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마 25:14-30
1.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달란트를 받았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받았고, 선물로 주신 재능들이 있다.
“그가 위로 올라가실 때에 사로잡혔던 자들을 사로잡으시고 사람들에게 선물을 주셨다”(엡4:8)
성령께서 그분의 뜻대로 나눠주신 은사들이 있다.
“각 사람에게 성령을 나타내심은 유익하게 하려 하심이라”(고전12:7)
“이 모든 일은 같은 한 성령이 행하사 그의 뜻대로 각 사람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이니라”(고전12:11)
재능과 은사들을 많이 받은 사람도 있고 적게 받은 사람도 있다.
다섯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고, 두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고, 한 달란트 받은 사람도 있다.
받은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닐 가능성이 높다.
지금 무엇으로 살고 있는가?
“우리가 세상에 아무 것도 가지고 온 것이 없으매 또한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못하리니”(딤전6:7)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재능, 재산과 소유들, 은사들. 그 어느 것 하나
내 것이 아니고 주님이 은혜로 직접 또는 사람을 통해 주신 것들이다.
우리는 그것을 맡은 청지기일 뿐이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인데,
지금 가진 것들을 내 것이라고 생각하니, 움켜 쥐고 인색하고 이기적으로만 쓴다.
결국은 빼앗기고 넘겨주고 빈 손으로 세상을 떠나가야 한다.
모든 재능과 은사들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자신의 영혼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 보시기에 신실하고 부지런함으로 하나님의 법도에 맞게 공정하게 써야 한다.
우리는 이 땅에서의 모든 말과 행실에 대해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가서 결산을 해야 한다.
“우리가 다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서리라 기록되었으되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살았노니
모든 무릎이 내게 꿇을 것이요 모든 혀가 하나님께 자백하리라 하였느니라
이러므로 우리 각 사람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롬14:10-12)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나타나게 되어
각각 선악간에 그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5:10)
재능과 은사들을 안 받은 사람은 없으니
안 받았다고 오리발을 내밀어 봐야 심판을 모면할 수는 없다.
그 게으름과 철면피와 자기합리화가 여기서는 통할지 몰라도 거기서 통할 리가 없다.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가시면서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기심과 같다고 하신다.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마25:14)
여기서 어떤 사람은 우리 주님 예수 그리스도시요, 종들은 우리 그리스도인들 각 사람이다.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우리 죄의 형벌을 대신 지고 죽으시고 부활하시고 승천하셨다.
잠시 타국에 가 계신 것과 같다.
그렇지만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고 은혜와 권세로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분은 다시 오실 것이고, 심판대 앞에 우리를 세우시고 결산을 받으실 것이다.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마25:14)
한 달란트는 34.7kg라고 한다.
이두매, 유대, 사마리아를 포함한 전체 지방의 수익이 단지 600달란트에 지나지 않았다.
장정 한 사람이 약 20년 동안 받을 품삯에 해당하는 액수라 한다.(80000x365x20=584000000=약6억)
주님이 내게 맡기시고 떠난 달란트(재능과 소명)가 무엇인지 얼마만한 양인지
가늠하고 기억해 보시기 바란다.
그리고 그것들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오늘 말씀을 통해 명확한 다짐이 있기를 바란다.
2. 착하고 충성된 종이 받는 칭찬과 상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또 다섯 달란트를 남기고
두 달란트 받은 자도 그같이 하여 또 두 달란트를 남겼으되”(마25:16-17)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했다고 했다.
돈과 장사의 비유를 들었지만, 그와 같이 귀하게 여기고 유익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재능과 은사를 많이 받은 사람이 그것들을 자랑하고 앞세우는 데는 곧바로 하면서
그것들을 주신 목적을 따라 행하는 것은 뜸을 들이고 인색하고 행하지 않는 것은
곧바로 가서 장사하지 않은 것이다.
다섯 달란트 받은 자는 바로 가서 그것으로 장사하여 다섯 달란트를 남겼다.
두 달란트 받는 자도 그같이 하여 두 달란트를 남겼다.
받은 만큼 바로 가서 유익을 끼치는 것이 받은 자의 의무와 책임을 다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받아서 우리가 청지기로 맡아 사용하는 목적은 세 가지이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 그리고 자기의 영혼을 위해서이다.
그 반대는 자기의 영광을 위해서, 자기의 유익을 위해서, 자기의 육신을 위해서이다.
오직 자기의 영광과 자기의 유익과 육신을 위해서,
하나님이 주신 재능과 은사들을 사용하는 사람들이 문제이다.
이로 인하여 교회는 어지럽혀지고 세상은 아무 유익도 얻지 못하고 하나님을 욕되게 하는 것이다.
주여 주여 하는 자가 다 천국에 가는 것이 아니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간다고 하셨다.
너희는 세상에 빛과 소금이라,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고 하셨다.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고 귀신을 좇아내고 많은 권능을 행했어도,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하셨다.
상인은 온갖 수고를 하여 장삿일을 배우고 발전시키는 데에 전심을 다하고 이익을 남기는 사람들이다.
참된 그리스도인도 신앙의 일에서 그와 같이 하는 사람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의 물건을 파는 사람이 아니고 주인의 물건을 대리로 파는 사람이다.
재능이나 학식들은 반드시 신앙을 돕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돈이나 권세나 지위도 내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존귀하게 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교회 안에서의 직무나 봉사들도 교회의 유익을 위하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데에 사용되어야 한다.
그들이 다 자기 일은 구하면서도 그리스도의 일은 구하지 않는다고 바울은 탄식한다.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이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빌3:18-20)
땅의 일보다, 자기 일보다, 그리스도의 일을 위해, 주신 달란트를, 바로 가서 사용하여,
각기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를 남긴 자들에게 주님의 칭찬과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마25:21,23)
우리도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이런 인정과 칭찬과 상을 받도록 해야 할 것이다.
주님은 다섯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다섯 달란트 만큼의 이익을 기대하신다.
많이 심은 곳에서는 많이 거두기를 기대하신다.
큰 사업을 맡은 자들과 마찬가지로 받은 은사가 많을수록 더 많은 고통을 감내해야 한다.
주님은 두 달란트 주신 자에게는 두 달란트 만큼의 이익을 기대하신다.
받은 재능이 적고 낮은 자들에게 위로와 격려가 된다.
비록 작지만 주어진 능력과 기회들로 최선을 다하면, 많이 받은 자들과 같은 칭찬과 상을 받게 된다.
우리 주님은 이른 아침부터 포도원에서 일한 자와 십일시에 와서 일한 자에게도
동일하게 한 데나리온 씩을 주셨다.
이와 같이 먼저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된 자가 먼저 되는 자가 많을 것이라고 하셨다.
우리에게 주어진 환경과 소유는 우리 주님이 줄로 재어 주신 아름다운 기업이다.
“내게 줄로 재어 준 구역은 아름다운 곳에 있음이여 나의 기업이 실로 아름답도다”(시16:6)
많이 가진 자들에 비해 내 가진 것은 비록 적고 초라해 보일는지 몰라도,
그것이 주님이 현재 내게 줄로 재어준 구역과 기업인 것을 알고,
이를 아름답게 여기고,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 칭찬하시고 큰 일을 맡기실 날이 올 것이다.
오직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자신을 깨끗이 하면서,
작은 일에 충성을 다하면서, 잠잠히 참고 기다릴 줄을 아노라면,
좋은 날이 주께로부터 이르게 될 것이다.
때가 되면 속히 이루시는 것이 하나님의 역사이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고,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노라면,
때가 되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날이 이르게 되는 것이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 날이 이르게 될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는 충성을 다하는 종들을 아끼시는 주인이시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를 높이는 자들을 높일 준비를 갖추고 계신다.
우리는 작은 일에 충성하고 수고하였지만 주님이 주시는 즐거움은 거기에 비할 수가 없다.
주님이 주시는 축복과 영광은 우리의 수고와 고난과 비교할 수가 없다.
우리의 작은 고난과 수고와 헌신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을 주시고 그 즐거움에 참여하게 하신다.
3. 악하고 게으른 종이 받는 책망과 벌
“한 달란트 받았던 자는 와서 이르되 주인이여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을 내가 알았으므로 두려워하여 나가서 당신의 달란트를 땅에 감추어 두었었
나이다 보소서 당신의 것을 가지셨나이다 주인이 대답하여 이르되 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그러면 네가 마땅히 내 돈을 취리하는
자들에게나 맡겼다가 내가 돌아와서 내 원금과 이자를 받게 하였을 것이니라 하고”(마25:24-27)
하나님은 오직 사랑이고 복 주시는 분으로만 알았던 사람들은 식겁하고 기함할 날이 올 것이다.
기함(氣陷)은 몹시 놀라 소리를 지르면서 넋을 잃는 것, 식겁(食怯)은 뜻밖에 놀라 겁을 먹는 것이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아주 단정적으로 잘 알기도 한다. “당신은 굳은 사람이라”
지가 굳은 사람이까 하나님도 굳은 분인 줄로 단정하고 있다.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분으로 여기고 있다.
‘게으른 자는 사리에 맞게 대답하는 사람 일곱보다 자기를 지혜롭게 여기는’ 법이다(잠26:16).
‘당신이 주셔서 함께 있게 하신 여자가 주어서 먹었나이다’ 하는 아담과 같다.
악인들에게도 해를 비추시고 비를 주시는 분을 굳은 분이라고 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지 않고 즐거워하지 않고 배우지 않고 묵상하지 않는 사람은,
자기 생각과 모양을 하나님께 뒤집어 씌우고 투영하고 단정하여 원망하고 대적하기 마련이다.
그런 단정과 변명이 심판대 앞에서는 통하지 않고 오히려 죄에 대한 책임만 가중될 뿐이다.
재능과 은사를 주셨는데도 이를 목적대로 사용하지 않고 묵혀둔 자에게 주시는 책망은 무섭다.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는 책망이 떨어진다.
주신 재능과 은사들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을 게을리하고 소홀히 한 자는,
하나님께서 금하신 악을 행하는 자와 같고, ‘패가하는 자의 형제’이기 때문이다.(잠18:9)
하나님의 일에서 태만한 자는 마귀의 일에 바쁜 자와 매우 가깝다.
게으름은 사악함으로 이어진다.
다 치우쳐 함께 더러운 자가 되고, 선을 행하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하셨다.
이 게으르고 악한 종은 있는 것도 빼앗기는 선고를 받는다.
“그에게서 그 한 달란트를 빼앗아 열 달란트 가진 자에게 주라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기리라”(마25:28-29)
기본으로 준 것인데도 악하고 게으른 종의 것은 빼앗아,
특별히 충성된 종에게 상급으로 주시는 것이다.
무릇 있는 자는 받아 풍족하게 되고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고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이 땅에서의 축복들, 곧 부와 재물에도, 은사와 재능들에도, 적용되는 말씀이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이웃들의 유익을 위해 사용하도록 맡겨진 것들이다.
그렇게 사용하면 하나님은 그것들을 더욱 풍족하게 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인색하고 이기적인 목적에만 사용하는 자들은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된다는 것이다.
“흩어 구제하여도 더욱 부하게 되는 일이 있나니 과도히 아껴도 가난하게 될 뿐이니라”(잠11:24)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두고, 인색한 자는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게 된다고 하신다.
많이 거둔 자도 남지 아니하였고, 적게 거둔 자도 모자라지 않았다고 하셨다.
충성된 자는 있는 것에 더욱 받아 풍족하게 되고 게으른 자는 없는 것에 그 있는 것까지 빼앗긴다.
게으르고 악한 종은 그 빼앗기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무익한 종을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 하니라”(마25:30)
자기가 받은 달란트를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도, 이웃의 유익을 위해서도,
자기 영혼의 유익을 위해서도,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무익한 종이라고 하신다.
게으른 종은 포도원의 메마른 가지요, 벌통의 게으른 숫벌이요, 아무 짝에도 쓸모 없는 인간이다.
상처를 주지 않는 것으로는 안 되고, 선을 행하고 열매를 맺어야 한다.
그 착한 일과 선한 열매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모두의 유익과 칭찬과 존귀와 영광을 낳는다.
이 무익한 종의 마지막 운명은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겨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는 것이다.
우리 주님이 지옥에 버림받은 자들의 비참한 처지를 지칭하실 때 쓰시는 완곡어법이시다.
바깥은, 천국의 바깥이요, 주님의 즐거움의 바깥이요, 잔치의 바깥이다.
슬피 우는 것은 극한 슬픔이요, 이를 가는 것은 극한 분노와 한이 있을 것임을 말씀해 준다.
착하고 충성된 종의 길로만 가고, 악하고 게으른 종의 길로는 아예 갈 생각도 하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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