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5/14 주일설교, 욕심이 잉태한즉, 약 1:12-15

강대식 2017. 5. 15. 19:10

2017-05-14 주일설교

본문: 1:12-15

제목: 욕심이 잉태한즉

 

1.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다.

 

시험을 참는 자는 복이 있나니 이는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주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면류관을 얻을 것이기 때문이라”(1:12)

 

시험을 참는 자와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동일하다.

시험과 시련은 엄격하게 구분하면 다른 개념이다.

그러나 성경은 원어에서는 단어가 다르지만 우리말 번역은 혼용해서 쓰고 있다.

 

시험은 죄의 유혹, 사탄의 미혹으로 사람을 이끄는 것이다.

물고기를 미끼로 유혹하는 것, 음녀가 고운 말과 호리는 말로 남자를 유혹하는 것과 같다.

유혹이 오면 사람의 마음은 흔들리고 죄의 길로 가게 된다.

 

시련은 하나님의 선한 뜻과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우리에게 주시는 고난과 역경과 고통을 말한다.

죄의 유혹인 시험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만들어 가시는 시련은 구별해야 한다.

시험은 죄를 낳고, 시련은 형상을 낳는다.

그렇지만 시험도 참고 이겨내야 하고, 시련도 인내하고 견디어내야 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다.

베드로 사도는 죄가 있어 매를 맞고 참으면 무슨 칭찬이 있으리요”(벧전2:20) 했다..

그러나 선을 행함으로 고난을 받고 참으면 이는 하나님 앞에 아름다우니라하였다.

 

그리스도인은 죄의 유혹인 시험은 물리치고 대적함으로 이겨 내고,

그리스도의 형상을 이루기 위한 시련은 참고 견디어 내야 한다.

바울은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형상이 이루기까지 해산하는 수고를 한다고 하였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려 하셨느니라”(벧전2:21)

 

그리스도인의 삶이 어떤 것인가는 성경에서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은 사람들의 과정을 보면 알 수 있다.

우리의 주님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그리스도의 사람들인 그리스도인은 마땅히 주님의 그 고난의 자취를 따라가는 사람들이다.

 

광야생활의 고난과 연단의 훈련 없이 가나안 기업은 없다.

십자가 없이 영광은 없다. No Cross, No Crown인 것이다.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포기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다윗은 하나님이 그의 속사람과 능력을 만들어 가시는 과정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라고 하였다.

그 시련을 통과하고 합격하였을 때 그는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78:72)으로 휼륭한 왕이 되었다.

요셉은 노예생활, 감옥생활의 시련을 통과하여 대애굽제국의 총리로 세워졌다.

 

아브라함은 25년간의 시험과 시련 끝에 아들 이삭을 얻었고 이삭을 바치는 시험은 마지막 시련이었다.

욥은 십남매와 재산을 하루 아침에 잃고 몸까지 상하는 시련의 인내 끝에 갑절의 축복을 받았다.

모세는 40년의 긴 고난의 기다림 끝에 위대한 능력자로 출애굽의 대역사를 감당하였다.

 

그리스도인은 방정식을 풀듯이 내 인생을 하나님의 사람들의 과정에 대입하면,

대강 내가 어디쯤 왔는지, 얼마를 더 가야 하는지를 어림 짐작할 수 있다.

하나님이 마련하신 계단들은 건너 뛸 수 없고, 하나님이 배열하신 터널과 광야는 우회할 지름길이 없다.

 

시험을 참는 자가 복이 있고 시련을 견디어 낸 자가 복이 있다.

주님을 사랑하는지 아니 하는지는 시험과 시련을 견디어 내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시험과 시련에 합격한 자에게 하나님은 생명의 면류관곧 영광과 존귀와 평강과 영생을 주신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줄 너희가 앎이라 인내를 온전히 이루라

이는 너희로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하려 함이라”(1:2-4)

 

얻을 영광을 바라보기에 고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현재 내게 주어진 환경은 하나님이 줄로 재어서 주신 아름다운 기업으로 알아야 한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그 안에서 하루 하루 최선을 다하는 것이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내일 걱정은 내일이 하게 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며 살면 된다.

 

그러면 하나님은 일용할 양식을 주실 것이고, 모든 것을 더해 주시는 것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우리가 받을 영광은 현재 고난과 비교할 수 없다.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무거운 것에 비하면 우리의 고난은 잠시요 가벼운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고 있음을 믿어야 한다.

 

2. 하나님은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1:13)

 

하나님은 거룩하시고 공의로우시고 신실하시고 사랑이시며 완전무후 무한하신 분이시다.

결코 악에게 시험을 받을 수 없고 친히 아무도 죄로 시험하지 않으신다.

그렇지 않다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니신 것이다.

 

뜻과 섭리 가운데 심판하시고 선한 목적을 이루시기 위해서 때로 허락하시고 허용하실 뿐이시다.

자기 스스로가 세상에게 육신에게 사탄에게 죄에게 시험을 받아 넘어지고서는

하나님을 원망하고 대적하는 사람들이 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것은 사탄의 꼬임과 유혹을 받고,

스스로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망을 따라 행동에 옮긴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만들고 완전한 의와 의지를 주었음에도 명령에 불순종하고 악을 행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아담으로부터 물려받은 원죄가 있는데다, 유혹과 정욕과 욕망에 이끌려 시험을 받고 넘어지는 것이다.

죄는 주님이 피 흘리심으로 사해 주셨으니 우리도 피 흘리기까지 죄와는 싸워야 한다.

 

우리가 범하는 죄들은 원죄와 세상과 사탄과 육신이 그 원흉이다.

세상을 사랑하니까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이다.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추구하고 욕심내니까 죄의 포로가 된다.

 

우리가 하나님께 받지 못하는 것은 구하지 않기 때문이고,

구하여도 받지 못하는 것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하기 때문이다(4:2-3).

탐심은 욕심을 탐하여 그것을 하나님처럼 섬기는 우상숭배이다.

 

교회를 오래 다녔어도 거듭나지 못하고 회심하지 않은 사람들은,

세상 사람들이 구하는 것을 같이 구하고, 그것을 복이라고 여긴다.

하나님을 심지어 빽으로 여기고 더욱더 탐욕스런 요구까지도 서슴치 않는다.

 

예수 믿기 전 가지고 살았던 옛 사람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벗어버려야 한다.

유혹의 욕심을 따라가는 썩어져가는 옛 습관들을 버려야 한다.

옛 사람의 죄를 회개해야 천국을 맛볼 수 있고 천국을 살 수 있고, 천국을 갈 수 있다.

 

구원받는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거룩한 의를 옷 입는 것이다.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은 새 사람을 입는 것이다.

새 사람을 옷 입고 새 사람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

그것이 그리스도의 형상을 입는 것이고, 그 형상을 본 받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죄에 대해서 우리도 함께 죽었음을 믿고,

그렇게 여기고, 그렇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이다.

그리스도의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5: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외에 결코 자랑할 것이 없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세상이 나에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내가 또한 세상을 대하여 그러하니라“(6:14)

이 고백이 우리의 항상 하는 고백이 되도록 하자.

 

하나님은 우리를 죄로, 죄에로, 우리를 결코 시험하지 않으신다.

시험하는 것은 내 자신이요 욕망이요 간교한 사탄과 세상의 유혹일 뿐이다.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는 것이 무엇인지 말씀을 통해 확실히 알면,

우리는 많은 시험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길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모든 지혜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성령을 힘입어야 하고,

그 능력을 따라 나도 힘을 다해 수고를 해야 한다.

 

3.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1:14-15)

 

자기 욕심에 끌려서 미혹을 당하니까 시험을 받는 것이다.

욕심을 끌려가지 않으면 시험도 없다는 뜻도 된다.

죄를 짓지 않을려면 욕심부터 잡아야 한다.

 

세상의 권력과 부와 명예에 대한 욕심에 이끌리면 마음은 죄를 잉태하게 된다.

죄를 잉태하면 행동으로 나타나서 죄를 출산하게 된다.

그 욕심과 정욕은 아담이 물려준 원죄의 뿌리에서 맺는 열매이다.

 

원죄는 욕심을 낳고 그 욕심은 죄를 잉태한다.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것은 하나님이 계셔야 할 자리에 탐욕이 자리잡고 섬김을 받기 때문이다.

생각나고 미혹하는 욕심을 물리치지 못하면 죄를 잉태하는 것은 정해진 코스이다.

 

욕심으로 잉태된 죄가 무서운 것은 그것은 반드시 장성하여 사망을 낳기 때문이다.

사망은 육체적 사망 뿐 아니라 영원한 사망까지 포함한다.

죄가 장성한다는 것은 자꾸 커지고 반복하고 대물림한다는 의미이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 되는 이치이고, 알콜 중독, 도박 중독 기타 중독들은 대물림을 한다.

 

그리고 사망을 낳는다는 것은 현세에서도 살았다 하는 이름은 있으나 죽은 자와 같이 되는 것이다.

넘어지고 자빠지고 엎어지고 패망과 멸망에 이르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는 사람들의 마침은 멸망이다.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3:19)

 

성경은 악인들의 형통을 부러워하지 말라고 한다.

자기 길이 형통하며 악한 꾀를 이루는 자 때문에 불평하지 말지어다

분을 그치고 노를 버리며 불평하지 말라 오히려 악을 만들 뿐이라

진실로 악을 행하는 자들은 끊어질 것이나 여호와를 소망하는 자들은 땅을 차지하리로다

잠시 후에는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37:7-11)

악인들의 큰 세력은 땅에 서 있는 나무의 잎이 무성함과 같다.

그러나 그들은 풀과 같이 속히 베임을 당하고, 푸른 채소 같이 쇠잔하고 만다고 하신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

악인이 끊어질 때에 네가 똑똑히 보리로다“(37:34)

 

길고 짧은 것은 대봐야 하고, 흥망성쇠는 마침내 복을 받는가를 봐야 한다.

광야생활의 고난을 통하여 우리를 연단하시는 것은 마침내 복을 주시기 위함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두 상반되는 인생길이 대조가 된다.

 

여호와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시고 너를 인도하여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곧 불뱀과 전갈이 있고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셨으며

또 너를 위하여 단단한 반석에서 물을 내셨으며 만나를 광야에서 네게 먹이셨나니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8:14-16)

 

이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일생을 조명해 주시는 말씀이다.

그리스도인으로 출생하는 것은 애굽 땅에서 죄의 종 되었던 집에서 이끌어 내신 것이다.

 

그리고서는 인도하여 지나게 하시는 곳이 어디냐?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이다.

광대하다는 것은 오랜 고난의 시절을 보내는 것을 말한다.

위험하다는 것은 불뱀과 전갈이 있기 때문이다.

불뱀과 전갈에게 물려 죽는 것 같은 고난과 고통의 위기를 겪는다는 것이다.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을 지난다는 것은 외롭고 버려진 것 같은 고독과 절망의 시기를 지남을 말한다.

 

그러나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를 지나는 동안 하나님은 우리를 떠나거나 버리시지 않는다.

반석에서 생수를 부어주시고, 일용할 양식 곧 만나를 주셔서 생명에 지장이 없게 하신다.

발이 부르트지 않게 하시고, 의복이 해어지지 않게 하신다.

일용할 양식과 필수적인 공급들을 어떤 방법으로든 해주신다는 말씀이다.

 

다윗은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시절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다닐지라도라고 하였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기 위한 것이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인데도 굳은 목을 낮출 줄을 모르는 게 사람이다.

 

낮추시는 방법이 바로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간조한 땅을 지나게 하시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순종하게 된다.

그 광대하고 위험한 광야, 물이 없는 간조한 땅은, 우리를 시험하고 시련하는 곳이다.

 

죄를 잉태하고 사망을 낳는 욕심을 따라, 유혹을 따라 살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사는지를 시험하고 시련하는 것이다.

세상과 눈에 보이는 것들에 복종하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과 그 법도에 복종하는 훈련을 한다.

 

그리고 그 시험과 시련에 합격하면, 잘 통과하면, 마침내 하나님은 예비한 복을 주시게 된다.

받은 고난에 비하면 너무도 엄청난 복, 지극히 크고도 영원한 영광을 주신다.

그 결말을 믿기에, 우리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만 바라며 잠잠히 참고 기다리는 법을 배우게 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으면 족한 줄로 알면서,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된다.

마침내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자로 세움을 받는 날을 맞이한다.

우리를 괴롭게 하신 날수대로, 우리가 화를 당한 년수대로 하나님은 우리를 기쁘게 해주신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메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