 사람들이 참으로 자유롭다.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느니라”(고후 3:17)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죄책감으로부터 자유하다. 양심을 무겁게 누르는 죄의 무거운 짐은 더 이상 짓누르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피가 그 모든 것을 깨끗케 하셨다. 그는 죄를 뒤돌아보면서 “누가 그 무엇으로 나를 비난하겠는가?”라고 말한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하다. 그것은 더 이상 그들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며, 그들을 죄의 권세 앞으로 밀어 넣을 수 없다. 성령의 권세로 그들은 육체의 행위를 억누르고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는다. 육체는 싸우지만 그들을 지배할 수는 없다. 사탄은 시험하고 괴롭히지만 그리스도의 자유인들을 이길 수 없다. 그들은 더 이상 정욕과 탐욕, 격정, 분노의 노예가 아니다. 이 모든 일에 그들을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긴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다. 이것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한 노예적인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다.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을 두려워하거나 에덴동산에서 숨었던 아담처럼 그분으로부터 달아나지 않는다. 그리스도께서 보내신 양자 삼으시는 성령을 통해 그들은 하나님을 화해된 아버지로 여기며 그의 사랑을 생각하며 기뻐한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다 이것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사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사람들로부터 눈길을 돌려 보이지 않는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그리스도께서 그들을 사랑하시기에 사람들의 비난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한때는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지, 무슨 행동을 할지에 대한 염려로 두려워했고, 둘러싸고 있는 관습과 유행을 벗어날 엄두도 내지 못했다. 그들은 홀로된다는 두려움에 위축되어 있었다. 그러나 올가미는 이제 깨어졌고 풀려났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다. 이것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자유하다. 그들은 더 이상 죽음을 충격으로, 그들이 생각할 수 없었던 끔찍한 것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 최후의 적을 조용히 직면하며 이렇게 말할 수 있다. “나를 이해할 수 없으리로다. 사망아 네가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무덤아 너의 승리가 어디 있느냐?” 그들은 죽음 뒤에 올 썩어짐, 부활, 심판과 영혼, 그러나 낙심하지 않는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다 이것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가장 좋은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들은 영원히 자유하다는 것이다. 이 세상의 자유는 그것이 가장 최고의 자유라 해도 그 사람이 살 동안만 누릴 수 있는 것이지만, 그리스도의 백성들의 자유는 영원하다. 그들은 자유를 무덤까지 가져갈 수 있으며 마지막 날에 자유와 함께 다시 일어날 것이다. 그리고 그 권세를 영원토록 누릴 것이다. 이것이 참된 자유이다. 이것이 자유로워지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백성들의 자유는, 그리스도께서 그의 백성들을 위해 그 자신의 생명의 피를 지불하고 사신 것이다. 이 영광스러운 구원을 잘 살펴보고 이해하는 데 유념하자. 이것에 무지할 때 무기력한 소망, 부족한 위안, 그리고 그리스도의 마음에 대한 끊임없는 의심이 생겨난다. 그리스도의 대리적 죽음과 대속의 교리를 기억하고 그 안에서 안식하자. 이 자유는 그 무엇보다도 가치 있는 자유이다. 아무리 값을 매겨도 과하지 않은 자유이다. 이것이 가장 참된 자유이다. 변해가고 퇴색되어 가는 세상 속에서 이 자유를 소유하기를 바란다.
3. 가장 최고의 자유를 소유할 수 있는 방법에 대해서 말한다.
여러분이 구원의 열매를 어떻게 여러분의 것으로 할 수 있는지 알지 못하면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은 전혀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우리는 타고난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이 아니다. 세례에 의해서 그리스도를 믿는 자유로운 사람이 된 것도 아니다. 겨우 세례를 받았다고 하는 헐벗은 사실밖에는 천국의 시민권을 주장할 아무런 증거가 없는 인간의 상태란 얼마나 불쌍한지요! 그리스도의 나라는 세상 나라와 달라서 그 나라에 소속되는 자격은 인격으로 판가름 난다. 세례나 교회 구성원이 되는 것을 폄하하려는 것은 아니며, 이것들로써는 만족되지 않는 그 이상인 무엇인가가 필요하다.
사람의 영혼이 자유로워지는 것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구세주이며, 구원자이시라는 단순한 믿음을 통해서이다. 영적인 자유를 소유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리스도를 의지하고, 자신을 그리스도께 투신하고, 모든 짐을 그리스도께 맡기는 길 밖에 없다. 이 소유한 특권들은 강력하며 그가 믿은 첫날부터 그의 소유가 된다. 여러분이 양심의 평화를 원한다면, 여러분이 내면의 안식과 위로를 원한다면 믿음이 그리스도의 구원의 공로의 위대한 비밀이라는 기초에서 조금도 흔들려서는 안 된다. 믿음에 의해서, 단순한 믿음에 의해서만 영혼은 자유롭게 될 것이다. 성경의 순전한 말씀과 약속들 위에서 여러분의 영혼이 안식하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여러분이 이것을 믿는다면 여러분은 자유하다.
4. 맺는 말
1) 여러분은 자유한가?
아주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영적인 자유에 대해 생각한다. 이 세상에 대다수의 사람들은 각종의 노예로 살면서 자신들의 자유를 자랑할 것이다. 맨눈으로는 그들의 쇠사슬이 보이지 않을 것이나 그들의 손과 발은 사탄에게 묶여 있다. 자유가 여러분의 것이 되기까지 쉬지 말라.
2) 여러분은 자유로워지고 싶은 소망이 있는가?
그리스도를 구하고, 회개하고, 믿고, 자유로워지라. 그리스도께서는 여러분의 마음의 짐을 벗겨주시고, 여러분의 속사람을 묶고 있는 쇠사슬을 끊어 주실 수 있다. 이러한 자유가 진정 행복의 비결이다. 편안함과 만족을 추구하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하늘나라의 시민들이 아니다.
3) 여러분은 영적으로 자유한가?
기뻐하고 자유에 감사하라. 하늘에 시민권을 두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이 아버지이시며, 그리스도께서 형제가 되시며, 천사들이 그를 수호하며, 천국은 그의 집이며, 그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 여러분의 자유에 굳게 서서 다시는 종의 멍에를 지지 말라. 순교한 개혁자들이 복음으로 영적인 자유를 빛 가운데로 가져오기 위해 얼마나 큰 댓가를 치루어야 했는지 기억하라. 이 자유를 담대히 지켜 온전히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물려주기 위해 수고하라.
영적인 어둠 속에 있는 여러분의 동포를 기억하고 이교도들을 생각하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라. 이 세상의 자녀들이 세속의 자유를 높이는 데 열심을 낸다면 하나님의 자녀들은 영적인 자유를 높이는 데 더더욱 열심을 내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는 아직 육체에 거하고 있고, 아직 이 거친 세상 속에 살아가고 있다. 이미 많은 눈물을 흘렸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눈물을 흘리게 될 것이다. 우리의 구원은 분명 시작되었지만 아직 완성된 것은 아니다. 대희년의 날은 오고 있다. 믿음 안에서 누리고 있던 자유는 변하여 눈에 보이는 자유가 될 것이며 소망의 자유는 확실한 자유로 변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원한 나라의 백성들이여, 장차 올 모든 일에 준비가 된 사람들이여, 기뻐하고 기뻐하라. 자유로우며 또한 자신이 자유로움을 알고 있는 모든 이들에게 복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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