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스크랩] 7/15 주일설교, `크고 첫째 되는 계명`, 마 22:37-40

강대식 2018. 7. 18. 05:19

2018-07-15 주일설교

본문: 22:37-40

제목: 크고 첫째 되는 계명

 

한 율법사가 예수를 시험하여 물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크니이까?”

그런데도 그 질문은 중요하기에 주님은 친히 대답하셨다.

 

1.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22:37)

 

하셨으니는 신명기 6:5 말씀을 인용하신 것이다.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

 

마가복음 12:30은 이렇게 말씀한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종합하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성경에서 마음은 항상 영혼의 중심을 말한다. 생명의 근원이다.

모든 지킬 만한 것 중에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 생명의 근원이 이에서 남이라”(4:23)

 

마음에 믿고 입으로 시인하면 구원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마음은 영혼 중심이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예수를 주로 시인하며

또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네 마음에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라

사람이 마음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느니라”(10:9-10)

 

마음에 믿는다고 하니까, 마음에 한 번 생각하는 것으로,

입으로 시인한다고 하니까 영접기도 따라서 하는 것으로 구원 받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오늘날 전도가 저질르고 있는 위선과 거짓과 반역과 거역일 뿐이다.

마음으로 믿어, 마음 중심으로 믿어 의에 이르고

그 마음 중심에서 나와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르는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무엇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이 전도를 한다고 한다.

유사 그리스도인이 유사 그리스도인을 낳아 교인수 늘리고 바벨탑 쌓을 뿐이다.

주님은 그들이 자기보다 배나 더 지옥 자식이 되게 하는것이라고 하셨다.

 

사람들을 끌어모아 조직을 키우고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있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아 너희는 스스로 할례를 행하여 너희 마음 가죽을 베고

나 여호와께 속하라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 악행으로 말미암아

나의 분노가 불 같이 일어나 사르리니 그것을 끌 자가 없으리라”(4:4)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들이 누구인가?

유다인은 오늘날 현대 교인들 전체요,

예루살렘 주민들은 각 나라 수도 서울에 있는 대표적인 교회들의 교인들이다.

예레미야 선지자의 경고가 곧 오늘 우리에게 하는 경고임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마음을 드릴려면,

탐욕과 방탕으로 우상들로 찌들어 있는 마음 가죽을 스스로 베어 할례를 행해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께 진정으로 속할 수 있다.

 

마음 가죽을 베어 할례를 행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공의의 심판을 하게 된다.

그 불의 심판은 끌 자가 없다고 하신다.

보라 날이 이르면 할례 받은 자와 할례 받지 못한 자를 내가 다 벌하리니 --- 무릇 모든 민족은 할례를 받지 못하였고 이스라엘은 마음에 할례를 받지 못하였느니라”(9:25,26)

 

저주를 받는 비결과 복을 받는 비결은 그 마음이 향하는 것에 좌우된다.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17:5)

 

사람의 마음은 한없이 부패하고 더러워질 수 있다.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은 마음이라 누가 능히 이를 알리요”(17:9)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고 마음 중심을 보신다.

그의 용모와 키를 보지 말라 내가 이미 그를 버렸노라 내가 보는 것은 사람과 같지 아니하니

사람은 외모를 보거니와 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느니라”(삼상16:7)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겉모습만 의롭고 깨끗이 하고서는 안심하였다.

눈먼 바리새인이여 너는 먼저 안을 깨끗이 하라 그리하면 겉도 깨끗하리라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9:39)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되 그 안에 탐욕과 방탕으로 가득하도다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은 회칠한 무덤과 같다고도 하셨다.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여도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다’.

맹인된 인도자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키면서 이렇게 하였다.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도 마음 속이 거룩하고 흠이 없이 깨끗하게 하기 위함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해야 한다. 그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다.

내 영혼 중심을 드리고 생명의 근원을 드림으로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한다.

마음을 다할 때, 뜻도 다할 수 있고 목숨도 힘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때 우리는 속 마음을 비우고 탐욕과 방탕을 비울 수 있다.

회칠한 무덤에서 벗어나고 탐욕과 방탕, 위선과 불법에서 벗어날 수 있다.

자기를 부인할 수 있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를 수 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크고 첫째 되는 계명,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크고 둘째 되는 계명, 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다.

 

2.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22:39)

 

내 이웃을 왜 자기 자신 같이 사랑할 수 없느냐?

이웃 사랑, 만인의 사랑을 그렇게 외치고 교육하는데도 이루어지지 않느냐?

세상이 정의와 사랑을 구호처럼 외치면서도 메아리 없이 끝나고 마느냐?

 

다들 중심이 자기 사랑 자기 중심 자기 이익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는 사람만이

자기 마음 중심에서 자기 사랑 자기 이익 자기 향락에서 벗어날 수 있다.

 

인간 관계의 모든 충돌과 갈등과 전쟁은 자기 중심 끼리의 충돌 외에 다른 것이 아니다.

부부 갈등도 부모와 자녀의 갈등도 상하관계의 갈등도 다 자기 우선 자기 사랑에서 비롯된다.

이웃 사랑이 말로는 되는데, 마음으로는 되지 않아서 문제이다.

 

사람은 다 자기 안경을 가지고 세상을 보면서, 남의 안경은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가 어렵다.

내 안경이 옳고 맞다면 남의 안경도 옳고 맞을 수 있는데, 그것을 못 받아들인다.

매사를 판단하는 자기 안경이 잘못되어 있을 수 있는데 본능적으로 인정을 안한다.

 

모든 인간 관계의 갈등이 자기 패러다임만 옳고 상대의 패러다임은 틀려먹었다고 하는데서 온다.

배워서 이 사실을 안다고 하더라도 실제 생활에서는 적용하지 못한다.

우리의 마음 속에 에고가 얼마나 완고하고 편협하고 삐둘어져 있는지 모르기 때문이다.

 

설령 알더라도 못 고치는 것은 마음 속 질병과 근원은 아는 것으로는 고칠 수 없기 때문이다.

교육이나 수양으로 조금 완화시킬 수는 있어도 근본적으로는 해결이 나지 않는다.

언제고 계기만 되면 용수철처럼 마음 속 질병은 튀어 나온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질병이요 타락의 죄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 인류의 조상이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타락하여 그 마음의 타락한 본성을 물려주고 있다.

하나님의 성령으로 거듭나고 주님의 십자가 보혈로 씻음 받아야 마음의 본성을 고칠 수 있다.

 

그것을 성경과 기독교 역사가 증명하고 기독교가 들어간 나라들의 역사도 이를 증거하고 있다.

이웃을 내 자신과 같이 사랑하여 평화와 화목과 행복을 누리는 방법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사랑함으로 마음을 비우고 변화를 받는 길 밖에 없다.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는 길 밖에 없다.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따르는 길 밖에 없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새로운 존재로 다시 태어나는 수 밖에 없다.

 

그래야 옛 것은 지나가고 옛 사람은 헌 옷 벗듯 벗겨지고 새 사람을 입게 된다.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게 되고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고 닮아가게 된다.

기독교는 생명의 종교이고, 새 새명이 들어옴으로 변화를 이루어가는 종교이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주시는 새 생명이 없다면, 독실한 종교인이 될 수는 있어도

성경이 누누이 말씀하는 참된 생명 참된 믿음의 그리스도인은 될 수 없다.

유다인과 예루살렘 주민이 아무리 많아도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고 사람이 만든 종교일 뿐이다.

 

하나님이 주신 새 생명으로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해

주 나의 하나님을 사랑할 때,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을 지킬 때,

그와 같이 이웃을 내 자신 같이 사랑하는 크고 둘째 되는 계명을 지켜 행할 수가 있다.

 

하나님은 욕심이 많으셔서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나만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마음 속 탐욕과 방탕, 위선과 불법, 자기 이기심 자기 중심적 사랑에서 벗어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고 유일한 길이기 때문에 그렇다.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13:10)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완성이 된다.

이웃을 사랑하고 형제를 사랑하면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4:20)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을 위해 우리 주님께서는 하늘 보좌를 떠나서 인간의 몸을 입고

그리스도로 오셔서 십자가에서 우리 죄를 사하시려 대속 제물 화목 제물로 죽으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셨고, 승천하셔서 다시 오시는 날까지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우리를 중보하시고 위해서 기도하고 계신다.

 

그 주님은 심판하실 때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고, 하지 않은 것이 곧 내게 하지 않은 것이라고 하신다.

그에 따라 의인들에게는 영생에, 악인들에게는 영벌에 들어가게 하신다.

 

3.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22:40)

 

강령은 으뜸 줄거리를 뜻한다. main principles.

예수님 당시 구약성경만 완성 되어 있었고, 그것은 율법과 선지자로 나뉘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해 시내산에서 주셨고, 선지자는 이 율법을 교훈하고 해석하고 적용하였다.

지금 율법은 신구약 성경 전체를 말한다.

 

율법은 순전하게 전파되고 가르쳐져야 하고 바르게 해석하고 적용하고 교훈하여야 한다.

오늘날에도 성경과 목회자가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율법은 그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않고, 주님은 이 율법을 완전케 하시기 위해 오셨다.

 

이 율법의 교훈과 적용이 잘못될 때 암흑시대를 낳고 멸망에 이르렀다.

예나 지금이나 순전한 말씀에 세상 지혜를 혼잡하여 교회와 성도를 부패하게 하고 있다.

무지한 백성들은 거짓 선지자들에게 쉽게 미혹을 당하고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게 된다.

그 끝은 멸망이요 파멸인 것을 알고 성경을 연구하고 묵상하고 지켜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두 돌판에 새겨 십계명을 주셨다.

주님은 첫째 돌판을 크고 첫째 되는 계명, 둘째 돌판을 크고 둘째 되는 계명으로 강령화하셨다.

이 두 계명(강령)을 지키면 온 율법과 선지자를 다 지키는 것이 된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사랑할려면,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을 자신에게 두지 말아야 하며, 우상을 만들고 섬기지 말아야 하며,

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하며,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야 한다.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려면, 부모를 공경해야 하고 살인하지 말고 간음하지 말며

도적질하지 말고 거짓 증거하지 말고, 이웃의 집을 탐하지 말아야 한다.

 

첫째가 없으면 둘째가 없음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 사랑이 우선 되지 않으면 이웃 사랑이 실현될 수 없다.

또한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완성되고 증거될 수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는 말씀도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그리스도 중심으로 표현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하나님 사랑)이 없다면 피차 복종하는 이웃 사랑도 실현될 수 없을 것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

이 땅에서도 천국의 사랑과 평안과 의를 살 수 없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목숨을 다해 힘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이웃을 자신과 같이 사랑할 수 있음을 확실히 알자.

하나님 사랑은 이웃 사랑으로 완성되고 증거됨을 명심하자.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은 둘째 계명과 연결되고

둘째 계명은 크고 첫째 되는 계명 없이 이룰 수 없음을 알고 실천하자.

 

두 강령에 충실할 때 하나님의 축복이 임하게 되고 영광에 이르게 됨을 확실히 믿자.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
글쓴이 : 강대식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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