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스크랩] 목사들은 자기 부정의 의무를 가장 잘 감당해야 한다/ 토마스 맨튼

강대식 2017. 3. 9. 18:30

목사들은 자기 부정의 의무를 가장 잘 감당해야 한다/ 토마스 맨튼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라"(16:24)

이 말씀은 그리스도께서 자기가 고난을 받으실 것을 미리 말씀하셨을 때 베드로가 반대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십자가는 비록 기독교의 휘장이지만 언제나 혈과 육에는 거슬릔다. 우리는 천국을 그 자체가 아니라, 험난한 광야를 지나 약속의 땅으로 가는 방법 때문에 싫어한다. 육적인 생각은 백홥화와 장미가 흩뿌려져 있는 길을 상상한다. 기독교는 그리스도를 위해 자신들과 자신들의 편리한 것들을 부인하는 사람들이 모인 학교나 무리이다.

 

"자기" 또는 "자아"라는 단어는 포괄적인 단어로 우리의 인격뿐 아니라, 하나님과 반대되거나 하나님과 경쟁하고 있는 한 우리에게 속한 모든 것을 의미한다. 사람과 그의 모든 정욕과, 사람과 그의 모든 관계와, 사람과 그의 모든 관심과, 삶과 삶의 모든 부속물들이 성경에서 자기라고 불리는 하나의 총체적인 대상이다. 요약해서, 부패하거나 육적인 사람으로 자신에 대해, 자신 안에, 자신에게 속한 모든 것이 부인되어야 한다. 모든 사람이 자신 안에 많은 자아를 가지고 있다. 그의 정욕은 자기 자신이며, 그의 삶도 자기 자신이고, 그의 이름도 자기 자신이며, 그의 부와 자유와 평안함과 호의와 어머니와 모든 관계도 자기라는 단어 안에 포함되어 있다.

 

당신은 언제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죄가 되는지 알아야 한다. 율법적인 자기 사랑이 있다.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2:8). 여기에는 우리가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지침뿐 아니라 우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을 허락하고 있는 것이 암시되어 있으며, 우리가 그렇게 할 때 잘하는 것이다. 자연이 자신을 강화하고 보존하려는 것은 본성적인 것이며 죄가 아니다. 사람은 올바른 방법으로 자신에 대해 관심을 가질 수 있다.

 

우리가 미워하거나 부인해야 하는 자아는 하나님과 반대하거나 경쟁하고, 왕좌를 놓고 하나님과 싸우는 자아이다. 하나님을 버리라. 그러면 자아가 다음 상속자로 들어온다. 타락 이래로 자아는 세상의 큰 우상이다. 사람들이 대담하게 하나님을 보좌에서 버렸을 때 자아가 그 자리를 계승했다. 타락한 사람은 르우벤처럼 자기 아버지의 침대에 올라 갔다.

 

자아가 마땅히 하나님께 돌려야 할 모든 것을 차지했다. 그러므로 사람은 자신이 우상이 되었으며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었다. 자아는 다곤과 법궤가 함께 있었던 것처럼 하나님과 함께 있다. 그들은 함께 경쟁하며 서 있을 수 없다. 법궤를 세우라. 그러면 다곤은 얼굴을 박고 무너질 것이다. 다곤을 세우라. 그러면 법궤는 축출되어 버려질 것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자신들의 존재와 행위에 있어서 의존하는 제일 원인이시다.

하나님은 최고선이시다.

하나님은 최그의 주이시며 가장 절대적인 주권자이시다.

하나님은 모든 것이 목표해야 하고 중심으로 여겨야 하는 마지막 목적이시다.

 

사람이 자기 의를 부인하고 자신과 자신 안에 있는 도덕적으로 탁월한 모든 것을 배설물과 찌거기로 여기는 것은 자기 부정의 최고의 요점이다. 우리 자신의 지혜 또한 부정되어야 할 자아이다. 47:10은 바벨론을 향해 "네 지식이 너를 유혹하였다"라고 말한다.

 

우리가 신적인 빛으로 보게 될 때까지 육적인 지혜는 언제나 종교에 대해 거짓말과 잘못된 보고를 한다. 우리는 엄격히 순종하는 것을 어리석은 것으로 생각하고, 열정을 가진 것에 대해 분노하며, 고통을 준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을 어리석고 치욕적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우리의 눈으로 볼 때 지혜롭기 때문에 계속해서 선을 악이라고 부르고, 악을 선이하고 부를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다 하며 스스로 명철하다 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5:21,22).

 

세상에서의 명성과 평판은 세상적인 사람에게는 매우 가치가 있겠지만, 세례 요한은 그리스도에 대해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3:30)고 말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더 높임을 받으시기 위해 소멸되는 것에 만족해야 한다.

 

정의와 의를 행할 때 우리는 아버지와 어머니와 형제들이나 자매들이라고 마음대로 하도록 받아주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은 레위에 대해 "그는 그의 부모에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나이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33:9)라고 칭찬하셨다.

 

다른 소명들과 관계들도, 곧 목사들과 사람들도 자기 부정을 해야 한다. 모든 사람 중에 목사들이 이 의무를 가장 잘 감당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세운 목표들을 부정해야 한다. 우리는 목회에서 하나님을 섬긴다는 명목으로 얼마나 많은 육적인 목표들을 증진시키려 하는가? 우리는 명성을 얻고 박수갈채를 받으며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데 몰두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는 우리 자신이 아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설교해야 한다. 우리는 배우고 가지고 있는 것에서 우리 자신을 부인해야 한다. 권면의 말을 참는 것도 자기 부정의 큰 부분이다. 위로뿐 아니라 책망을 사랑하고 책망을 귀한 기름으로 여길 수 있도록 자신을 부정해야 한다.

 

우리의 모든 탁월한 것들을 그리스도의 발 앞에 내려놓아야 한다. 태양이 뜰 때 별들이 사라지는 것처럼 우리는 우리의 생각 속에서 그것들을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야 한다. 요압은 랍바를 정복했을 때 다윗을 보내 영과으이 관을 쓰게 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어떤 것을 은혜로 이루었을 때 그리스도를 보내 영광을 차지하시게 해야 한다. 기도는 아무런 공로가 없음을 인정하고 겸손하게 자비를 구하는 것이며, 찬양은 그리스도의 머리에 관을 씌우는 것이다. 내 안에 역사가 일어나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이다.

 

- 토마스 맨튼, '자기 부정', pp 13-37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