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은 마음을 정결하게 하고, 사랑으로 능력있게 역사한다(행15:9,갈5:6). 믿음으로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기뻐하지 않으면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기쁨만을 좇게 된다. 믿음과 상관없이 정욕과 싸우면 싸울수록 정욕은 더 들끓게 된다. 죽을 힘을 다해 싸워 가까스로 정욕을 억눌렀다 할지라도 말이다.
하나님의 진노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경박함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면, 먼저 믿고 낙심하지 말아야 한다. 사람은 낙심하게 되면 될대로 되라는 식으로 생각하게 된다. 마음이 불편해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자기가 마주할 괴로움을 최소화한다. “내일이면 죽을 터이니 먹고 마시자”(고전15:22).
죄 때문에 겸손해지는 것은 믿음의 한 부분이기도 하고, 믿음의 열매이기도 하다. 믿음이 생기면 자기가 지은 죄를 아파하게 된다. “그때에 너희가 너희 악한 길과 너희 좋지 못한 행위를 기억하고 너희 모든 죄악과 가증한 일을 말미암아 스스로 밉게 보리라”(겔36:31). 거지는 더 좋은 옷이 갱기기 전까지는 자기가 가진 누더기를 애지중지하는 법이다. 제대로 걷지 못하게 된 사람은 기댈 데가 있기 전까지는 목발을 놓지 않는 법이다.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을 때 죄에 대한 경건한 슬픔이 생긴다. 완악한 범죄자는 감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오히려 용서가 그를 눈물짓게 한다. 죄를 일삼던 여인이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닦은 것도 바로 이런 연유다(눅7:37-38). 진심으로 죄를 자백하고자 한다면, 죄를 용서하시고 죄인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믿어야 한다. 요단 강에서 세례 요한의 세례를 받은 사람들이 자신의 죄를 기꺼이 고백했던 이유는 죄 용서를 믿었기 때문이다(막1:4-5). 절망에 빠진 사람이 하는 죄의 고백은 기꺼운 행위라고 할 수 없다. 고문당하는 사람이 고통을 피하려고 강제로 있지도 않은 사실을 자백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진심으로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싶은가?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채우실 것을 믿으라(요16:23-24). 그렇지 않으면 우리의 기도는 단지 입바른 말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일 중에 으뜸인 것은 믿음을 갖는 것이다. 훌륭한 자격과 자질을 바라기 전에 먼저 구원자이신 예수님을 바라보라. “하나님께서 보내신 이를 믿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니라”(요6:28-29).
- 월터 마샬, 「성화의 신비」, pp 177-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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