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케팅 교회의 시대적 배경 : 포스트모더니즘과 프래그머티즘
1. 포스트모더니즘
- 프리모더니즘(pre-modernism) : 초월적 존재 즉, 성경의 하나님의 존재를 믿던 시대. 유일한 절대 진리 신뢰.
- 모더니즘(modernism) : 계몽주의. 초월적 존재에 대한 포기. 성경의 권위에 대한 인간의 도전. 인간의 이성, 과학에 절대적 권위 부여. 인간의 자아 연구 활발.
- 포스트모더니즘(post-modernism) : 초월적 진리보다는 인간의 이성과 과학을 믿는 시대. 상대적 진리. 관용. 공동진리
존재하지도 않는 절대적 진리 대신, 개인마다 자신의 힘으로 만들어 내는 진리를 믿는다.
누구나 인정하는 절대적이고 객관적인 진리 대신 개인이 스스로 창조해 내는 상대적 진리이다. 확실히 느껴지는 것만을 진리로 간주한다. 가장 중요한 가치는 바로 나의 ‘존재감’이다. 살아있는 내가 느끼는 존재감을 최대한 채워 주는 것이 바로 진리이고 선이다.
무엇이 옳고 그른가에 대한 질문은 무엇이 내게 더 좋은 느낌을 주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대체된다. 내게 더 좋은 느낌을 주는 것이 옳은 것이고 진리이다. 나의 진리가 당신의 진리가 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인간에 대한 연구를 자아에 대한 연구로 대체시켰다
데이비드 웰스는 다른 누군가에 대한 관심은 갖지 않은 채 내가 누구인가에 대해서만 관심 갖는 인간을 ‘심리학적인 인간’이라고 표현한다. 이 심리적인 인간의 가장 큰 목표는 스스로가 느끼는 ‘만족감’이며 오늘날 인간이 경험하는 자아에로의 함몰이라고 지적하고 있다.
자아를 중시하는 인간은 내가 어떤 존재인지 알려주는 그 어떤 가르침으로부터도 영향을 받지 않고 내가 생각하는 나에 대한 독립적인 정의를 나 스스로 내린다. 그리고 우리가 사는 이 사회는 각자가 내린 정의에 충실한 삶을 살도록 충동질하는 사회이다. “나는 나야!”라고 외치는 광고 문구가 전혀 낯설지 않게 되었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책임을 사라지게 한다.
하나님 앞에서 해결해야 할 죄가 사라진 인간이 자신을 채우고 만족시키는 데만 열중하는 존재로 바뀔 때 우리 속에 있었던 책임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사라진다. 하나님 앞에서도 질 책임이 없는 인간이 나와 동일한 다른 인간에게 어떤 책임을 느껴야 한다는 발상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이는 성경이 가르치는 법칙, 즉 우리가 하나님을 바로 사랑하지 않는 한 결코 우리 이웃을 바로 사랑할 수 없다는 것과 동일선상에 있는 법칙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을 극복하는 길
교회가 포스트모더니즘 세상의 사랑을 갈구하는 순간 교회는 무서운 위기를 맞게 된다. 교회는 프리모더니즘의 가치관을 가진 곳이다. 초월적인 존재와 유일하고 절대적인 진리를 믿는 공동체이다. 초월적이고 유일한 진리를 굳게 붙잡는 것만이 오늘날 교회가 그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길이다.
기독교 진리의 특징
유일한 것만이 진리가 될 수 있다.
(모든 것이 옳고 모든 것이 그르다는 포스트모더니즘적 사고방식은 잘못된 것이다.)
진리는 변하지 않을 때만이 진리이다.
(인간의 변덕을 진리라는 이름으로 부르고 있는 시대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이다.)
말씀을 바로 가르치고 바로 서는 길만이 이 시대를 헤쳐갈 수 있다.
오늘날과 같이 나도 옳고 너도 옳은 시대에 넘어지지 않는 길은 말씀을 바로 배우고 바로 가르치는 길밖에 없다.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에 의지한다는 명목으로 우리에게 분명히 계시하신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성과 실존적인 진실을 소홀히 한다면 그것은 포스트모더니즘에게 완전히 대문을 열어주는 것과 다름이 없다. 기독교를 이성적 탐구의 영역 밖으로 밀어내는 것은 매우 위험하다. 머리로만 아는 기독교도 문제이지만 머리를 포기한 기독교는 훨씬 더 위험하다.
유일하고 변하지 않으며 우리를 자유케 하는 진리는 성경의 진리밖에 없다.
2. 프래그머티즘
존 맥아더, “프래그머티즘이란 실질적인 결과에 의해 의미 또는 가치가 결정된다는 개념이다. 이 개념은 실용적인가 아닌가를 진리 여부의 표준으로 삼는 실용주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프래그머티즘은 그 뿌리를 다윈주의와 세속적 인본주의에 두고 있다. 이 사상은 내재적으로 상대적 가치관을 가지고 절대 선과 거짓 그리고 선과 약 또한 진리와 거짓에 대한 개념을 거부한다. 진리란 유용한 것이며 의미가 있으며 또한 도움이 되는 것이다. 효과가 없으며 관련이 없는 것은 거짓으로 간주돼 거부된다.”
프래그머티즘이 교회에 미친 영향
알란 올프는 오늘날 진화하고 변화하는 프래그머티즘의 특징이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현장은 다름 아닌 예배라고 말한다.
“우리는 어떤 면에서 모두가 다 복음주의자라는 생각이 퍼져 있다. 미국의 종교들은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길을 가르쳐 줌으로 생존하고 번영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로 하여금 종교의 많은 부분을 자기 스스로 알아서 할 수 있도록 허용함으로 지금까지 성장해 왔다. 대형 교회들의 인기와 또다른 형태들의 성장 지향주의 개신교 교회들이 미국 사회에 주는 위협은 기독교의 독선이 주는 편협함이 아니라 진부함이다. 텔레비전, 출판, 정치 켐페인, 교육, 자기 계발 등 이 모든 것이 미국인들이 듣고 싶은 말만을 하고 있다. 이 가운데 이제 기독교마저 미국인들이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또 하나의 새로운 기관으로 추가된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듣고 싶은 말만 해주는 교회. 이것이야말로 프래그머티즘의 특성을 무분별하게 받아들인 교회의 모습이다.
프래그머티즘은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한다
교회 속에 프레그머티즘적인 사고가 만연한다는 것은 결국 구원의 문제가 인간의 손에 달려 있음을 인정하는 것과 다름이 없다. 하나님의 주권이 인간의 선택으로 대체되었다.
사실 프레그머티즘적으로 보았을 때 예수님도 좀 존경을 받을 만한 가문에서 그럴듯한 지위를 가지고 태어나셨어야 한다. 그랬다면 예수님 당신 뿐 아니라 후대의 사람들도 예수님을 선택하는 데에 훨씬 더 용이했을 테니까요.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100% 주권을 믿을 때 십자가는 비로소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고 그 능력으로 구원받은 우리는 은혜를 체험하게 된다. 따라서 기독교의 진리가 달려 있는 하나님의 주권을 우리가 믿는 한 우리는 교회 속에 파고 들어오는 프래그머티즘과 전면전을 선포해야 한다.
프래그머티즘적인 사고가 만들어 낸 구원 초청
하나님의 주권을 부정하는 프래그머티즘이 유발하는 가장 큰 위험은 수많은 가짜 크리스천의 양산이다. 가짜 크리스천, 다른 말로 하면 그냥 교회만 다니는 사람들은 프래그머티즘을 통해 얼마든지 늘어날 수 있다. 로이드 존스는 그의 책 “설교와 설교자”에서 구원초청의 승패가 테크닉에 달려 있음을 믿는 프래그머티즘적인 사고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리는 설교하면서 진리를 제시해야 합니다. 그리고 진리는 무엇보다 먼저 정신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이 순서를 무시하고 다른 요소에 직접 접근하는 순간 곤경을 자초하게 될 것이며, 쉽사리 그 곤경에 빠져 버릴 것입니다. --결국 사람들이 진리에 반응하여 깨달아 ‘앞으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전도자의 개성이나 일반적이며 막연한 두려움 또는 어떤 심리적 영향 때문에 앞으로 나오는 상황이 연출되기 때문입니다”.
프래그머티즘적인 사고가 만들어 낸 간증 중심의 전도
수없이 넘쳐나는 간증 속에서 ‘왜 기독교만이 진리인가’에 대한 깊은 고민과 성찰을 담은 내용을 찾기는 참으로 힘든다. 우리는 간증들에 귀를 기울이는 대신 성경으로 눈을 돌려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성령 하나님이 죽은 영혼을 살리신 진짜 간증들이 담겨 있는 책은 성경뿐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사람들의 귀를 솔깃하게 하고도 남을 자기의 체험을 얘기하는 대신 구약이 예언한 메시아가 왜 예수일 수밖에 없는지에 대해서만 증거했다. 바울에게 있어서 기독교가 진리인 이유는 바로 성경이 진리였기 때문이다.
오늘날 성경 말씀을 떠난 간증들이 판을 치는 현실은 얼마나 우리의 교회들이 프래그머티즘에 물들어 있는지를 잘 보여 준다. 로이드 존스는 간증의 위험성에 대해 말한다.
첫째, 간증이 하나님의 구원 사역의 모습을 정형화 또는 획일화시킬 수 있다고 경고했다.
둘째, 간증이 반복될수록 자신도 모르게 내용을 과장하게 되는 위험이 있다.
셋째, 간증 속에는 마치 인간이 복음을 받아들이고 크리스천이 되는 것을 ‘주를 위해’ 대단한 희생을 한듯이 포장할 수 있는 위험이 있다.
넷째, 간증이 주는 위험의 핵심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개인적 체험이 기독교의 진리 여부를 판단하는 잣대가 된다는 것이다.
들릴라를 잃지 않기 위해 자신의 머리털을 잃었던 삼손의 모습이 오늘날 세상의 사랑을 받기 위해 복음의 능력을 스스로 버리는 교회의 모습이 아닌가? 미국 교회와 한국 교회의 슬픈 모습을 우리는 미국의 월 마트나 한국의 대형 마트를 통해서 볼 수 있다.
교회는 프래그머티즘이 주는 악영향에서 벗어나야만 한다. 그러기 위해 무엇보다 바른 구원관의 확립이 필요하다.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면서 이상한 체험을 한 것이 구원을 보장하지 않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리고 무엇보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구원이 필요한 죄인 됨에 대한 깊은 각성 없이는 결코 복음이 내게는 ‘복된 소식’이 될 수 없음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경과 성령의 능력
복음을 받아들이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 한 분 뿐이다. 그렇기에 그 방법도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하신다. 하나님의 방법은 성경 말씀 뿐이다. 존 맥아더의 말이다.
“예수님에 따르면 구원받는 것은 아주 어렵다. 마태복음 7장 14절에 그는 좁은 길에 대해 말씀하셨다. 그 좁은 길을 찾는 사람은 적다고 말씀하셨다. ‘나는 예수님을 믿습니다’라고만 하면, ‘다행입니다. 이제 당신은 우리의 가족이 되었습니다. 이리 어서 오세요’라고 말하는 것은 값싼 복음이고 쉬운 믿음주의이며 라이트 기독교이고 얕고 감정적인 부흥사 스타일의 접근방식이다. 그렇지 않다. 좁은 길을 찾아내는 소수의 사람은 그 길을 찾기 위해 힘을 들여 노력하고 그 길은 오로지 혼자 외롭게 걸어가는 길이다. 참으로 그 좁은 길로 사람들을 인도하는 교회와 설교자를 찾는 것은 너무 어렵다. 하나님의 나라는 그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고통하는 사람의 것이다. 오늘날 사탄의 가장 큰 설득력 있는 거짓말은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쉽다는 바로 그 거짓말이다. 그 길은 좁은 길이고 당신은 그 길을 혼자 걸으며 당신의 죄를 놓고 아파하고 용서를 갈망하며 걸어가야 하는 길이다. 인간의 공로로 천국 간다는 얘기가 아니다. 당신이 자신의 죄 앞에서 절망하는 순간 당신은 결코 당신의 혼자 힘으로 그 좁은 길을 갈 수 있는 것이 전혀 아님을 가장 먼저 깨닫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당신이 그 천국문을 들어가도록 하기 위해 당신에게 은혜를 부어주셔야만 한다. 당신의 부서짐 속에서는 이제 그분의 능력만이 당신의 자원이 된다. 우리의 몫이란 단지 우리의 죄와 무력함을 인정하고 은혜를 갈구하며 하늘에서 오는 능력을 기다리는 것뿐이다.”
우리 주위에는 바른 복음이 아닌 잘못된 복음을 가르치는 교회가 많다. 그런 교회로부터 우리는 힘을 다해 도망쳐야 한다. 우리의 영생이 달려 있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른 복음을 전하는 교회를 찾아 그 안으로 피해야 한다.
존 맥아더는 말한다.
“그 누구라도 크리스천이 되는 것이 쉽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결코 믿어서는 안 된다. 죄인을 구원하기 위해 하나님은 당신의 유일한 아들을 죽게 하는 희생을 치르셨다. 그리고 구원은 당신에게도 동일한 희생을 요구할 것이다. 구원은 지식적으로 추론해서 나오는 결과가 아니다. 구원은 성경 말씀에 드러나신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순종과 섬김의 삶을 통해 나온다.”
바울은 복음을 전할 때 당시의 사람들에게 아주 효과가 있었을 그리스도 철학의 설득력 있고 지혜로운 말을 의지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는 복음의 능력은 오로지 성령 하나님으로부터만 나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고전 2:1-5). 프래그머티즘의 정체를 바로 아는 것은 복음 속에 있는 하나님의 능력을 회복하는 것과 직결된 일이다.
- 옥성호, "마케팅에 물든 부족한 기독교", 2장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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