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리엄 거널

[스크랩] 윌리엄 거널, "그리스도인의 전신갑주", Ⅰ. 성도의 무장(강의안 2)

강대식 2017. 1. 21. 09:00

3. 주 안에서 강건하라

 

성도들의 힘의 근원

 

성도들의 힘의 근원은 바로 그리스도로서, 성경은 주 안에서 강건하라고 말하고 있다. 세상의 장군은 그의 전력이 곧 군사들에게 있다. 그러나 성도들의 경우 힘의 근원은 그리스도이기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의 능력을 소지하지 않고서는 성도들은 아무리 작은 전초 기지도 방어할 수 없다.

 

하나님을 일컫는 말 중에 이스라엘의 지존자’(삼상15:29)라는 말이 있다. 하나님이 다윗의 힘이 되어 주셨기에 보잘 것 없는 양치기 소년이었던 다윗은 골리앗을 쓰러뜨릴 수 있었다. 만일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지 않았다면 다윗은 골리앗의 고함소리만으로도 벌벌 떨었을 것이다. 다윗은 이렇게 노래했다. 나의 반석이신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그가 내 손을 가르쳐 싸우게 하시며 손가락을 가르쳐 전쟁하게 하시는도다”(144:1).

 

다윗의 힘이 되어 주셨던 하나님은 오늘날 당신의 힘이 되어 주셔서 죄와 사탄에 대항하여 싸울 능력을 공급하실 것이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15:5).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은혜를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마치 우물 물과도 같아서 길어내지 않고서는 결코 손에 넣을 수 없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맨 처음 펌프 역할을 해주시어 우리로 하여금 쏟아지는 은혜를 맛보게 하셨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2:13).

 

그리스도인이란 마치 받침이 없는 잔(성배)과도 같아 하나님의 강한 손에 의한 붙들림이 없이는 결코 혼자 설 수가 없다. 이러한 점을 잘 아시던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기 전에 하나님께 이렇게 간구했다. “....내게 주신 아버지의 이름으로 그들을 보전하사”(17:11).

하나님 능력의 중대성

 

인간의 양심은 육신과 더불어 하나님께로 지은 바 되었다. 양심은 인간으로 하여금 죄를 제어하는 데에 있어서 하나님의 속성을 지닌다. 그 예로 양심은 우리가 죄에 빠지려고 할 때에 거부하는 태도를 보인다. 그리고 의로운 일을 할 때엔 동조하는 모습이 보인다. 하지만 성경은 인간을 이렇게 말한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마는”(17:9). 양심이 스스로 제 역할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권한에 달려 있다. , 우리의 양심이 항상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하나님으로부터의 끊임없는 능력의 공급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인들의 양심은 피조물 가운데서도 아주 약하기 때문에 항상 강한 악의 세력으로부터 공격을 받게 된다. 사탄은 이 세상의 염려를 통해, 때로는 세상적인 즐거움을 미끼로 양심을 혼란케 한다. 그것은 마치 자기 방어 능력이 전혀 없는 유모차 위에 누운 왕자와 같다. 따라서 성도들의 경우에 있어서 하늘로부터의 보호와 끊임없는 하나님의 관여하심이 필요하다.

 

그런데 문제는 하나님께 내어 맡긴 후에도 우리의 옛사람은 끝없이 반항할 때가 있다. 따라서 우리의 양심을 지킨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때문에 우리의 심성은 완악하고 자기 의지적이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끊임없이 주장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쾌락과 안일함에 몰두하여 우리의 선한 양심이 서서히 부패해가는 것을 모를 것이다. 이것은 빵부스러기를 새에게 던져주듯 우리의 양심을 사탄에게 던져주는 것과 똑같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의지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가장 바라시는 것이 성도들이 천국에 이르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의지하여 도움을 청해야 한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도움이 필요한 곳에 수시로 찾아 가시며 그들의 빈 곳을 은혜로 가득 채우신다. , 하나님을 간절히 원하는 곳에는 언제나 함께 계신다.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2). 하나님께서는 기도할 힘, 말씀 들을 힘, 그분을 위해 고난을 능히 이겨 낼 힘 등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고 계신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 확신할 수 있도록 늘 힘을 공급해 주시는 그의 자비하심은 결코 고갈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에게 공급된 힘을 잘 간수하지 못하고 없애버리는 경우가 있는데, 그것은 마치 파산한 사업가의 빈 손과도 같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바로 깨어진 질그릇과 같을 때가 많은 약한 존재임을 잘 아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가득 채워 주어도 금새 새어 버리게 된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흐르는 그분의 은혜의 샘물 곁에 우리를 거하게 함으로써 비어 있을 때마다 지속적으로 채워 주신다. 이러한 하나님의 공급은 광야에서 거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도 해당되었다. 그들이 목마를 때 바위에서 생수가 솟아나 그들의 갈증을 채워 주었기 때문이다. 그 바위는 그리스도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는 믿는 사람과 늘 동행하심으로써 필요한 때마다 공급해 주시고, 그 어떠한 시험을 만날 때마다 능력을 주신다.

 

결론적으로,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께 의지해야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지극히 당연한 일이다(1:4, 12). 당신의 모든 일을 그분께 맡길 때에 더욱 큰 은혜를 받게 된다. 이제 당신이 할 일은 당신의 모든 능력이 하나님께로부터 온다는 것을 인정하는 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전 삶이 하나님께 빚진 바 된 것임을 잊지 않는 것이다.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와 함께 여행을 갈 때 그에 필요한 모든 비용은 그의 부모가 부담하게 되는 것과 같다.

 

엄숙한 경고

 

그리스도인의 능력은 자기 자신에게가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는데 그것이 정말인가? 그렇다.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떠나서는 무기력하고 보잘 것 없는 피조물에 불과하다. 따라서 스스로의 힘으로는 결코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 살아있는 나무가 뿌리로부터 수액을 공급받지 못하면 살 수 없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다. 썩은 가지가 혼자의 힘으로 재생될 수 없음도 마찬가지이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인들도 일단 하나님의 은혜로 채워지면 지속적으로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상태에서는 결코 스스로 능력을 발휘할 수 없다. , 하나님과의 관계 단절이란 능력의 상실을 수반한다.

 

그리스도인들에게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 당신의 능력은 전적으로 하나님에게로부터 온다는 것을 명심하라. 결코 당신 자신에게서 오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라. 그리하면 그분의 은총과 함께 그분의 도구로 가장 적절한 쓰임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옷에 비유해 볼 때, 당신이 입고 있는 옷을 하나님께서 만드셨다는 것을 기억하라. 결코 당신 스스로의 능력으로 된 것이 아니며, 그 값 또한 하나님이 이미 치르셨다. 당신이 하지도 않은 일에 대해 어떻게 잘난 척하며 자랑할 수 있겠는가? 만일 당신이 하나님의 몫을 가로챈다면 하나님께서는 즉각 회계 감사를 실시하시어 그분의 것을 모두 찾아가실 것이다. 영적으로 당신에게 무한한 관용을 베푸실 때에도 그분의 영역을 늘 고수하심으로써 당신이 만일 하나님의 영역을 침범할 시에는 어김없이 영적 풍요함을 앗아 가신다. 당신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은혜를 오용한다면 당신은 영적 빈곤에 빠지지 않을 수 없게 된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서 겸손하게 행하라. 왜냐하면 당신이 사용하고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 빌어온 것이기 때문이다. 구걸해서 얻은 것을 마구 헤프게 사용하는 사람이 있겠는가? 또한 자선을 베풀고자 하는 대상이 낭비벽이 있다면 계속 동정을 베풀고자 하는 마음이 있겠는가? 하나님의 입장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인간에게 베푸신 은혜를 인간이 귀히 여기지 않고 제멋대로 마구 사용한다면 어떻게 하시겠는가?

 

4. 하나님의 능력을 선용하라

 

바울은 우리의 능력이 어디에서 오는가에 대해 여러 번 강조했다. 그렇다면 두 가지 문제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하자. 첫째, 하나님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둘째,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가?

 

하나님의 능력이란 무엇인가?

 

간단히 대답하려면 다음의 성경 구절을 참고로 해보자.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1:6). 이 말이 의미하는 바는 결국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이 능력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을 선용하는 것이란?

 

믿는 사람들은 어떻게 하나님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 있을까? 두 가지 행동이 요구된다. 첫째,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시다는 것을 확실히 믿어야 한다. 이것은 신앙의 기본적인 요소이다. 둘째, 그의 전능하심이 당신의 삶에 방패가 되어 주신다는 것 또한 믿어야 한다.

 

믿음의 조상들은 시련을 겪을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통해 그들이 시련을 이기도록 도와 주셨다.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났으나...”(6:3). 모세를 비롯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을 지속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 자손을 향한 하나님의 언약 때문이었다. 전능하신 하나님의 약속에 대해 결코 의심하지 않았다.

 

하나님의 능력을 믿어야 하는 이유

 

(1) 이적

이적을 통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능력을 충분히 드러내셨다. 그러나 그것만이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게 한다고 볼 수는 없다. 다시 말해 하나님의 능력을 보았다고 해서 믿음이 흔들리지 않는 것은 아니다. 예를 들어,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가장 강렬하게 최초로 대면한 바 있지만 의심을 떨쳐 내기까지엔 얼마만큼의 망설임이 있었다(11:21-22). 신약 성경의 마리아와 마르다에게서도 찾아볼 수 있다(11:32, 39). 그리스도의 능력을 의심했다. 그리스도의 능력의 정도를 자신이 가지고 있는 사고의 한계로 제한했다.

 

이제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의 믿음 없음을 탓하기 전에 자신을 각자 돌아 보아서 미흡한 부분이 무엇인지 확인해야 한다. 당신은 결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의심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자신을 과대 평가하지 말라.

 

(2) 고난

하나님의 도움 없이는 고난을 이겨낼 수 없다. 당신이 아무리 나름대로의 영적 방어를 한다고 하더라도 사탄은 단번에 그 방어벽을 날려 버릴 것이다. 그렇다고 당황할 것까지는 없다. 빵을 구하기 위해 밤늦게 이웃집을 찾았던 어떤 사람의 이야기처럼 당장 하나님께 도움을 청하면 된다. 그분은 당신의 필요를 채워 주실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을 향해 부르짖을 상황이 아니라면 사탄과의 전투는 뻔한 것이다. 왜냐하면 사탄의 승리는 당연지사가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결코 절망하거나 포기하지 말라. 당신에게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않는 믿음만 있다면 승리는 당연히 당신 것이 될 것이다. 의심과 믿음 없음은 구별되어야 한다. , 당신이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했다고 해서 믿음 자체가 소멸되거나 하나님의 능력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당신이 어려움에 처했을 때 하나님께서 과연 당신을 구원해 주실지 아닐지에 대해 의심한다고 해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은 변함없이 당신 앞에 드러날 것이다.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1:31).

“....그들이 두려워하는 것을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고 만군의 여호와 그를 너희가 거룩하다 하고 그를 너희가 두려워하며 무서워할 자로 삼으라”(8:12-13).

 

확실한 하나님의 능력

 

(1) 성도와의 긴밀한 관계

하나님과 성도들의 관계를 잘 이해한다면 그분의 능력이 결국은 우리들을 위해 발휘된다는 것도 확신할 수 있다. 당신은 하나님의 자녀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러하듯 부모는 자녀들을 돌보기 마련이다. 한낱 미물인 암탉도 위기가 닥치면 새끼들을 급히 날개 아래에 감춘다. 하물며 창조주 되신 하나님이 그의 자녀들을 보호하심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그의 모든 능력으로 당신을 보호하고 지킬 것이다.

 

(2) 성도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

성도들을 위한 하나님의 사랑은 활동성이 있다. 사랑의 힘은 모든 어려움을 타개할 뿐 아니라 내부의 모든 능력들이 활성화 되도록 동기를 부여할 것이다.

 

(3) 하나님의 영원한 약속

하나님의 약속은 그의 전능하심에서 말미암은 것으로서 산성과 같이 견고하다. 모든 믿는 자들을 위한 하나님의 약속, 우리로 하여금 구할 수 있도록 허락하셨다. 하나님의 약속 안에 거하는 자들은 마치 성() 안에 있는 것 같이 모두 안전하다.

 

(4) 하나님의 자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신 이래로 하나님은 자신이 신뢰할 만한 분이시라는 것을 계속해서 드러내셨다. 따라서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거짓이 없고 진실될 수 밖에 없다. 사탄의 올무나 죄로 인해 위험에 처했을 때 언제라도 피할 수 있는 곳은 하나님밖에 더 있겠는가? 내가 두려워하는 날에는 내가 주를 의지하리이다”(56:3).

 

(5) 중보자로서의 그리스도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의 활동은 하나님께 성도들을 향한 보호의 약속을 상기시켜 주는 것이다. 계속되는 그리스도의 사역 중의 하나는 우리를 대신하여 끊임없는 중보의 기도를 하나님께 드리고 있다. 그리스도께서는 하나님 옆의 높은 보좌에 앉아 계시지만 그의 자녀들은 여전히 이 땅에 남아 사탄과의 싸움을 계속하고 있는 상태이기에 그리스도는 잠시라도 이 사실을 잊지 않고 계신다. 무엇보다 보혜사 성령을 보내심으로써 제자들과의 약속을 이행하셨는데, 이 약속의 성령은 그리스도가 다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모든 믿는 자들과 함께 하신다.

 

하나님의 능력을 사용해야 할 때

 

무소부재(無所不在) 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을 주관하신다는 사실을 안다면 당신은 사탄과의 싸움을 어떻게 이겨낼지에 대해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하나님을 능가하는 어떠한 세력도 존재하지 않는다. 또한 그분의 허락이 없이는 아무도 당신을 멸망시킬 수 없다.

 

(1) 죄에 짓눌려 있을 때

하나님의 능력을 능가할 만한 그 어떠한 죄의 세력도 없다는 것을 기억하기 바란다. 모든 만물 중에 뛰어나신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구원코자 하는 열정으로 늘 불타고 있다. 그의 백성이 죄를 범함으로써 하나님을 노엽게 했을 때 그분께서는 과연 어떤 약속을 하셨는가? 내가 나의 맹렬한 진노를 나타내지 아니하며.....”(11:9).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택하신 자들의 죄를 사하실 권한을 가지고 계시며 이 사실을 믿는 자들에게 위안이 되고 있다. 만일 사탄이 죄에 대해 당신을 고소할 때면 이렇게 담대하게 외쳐보라. “하나님 외에 누가 날 심판하겠느냐? 하나님께서는 약속하셨다. 내가 그분께 순종하기만 한다면 나의 생명을 구해주신다고 말이다.”

 

(2) 유혹이 닥쳐올 때

유혹에 빠질까 하는 두려움이 있을 때 당장 하나님께 의뢰하라. 그분께서 당신을 강하게 하실 것이다. 당신이 유혹을 물리치고자 고군분투할 때, 어버지 되신 하나님께서는 가까이에서 당신을 지켜 보고 계시다가 즉각적으로 달려 오신다. 당신이 위기에 처했을 때엔 하나님의 도움을 구하라. 그의 약속을 기억하면서.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에 있음이라”(6:14).

 

(3)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의무가 짐스러울 때

당신의 믿음이 연약한데 비해 당신에게 부과된 의무는 너무 막중하다고 생각지는 않는가? 그렇다면 능력의 하나님을 바라보라. 당신이 해야 할 일들이 짐스럽게 느껴질 때면 요나가 그러했던 것처럼 도망치고 싶을 때가 있을 것이다. 그럴 때면 하나님께서 기드온에게 하셨던 말씀을 상기하고 힘을 내기 바란다. 여호와께서 그를 향하여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이 너의 힘으로 이스라엘을 미디안의 손에서 구원하라 내가 너를 보낸 것이 아니냐”(6:14).

 

당신은 고난을 받도록 부르심을 받았는가? 두려워 떨지 말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능력의 한계를 그 누구보다도 잘 알고 계신다. 당신이 모르는 사이에 당신 어깨에 놓여진 짐을 덜어 가볍게 해주신다.

 

당신의 믿음이 약한 것을 하나님께 고백하기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 당신의 믿음이 연약하여 창백하고 야윈 모습을 띠고 있다 할지라도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긍휼은 변함이 없으시며 오히려 더욱 당신을 향한 도움의 손길을 펼치실 것이다.

 

하나님의 능력이 드러나지 않는 이유

 

우리는 가끔 실의에 차서 이와 같이 말하는 것을 듣게 된다. “하나님께서 과연 내 기도를 들으시는 걸까? 그렇다면 나는 왜 승리하는 삶을 살지 못할까?”

 

(1) 하나님의 능력을 소홀히 여기지 말라

당신에게 역사하셨던 하나님의 숨겨진 능력들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라. 그러면 당신의 의심이 사라질 것이다. 당신이 어떤 일을 놓고 하나님께 기도할 때 당신은 그에 대한 응답을 당신의 사고의 틀 안에서 기대하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응답 방법은 당신이 상상하는 것과는 전혀 다를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시험을 당했을 때 그것으로부터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기도를 그대로 들어 주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으로 하여금 더욱 기도에 힘쓸 수 있도록 힘을 주신다.

 

(2) 하나님은 일부러 기도의 응답을 늦추실 때가 있다

당신이 기다릴 만큼 기다렸는데도 하나님으로부터 응답이 없을 경우, 그분의 무관심이라고 탓하지 말라. 그 대신 이러한 고백을 해보라. “하나님께서는 저보다 훨씬 지혜로우십니다. 내게 필요한 것을 가장 적당한 때에 채워 주시는 줄을 아나이다. 당신께서 나의 기도에 즉시 응답하시지 않는 이유는 당신의 때가 나의 때와 다르기 때문임을 아나이다.”

 

하나님의 구원의 손길이 늦춰지는 이유 중의 하나는 당신의 믿음을 보다 성숙하게 하기 위함이다. 그것은 마치 아기에게 걸음마를 가르치는 어머니와도 같다. 아기의 걸음걸이 과정은 바로 우리의 믿음이 성숙해 나가는 것과 같다.

 

(3) 하나님의 복을 가로막는 요인은 당신 내부에 있다

당신의 마음이 바르지 않을 경우, 당신의 간구에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은 나타나지 않는다. 혹시 나의 자만심이 하나님의 능력을 제한하고 있지는 않은가? 만일 하나님의 능력을 당신 자신의 일을 도모하기 위해서만 사용한다면 하나님의 손길은 더 이상 함께 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에게 유익한 일만 하시고자 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혹시나 당신의 자만심이 고개를 들 때 얼른 하나님께 나아가 그것을 내어 놓도록 하라.

 

(4) 하나님은 당신이 엄청난 시련에 직면했을 때 온전히 견뎌내기를 바라신다

당신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바르고 정결하며, 당신의 기다림 또한 성실하게 지속될 때에도 하나님으로부터의 응답이 없다면 어떻게 할까?

 

이러한 경우 우리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곰곰이 생각하며 그분의 뜻을 기다릴 필요가 있다. 이러한 태도로 끝까지 견뎌낸다는 사실만큼 확실한 증거는 없다. 다시 말해서 당신이 끝까지 인내할 수 있도록 도우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응답을 안하시는 것처럼 보일 때에도 그분의 능력은 늘 우리 안에 존재하게 된다.

 

다음의 약속을 통해 위로를 받도록 하라.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40:31). 또한 시련이 극에 달해도 하나님의 손길을 받지 못했던 욥을 생각하라. 하나님이 의도하시는 때까지 우리는 견뎌내야 한다. 우리의 시련이 아무리 극심한들 욥의 경우보다 더하겠는가? 보라 인내하는 자를 우리가 복되다 하나니 너희가 욥의 인내를 들었고 주께서 주신 결말을 보았거니와 주는 가장 자비하시고 긍휼히 여기시는 이시니라”(5:11).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