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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2권, 15장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의 의미 (2017 김영희강의안)

강대식 2017. 6. 24. 18:20

15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의 의미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 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죄가 율법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자의 모형이라 그러나 이 은사는 그 범죄와 같지 아니하니 곧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더욱 하나님의 은혜와 또한 한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로 말미암은 선물은 많은 사람에게 넘쳤느니라” (5:12-15)

 

-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 여기서 사용한 시제는 부정과거시제이다. 그 시제는 역사의 어느 순간 또는 어느 사건에 단번에 이루어진 행동을 시사한다. 한 특정한 끝나버린 행동을 특별히 언급하고 있다. 그는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다고 말하고 있다.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었다.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하는 목적은 우리가 한편에 관계되어 있는 것이 다른 편으로 갈 때도 똑같은 대칭관계를 가진다고 하는 사실을 강조하는 것이다. 아담 안에서 우리에게 진리인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도 진리이다. 우리가 그 점을 고수해야 함은 중대한 일이다.

 

- “죄가 율법이 있기 전에도 세상에 있었으나 율법이 없을 때에는 죄를 죄로 여기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담의 타락 때부터 율법을 받기까지의 기간을 의미한다. 그 기간 동안 죄가 세상에 있었다는 것이다. 노아 홍수는 그 당시에 하나님께서 죄를 죄로 여기셨다는 것을 입증해 준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옛 세상을 물에 쳐 넣으셨다. 율법은 죄가 범법이라는 점을 증명한다. 모세 율법이 규정하지 않더라도 죄란 있을 수 있으며 하나님은 그것을 죄로 여기시며 그것을 죄로 대우하신다는 것이다. 죄는 여전히 죄이다. 그러나 율법이 명백하게 주어지기 까지는 그것이 범법으로 여겨지거나 계산되지 않았다는 것이다. 바울은 비록 율법이 주어지지 않았고 죄가 범법으로 여겨지지 않았지만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의 기간 동안에 사망이 왕 노릇 한 것을 보니 죄를 죄로 취급하고 계셨던 것이 분명하다는 것이다. 그때에 하나님은 그 법으로써 죄인들을 그대로 처리했던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죽었던 것이다. 그들의 죽음은 반드시 죄의 결과였음이 틀림없다는 것이다.

-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여러 가지 해석이 있다.

모든 이들이 실제로 죄를 지었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아담은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의 법에 대해 죄를 지었다. 그러나 영아들은 죄행을 저지르지 않았는데도 죽었다. 그러므로 모든 사람이 실제로 죄를 지었다는 해석은 받아들일 수가 없다. 그 해석을 받아들이면, 아담과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병행선과 그 두 병행선에 대한 우리의 관계는 완전히 사라져버리고 만다는 것이다. 실제로 죄지었기 때문이라고 하면, 구원받는 자마다 그들이 실제로 선행을 했기 때문이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면 이신칭의의 교리는 버려지게 된다. 영아들의 경우와 병행선의 중요성 때문에 모든 사람이 실제로 죄를 지었다는 해석을 받아들일 수 없다.

 

칼빈은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다는 것은 우리 모두는 아담으로부터 오염되고 부패하고 죄있는 본성을 물려받았기 때문에 죽는다는 것이다. 누가 감히 칼빈의 설명을 아니라고 할 수 있겠는가? 그러나 우리는 칼빈을 교황의 자리에 올리지 말아야 한다. 그도 다른 사람들처럼 실수하기 쉬운 사람이었다. 사도는 우리 모두 죄를 지었다고 말하고 있지, 우리 모두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는다. 매우 중요한 요점이다.

만일 우리가 죄의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 보시기에 죄 있고 정죄된 자로 여겨지고 그래서 사망이 우리에 이르렀다고 한다면 다른 편에서도 우리는 이렇게 말해야 할 것이다. 우리가 거룩한 본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의롭다하심을 받는다고 말이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경건치 않은 자를 의롭다 하신다는 것을 내내 말해왔다. 하나님은 죄인을 의롭다 하신다. 우리는 우리가 중생했기 때문에 의롭다 함을 얻은 것도, 우리가 성화되어서 의롭다 함을 얻은 것도 아니다. 그것은 로마교회의 오류요 허위이다. 칭의와 중생은 함께 가지만, 중생되었으니 의롭다 함을 얻는다고 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간직해야 할 순서는 칭의가 중생에 앞서야 한다. 사람을 의롭다 하시기로 작정하실 때 하나님은 이미 그를 중생시키기로 의도하신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사람을 불경건한 채로의롭다 하시며 죄인이며 원수인 그대로의롭다 하신다. 이 병행선은 칼빈식의 설명을 완전히 배제한다.

 

위의 두 주장을 거절한다면, 우리의 해석은 어떠해야 하는가?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사망의 왕 노릇은 그것을 입증한다. 사망은 죄에 대한 심판의 일부이다. 사망은 언제나 죄책과 정죄를 전제한다. 실제적인 범죄를 저지른 적이 없는 영아들까지도 특별한 죄책이 있음이 틀림없다. 무슨 죄의 책임인가? 바울은 역설하기를, 그들은 죄를 세상에 끌어들인 행동 즉 한 사람 아담의 행동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담의 죄가 전 인류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이다. 모든 개혁주의 교파에서 받아들이는 해석이다. 모든 사람은 아담의 원죄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이 해석은 12-14절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다. 15절에서 19절까지 아담의 한 범죄 행동에 대한 진술을 다섯 번이나 반복한다.

15절에서 한 사람의 범죄를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은즉 한 사람 아담의 범죄로 인하여 많은 사람이 죽었다고 말한다.

16절에서 범죄한 한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과 같지 아니하니-- 은사는 많은 범죄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에 이름이니라 우리는 모두 아담 안에 있었고, 우리 모두는 우리의 머리요 대표인 아담 안에서 죄지었다.

17절에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그 한 사람을 통하여 왕 노릇 하였은즉그것은 명백하다. 완전한 병행선을 이루면서 더욱 은혜와 의의 선물을 넘치게 받는 자들은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 하리로다

18-19절에서도 더더욱 분명하다. 18, 그런즉(앞의 것들을 요약하는 말이다) 한 범죄로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것 같이 우리가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이다. 19, 한 사람이 순종하지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같이”, “한 사람이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완전한 병행구이다.

 

병행선의 한쪽 편에서 진리인 것은 병행선의 다른 쪽에서도 진리이다. 우리는 죄인으로 정해졌다고 말하고 있지, 칼빈처럼 죄짓기 쉬운 본성을 가지고 있다고 말하지 않고 있다.

 

바울이 말하는 바를 다음과 같이 요약할 수 있다. 아담의 한 불순종의 행동이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정해 놓은 것과 같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이 그를 믿는 모든 자들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시도록 정해 놓으신다는 것이다. 여기에 대칭점이 있는 것이다. “아담이 오실 자의 모형이기때문에 아담의 죄가 우리에게 전가되는 것과 똑같은 방식으로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물론 우리는 아담으로부터 죄 있는 본성을 물려받았다. 그러나 우리를 정죄하는 것은 그것이 아니다. 우리를 정죄하고 사망에 우리를 복종케 한 것은 우리 모두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는 것과 우리 모두 죄책을 지니고 있다는 사실이다. 죽음은 언제나 죄책과 현실적인 죄에 대한 심판이다. 그러므로 어린아이들에게까지 미치는 죄의 보편성은 우리 모두 아담 안에서 죄지었고 아담이 범죄했을 때 죄인이 되었다는 사실로서만 설명될 수 있다. 반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누구나 그의 생명과 그가 행하신 은혜를 입는다.

 

오늘날 세상이 이렇게 된 것은 아담이 죄지을 때 모든 사람이 죄를 지어 죄와 사망이 전인류에게 보편적으로 임했기 때문이다. 그것은 신비에 싸인 문제이며 기이한 현실이다. 우리는 이 말씀들이 영감 받은 종들을 통하여 온 것이며 정확무오하다는 것을 믿는다.

 

이 경탄할 만한 병행구에서 발견하였듯이 우리는 그 논증을 따라갈 수 있다. 그것을 믿는 우리는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연약할 때에, 경건치 않았을 때에, 원수였을 때에 우리에게 전가되었다는 것을 기뻐한다.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전가해 주심을 하나님께 감사하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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