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마스 보스톤

[스크랩] 토마스 보스톤,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무죄의 상태, 본래의 의(강의안)

강대식 2017. 1. 11. 12:17

토마스 보스톤, 인간 본성의 4중 상태

스데반 황역, 부흥과개혁사, 2015, 531,

 

왜 청교도 책을 읽어야 하는가?(백금산목사)

 

청교도라는 말이 역사에 등장한 것은 1564년경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영국 역사가들은 일반적으로 청교도들이 주도권을 잡았던 청교도 시대를

1558(메리 여왕의 죽음과 엘리자베스 여왕의 통치 시작)으로부터

2,000여명의 청교도 목사들이 국교회로부터 추방된 1662년까지로 잡고 있다.

청교도 시대는 100여명의 뛰어난 목회자 겸 신학자였던 작가들에 의해

신학적 깊이경건한 실천을 겸비한 책들이 홍수처럼 쏟아져 나온 책의 시대였다.

 

조엘 비키는 청교도들의 특징을 이렇게 말한다.

성경으로 삶을 형성했으며, 교리와 실천을 완벽히 결합시켰으며,

그리스도에 집중적 관심을 두었고, 시련과 시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상과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사람들이다.”

 

청교도들은 영적 거인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성경적 기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델이다.

오늘날에도 청교도의 저서들은 우리가 참된 기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 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성경의 참고서들이다.

 

<청교도 고전으로의 초대>에서 발췌(PP 410-416)

 

보스톤의 이 책은 18세기 최고의 베스트셀러로서,

스코틀랜드, 영국 그리고 미국에서 무려 100쇄 이상 발행되었다.

대각성 시대의 저명한 설교자들은 자주 갓 회심한 진자들에게 이 책을 읽도록 추천했다.

조나단 에드워즈도 이 탁월한책을 좋아했고, 저자를 진실로 위대한 신학자로 칭송했다.

조지 휫필드는 이 책을 자신의 영혼에 크게 영향을 미친책 가운데 하나로 꼽았다.

존 웨슬리는 이 책의 요약본을 자신이 선정한 청교도 총서에 포함시켜 출판할 정도였다.

보스턴의 영향력은 이 책이 프린스턴 신학교 독서목록에 들어 있던 19세기까지 계속되었다.

 

만약 당신이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구원받기를 원하며 고통의 지옥에 들어가기를 결코 원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본성의 상태에 절대로 머물지 말라. 그 상태의 죄악됨과 비참을 깨닫고

신속하게 거기서 나오기 위해 노력하며 믿음으로 그리스도 예수께 피하라.

당신 안에 있는 죄는 지옥의 씨앗이다. 만일 기회가 있을 때 죄책과 죄를 주관하는 세력이

제거되지 않는다면, 그것들이 당신을 영원한 둘째 사망으로 이끌고 갈 것이다.

죄책과 죄의 세력을 제거하려면 의로움과 거룩함을 위해 복음 안에서 제시되는 그리스도를 영접하라.

지금 그리스도는 그분의 모든 구원과 함께 당신에게 제시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평화의 중보자이시며 거룩의 원천이시다.

바로 그분이 다가오는 진노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다.”

 

 

토마스 보스톤(Thomas Boston, 1676-1732)은 비국교도 부모에게서 태어난,

스코틀랜드 장로교회의 목사이자 신학자다. 에든버러 대학교에서 공부했고,

1699년에 심프린이라는 작은 교구의 목사가 되었다.

1707년에는 에트릭으로 부임하여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목회했다.

 

18세기 스코틀랜드 장로교 목사인 토마스 보스톤은 전문적인 의미로 볼 때

청교도라고 부르기에는 너무 늦게, 또 너무 먼 곳에서 활동했다.

그러나 보스톤의 삶과 사역은 청교도라는 말 외에 다른 말로는 거의 설명이 될 수 없다.

 

토마스 보스톤은 신실한 목사였다. 비록 우울증 증세가 있었고,

여러 가지 육체의 질병으로 고통을 받기는 했지만,

그는 30년 이상 목회하면서 한 번도 주일 강단을 비운 적이 없었다.

보스톤은 주일에 두 번씩 설교하는 것 외에도, 주중에는 강의를 하고,

영적으로 권면하고 교리를 가르치기 위해

말을 타고 널리 흩어져 사는 교구민들을 심방하는 등 의욕적으로 목회 사역을 감당했다.

 

보스턴은 청교도 저자들 곧 윌리엄 에임스, 새뮤얼 러더퍼드, 토머스 굿윈, 토머스 셰퍼드, 존 밀턴,

리처드 백스터, 그리고 존 오웬 등의 책을 포함하여 청교도 문헌에 조예가 깊었다.

그가 가장 선호한 책은 한 교구민의 오두막집에서 발견한 소책자 <최근 신학의 정수>였다.

이 책에 담겨 있는 은혜의 교리들이 율법주의로의 퇴행을 방지하고

칼빈주의를 보존하는 데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정확히 인식하고 있었다.

 

토마스 보스톤은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에 대한 긴 해설, 언약 신학에 관한 두 권의 책,

심오한 영적 자서전을 포함하여 훌륭한 작품을 많이 썼다.

그러나 가장 영향력 있는 그의 작품은 인간 본성의 4중 상태로서,

이 책은 목회 사역의 경험을 토대로 쓴 인간론에 대한 대작이다.

거의 한평생에 걸쳐 전한 다양한 형식의 설교들이 이 책에 포함되었다.

 

 

      

1부 무죄의 상태

 

내가 깨달은 것이 오직 이것이라

곧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으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7:29)

 

천국을 보게 될 모든 자들이 알아야 할 네 가지가 있다.

1. 하나님이 사람을 지으셨을 때 사람의 무죄 상태

2. 사람이 스스로 타락함으로써 처하게 된 부패한 본성의 상태

3. 선한 일을 행하도록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지음을 받은 자가

빛 가운데 있는 성도의 기업에 참여하기 위한 은혜의 상태

4. 모든 자의 재판관에 의해 완벽한 행복의 상태로,

또는 철저한 비참의 상태로 거하게 될 각 사람의 영원한 상태

 

전도서 729절은 세 가지를 말해 준다.

1. 사람은 무죄의 상태로 지음 받았다.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 ‘사람은 우리의 첫 번째 조상으로 이해해야 한다. , 인류의 뿌리인 최초의 부부를 의미한다. 이후의 모든 세대들이 그 샘으로부터 흘러나왔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5:1-2). 그는 몸과 영혼에 있어서 결함이 전혀 없었고, 아무런 부패가 없었으며 낡아지지 않았다. 그는 정직하게지어졌기 때문에 그의 영혼 안에는 아무런 불규칙이 없었고 하나님의 뜻과 법에 거치는 것이 없었다. 하나님을 자신의 목적으로 삼아 그분을 곧바로 향하고 있었다. 이 올곧은 성향은 그의 몸이 직립으로 지어진 점에서 상징적으로 나타났다. 첫 사람은 의로우며 순결하고 거룩하여 법적인 의미에서 온전했다. 바로 처음 그를 만드실 때 의롭게 지었다 그러므로 본래의 의가 사람과 함께 했으며, 또한 사람은 사람이 되는 순간 도덕적으로 선하고 의로운 존재가 되었다. 하나님이 그에게 산 영을 불어 넣으실 때 주의 의로운 영혼을 불어 넣으셨다.

 

2. 여기에 사람의 타락한 상태가 있다. 그러나 사람이 많은 꾀들을 낸 것이니라”. 그들은 하나님 안에서 안식하지 못하고 떨어져 나가더니 자신들의 꾀를 추구하기 시작했다. 사람은 스스로 삶을 영위하고자 했으나 도리어 철저하게 모든 것을 망쳐 놓았다. 그들의 파괴는 오직 그들 자신의 고유한 동의로 인한 것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이 지으신 대로 머무르려고 하지 않았다.

 

3. 이 사실들의 확실성과 중요성을 관찰하라. 내가 깨달은 것은 오직 이것이라.”

이 사실들을 믿으라. 이 사실들은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 깊은 연구와 신중한 조사를 통해 알아낸 것들이다. 솔로몬은 모든 불확실함 가운데 한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발견한 후 확증했다. 당신은 이것을 가장 분명한 진리로 알고 의지할 수 있으며, 그 진리 안에서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 당신의 가장 깊고 신중한 관심을 이 진리에 두고 당신의 눈을 그것에 고정하라. 그 진리는 지금 사람의 본성이 부패했다는 사실이다. 하지만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기때문에 이 부패는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라 사람이 많은 꾀들을 냄으로그 자신들로부터 기인한 것이다.

 

교리: 하나님은 사람을 전적으로 의롭게 지으셨다.

 

1. 사람의 본래의 의에 대하여

 

무죄 상태의 의에 대해서는 피조되지 않은 의, 하나님의 의가 최고의 척도다. 피조물은 자연세계 속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독립될 수 없다. 피조물은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뜻을 최고의 법으로 인정해야 한다. 이는 피조물은 하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오직 그분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이다. 본문은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지으셨다고 말한다. 이는 사람이 지음받았을 때 순응해야 할 법이 있음을 전제한다. 이 법은 우리가 도덕법이라고 부르는 십계명으로 요약되어 나중에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되었다. 사람의 의는 이 율법 또는 규칙에 순응하는 데 있었다.

 

사람에게는 두 가지 순응이 필요하다. 하나는 율법에 그의 영혼의 능력이 순응하는 특유의 의라고 불리고, 다른 하나는 사람의 모든 행동이 그 법에 순응하는 것으로 실제적인 의라고 불린다.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실 때 특유의 의를 지닌 존재로 지으셨다. 이에 사람은 스스로 의롭게 행동해야 했다. 특유의 의는 하나님이 사람의 손에 쥐어 준 자본이었다. 사람은 특유의 의를 발전시켜서 실제적인 의를 만들어 내야 했다. 우리는 사람이 지음받았을 때 맨 처음 부여받은 이 의를 본래의 의라고 부른다. 세 가지 측면에서 다루어 볼 수 있다.

 

1. 사람의 이해력은 빛의 등불이었다.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에 따라 지음을 받았기 때문에 그 형상의 일부분인 지식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었다. 따라서 율법과 그 율법에 따르는 의무를 완벽하게 이해했다.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3:10).

그가 지음받았을 때 그의 지각에 율법에 대한 지식이 쓰여 있었다. 하나님은 율법을 아담의 영혼에 새겨 넣으셨고 그가 자기 자신에게 율법이 되게 하셨다. 이 사실은 이교도들에게도 그 흔적이 남아 증거 되고 있다(2:14-15).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2:19). 그것들이 본성에 따라 이름을 지어주었다. 하나님은 그가 자신의 뜻에 따라 진지하게 사용하고 관리할 수 있도록 만물을 다스리는 통치권을 주셨다. 이는 아담이 만물의 본성에 대한 지식을 지녔음을 의미한다.

 

2. 사람의 의지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과 잘 어울렸다(4:24). 그의 의지에는 부패가 전혀 없었으며 악을 향하는 성향도 전혀 없었다. 죄가 없었다는 뜻이다. 사람의 의지는 비록 변할 가능성이 있었을지라도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선을 향하는 성향을 지니고 있었다. 마치 그림자가 몸을 따르듯이 원래 지어진 사람의 의지는 창조주의 뜻을 그대로 따르도록 되어 있었다. 율법은 아담의 영혼에 새겨졌다. 이 사실은 지금 새 언약에 따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된 상태에서 볼 때 두 가지를 포함한다.

1) 지각(mind)에 율법이 새겨졌다는 것은 율법에 대한 지식이 새겨진 것을 나타낸다.

2) 마음(heart)에 율법이 새겨졌다는 것은 의지에 있어서 율법의 명령에 호응하려는 성향을 지닌 것을 나타낸다(8:10). 은혜에 의하여 새롭게 된 사람의 의지는 자연스럽게 모든 면에서 율법이 요구하는 대로 거룩을 향한다. 거듭난 마음을 나타내는 그분의 법을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신다는 표현은 하나님이 사람의 생각 안에 있는 율법에 대한 관념뿐만 아니라 그 관념과 함께 갈 의지의 성향도 부여하셨음을 의미한다. 이 성향은 중생한 영혼 안에서는 부패와 섞여 존재하지만 처음 지어진 정직한 아담 안에서는 부패와 섞이지 않고 온전히 순결했다. 요약하면, 아담은 어떤 의무를 감당해야 그의 주인의 기쁨이 되는지 알고 있었으며 아담의 의지는 그가 아는 바를 향해 기울어져 있었다.

 

3. 사람의 감정은 정연하고 순결하고 거룩했다. 사람의 감성적 요구는 참으로 자연스럽게 그 감성을 만족시켜 줄 대상을 향하게 된다. 사람이 몸과 영혼으로 지어진 점과, 하나님이 자신의 영광과 즐거움을 위해 사람을 지으셨다는 점, 그리고 그 목적을 위해 그분의 선한 피조물들을 자기에게 복종시키시는 점을 고려할 때 사람을 자연스럽게 영적인 선감성적인 선을 향하도록 지음을 받은 것은 자명하다. 그때 사람의 원래 상태의 감정은 그 어떤 더러움도 없는 순결한 것이었고 모든 무질서와 모든 병으로부터 자유로웠다. 그 이유는 사람의 감정의 모든 움직임이 자신의 맑은 이성과 거룩한 의지에 마땅히 순복했기 때문이다. 또한 자신의 의지에 응답할 수 있는 실행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 마땅히 이루어져야 하는 선을 행할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만일 그렇지 않았다면 하나님은 그에게 완벽한 순종을 요구하지 않으셨을 것이다.


성경에서 설명된 본래의 의는 보편적이며 자연적이었다는 사실과 그럼에도 변할 수 있었다는 사실이다.

1. 본래의 의는 그 주체에 있어서 전인이며 그 대상에 있어서는 전체 율법이라는 면에서 보편적이었다.

2. 본래의 의는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그는 그 의와 함께 지음 받았고, 그의 온전함에 꼭 필요했다.

3. 그 의는 변할 수 있었다. 슬픈 사건에 의해 드러난 것처럼 그 의는 잃어버릴 수 있었다. 하나님은 사람의 의지를 오직 선을 향하도록 정하셨지만 그 성향이 전혀 움직이지 못하도록 고정하시거나 그렇게 확정하신 것은 아니었다. 그가 원하기만 하면 스스로 악을 향해 움직일 수 있었다.

의로운 상태의 확정은 시험의 상태를 통과하면서 그가 지속적으로 의로우면 그때 주어지는 은혜의 상이다.

이런 이유로 성도들에게는 죽기까지 복종하신그리스도의 공로로 확정된 의의 상태가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 신자들은 이미 아담이 놓친 그 특전을 얻었기 때문에 은혜로부터 완벽하게 떨어지거나 또는 궁극적으로 떨어지는 일은 결코 있을 수 없다.

사람은 원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의롭게 지어졌다. 그는 자신의 능력과 법칙과 성향에 따라 율법에 순복하든지 아니면 불복한다. 만일 그가 순복하면 그는 의로운 상태에 머무는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죄인이 된다. 이는 생각만 해도 터무니없고 또한 끔찍하다.

 

2. 사람이 초기 상태에 지닌 의로부터 흘러나오는 또는 동반하는 몇 가지들

 

행복은 거룩의 결과다. 사람이 초기에는 거룩했기 때문에 행복한 상태였다.

1. 그때 사람은 매우 영광스러운 피조물이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그의 얼굴이 빛을 발했던 것처럼, 우리는 첫 사람은 죄의 어둠이 전혀 없는 가운데 매우 밝게 빛나는 호감을 주는 얼굴과 아름다운 몸을 지녔었다고 추측할 근거가 있다. 하나님은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운 분”(15:11)이므로 사람을 지으면서 그에게 입히신 영적인 아름다움이 매우 영광스러운 피조물이 되게 했음을 확신할 수 있다. 주의 율법이 내면에 새겨져 있었고, 외부적으로도 아무런 더러움이 없었다. 하늘의 언어만을 말했다. “왕의 아들의 내면은 모든 영광으로 가득차고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다.”

 

2. 사람은 하늘의 총애를 받았다. 그는 하나님의 형상을 환하게 비쳤다. 그는 창조주와 교통하며 친교를 나눴다. 첫 번째 언약 곧 행위 언약을 맺었다. 율법을 줄여서 하나의 언약 형태로 만드셨는데, 완벽한 순종이 그 조건이었다. 생명이 약속되었고 위반할 경우는 죽음이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고 정하셨다. 생명의 약속은 죽음의 경고에 포함되어 있었다. “만일 네가 그것을 먹지 않으면 너는 반드시 살리라는 뜻을 포함한다. 하늘의 영생도 이 언약 안에서 약속되었던 것이 분명하다. 아담이 금단의 열매를 먹던 그날, 그는 율법 안에서 죽은 자가 되었다. 죽음에 이르는 부상을 입고 반드시 죽게 되었다. 아담은 본래의 의를 상실했고 하나님의 은총도 잃게 되었다. 아담을 총애하셨던 은혜로우신 하나님은 은혜가운데 귀한 행위 언약을 허락하셨다. 첫째 언약에도 풍성한 은혜와 은총이 차고 넘쳤었다.

 

3. 하나님은 사람을 세상의 주가 되게 하셨고, 열등한 피조물들의 왕이 되게 하셔서 온 땅의 황제 및 주인이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대리 통치자가 되었고 그의 통치는 하나님의 주권의 형상이었다. 그가 지켜야 하는 단 한 가지는 에덴동산에 있는 나무 하나, 즉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만 멀리하면 되었다. 그 규제는 특성상 그가 타락하는 것을 막아주고 붙들어 주는 버팀목이었다. 세 가지 근거로 말하겠다.

 

1) 하나님의 무한하신 지혜의 행위였다. 그 나무는 사람의 위대한 주인은 자신의 창조주라는 사실을 붙들게 하는 눈에 보이는 증거였다. 그 증거 때문에 여전히 하나님의 신하라는 사실을 망각할 수 없었다.

2) 이 규제는 하늘로부터 사람에게 주어진 기념비로서 그의 무죄 상태가 변할 수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했다. 악을 계속적으로 대항하도록 계속적으로 경계심을 주는 좌우명이었으며, 그의 앞에 놓은 등대였다.

3) 하나님은 사람을 정직하게 만드시어 하나님 자신을 그의 주된 목적으로 삼으며 주를 향하게 하셨다. 하나님은 짐승들이 땅을 내려 보게 하셨는데 사람은 직립으로 서는 몸을 주셔서 위를 보고 사람의 행복이 위에 계신 하나님 안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금단의 나무는 하나님께 가야함을 나타내는 모든 피조물의 손가락이었다. 또한 피조물의 문 앞에 매달린 이것은 당신의 안식처가 아니다라고 쓰인 허무의 표시였다.

 

4. 사람의 마음 속에는 완전한 평온이 있었고, 그의 외부에도 완전한 잔잔함이 있었다. 양심은 그를 인도하고 인정하고 기뻐하는 일 외에 다른 할 일이 없었다. 질병이나 아픔을 당할 일이 없었고, 아직 고생이나 피로나 이마의 땀은 알려져 있지 않았다.

 

5. 사람은 이 상태에서 청아한 즐거움 및 순수한 재미를 누리는 삶을 살았다. 순수한 즐거움의 강들이 에덴을 통해 흐르고 있었다. 아담의 즐거움은 순결했고 그의 재미는 고상했다.

 

6. 사람은 죽음을 모르는 불멸의 상태에 있었다. 사람은 죄를 범하지 않았다면 결코 죽지 않았을 것이다. 하나님의 손으로 지어진 사람의 몸의 완벽한 구성은 매우 좋았고, 그의 영혼의 의와 거룩함은 죽음의 원인이 될 수 있는 모든 내적인 요소들을 제거했다.

 

3. 무죄 상태의 교리를 적용함

 

사용1. 정보를 위해

1. 사람의 파멸 원인은 하나님이 아니라 사람 자신이다.

2. 지금은 사람들이 율법을 지킬 능력이 없을지라도, 하나님이 사람에게 율법에 대해 완벽한 순종을 요구하시고 또한 완벽하게 순종하지 못한 자들을 정죄하시는 것은 가장 공정하다. 주께서는 사람에게 율법 전체를 지킬 수 있는 능력을 주셨다. 사람은 자기 자신의 잘못으로 그 능력을 잃었다. 사람의 죄가 하나님의 권리를 결코 제거할 수는 없었다.

3. 여기서 우리는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무한한 은혜를 입게 된다. 그분은 자기 자신의 보혈로 우리의 자유함을 사서 그것을 다시 우리에게 기꺼이 그리고 값없이 주셨다(13:9). 그리스도 예수가 사신 자유는 영원토록 안전하기 때문에 다시는 잃어버릴 가능성이 없다(10:28-29). 자유의지로 비참의 늪에 빠진 자들이 값없는 은혜로 구원받을 것이다.


사용2. 이 교리는 세 종류의 사람을 책망함

1. 어디서든 경건의 능력을 지닌 참된 기독교가 나타날 때 그것을 미워하여 오직 자기들의 정욕과 세상 안에서의 즐거움을 누리는 자들을 책망한다. 그들은 그들의 악의에 의해 자신들이 뱀의 후손인 사실을 입증한다. 2. 이 교리는 참된 기독교를 능욕하는 자들과 주의 은혜를 모르는 세상 앞에서 참된 기독교를 부끄럽게 여기는 자들을 책망한다. 3. 이 교리는 교만과 자만에 찬 유명(唯名) 신자를 책망한다.

 

사용3. 애통함으로

웅장한 건물이 있었다. 멋진 궁전처럼 조각된 사람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잿더미 가운데 놓여 있다. 그의 파멸을 본다. 그리고 눈물을 흘린다. 이 눈물은 애통이다. 우리 조국이 멸망하거나 우리 집이 불에 타서 모든 소유가 불꽃 속에서 사라진들, 사람에게 발생한 암울한 사건에 전혀 미치지 못한다. 사람은 하늘에서 떨어진 별과 같다! 한때 하나님의 성전이었던 마음은 이제는 강도의 소굴로 바뀌었다. 이제 영광이 떠났으니 우리의 이름을 이가봇으로 하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에 소망이 있다. 죄인들아 오라. 와서 둘째 아담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라. 첫째 아담과 그의 언약을 버리고 새롭고 더 나은 언약의 중보자이며 보증인 예수께로 나아가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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