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도의 생명은 마음을 쏟아 붓고 거룩한 열망이 올려지게 하는 것이다/ 메튜 헨리
종교가 우리 삶의 핵심사이며, 또한 하나님을 예배함이 우리 종교의 핵심 사항이라면, 이 종교적 예배 행위를 돕고 증진시키고자 하는 진지한 의도와 그런 경향을 가진 것에 대하여 하나님 나라에 대한 진실한 소망을 가진 독자라면 그 누구라도 이를 결코 물리치지 않을 것 이라고 생각한다. 종교적 예배 가운데서 기도는 가장 중요한 한 부분이다.
기도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함과 하나님에 대한 열망을 엄숙하고도 경건하게 올려드리는 일이다. 하나님의 이름에 합당한 영광을 그분께 드리고자 하는 거룩한 정서를 진지하게 표현하는 일이다. 나아가서 하나님으로부터 약속에 따른 은총들을 받는 일이기도 하다. 이렇게 하나님께 드리는 일과 그로부터 받는 일 모두가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진다. 영어로 ‘기도’(prayer)라는 말은 너무 직설적인 표현이다. 이 말은 대체로 ‘간청’이나 ‘요청’을 의미한다. 기도에는 이것만 포함되지는 않는다. 하나님께 겸손하게 올려드리는 감사와 송축 등이 기도에는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희랍어로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서약’을 의미한다. 라틴어로는 ‘보툼’(votum)이란 말을 사용한다. 요나가 탔던 배의 선원들이 제물을 드림과 함께 서약을 하고 있는 것을 본다. 기도라는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움직이고 그에게 의무를 지우는 일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 스스로를 움직이고 우리 스스로에게 의무를 지우는 일인 것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는 기도를 하나님과 교제함이라고 정의한다. 성도는 하나님과 교제의 삶을 사는 사람이고, 따라서 성도는 항상 기도한다. 성도는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쉼 없이 교제하는 것이다. 성도는 그의 사는 날 동안 항상 기도한다. 성경은 그런 점에서 기도를 통해 우리가 하나님을 가까이하며, 기도를 통해 우리의 영혼을 그에게로 향하여 들며, 기도를 통해 그 앞에 우리의 마음을 쏟아 붓는다고 말한다.
이것이 기도의 생명이요 또한 그 영혼이다. 그러나 또 다른 한편 기도의 영혼은 현재 상태에서 그 몸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기도의 몸은 그 영혼에 합당하며 어울리는 것이 되어야 한다. 기도에는 우리의 생각 속에 정리되어지는 약간의 말이 필요하다. 이는 마치 연기가 위로 올라가는 것과 같이, 말을 통해 우리의 기도의 향이 위로 올라가기 때문이다. 이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해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다. 왜냐하면 그는 멀리 계셔도 우리의 생각을 아시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 자신이 스스로를 더 잘 이해하기 위해 이런 말이 필요한 것이다.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의 금사슬은 그리스도인의 삶의 모든 그물코를 빠짐없이 꿸 수 있어야만 한다. 짧고 예고 없는 마음의 터트림을 통해 우리 자신들을 하나님 앞에 자주 나아가게 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과의 교제를 예배나 제정된 예식들과 같은 특정 순간들 속에서 뿐만 아니라, 일상의 행위와 섭리의 영역들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이어가야만 한다. 그런 점에서 기도는 우리가 수행하는 모든 일들 위에 뿌려지는 성수(聖水)와 같은 것이 되어야 한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눈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도록 해야 한다.
마음의 기도(mental prayer)에 있어서는 생각이 곧 말이다. 이 경건한 생각은 하나님께 구별되어 바쳐지는 영혼의 맏아들과 같다. 그러나 우리가 홀로 기도드리는 순간에 있어서는 우리의 마음이나 고조된 경건심을 더 잘 붙들어 놓을 필요가 있고, 따라서 생각을 말로 옷 입히는 일이 필요하다. 만일 비록 우리가 말로 다 옮길 수 없는 마음의 탄식들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마음을 감찰하시는 이’께서는 우리를 위해 간구하시는 성령의 생각을 아시므로 이것들을 다 받아주시며(롬8:26,27), 우리의 ‘탄식과 부르짖음’(애3:56)을 응답해 주실 것이다. 그러나 우리 육신의 연약함 때문에, 또 우리의 마음이 쉽게 잘 집중하지 못하고 배회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때로는 마음의 생각보다 말이 먼저 가야 할 때가 있다. 이렇게 말이 우리의 마음 속에서 우리의 헌신의 행위들을 인도하고 고조시킬 필요가 있는 것이다. 바로 이런 일을 위해서 여기에 제시된 도움의 말들이 유용하게 쓰여질 수 있기를 소망한다.
우리의 기도는 더 많아야 하고 더 충만해야 한다. 우리에게는 많은 짐이 있고 염려거리들, 필요한 것들도 많다. 많은 죄악들, 자비가 필요한 일들도 많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기꺼이 주시는 약속들 또한 많고도 풍부하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입을 넓게 열라고 명하신다. 그러면 그가 채워 주실 것이다. 좋은 것으로 우리의 필요를 만족케 해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하여 제한하지 않으신다. 그런데 왜 우리 스스로가 자신을 제한하고 마음을 좁게 가지려 하는가? 그리스도께서는 제자들에게 주의 기도를 가르치셨다. 그러면서도 그들을 향하여 “지금까지는 너희가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다(요 16:24). 이는 곧 그들이 성령이 쏟아 부어지고 성령이 교회와 영원히 함께 거하게 될 때, 또한 그들이 더 큰 것을 보리라고 말씀하였던 그 일이 이루어질 때 그들이 구하여야 할 것에 비하여 아무 것도 구하지 아니하였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 말씀이 이루어진 때에는 “구하라 그리하면 받으리니 너희 기쁨이 충만하리라”고 말씀하셨다. 어떤 일이든 우리의 필요를 하나님께 아뢰어야 한다. 하나님의 완전하신 행사들을 송축하는 일에 있어서나, 우리의 죄를 고백하는 일에 있어서나, 하나님의 자비를 인정하여 드리는 일에 있어서 우리는 언제나 구체적이 될 필요가 있다.
우리가 기도의 의무를 단정하게 수행하기 위해서는 적합한 기도의 방법이 지켜지는 것이 필요하다. 이는 우리의 기도가 그 내용상 좋은 기도가 되게 할 뿐 아니라, 또한 기도의 시기와 장소에 적합한 것이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우리가 천지의 왕이신 영광의 주께 올려 드리는 기도의 말이 앞뒤가 맞지 않아 혼란스럽고 시건방지며 소화되지 못한 말이 되어서는 아니 될 것이다. 하나님께 향하는 우리의 기도의 말이 경솔하거나 성급한 것이 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그때 그때 떠올라오는 생각이나, 간절함은 고사하고 영혼의 황무함과 경박함을 드러내는 중언부언하는 말 등이 앞서지 않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정한 중요성을 가진 일들에 대해 말의 예의를 갖추어서 기도하기를 힘써야 한다. 따라서 기도의 말들은 잘 선택되고, 적절한 무게를 갖추며, 또 적절한 곳에 잘 배치되도록 할 필요가 있다.
기도에 있어서 우리가 좋은 은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중요한 만큼, 또한 문장을 짧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주님의 기도가 이런 면에 있어서 특출하며, 다윗의 시들이 그러하고, 또한 성경에 나타난 바울의 기도들이 그러하다. 성경의 언어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가장 친숙하며, 많은 사랑을 받고 있고, 또한 가장 쉽게 일치감을 이룰 수 있다. 말씀의 사역을 통해 성경이 사람들에게 들려지고 강해되어짐으로써 성경 언어는 사람들에게 가장 잘 알려지고 또 그 의미가 잘 전달되고 있다. 책망 받을 것 없는 바른 교훈이 바로 이것이다. 할 수 있는 능력이 되는 사람들은 찬양곡을 따라 기도의 표현을 넓힐 수도 있을 것이고, 때로는 성경의 표현을 다른 말로 풀어서 기도에 사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영적인 일들은 영적인 것으로 비교한다는 원칙대로, 이런 것들이 서로를 비추어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우리 가운데는 더러 기도할 때 그 마음이 놀랍도록 고양되고 확장되어 자신을 초월하는 경지에 들어가는 사람들도 있다. 생각이 차고 넘치며 경건한 감정이 충만하여지는 그런 경우도 있다. 이런 경우에 그 기도를 보면 거침없는 간구들과 다채로운 표현들이 차고 넘치는 것을 보게 된다. 그 기도 속에는 자연스럽게 배어나오는 방법이 살아 있어서, 만일 그런 사람들에게 우리가 제시하고 있는 이 방법을 적용시키려고 든다면 그것은 오히려 방해만 되고 그들에게 족쇄를 씌우는 것 같은 결과를 낳고 말 것이다. 만일 마음속에 선한 것이 차고 넘치는 상태에 있다면, 그 혀가 마치 영감 넘치는 작가의 펜과 같은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런 경우는 매우 드물게 일어난다. 보통의 경우에는 우리 모두가 기도를 위하여 좋은 방법의 도움을 받을 필요가 있다. 이를 통해 우리의 기도가 단정하고 질서 있게 드려질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가 너무 형식에 매일 필요는 없다. 종이에 줄을 긋지 않고도 똑바로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처럼, 기도에 익숙한 사람들은 방법에 얽매이지 않고도 방법적으로 기도할 수 있다.
기도에 있어서 그 무엇보다도 마음을 주의 깊게 쏟아 붓고, 믿음과 사랑이 생생히 살아 작동하게 하며,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열망이 올려지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도 본질적인 부분이다. 이런 진실성이 없다면, 우리가 아무리 미사여구를 구사한다 할지라도 이것은 생명 없는 그림자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한다고 해도 하나님 앞에 진실되고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나가지 못한다면, 그것은 단지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우리에게 진정 유익이 되는 것은 효력있는 열정적인 기도이며, 마음에서 나와서 마음에 와 닿는 기도일 따름이다. 따라서 우리가 기도를 위해 미리 작성된 방식들을 사용하든 사용하지 않든 우리 마음의 진실함을 따라 하나님 앞에서 인정받는 자로 서는 것이 중요하다.
- 메튜 헨리, 『메튜 헨리의 기도』, ‘독자에게 드리는 글’, pp 16-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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