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는 “이삭처럼 옛 우물을 다시 파야 부흥이 온다”라고 늘 역설했다. 그런데 그가 염두에 둔 ‘옛 우물’이란 바로 청교도 신앙이었다. 그는 평생 청교도 신앙 강좌를 인도했으며, 청교도 글들을 손에서 놓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마지막 청교도’라는 평판을 얻었다.
‘설교의 황제’라고 칭송을 받는 찰스 스펄전도 청교도 설교의 전통에 굳게 선 인물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존 번연과 리처드 백스터의 책들을 끼고 살았다. 그는 청교도 지도자들의 글에 달통한 자였다.
이렇게 복음 제시에 능통하고 뜨거운 부흥의 영을 간직한 인물들은 청교도 신앙의 감화를 흠뻑 받은 자들이었다. 그렇다면 왜 청교도 신앙이 복음에 강하고 심령 부흥에 강한 것인가? 왜 오늘 우리는 청교도 신앙을 재발견해야 하는가?
오늘 한국의 기독교는 제도의 종교로 고착되어 가고 있다. 심령의 변화 없이 습관과 문화와 조직과 프로그램으로 대체되고 있다. 이러한 현실은 청교도들이 반대하고 타협을 거부한 영국국교회 체제를 떠올리게 한다. 영국국교회는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고 교회 의식에 참여하는 자들은 자동적으로 거듭난 자라고 인정했다. 그러나 청교도는 형식적인 성례가 아니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할 것을 역설했다. 또한 구원 얻는 믿음에 따르는 회개를 강조했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교회의 형식과 프로그램에 잘 따르면 거듭난 자라고 쉽게 생각하지는 않는가? 거듭나야 할 필요성조차도 언급하지 않는 것은 아닌가? 거듭남과 (교회라는) 조직에 충성을 맞바꾸지는 않았는가? 성령 없이 조직과 프로그램으로 바벨탑을 쌓고 있는 것은 아닌가? 회개 없는 값싼 영접주의만이 도처에서 활개치고 있지 않은가? 그 결과, 교회는 나오되 심령의 변화가 없고 인격과 삶의 변화가 없는 ‘죽은 신앙’을 가지게 되고 말았다.
나도 변화시키지 못하는 신앙을 누구에게 전하려고 하는가? 그런 무기력한 신앙을 ‘선교’라는 이름으로 해외로 수출하려고 하는가? 아서라. 불량식품 수출하면 안 되듯이 ‘불량복음’ 수출하면 안 된다. 지금 누구에게 독초를 먹이려고 하는가?
청교도들이 특별히 강조한 것은 ‘칭의’는 반드시 ‘성화’를 동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저들에게는 거룩하고 정결한 생활의 열매가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거룩한 생활을 강조하면 ‘율법주의자’로 여기는 것은 아닌가? 이러한 청교도를 율법주의자로 매도한다면, 우리는 교회 역사에서 이단으로 정죄된 ‘반법주의’가 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오늘날 한국 기독교는 참된 칭의에서 나오는 참된 성화를 회복해야 한다. 프란시스 쉐퍼가 말년에 암에 시달리면서도 미국의 기독교 대학에서 강연하면서 피를 토하듯이 외친 말은 “미국의 크리스천들은 행복은 추구하나 거룩함은 추구하지 않는다”라는 것이었다.
오늘 이 외침을 한국의 물화(物化)된 크리스천들도 들어야 한다. 한국 기독교를 향해 안티가 많은 것은 우리에게 세상과 다른, ‘구별된 거룩한 생활’이 없기 때문이 아닐까? 회개의 열매, 거룩한 생활의 열매 없이 기독교는 능력을 발휘할 수가 없다.
한국의 초기 선교사들은 청교도 신앙의 후예들이었다. 그러나 이제 우리의 신앙은 그 청교도 신앙을 다 잃어버리고 세속화된 신앙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규장 퓨리탄 북스’가 우리의 냉랭해진 신앙에 하늘의 거룩한 불을 붙여줄 것이다.
첫 번째로 선택한 책이 토마스 왓슨의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다. 토마스 왓슨은 영국국교회의 가톨릭적 신앙에 타협하기를 거부해 목사직에서 쫓겨나 숲속, 헛간, 외양간을 전전하며 설교하기도 했다. 그는 자신의 피와 눈물로 복음을 사수한 사람이었다. 그의 설교에는 피와 살이 튀는 메시지에 성령의 기름 부음이 있었다.
찰스 스펄전은 토마스 왓슨을 설교의 스승으로 삼았다. 17세기 청교도 신앙의 사자후라고 할 수 있는 토마스 왓슨이 오늘 우리가 잃어버린 ‘하나님 경외함’에 대해 새롭게 일깨워주고 있다. 오늘 달콤한 아이스크림을 듬뿍 바른 모습으로 한국에 수입된 최신 유행의 미국제 복음주의가 하나님을 말랑말랑하게 만들고 말았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요”(잠9:10)
이 책을 통해 하나님 경외하는 것을 알자, 힘써 하나님을 경외하자!
이 일은 우리의 사활이 걸린 일이다!
- 토마스 왓슨,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 pp 4-9, 규장 편집국장 김응국목사의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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