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장 그리스도의 영광을 이 세상에서 믿음으로 보는 것과
하늘에서 직접 보는 것의 차이Ⅱ
믿음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볼 때 켜는 등불이다. 믿음은 그 성질상 믿음이 바라는 위대한 목적에 비하여 상대적으로 연약하고 불완전하다. 또한 믿음은 자주 방해를 받고 작용하지 못하도록 훼방받을 때가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그 믿음의 대상을 바라보는 시각을 상실하기도 한다.
사람은 누구나 멀리 있는 어떤 사물을 볼 때 그것을 불완전하게 볼 수밖에 없다. 우리의 믿음도 마찬가지이다. 때로는 우리의 믿음으로도 그리스도의 영광을 아주 조금밖에 보지 못하기도 하고, 어떤 때는 전혀 보지 못하기도 한다. 바로 그것이 그 영광을 믿음으로 보는 것과 직접 보는 것의 차이이다.
1. 우리에게서 얼굴을 숨기시는 그리스도
그런데 우리가 이 세상에 사는 동안에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얼굴을 숨기시는 때가 있다. 때로는 자신을 온전히 거두시는 것 같을 때도 있다. 그럴 때 우리의 마음은 어둠과 구름 속으로 떨어져 내린다. 그리고 믿음은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태에 처하게 되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도 없어진다. 우리가 그를 찾으나 그를 만날 수 없다. 그래서 욥이 다음과 같은 불만을 토로하였던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앞으로 가도 그가 아니 계시고 뒤로 가도 보이지 아니하며 그가 왼쪽에서 일하시나 내가 만날 수 없고 그가 오른쪽으로 돌이키시나 뵈올 수 없구나”(욥23:8-9).
그러한 때에 교회는 불만을 나타내면서 “구원자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여, 진실로 주는 스스로 숨어 계시는 하나님이시니이다”(사45:15)라고 말했다. 또 시편 기자는 “여호와여 언제까지니이까 스스로 영원히 숨기시리이까”(시89:46)라고 탄식하였다. 아가서에서 신부는 자주 당황하고 자기가 사랑하는 자가 물러갔다고 탄식하며 찾아도 만날 수 없다고 애타한다(아3:1,2, 5:6). 이렇게 그리스도께서 얼굴을 가리시는 동안에는 그들의 영혼들에 특별한 은혜를 주시거나 자신의 영광을 보게 함으로써 힘을 북돋아 주는 일을 거두시고는 자기 자신을 숨기신다.
1) 왜 그리스도께서 자신의 영광을 가리시는가
그리스도께서 행하시는 일은 주권적인 일이요, 그 무엇으로도 설명할 수 없는 지혜의 행동이다. 그런데도 그분이 자기 자신을 숨기시는 거룩한 목적과 그에 상응하는 이유들이 많다. 여기서는 그 이유들 가운데 한 가지를 언급할 것이다. 주님께서 자신의 영광을 가리시는 것은, 탁월한 방식으로 우리를 자극하셔서 주님을 부지런히 찾고 연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하늘에 속한 것을 묵상하는 일에 너무나도 무서운 나태함과 게으름이 우리를 장악하기가 얼마나 쉬운가! 우리가 이런저런 일로 바쁘고 다른 일로 마음이 분주하다면, 그분은 자신을 물리신다. 바로 그 사실을 아시기 때문에 주님께서는 자신의 얼굴을 잠시 가리심으로써 그들을 깨우쳐 부지런히 주님을 찾게 만드신다. “그들이 그 죄를 뉘우치고 내 얼굴을 구하기까지 내가 내 곳으로 돌아가리라 그들이 고난받을 때에 나를 간절히 구하리라”(호5:15). 그리스도를 찾기 위해 이렇게 노력하는 동안 신음과 탄식 속에서 그 믿음과 사랑이 작용하겠지만, 그것은 그리스도께서 받아들이시고 기뻐하실 만한 믿음과 사랑의 행사이다.
2)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숨기셔서 우리가 그 영광을 볼 수도 없고 보지도 못하는 때는 언제인가
이런 사실을 처음으로 깨닫게 되는 것은, 주님께서 자신의 얼굴을 그들에게서 숨기심으로써 발생한 결과들을 보게 되는 때이다. 그런데 먼저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시고 자신을 우리에게 나타내심으로써 맺히는 열매들을 알아야지 그리스도께서 그 얼굴을 가리심으로써 발생하는 결과들을 알 수 있다.
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고 우리에게 자기 자신을 나타내심으로써 나타나는 효력 중에서 가장 우선적인 것은, 우리 가운데 있는 모든 은혜가 생기를 발하고 효과적으로 역사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볼 때에는 반드시 그런 효과와 결과가 나타난다. 그런데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모든 은혜를 자극하고 역사하게 만드시는 분은 우리 자신이 아니라 우리 안에 살아 계신 그리스도이시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그와 같은 형상으로 변화하여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다시 말하면, 우리가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영광을 믿음으로 묵상하는 동안 우리 속에서 모든 은혜가 왕성하게 역사하여 그리스도를 온전히 본받도록 우리를 부추길 것이라는 말이다. 우리가 이런 관점을 가지고 묵상해 나가는 동안 우리의 영혼은 거룩한 품격을 유지하며, 사랑과 즐거움을 끊임없이 지니고, 그리스도를 향한 다른 모든 신령한 열정을 가지게 된다.
복음서에 기록된 대로 믿음의 눈에 그리스도가 비췰 때, 우리는 힘써 그리스도를 닮고자 애쓰게 되고 그리스도를 사랑할 수밖에 없다. 우리가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을 부단히 바라보지 않고서는 어떤 방법으로든지 그런 것들을 우리 영혼의 최대 관심사로 삼을 수가 없다. 그리스도와 그리스도의 영광을 믿음으로 보는 것이 우리 안에서 그런 관심을 충만하게, 효과적으로 힘 있게 불러 일으키는 것이다.
그리스도에 대한 교리적 지식은 변화하는 능력에 의해서 활용될 때에 비로소 모든 은혜를 증가시키고 활력을 가져온다. 그 일을 통해서만 그리스도를 닮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은혜와 거룩함과 순종함 안에서 성장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닮아 자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바라본다는 것은 우리가 받은 모든 은혜를 자극하고 우리의 열정을 더욱 영적으로 승화시키며 우리의 마음을 그리스도께 합하도록 변화시키는 데 가장 복된 방편임에는 틀림없다.
믿음으로 그리스도께 오는 데는 두 가지 국면이 있다.
첫 번째 국면은 생명을 얻는 것이다. 즉, 그리스도로부터 우리에게 전달되어 오는 영적 생명의 샘과 원리를 받는 것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우리의 생명’이시기 때문이다. 그분이 살아 계시기에 우리도 산다. 우리가 사는 것이라기보다는 우리 안에 계시는 그리스도가 사시는 것이다.
또한 두 번째 국면이 있다. ‘이 생명을 풍성히’ 얻기 위하여 신자들이 믿음을 실제적으로 발휘함으로써 그리스도께 나오는 것이다. 즉, 자신의 영혼을 활력 있고 건강한 영적 능력 안에 있게 하는 은혜를 얻으려고 하는 것이다.
②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가까이 계실 때에 우리가 그 영광을 볼 것이며, 그분이 평안과 위안과 기쁨 안에서 우리의 영혼에 영적 신선함을 자주 전달해 주실 것이다.
우리가 복음적인 평안과 위안, 기쁨과 확신에 참여하게 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일과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가까이 오사 우리와 함께 거하시는 일을 통해서만 특별히 가능한 것이다. 이런 복음적인 평안과 위안, 기쁨과 확신은, 그의 은혜의 왕 같은 사슬의 한 부분으로서 그와 함께 주님께서 상급으로 주시는 것이다. “그의 상급이 그와 함께 있도다.”
③ 복음을 통해서 우리에게 알려진 그리스도의 영광을 발견하는 일에 믿음이 역사할 때, 그리스도의 사랑의 표증을 전혀 갖지 않거나 그 마음속에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혀 느끼지 못할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리스도의 사랑은 신자들의 영적 새 힘을 솟구쳐 내는 생명샘이 될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우리 영혼 속에서 그런 것들을 상실하되 그에 대한 의심조차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서 멀리 물러가 계신다는 증거이며,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지 못한다는 증거이다.
2. 믿음의 역사를 방해하는 내적 요인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는 시야가 없어지는 것은 본질적으로 우리 자신에게서 말미암는다. 우리 자신 안에 남아 있는 정욕과 부패의 요소 때문이다. 그것들이 나태함과 게으름을 통해서 기승을 부리거나 사탄의 시험으로 말미암아 기세등등 해지는 것이다.
1) 정욕과 부패한 정서가 믿음의 행사를 방해한다
① 회개하지 않고 고집을 부리는 불신자들의 마음속에는 그들 마음에 역사한 사탄의 세력이 남겨 놓은 효과가 있다. 즉, 그들을 눈멀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속한 것을 전혀 보지 못하게 만드는 효과이다(고후4:3-4).
②모든 사람들이 부패하고 본성적인 어둠을 가지고 있다.
본성적으로 그들의 마음이 그처럼 부패해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르게 분별할 수가 없다. 성경은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하더라”(요1:5)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은혜의 특별한 도움 없이 그리스도를 영접하거나 그 영광을 스스로 발견해 낼 수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마11:25, 요6:44 참고).
③ 이런 두 가지 악을 믿음으로 치료한 사람들이 있다.
믿음은 그들의 총명의 눈을 밝혀 신령한 빛을 분간하고 알아보게 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는 이 치료가 부분적으로만 일어난다(고전13:12). 우리의 마음에 구원하는 빛의 원리를 공급함으로써 이루어지는 이 치료는 그 정도가 다양하게 나타난다. 어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욱 분명한 빛을 가져서 하나님의 지혜의 비밀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비밀을 분간하는 데 더 분명한 관점을 가지게 된다.
그러나 우리가 어느 정도까지 이르렀다고 할지라도, 이 빛을 가리거나 마땅한 방식으로 그 빛이 비취지 못하게 방해하는 것이 반드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믿음의 관점을 흐려 놓는다. 우리 속에 있는 부패한 본성의 잔재가 어떤 방식으로든지 힘을 얻으면 그런 방해가 있게 된다. 또 부패한 본성의 잔재는 마음을 어둡게 하고 영적 작용을 약화시킨다. 세상을 사랑하거나 세상에 대해 염려하는 등 부패하고 합당하지 못한 정서나 육신적인 감각에 치우치는 경향이나 그런 영적 무질서가 득세하면, 믿음의 신령한 작용이 약화된다. 특히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고 분간하는 믿음의 역사가 약화된다. 왜냐하면 마음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바라보기 위해서 끊임없이 탐구해 나가지 못하기 때문이며, 계속 쓸데없고도 허망한 생각들과 상상들로 주의를 빼앗기고 방해를 받기 때문이다.
2) 세상에 대한 생각이 믿음의 행사를 방해한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믿음의 관점은 그리스도에 대한 생각과 묵상으로 마음을 채워 기쁨으로 그리스도를 향한 정서가 강하게 나타나게 할 것이다.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반드시 그리스도에 관해 많이 생각하게 되고, 반드시 그리스도에 대한 많은 애착을 가지게 될 것이다(빌3:8-10 참고). 만일 누군가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다면 그는 절대 그리스도를 보았거나 그를 아는 사람이 아니다. 사랑하는 이에 대한 애착이 우리 안에서 강하게 일어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마음에 죄악된 불안과 무법한 정서가 득세하면, 자신에 대한 사랑과 세상에 대한 사랑, 그리고 세상에 대한 염려와 두려움, 세상적인 관계와 세상적인 향유의 가치를 지나치게 과대평가하는 것 등이 이미 그 마음속에서 득세하고 있으면, 그들의 마음은 그런 대상들에 대한 생각들로 가득 차고 복잡해져서 그리스도와 그의 영광에 대해 깊이 묵상할 만한 여지를 조금도 가지지 못하게 된다. 마음이 세상적인 생각에 사로잡혀 있으면,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우리의 관점 속에 있는 불완전함이 크게 증진된다. 그리고 그에 비례하여 믿음도 그 일과 도리를 행하는 데 방해를 받고 약해진다.
3) 사탄의 시험이 믿음의 역사를 방해한다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서는 어디서든지 사탄이 사람의 눈을 어둡게 하여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복음의 빛이 그들에게 비취지 못하게 하거나 그들의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게 한다(고후4:4). 물론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택한 백성들에게 그렇게 하지 못하도록 사탄을 제어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백성들의 마음속에 빛을 비추사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을 주신다(고후4:6). 그런데도 사탄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모든 방법을 다 동원해서 믿는 사람들의 마음을 괴롭히고 어둡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에 대해 분명하고도 뚜렷한 관점을 가지지 못하도록 한다.
3.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보는 것
1) 우리 영혼의 기능들이 온전하게 될 것이다
‘온전하게 된 의인의 영들’(히12:23), 온전하게 된 의인들의 영혼의 상태를 알아보자.
첫째, 그 영혼들은 영혼의 작용을 방해하고 제어하는 모든 육체의 장애물들로부터 벗어난다. 둘째, 그 영혼들은 모든 불확실함과 변화의 원리들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정결함을 얻게 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완전히 변화된다.
부활한 이후의 우리 몸의 상태에 대해 생각해 보자. 부활한 이후 우리의 몸은 모든 세력과 감각 기관이 우리 마음의 작용에 완전히 복종하되, 영광의 빛으로 말미암아 최고로 승화된 우리 마음의 가장 영적인 작용에 완전히 복종하게 될 것이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기쁨과 만족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항상 묵상하면서 영원토록 거하기에 합당할 것이다. 하나님을 봄으로 말미암아 언제나 완전한 상태에 거할 것이다. 그리고 정서도 항상 그리스도를 향하여 변함없이 기울어 있을 것이다. 참으로 복된 일이다.
2)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눈으로 보게 될 것이다
하늘에서는 우리의 마음이 본질적인 능력과 기능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을 능히 포용하고 받아들일 수 있듯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방편인 눈도 믿음보다 더욱 탁월해져서 절대적으로 완전한 상태에 이르게 될 것이다. 이 세상에서는 믿음으로 행하지만, 거기서는 직접 봄으로써 행한다. 이렇게 직접 보는 것은 시력의 연약함을 도와 보게 하는 거울과 같은 외적인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 보는 것은 우리 마음의 내면적인 능력의 행사이다.
3) 하늘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단 한순간도 자신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돌리지 않으실 것이고, 우리에게 자신을 나타내시는 것을 잠시라도 멈추지 않으실 것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이 세상에서 때때로 자신의 얼굴을 우리에게서 돌리시기도 한다. 또 그렇게 하시는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러나 천국에서 우리는 “우리가 항상 주와 함께 있으리라”(살전4:17)라는 말씀처럼 어떤 방해도 받지 않고 영원히 항상 주와 함께 있을 것이다.
4) 그리스도의 영광을 직접 보는 시각은 믿음으로 보는 것과는 달리 어떤 내면적인 결함이나 외부로부터 오는 시험으로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
하늘에서는 의심이나 두려움이나 마음을 산란하게 하는 시험의 화살이나 암시 같은 것이 있을 수 없다. 그곳에서는 기쁨과 만족을 누리면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영원토록 묵상하는 습관이나 자질이나 성향이나 마음가짐 외에는 그 어떤 것도 영혼 속에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또 그처럼 만족과 기쁨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영광을 부단히 묵상하도록 하는 영혼의 은혜로운 세력들에게 어떤 결함도 존해하지 않을 것이다. 뿐만 아니라 모든 대적하는 원수들에 대하여 항상 끊임없이 승리할 것이다.
그러므로 하늘에서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는 시각은 항상 맑고, 언제나 동일하게 새롭고 분명할 것이다. 그 어떤 것도 복된 생활을 가장 완전하게 영위하는 데 마음을 산란하게 할 수 없을 것이다. 내적인 연약함이나 외적인 방해를 전혀 받지 않는 영혼의 모든 기능들이 가장 완전한 대상을 향하여 가장 완전하게 작용할 것이다. 거기에 그런 모든 복락이 있을 것이며, 우리의 성품은 그 모든 복락을 다 포용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하기에 지금 우리는 그리스도의 영광을 나타내는 계시에 의존하여 믿음을 행사함으로써 그리스도의 영광을 새롭게 보고 위안을 얻는다. 우리는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 그런 관점을 가질 때마다 이보다 더 완전하고 영구하며 변함 없는 온전한 상태에 이르기를 갈망하고 소원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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