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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이안 머리, "부흥과 부흥주의", 14장 옛 것과 새 것 그리고 과거와 미래

강대식 2017. 11. 29. 05:58

14 장 옛 것과 새 것 그리고 과거와 미래

 

오늘날 미국 교회사에 있어 부흥과 부흥주의의 차이점이 잊혀짐

 

오늘날 미국 기독교는 우리가 앞에서 고찰했던 시기를 무시했을 뿐 아니라 우리가 전통적으로 견지해 왔던 부흥에 대한 견해를 광범위하게 폐기해 버렸다. 심지어 19세기 말에 접어들면서 1830년대의 부흥과 새로운 방법들에 대한 논쟁은 현대 교회에 더 이상 적절하지 않다는 견해가 대두하기 시작했다.

 

이제 피니를 반대했던 사람들이 보여 준 진정한 신념과 확신은 우리 시야에서 거의 사라져 버렸다. 왜 아키발드 알렉산더는 이런 새로운 신앙을 수용한 것이 하나님의 영광이 떠났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믿었단 말인가? 왜 존 네빈은 옛 정통주의가 투쟁하고자 않는다면, 다가올 교회의 모습과 교회 역사는 전적으로 실패할 것이라고 예언했는가? 후세대 작가들은 1870년대 이전에 살던 작가들과는 다른 부흥의 내용을 진술했다. 그들의 글 속에서 위에 언급한 이런 진술이나 설명이 왜 있는지를 언급하거나 이유를 밝힌 것을 전혀 발견할 수 없다. 그리고 1876년에 출판된 피니의 회고록이 거의 한 세기 동안 계속해서 출판되었던 반면 1870년대 이전의 작가들이 쓴 저서들은 모두가 다 도서관의 선반에서 먼지를 맞고 있을 뿐이었다.

 

이런 초기와 후기의 저작들이 한결같이 서로 다른 내용을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은 교리적이며 신학적인 전제들이 서로 같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들 사이의 차이점은 특별할 뿐만 아니라 포괄적인 것이었다. 이렇게 19세기 초반에 새로운 복음 전도의 체계가 교리적인 구분과 엄밀성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기독교의 신조를 진술하기를 싫어했고 칼빈주의를 반대하는 방향으로 발전했다.

 

그런데 1858년에 임한 부흥에서 참된 그리스도인 사이에 위대한 관용정신으로 교제하며 보편성을 띠고 서로를 용납하는 분위기를 고양시킨다. 교회가 이런 보편정신 즉 참된 그리스도인 사이의 공통된 목적을 추구하는 동안 과거의 교리적 차이점들은 모두 다 제쳐두었던 것이다. 이런 시대사조와 분위기로 인해 대서양을 사이에 둔 미국과 영국, 양국의 복음주의 연합회는 복음 전도에 큰 진보를 이루었고 그 결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광범위하고 초교파적인 관심사를 즉각적으로 지지하려는 새로운 태도를 보이기 시작했다.

 

이 모든 역사적 상황에는 사실상 많은 장점이 있었다. 왜냐하면 실상 많은 교파가 복음전파에 있어서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사안들을 가지고 지루하게 다투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런 새로운 정서는 자칫 교리를 중요하지 않은 것으로 취급할 가능성이 많았다. 복음전파를 촉진하는 일이 마치 그것을 완전하고 상세하게 이해하고 믿는 일보다 더욱 중요한 것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대단히 컸던 것이다.

 

1858년에 임한 부흥에 나타난 또다른 요인인 평신도 부흥은 후세대의 부흥관에도 똑같은 영향을 미쳤다. 이 부흥이 평신도 부흥이었다고 말한다면 과장된 표현이라고 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평신도였던 제레미아 랜피어가 했던 사역은 대단히 선한 사역이었으며, 이는 교회가 임명하지 않은 즉, 가르치는 공적인 사역자로 장립 받지 않은 진지한 그리스도인도 많은 선한 일을 해 낼 수 있다는 것을 잘 보여 주는 사건이다. 그래서 일반 그리스도인이 기도회를 효과적으로 소집하고 인도할 수 있다면, 그들 또한 복음을 전하는 공적인 전도자가 될 수 있을 거라는 당시 이런 대중적인 견해는 매우 매력적인 것이 되었다.

 

교회의 공적 사역에서 분리된 평신도 사역의 개념은 18세기부터 출현했다. 그러나 이런 평신도 사역은 많은 지지를 받지 못했다. 왜냐하면 당시만 해도 공적인 사역자들만이 진리를 가장 잘 이해할 수 있고 가르칠 수 있으면 설교할 수 있는 것으로 여겼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늘날의 전도자는 복음이나 신학의 이해가 전혀 없어도 기독교 목회를 할 수 있다는 위험한 생각에 익숙해 있다.

 

부흥에 대한 몇 가지 결론

 

이제 우리는 부흥이라는 주제에 대해 몇 가지 명확한 결론을 내리고자 한다. 1830년대까지는 여러 가지 현상을 동반한 부흥에 대해 오직 한 가지로 정의했다. 그것은 부흥이란 하나님의 영이 주권적이며 편만하게 부어져서 하나님 나라에 많은 사람이 더해지게 되는 역사라고 보는 것이었다. 바로 이런 정의가 조나단 에드워즈와 새뮤얼 데이비스가 내린 부흥에 대한 정의였다. 또한 부흥이라는 단어가 코튼 매더의 1702년판 미국 기독교 대헌장에 언급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이미 부흥에서 나타난 이런 현상에 대해 똑같이 이해해 왔다. 예를 들면, 로버트 플레밍(1630-1694)1620년대에 임한 한 부흥을 성령의 분출로서 그리고 또다른 부흥을 하나님의 임재와 성령의 부어주심으로 말하고 있다.

 

그런데 피니보다 3년 앞선 1832, 칼빈 콜턴이라는 미국 장로교 목사와 저술가는 참된 부흥이 두 가지 다른 유형 즉 옛 부흥과 새 부흥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새로운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엄청난 결과를 낳으며 신비하고도 예기치 못하게 여호와의 임재로부터 직접적으로임했던 옛 부흥은 과거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미국 부흥에 있어서 일반적인 특징이었다고 기록했다. 또한 그가 주장한 새로운 부흥이란 그 특징과 본질에 있어서는 옛 부흥과 같지만 매우 최근에 일어나기 시작한 부흥이라고 한다. 그는 과거 사람들이 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여러 가지 도구와 방법을 몰랐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제 콜턴은 자신들이 체험한 바에 따르면 부흥이 있다는 것을 믿을 수 있으며 사람이 부흥을 일으킬 수 있는 성공적인 도구가 될 수 있다고 확신하는 약 20명의 목사들과 수천 명의 영향력 있는 그리스도인들이 미국에 있다면서 영국 독자들을 납득시키고 안심시켰다.

 

바로 이 때부터 이 부흥이라는 주제가 불확실해지고 심하게 혼동되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1834, 영국 침례교 연합회의 파송을 받아 대표자의 자격으로 미국을 방문했던 두 명의 영국 침례교 목사인 콕스와 호비의 보고서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그들은 미국의 침례교:강화(講話)라는 저서의 결론에서 다소 주저하면서 세 가지 부흥 종류에 대해 언급했다.

 

이런 보고는 부흥이라는 단어가 당시 어떻게 사용되었는지를 잘 보여 준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히 상황과 모습을 묘사하고 있을 뿐 분석하거나 영적인 정의를 내리지는 않고 있다. 단어의 이런 사용이 어떻게 확장되었는지는 포터가 1832년 앤도버 신학생들에게 처음으로 강의했던 책, 신앙 부흥에 대한 서신들과 역시 앤도버에서 1868년에 행해진 커크의 연설에서 대조적으로 드러난다. 포터는 오직 전통적인 정의만 알고 있었다. 그러나 커크는 부흥이란 참된 신앙을 확장하시려는 하나님의 영적인 활동을 의미하는 것이므로 부흥이라는 단어를 실제적으로는 교회가 이 세상에서 행하는 모든 복음의 진보와 확장에 사용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탈출한 사건처럼 정치적이며 신앙적인 부흥을 부흥에 포함시켰고 중세교회의 베네딕트와 버나드 그리고 가장 최근의 반노예투쟁과도 같은 도덕적 변화를 일으키기위한 운동도 부흥의 범주에 포함시켰다. 그는 이런 것들을 간접적인 부흥이라 불렀다. ‘직접적인 부흥에 대해서는 개인적 경건의 비밀스러운 성장 또는 새로워짐그리스도인들의 공동체적 갱신그리고 회심하기 위해 노력하고 기도하는 일등과 같은 것을 포함시켰다.

 

이쯤 되면 아마도 부흥을 정의하려는 그 어떤 시도도 무의미해질지 모르겠다. 왜냐하면 부흥이란 단어 그 자체는 성경에서 직접적으로 파생된 단어가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임스 알렉산더는 이 단어가 지혜롭지 못하게 선택된단어라고 했다. 그러나 잘된 선택이든 잘못된 선택이든 이 단어는 선택되었고 그 의미는 일반적으로 오랫동안 인식되어 왔다.

 

부흥이라는 단어의 정의에 대한 이 논쟁의 핵심은 칼빈 콜턴이 정의한 부흥의 분류와 하나님의 영의 부어 주심이 하나님이 주권적으로 부어 주시는 것인가 아니면 그것이 인간의 적당한 수단과 방법으로도 일어날 수 있는 것인가라는 질문의 대답에 달려 있다. 칼빈 콜턴과 찰스 피니는 이 질문이 암시하는 것이 중대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만일 부흥이 어떤 조건만 만족시키면 일어날 수 있는 것이라면, 부흥이 지속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부흥이 그렇게 지속적이라면, 부흥을 일으키려고 노력하지 않았던 옛 부흥 방식은 이제 더 이상 필요없는 부흥이 되기 때문이다.

 

1830년대부터 그 이후까지 수많은 부흥사들이 계속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영적 대각성은 계속되지 않았다. 그리고 1857년과 1858년에 하나님의 능력을 맛볼 수 있는 괄목할 만한 부흥이 임했을 때 놀라운 방식으로 교회가 성장하고 확장되었던 이 부흥은 어떤 조건을 만족시키면 부흥을 볼 수 있다는 이론과는 상관 없이 임한 것이었다.

 

두 종류의 부흥이 그 본질에 있어서는 같다고 주장한 콜턴의 주장은 네틀턴이 가장 경계하고 두려워했던 주장이었다. 콜턴은 부흥이라는 영예로운 용어를 인간의 정력과 활동으로 일으킬 수 있는 것으로 여겼다. 그는 하나님의 영의 역사와 인간의 능숙한 조작을 혼동했던 것이다. 그러나 콜턴이 이후에 자기 견해를 철회한 것은 부흥이라는 용어가 경건을 추구하는 사람들에서나 학계에서 전혀 비평 없이 무분별하게 사용되었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러나 어쨌든 근본적인 결과는 미국 전역이 부흥주의로 말미암아 야기된 폐해를 조금씩 깨달아 가는 동안 참된 부흥은 전혀 경험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두 종류의 부흥의 차이를 잘 간파하고 있던 다브니 교수는 그럴 듯하지만 위조된 신앙의 흥분에 대해 1887년에 다음과 같이 썼다. ‘경솔한 방법들이 만들어 낸 해악은 표면에 잘 드러나지는 않지만 정말 막대하다. 현재 미국에 보급된 종교적 경험의 유형과 내용들은 로마 가톨릭 국가에서나 볼 수 있는 비성경적인 것들이다. 우리 개신교에 있어서 위조된 부흥만큼 가장 대표적인 해악은 없다. 우리는 이것이 우리 신앙의 거룩한 삶의 표준과 원리들 그리고 도덕과 교회의 치리를 타락시키는 가장 주요한 원인이요 근본적인 죄악의 원천이라고 믿는다.’

 

스트릭런드는 1934년에 부흥이라는 용어에 함축된 부정적이고 해악적인 내용을 반드시 떼어 내버려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스트릭런드는 그 일을 실행할 방법은 제시하지 못했다. 하버드 신학교의 학감이었던 윌리엄 스페리는 1944년에 다음과 같이 쓰면서 당시의 공통적인 견해가 어떠했는지를 알려 주고 있다. ‘우리는 지난 반 세기 동안 신앙 부흥에 대해 질릴 만큼 너무 많이 듣고 있다. 이제 모든 교회 특히 퇴보하고 침체된 교회들은 오직 교육만이 교인들의 이목과 관심을 끌 수 있는 최선의 길이라는 데 동의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우리의 인간적 노력 때문에 결국 참된 신앙 부흥이 버려지고 만 것이다.’

 

바로 이 때부터 일반 출판사들이 많은 책을 내며 미국의 부흥을 다루기 시작했다. 그러나 슬프게도 이 가운데 대다수는 부흥의 모든 초자연적인 요소들을 불신하는 주장에 기초한 것들이었다. 바로 이것을 기점으로 전체 부흥의 역사가 다시 완전히 새롭게 기술되었던 것이다. 부흥의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손길은 전적으로 사라져 버렸고 부흥과 부흥주의는 다르지 않은 것이며, 완전히 같은 것으로 여겨졌다.

 

그러나 부흥과 부흥주의의 차이점은 실제적이며 엄청나다. 참된 부흥의 현상은 신약 시대의 교회가 경험했던 초자연주의처럼 신비한 것이다. 그 누구도 왜 오순절 날에 아덴이나 로마가 아닌 예루살렘에서 3,000명이 회심했는지 알지 못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보좌를 통해서만 알 수 있는 것이라고 말씀했다(11:25). 그것은 역사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인 것이다. 성경은 이를 다음과 같이 말씀한다.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11:33). 우리가 이제까지 본서에서 살펴보았듯이 부흥이라 불리는 광대하고 갑작스러운 복음의 확장은 결코 어떤 계획이나 수학적 방식을 통해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시기와 장소 그리고 수단과 도구 같은 인간적인 모든 조건과 시도는 하나도 예외 없이 철저하게 실패하고 마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부흥주의는 전혀 신비한 것이 아니다. 부흥주의의 기도는 심리적인 압박을 수단으로 언제나 부푼 기대와 희망을 주었다. 또한 부흥사호소하고 간청함으로써 청중에게 인위적인 결심을 강요했기 때문에 당연히 결과를 예측할 수 있었다. 그러므로 이런 방법들과 다른 여러 방법을 사용함으로써 성공했다는 것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것인지를 충분히 알 수 있다. 커크 박사의 다음과 같은 견해는 다른 모든 사람에게 익숙하게 알려진 말이다. ‘나는 청중을 잘 조작하고 다룰 수 있는 기술과 감각을 잘 갖춘 것처럼 보이는 한 전도자를 알고 있다. 그의 목표는 자기 청중을 자신의 발 앞에 무릎 꿇게 만드는 것이다. 그에게는 그렇게 만들 수 있는 20가지 방법이 있다.’ 부흥주의의 특징은 예측 가능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부흥사들이 그렇게 했고 부흥의 선동자들은 곧이어 일어날 부흥이 실제로 일어나기 전에 이미 그 결과를 선언하는 데 아무런 거리낌이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여기에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중요한 것이 있다. 그것은 부흥과 부흥주의가 명백하게 구별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지만 실제로는 이 둘이 쉽게 구별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부흥과 부흥주의의 차이점을 알기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시 말하면 부흥과 부흥주의를 절대적으로 완벽히 구별하기란 쉽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여러 가지 오류와 실수들 그리고 지혜롭지 못한 방법이기는 하지만 그런 방법 때문에 일어나 참된 복음 사역에도 전혀 참된 부흥이 없었다고 주장하는 것 역시 어리석은 일이 될 것이다.

 

이제 우리는 부흥에 대해 신파가 주장했던 새로운 의미와 대조해 볼 때, 구파의 정의가 부흥의 참된 정의라는 확신을 지지해 주는 마지막 주장을 언급해야 할 것이다. 구파는 부흥이란 교회의 정상적인 상태가 아닌 매우 특이하고 비범한 상태라고 가르쳤다. 그러나 신파는 올바른 단계와 방법을 사용하기만 하면 부흥이 반드시 일상적인 것이 된다고 주장함으로 부흥에 대한 환영(幻影)과 망상을 퍼뜨렸을 뿐만 아니라 일상적인 것에 대한 중요성과 우선순위 문제를 대단히 평가절하 했다.

 

이런 견해는 매우 치명적이며 엄청난 결과를 낳았다. 그것은 이후 일백 여 년 동안 특별한 방법들을 복음 전도의 현저한 특징이 되게 했고 그렇게 함에 있어서 소위 특별하지않은 모든 일상적인 사역을 낙심시키고 평가절하 하는 불가피한 현상을 야기했던 것이다. 바로 이런 견해에 기초해서 부흥에 대한 비성경적인 견해가 대단히 과장되었던 것이다.

 

구파의 신념에 따르면, 부흥은 하나님의 영이 특별하게 임하셔서 엄청난 은혜를 주는 것을 의미했지만 이런 은혜가 평범한 시대에는 임하지 않았다는 것을 한 번도 주장한 적이 없다. 그들은 부흥이 임하지 않았던 곳은 복음 전도를 효과적으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가정한 적도 전혀 없었다. 구학파의 인사들은 부흥을 열렬히 믿었으며, 역사적으로 신자들이 저희가 주의 법을 폐했사오니 지금은 여호와의 일하실 때니이다”(119:126)라고 기도해야 할 특별한 시기가 있었지만 통상적이고 일상적인 것을 폐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그런 생각이 성경적이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구학파 인사들은 신학파보다도 먼저 하나님의 영이 충만하게 부어질 수 있다는 것을 믿었다. 그러나 그들은 부흥이 없는 모든 사역이 쓸데없고 무익한 것이라고 가정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들은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에 합한 적절한 방법들을 사용하심으로 당신의 나라를 영광스럽게 확장시키시는 복을 주시는 분이심을 믿었다.

 

우리는 본장을 통해 영적 대각성의 시기와 그와는 다른 시기를 동시에 살아갔던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추적해 보았다. 그들의 증언과 그들의 삶의 향기는 여전히 우리에게 전해지고 있다. 그들의 강단 설교는 그들의 심장에서 나온 것이며, 하나님께 더 가까이 가려는 그들의 거룩한 삶에서 나온 것이다. 그들은 자신들이 설교했던 구세주를 더욱 사랑했으며, 자신들이 경고했던 죄는 혐오하고 미워했다. 성경을 묵상하고 기도에 힘쓰는 개인적 경건과 신앙은 그들 삶의 위대한 한 부분이었다.

 

그러나 이런 구학파 인사들의 경건과 정신이 역사 속에서 어떻게 그렇게 신속하게 사라져 버렸는지를 알기 위해서는 이제까지 다룬 그 어떤 주제보다 더 세심하고 충분한 논의가 필요할 것이다. 이 질문에 답하기에는 일부 신학적인 관점이 필요하다. 천사들도 살펴보기를 원하는 것이었던 죄인의 회심과 관련된 중요한 진리들이 이제는 진부한 것이 되어 버렸다. 또한 다른 곳에서는 신학 교육의 관심사가 변하기 시작했다. ‘학문에 대한 관심으로 말미암아 최고의 우선권인 성경의 권위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오늘날 부흥의 절박한 필요성

 

우리에게도 부흥이 필요하다는 것은 오늘날에도 대단히 중요한 문제다. 2세기 전 볼테르가 주장했던 바와 같이, 오늘날의 사람들도 기독교가 다시 한 번 황혼기를 맞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닥치는 대로의 부흥이 아니다. 이제 우리는 본서에서 다루어 왔던 내용과 기록을 통해서 생명을 살리는 역사를 일으키시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새롭게 기름 부음을 받은 설교자들이 숨쉴 수 있는 세대가 이미 준비된 것 같다.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유정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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