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5-21 주일설교
본문: 벧후 3:14-15a
제목: 점도 없이 흠도 없이
1.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것은 새 하늘과 새 땅이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이것을 바라보나니”(벧후3:14)
우리가 바라보아야 할 이것은 13절에 있다.
“우리는 그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도다”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3:12)
주님 다시 오시는 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하늘과 땅은 없어지고 만다.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를 잊지 말라.
그러나 주의 날이 도둑 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이 큰 소리로 떠나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도다”(벧후3:8,10)
“그 날에 하늘이 불에 타서 풀어지고 물질이 뜨거운 불에 녹아지려니와”(벧후3:12)
하늘과 땅, 그리고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은 다 불에 타고 녹아질 것들이다.
그날은 주님이 다시 오시는 날이요, 하나님의 날이다.
그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고 하신다.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들은 오직 이 땅과 거기 있는 것들만을 바라보게 된다.
이제라도 다시 말씀 앞에 서서 우리의 시선을 하늘로 향하고, 주님이 오시는 그 날,
의가 있는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기로 하고 간절히 사모하기를 시작하자.
무엇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오늘과 삶의 자세는 달라질 것이다.
멀리 보지 못하고 옛 죄가 깨끗하게 된 것을 잊는 자가 맹인이라고 하였다(벧후1:9).
죄를 회개하고 거듭나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이,
그 일을 잊어버리고, 땅에 있는 것만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는 것은,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맹인이라는 것이다.
우리 주님도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한다고 하셨다.
그랬더니 바리새인들이 “우리도 맹인인가?” 하니까 주님이 말씀하셨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요9:41)
보아야 할 것 보지 못하고 그러면서도 눈을 떠서 본다고 안다고 하니 그것이 문제이다.
차라리 맹인이어서 보지 못하면 죄가 없다.
그런데 볼 것을 보지 못하면서도 자기는 본다고 하니 죄가 그대로 있다는 것이다.
땅과 땅에 있는 것들에 매몰되어 살면 맹인인 것을 기억하자.
하늘을 보고, 오게 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자.
그곳은 의가 있는 곳, 하나님의 거룩과 영광이 태양처럼 빛나는 곳이다.
우리는 지금 이 땅에서 의로와봤자 그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 잎사귀 같이 시들 뿐이다(사64:6).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럴려면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한다.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야 한다.
이 땅에서 살면서도 우리는 위의 것을 구하고 찾고 소망하며 살아야 한다.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나리라”(골3:1,2,4)
세상을 사랑하면 하나님과 원수가 된다고 하신다.
세상에 있는 것들은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을 따라 살게 하고,
이생의 자랑들로 만족하게 한다.
우리의 심령과 생활에 왜 어둠이 끼고 불안과 우울이 찾아 오는가?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로 마음과 영혼이 뒤덮혀 있기 때문에 그렇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면,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말 것들이다.
원수들이 왜 기승을 부리고 잡아먹을 듯이 달겨드는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원수라도 화목하게 하신다고 하셨다.
이스라엘이 범죄할 때마다 하나님은 이웃 원수들을 강하게 하셔서 괴롭히게 하여 회개하게 하셨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땅이 평화롭게 되고 화목하게 되고 번영하게 된다.
위의 것을 구하고,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면, 이 땅에도 은혜와 평강이 찾아오고 풍성해진다.
우리의 싸움은 혈과 육을 상대로 하는 것이 아니고 악한 세력과의 싸움이다.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고 말씀과 기도로 살고 경건생활에 힘쓸 때 무력해지고 마는 것들이다.
2.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나타나기를 힘쓰라.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서 나타나기를 힘쓰라”(벧후3:14)
점도 없고 흠도 없는 곳에, 그 심령에, 그 생활에,
하나님 아버지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은혜가 거침 없이 내려와
우리의 마음과 생활에 평강의 열매가 주렁주렁 맺게 하신다.
내가 너희에게 주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다르다고 하셨다.
세상은 뭐가 되어야 하고 뭘 가져야 평안이 잠시 찾아오지만,
하나님이 주시는 평안은 조건과 환경에 상관이 없고, 오래 오래 깃든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힘이 없어야, 거치는 것들이 없어야, 천국의 이슬들이 내려올 수 있다.
먼저 구하고 그리고서는 찾고 두들겨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수준은 대충대충이 아니다.
대충대충 믿고 대충대충 넘어갈려고 하지만 하나님께는 통하지 않는다.
우리의 구원은 선물로 은혜로 믿음만으로 거저 주시지만,
하나님의 자녀다운 품성과 행실은 고난과 연단의 혹독한 훈련으로 만들어 가신다.
“이 모든 것이 이렇게 풀어지리니 너희가 어떠한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냐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하나님의 날이 임하기를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라”(벧후3:11-12)
우리의 심령과 생활을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채워야 한다는 것이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수준이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는 수준이다.
왜 이렇게 되질 못하는가?
하나님의 말씀과 모든 지혜로 가르침을 받기를 싫어하기 때문이요,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님의 능력을 따르지 않기 때문이요,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하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고,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영원히 살아야 할 곳은 하나님의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이다.
이 땅에서 있는 동안 그 준비를 완료하여야 하기 때문에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통과하게 하신다.
세상은 부와 권력과 명예를 성취하고 성공하기를 원한다.
하나님은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을 이루고, 점도 없고 흠도 없이 성결함을 이루기를 원하신다.
서로 반대되고 대적하는 두 가지를 겸해서 섬길려고 하니까 어느 하나도 이룰 수가 없다.
하나님과 재물은 겸하여 섬길 수 없다.
하늘과 땅을 겸하여 취할 수 없다.
그러나 하늘을 구하면 땅을 차지하게 하신다는 것이 하나님의 약속이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구하고 명령하는 것에 순종해야 한다.
점도 없고 흠도 없는 완전한 수준을 향해 달려가야 한다.
주님께서 교회와 성도들을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십자가에서 주신 목적이 그것이다.
“이는 곧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자기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세우사 티나 주름 잡힌 것이나 이런 것들이 없이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엡5:26-27)
‘물로 씻어’는 성령과 물로서 거듭나게 하신 것이다.
거듭난 영혼은 이제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여 거룩하게 하여야 한다.
그래야 주님 앞에 영광스러운 교회로 성전으로 세워질 수 있다.
티도 없어야 하고, 주름 잡힌 것도 없어야 한다.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한다.
구약에서 제물을 드릴 때마다 ‘일 년 되고 흠 없는 숫양’을 드리게 하신 이유이다.
주님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으로 오셨다.
거룩하고 흠이 없는 성자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속하기 위해 십자가에서 어린 양 제물로 죽으셨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없기 때문이다.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흘리기까지는 대항하지 아니하고”(히12:4)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주 앞에 나타날려면
죄와 싸우되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함을 말씀해 주고 있다.
주님은 죄를 사해 주시기 위해 피흘리셨고, 우리는 죄를 이기기 위해 피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
그리스도인의 심령과 생활에 점과 흠과 주름을 만드는 죄는 무엇인가?
바울은 로마서에서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다 죄라고 하였다.
성경에서 죄는 다양한 용어로 사용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목표로 정하신 과녁에 이르지 못하는 것, 즉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지 않는 것이다.
의의 부재. 불신앙적이며 불경건한 자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다.
충성과 신실을 잃어버리고 올바른 길에서 이탈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한 믿음과 신뢰를 깨뜨리고 불순종하는 것과 거역하는 것이다.
하나님께 심판받을 정도로 하나님이 미워하시는 행위를 저지르는 것이다.
하나님 앞에서 선한 사람은 하나도 없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고”(사53:6),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시고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 삼으시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옷 입혀 주신 것은,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살게 하기 위함이요,
이 땅에서 사는 동안 점도 없이 흠도 없이 그 의로 사는 준비를 하게 하기 위함임을 잊지 말자.
3.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
“또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될 줄로 여기라”(벧후3:15a)
우리 하나님은 변함이 없고 한결같으신데 우리는 그렇지를 못하여 죄 가운데 산다.
하나님이 우리가 죄를 지을 때마다 응징하신다면 살아 남을 자가 없을 것이다.
그때 그때 심판을 않고 참아 주시니까 더욱 담대하게 죄를 짓는 사람들도 있다.
하루가 천 년 같이 천 년이 하루 같이 하나님이 참아주시는 것은 우리와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다.
“주의 약속은 어떤 이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딘 것이 아니라
오직 주께서는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3:9)
주님은 심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구원하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다.
하나님도 우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다 회개하고 구원에 이르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하나님이 참으시고 기다려 주니까 하나님이 없는 줄 알고 더욱 악을 행하고
하나님은 없다고, 심판은 없다고 주장하기에 이르고 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오랜 참으심도 끝이 있다.
사람의 죽음은 심판의 시작이요 하나님 앞에서의 최종 결산을 해야 한다.
심판의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미 우리에게 주신 성경이다.
하나님이 오래 참으시고 기다려주실 때 더 늦기 전에 죄를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
십자가에서 내 죄를 처리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주님으로 영접해야 한다.
믿지 않는 자들은 믿음과 은혜를 선물로 주시라고 기도하고 구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결코 천국을 볼 수도 없고 살 수도 없다.
언제까지 기다려주시지 않는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설교를 듣다가 회개 회심하는 것이 권장할 정도(正道)이다.
그러나 도둑 같이 주의 날이 이른다고 하셨다.
주님은 노아의 때와 같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하셨다.
“홍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고 있으면서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마24:37-39)
우리 주님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오셔서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아 심판하실 것이다.
모든 민족을 구분하여, 양은 그 오른 편에, 염소는 왼 편에 둔다고 하셨다.
양의 무리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신다.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여, 나아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나라를 상속하라”(마25:34)
염소의 무리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신다.
“저주를 받은 자들아 나를 떠나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원한 불에 들어가라”(마25;41)
“그들은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마25:46)
소돔과 고모라는 불과 유황이 비오듯하여 멸망하였다.
영벌에 처하는 지옥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이고
영원히 죽지 않으면서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는 곳이다.
거기에서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않는 곳이요, 사람마다 불로써 소금치듯함을 받는다 하셨다.
우리 주의 오래 참으심이 구원이 되는 줄 여기자.
주님의 약속대로 의가 있는 곳인 새 하늘과 새 땅을 바라보고 간절히 사모하며 살자.
주 앞에서 점도 없고 흠도 없이 평강 가운데 나타나도록 힘쓰고 최선을 다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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