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기도
기도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 앞에 제시하여 하나님이 이에 의해 영향을 받도록 하는 것이다. 기도는 본성상 기도되는 대상 안에 있는 하나님의 충족하고 효과적인 지식과 능력, 선을 인정하는 것이다. 기도가 하나님 이외의 다른 대상에게 지향된다면 이는 공개적인 우상숭배이다.
이는 첫째, 신앙으로부터 나온다. 롬10:14, 저희가 믿지 아니하는 이를 어찌 부르리요. 신앙이란 우리가 다음과 같은 것을 믿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첫째,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의 심령의 내적인 감정과 움직임을 포함한 모든 것을 아신다고 믿는다. 여기에 기도의 본질이 발견된다. 둘째, 우리는 하나님이 전능하고 우리의 욕망을 완수하는 데 있어서 그가 의도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셋째, 우리는 그가 모든 선한 선의 창시자이며 시여자라는 것을 믿는다. 넷째, 하나님은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의 기도를 승인하고 열납한다는 것을 믿는다.
따라서 우리의 모든 기도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그리고 그리스도를 매개로, 칭의하는 신앙의 권능으로 하나님에게 드려져야 한다. 요14:13,14,16:23,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기도는 소망에서 나온다. 소망에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우리의 기도들의 열매를 기대한다.
롬8:23,26,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될 것--- 기다리느니라 --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기도는 우리가 참여하고 하나님의 선함을 기리는 사랑으로부터 나온다. 시34:3,8,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함께 그 이름을 높이세.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이웃사랑은 하나님에게 열납될 기도에 필수적이다. 이는 주의 기도의 다섯 번째 간구에 나타나 있다.
말씀의 청종은 하나님의 의지에 정향되어 있지만, 기도는 우리의 의지에 정향되어 있다는 점에서. 다르다. 말씀을 청종하는 것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의지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기도에 있어서는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에게 열납되도록 하나님에게 드린다. 하지만 기도는 단순히 의도하거나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의지 전체의 문제이다. 즉 의지 자체가 하나님에게 표명되고 제시된다. 세속적 인간이 가장 많은 것을 바라기 때문에 가장 기도를 많이 하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기도에는 하나님으로부터 어떤 것을 얻으려는 열망, 하나님으로부터 이를 구하는 의지, 마지막으로 그 열망을 하나님 앞에 제시하고 전달하는 것이 요구된다.
이러한 열망의 제시는 우선 본질적으로 의지 자체가 하나님에게 전향되어, 의지가 하나님을 향한 행위 에 의해 그 갈망과 선호를 대표할 때 일어난다. 경건한 자들의 기도들은 성경에서는 소원(시10:17), 그리고 말할 수 없는 탄식(롬8:26)으로 불린다.
둘째, 이러한 제시는 표징 혹은 명백한 표현의 형태로 지성에 의해 이루어진다. 지성은 의지의 감정들에 대한 내적인 말씀을 감지할 때, 이를 하나님 앞에 표현한다. 따라서 신자들의 기도들은 말들, 언명들이라고 불린다. 왜냐하면 신자들이 우선적으로 그리고 주로 외적으로가 아니라 내적으로 하나님에게 말하기 때문이다. 호14:2, 너는 말씀을 가지고 여호와께로 돌아와서 아뢰기를 모든 불의를 제하시고.
따라서 기도는 형식적으로는 의지의 행위로서 마음의 선행적인 행위와(이로써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누구에 대해, 무엇 때문에,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이해할 수 있다), 결과적 행위(이로써 우리는 소위 ‘마음의 말들’을 통해 기도 자체를 상정하고 표현한다)를 수반한다.
의지나 의도나 행위 이외에 우리가 기도하는 대상인 하나님, 우리가 기도하는 것, 그리고 기도 자체에 주목할 것이 요구된다. 왜냐하면 우리는 영으로 기도할 뿐만 아니라 마음으로 기도하기 때문이다. 고전14:15, 내가 영으로 기도하고 또 마음으로 기도하며.
열망의 제시는 복종적이고 겸손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는 지고의 신성과 창조주에게 드리는 종속적인 피조물의 진심의 기도가 아닐 것이다. 창18:27, 티끌과 같은 나라도 감히 주께 고하나이다: 시95:6, 우리가 굽혀 경배하며 우리를 지으신 여호와 앞에 무릎을 꿇자.
기도는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과 겨루며(창32:28, 호12:4,5), 씨름한다(롬15:30)고 말할 수 있다.
우리는 기도하기 전에는 하나님에게 알려지지 않은 열망들을 알리기 위해 하나님에게 기도하는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기 때문이다, 시139:2. 즉 우리의 생각들이 아직 우리 마음 안에 자리잡기도 전에 이를 하나님은 아신다. 또 우리는 하나님을 우리 자신과 반대되는 입장에서 우리 자신들의 관점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기도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기 때문이다, 약1:17.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길 원한다고 믿는 것을 기도로써 획득하기 위해 기도한다, 요일5:14,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한 것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하나님의 섭리의 확고성과 불변성은 신자들의 기도를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를 확립한다. 신앙에 의한 섭리의 인식은 진정한 신자들이 나태하게 하지 않고 이들을 더 많이 기도하도록 고무시킨다, 대상17:25-27, 나의 하나님이여 주께서 종을 위하여 집을 세우실 것을 이미 듣게 하셨으므로 주의 종이 주 앞에서 이 기도를 구할 마음이 생겼나이다. 따라서 우리는 진정으로, 지속적으로 기도해야 한다. 진정으로 기도하는 것은 기도가 하나님의 영광과 우리의 선의 필수적인 매개이기 때문이며, 지속적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그러한 의지의 성벽이 결코 땅에 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기도의 개별적 행위는 기회가 우리에게 주어지는 대로 매일 수행되어야 한다.
기도의 부속되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고백과 약속이 있다. 양자는 명시적으로 혹은 암시적으로 하나님께 열납되는 모든 기도와 기도의 모든 부부에서 활용된다. 기도에서 우리는 우리에게 주어지고 앞으로 주어질 모든 선의 근원으로서 하나님의 긍휼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우리가 불쌍한 자요, 하나님을 우리의 열망으로 영향을 주거나 움직이려는 행위에 있어서 모든 선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을 고백한다. 우리는 우리의 마음이 제시된 문제들에 정당하게 관심을 두고 있는 것을 고백하고 장차 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일 것이라는 것을 약속한다. 그러한 표현들이 우리의 기도에서 누락된다면 이는 하나님을 조롱하는 것이다. 고백은 우리의 범죄, 죄책, 비참함을 겸손하고 애통해하며 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시32:5. 기도의 방식은 열망을 짧게 토로하는 것이거나 연속적으로 기도하는 것일 수 있다.
기도에는 간구와 감사 두 종류의 기도가 있다. 빌4:6,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간구는 부족한 것을 획득하기 위한 기도이다.
마7:7, 구하라 그러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러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금식은 현생의 도움과 위로를 절제하는 것이다. 금식에서는 진정한 고백에 의해 겸손이 나타나고 이로써 우리는 보다 효과적인 기도를 드릴 수 있게 된다, 고전7:5,욜1:14-16,단9:2,3. 금식 자체는 선행도 아니며,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순복의 일부도 아니다. 하지만 금식은 우리를 자유롭고 열정적이며 보다 지속적인 기도에 참여하게 한다. 금식은 마음 전체가 하나님을 구하는 데 집중되어 현생의 것들에 대한 생각과 염려로부터 해방될 때 가장 종교적일 수 있다.
감사는 우리가 받은 것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 기도하는 것이다. 시50:15,23,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라.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나를 영화롭게 하나니. 이는 간구와 동등한 기도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에게 감사를 드리면서 우리는 우리의 의지를 하나님에게 종교적으로 복종시켜 하나님에게 영향을 미치거나 움직일 수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감사의 핵심은 우리가 받은 어떤 것을 하나님과 연관시키는 것이지 어떤 것을 받는 것은 아니다.
감사는 우리가 실제적으로 구체적으로 받은 것 뿐만 아니라 우리가 신앙과 사랑에 의해 붙잡은 것들에 대해 이루어져야 한다. 이는 이러한 것들에 대한 약속이 어떤 면에서는 이미 시여된 유익들이기 때문이며, 부분적으로는 약속된 것들이 마치 이들이 바로 가까이 있는 것처럼 마음에 작용할 정도로 강한 확신으로 획득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찬양을 드리는 것은 감사의 일부분이다. 우리는 하나님 자신 안에 있고, 하나님의 사역들 안에서 발현되고, 어떤 의미에서는 우리가 이미 받은 것과 관련된 완전한 것들에 대해 하나님을 찬양한다. 계4:8,9, 거룩하다 거룩하다 주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여-- 그 생물들이 영광과 존귀와 감사를 보좌에 앉으사 세세토록 사시는 이에게 돌릴 때에. 따라서 정당한 감사란 첫째,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지식이 요구되며, 둘째, 신앙과 소망을 통해 이러한 축복들을 우리에게 적용하는 것이 요구되고, 셋째, 이에 적합한 감사로 이들에 대한 진정한 존중이 요구된다.
감사의 목적은 우리가 받은 모든 것에 대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다, 시50:14. 따라서 감사는 모든 종교적 간구의 부차적인 목적이다. 하나님에게 어떤 것을 정당하게 구하는 자는 이를 받기 위해 구할 뿐 아니라 자신이 이미 받은 것을 하나님의 영광과 연관시키기 위해 구한다. 고후1:11, 너희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함으로 도우라 이는 우리가 많은 사람들의 은사로 인하여 많은 사람도 우리를 위하여 감사하게 하려 함이라.
감사는 그 자체로 간구보다 완전하고 보다 탁월하다. 왜냐하면 간구에서는 우리의 선이 구해지지만 감사에서는 오직 하나님의 영광만이 구해지기 때문이다. 따라서 성경에서는 간구보다는 감사가 천사들이나 복된 영들에게 더욱 자주 귀속되고 있다. 이러한 행위를 통해 우리는 하나님을 찬양하고 기억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칭송하고, 송축하고, 찬미하고, 영화롭게 한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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