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최고로, 최선으로 사랑할 수 있다/에드워즈/스위니
하나님에 대한 사랑과 우리 자신에 대한 사랑을 분리시키는 것은 잘못이다.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최고로 그리고 최선으로 사랑할 수 있다.
하나님을 배제하고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모든 지혜와 진리의 원천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배제한 자기 사랑은 도리어 자신을 파멸시킨다.
이와 반대로, 하나님을 사랑함으로써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덕스러운 삶이 주는 희열을 경험하게 한다.
우리는 이기적으로 사는 대신에 하나님을 위해 살아감으로써
하나님의 한없는 선하심을 경험할 수 있다.
결국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이,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기가 정한 길로 가는 것보다 훨씬 더 자기 자신을 위하는 삶이다.
에드워즈는 행복과 순종을 분리시키는 것도 거부했다.
하나님을 섬기는 덕의 실천이 사실상 자신을 가장 사랑하는 길이라고 주장했다.
하나님과 피조물을 ‘사랑하는’ 삶을 사는 사람이 ‘참된 미덕’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이다.
참된 미덕은 존재 보편에 대한 마음의 동의, 성향, 연합이다.
미덕과 행복은 함께 가는 것이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자기 영혼을 아름답게 유지하기 위한 바람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덕스럽게 행동할 때, 참된 행복을 얻게 된다.
행복은 자신의 이기적인 욕구를 만족시키는 데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축복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갈망과 실천에서 비롯되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에드워즈는 미덕과 자기 보존은 충돌하지 않는 것이라는 사실을 밝혀주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선하고 덕스러운 존재가 되도록 의도하셨다.
사람이 하나님의 의도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삶을 살 때,
그리고 이에 맞춰 이웃 사람들을 사랑하는 삶을 살 때,
이 사람은 자신의 영혼을 보존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덕 없는 삶을 살고 이기심을 따라 행하는 사람보다
자신을 더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기독교는 행복을 희생시키지 않는다.
성령이 주시는 능력으로 말미암은 덕스러운 삶은 행복을 희생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선한 삶을 살 때
비로소, 참되고 영구적인 행복을 맛보게 되고,
하나님을 송축하고 다른 사람에게 복의 통로가 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의 영혼을 보존하게 된다.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찾으리라”(마16:25)
스위니, ‘조나단 에드워즈의 좋은 삶’, pp 4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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