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8/9 주일설교, '복 있는 사람', 시 1:1-3

강대식 2020. 8. 10. 15:48

2020-08-09 주일설교

본문: 1:1-3

제목: 복 있는 사람

 

복은 일반적인 의미에서는 행복과 동의어이다.

구약에서 복은 하나님의 은총으로 주어지는 축복, 즉 번영과 행복을 의미하고,

신약에서 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피를 힘입어 구원 받는 것을 의미한다.

 

복은 이 땅에서 받는 물질적인 축복과 형통도 포함한다.

그러나 더 귀한 것은 영적인 축복이요, 내세까지 이어지는 영원한 은총과 축복이다.

세상의 복 개념과는 구별되어야 하고, 성경이 말씀하는 복 개념에 유의해야 한다.

 

구약에서도 하나님께 대한 불순종의 저주를 말하여, 복의 성격을 내면화하고 있다.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의 복, 지혜를 가진 자의 복이 말해지고 있다.

허물의 사함을 얻고 그 죄의 가리움을 받은 자는 복이 있도다하고 있다(32:1,2,84:5).

 

신약에 있어서 바울은, 허물의 사함을 얻고, 죄의 가리움을 입는 길이,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에 있음을 보여주고, 믿음으로써 의롭다 함을 얻는 자가 복이 있다.(4:6-8).

따라서 믿음으로써 참여하는 자는 복이고, 반대로, 그리스도를 거부하는 것은 화이다(1:12).

 

그리스도를 위해 박해를 받고, 신앙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1:22,5:11,벧전3:14,14:13).

예수님의 팔복은 그리스도인의 특징에 복이 있다고 하신다.

이 땅에서의 축복과 형통에 치우치는 형통복음, 믿음복음을 조심해야 한다.

 

복과 저주는 우리 앞에 놓여져 있으니 선택하라고 모세를 통하여 말씀한다.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이 될 것이요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도에서 돌이켜 떠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지 아니하고 본래 알지 못하던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11:26-28)

 

보라 내가 오늘 생명과 복과 사망과 화를 네 앞에 두었나니

곧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 모든 길로 행하며 그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라 하는 것이라 그리하면 네가 생존하며 번성할 것이요 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가 가서 차지할 땅에서 네게 을 주실 것임이니라

그러나 네가 만일 마음을 돌이켜 듣지 아니하고 유혹을 받아 다른 신들에게 절하고

그를 섬기면 내가 오늘 너희에게 선언하노니 너희가 반드시 할 것이라”(30:16-18)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30:19-20)

 

여호와와 말씀을 택한 자는 복이요 다른 것을 택한 자는 저주이다.

모세가 죽기 전에 이렇게 강조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은 저주를 택하고 멸망의 길로 갔다.

그들이 제사를 안 드린 것도 아니요 율법을 멀리한 것도 아니다.

다만 그 중심에 하나님과 말씀이 아닌 다른 것이 있었고 그것이 저주와 멸망을 가져왔다.

구약 이스라엘은 현재 교인인 것을 항상 명심해야 한다.

이스라엘의 선택은 곧 우리의 선택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1. 복 있는 사람이 아니하는 것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1)

 

악인은 꼭 악한 짓을 한 사람이 아니라 구원받지 못한 모든 사람을 가리킨다.

구원 받은 의인을 제외한 모든 사람이 이에 해당한다.

불순종의 아들들이요 본질상 진노의 자식들이다.

공중 권세 잡은 악한 영들이 마음껏 역사하는 사람들이다.

 

꾀는 해결을 위한 교묘한 방법 또는 벗어나기 위한 얕은 방법이나 핑계이다.

여기서 꾀는 악인들, 곧 구원받지 못한 자들의 사고방식 가치관 등 내면의 모든 것을 말한다.

악인들은 죄인들이 되고 나아가 오만한 자들이 되는 것이 순서이다.

 

악인들의 꾀를 따르면 죄인들의 길에 서게 되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게 된다.

악인들의 꾀는 옛 사람의 패러다임이다.

기질에 의해, 부모의 양육패턴에 의해 가정문화와 교육, 만남과 경험들에 의해 형성된다.

 

세상의 것만을 구하는 사고방식이요 떡으로만 사는 사고방식이요 가치관이다.

하나님은 이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고치기 위해서 주리게도 하시고 낮추기도 하신다.

그렇게 하여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서이다.

 

참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우리의 세상적 시스템은 말씀의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한다.

World SystemWord System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광야에서도, 가나안 땅에서도 이것을 못 바꾸고

애굽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을 버리지 못하여, 광야에서, 가나안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현대 교인들도, 나라의 본 자손들도, 바뀌지 않으면 천국을 살 수도, 들어갈 수도 없다.

회심은 이 대전환을 말하는 것이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이 대전환을 이룰 수 없다.

 

하나님이 낮추실 때, 주리게 하실 때, 우리는 눈치를 채야 한다. 깨달아야 한다.

거듭나고 회심해도 시작이지, 오래 걸리기 때문에, 오랜 광야생활을 하게 하신다.

몸에 벤 어린시절은 그렇게 쉽게 씻어지거나 벗겨지지 않는다.

 

악인들의 꾀를 처리하지 못하면 반드시 죄인들의 길에 서 있게 되고

죄인들의 길에 서 있는 사람들은 반드시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게 된다.

바늘 도둑이 소 도둑이 되는 이치이고,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는 이치와 같다.

 

2. 복 있는 사람이 하는 것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고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1:2)

 

악인의 꾀를 처리하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요, 유일한 길을 말씀하고 있다.

생각은 행동을 낳고 행동은 습관을 형성해서 설 길과 나아가서 앉을 자리를 결정하고 만다.

악인의 꾀를 줄곧 주야로 생각하면 죄인들의 길에 서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있는 나를 보게 될 것이다.

 

주야로 무엇을 생각하고 묵상하느냐?

이것이 내가 나아갈 길과 결국 내가 평생 앉을 자리를 결정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복 있는 사람은 율법을 주야로 묵상한다.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면 율법대로 말씀대로 행동하고 의인들의 길에 서게 될 것이고,

영광의 자리에 앉게 될 것이다. 그것은 성경이 보장하는 축복의 길이다.

성경을 왜 주야로 묵상하지 못하는가?

 

이유는 하나이다.

율법을, 곧 성경을 즐거워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내가 즐거워하고 좋아하는 사람, 물건, 일은 항상 가까이 하게 마련이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해 사랑하기 마련이다.

 

세상의 떡만을 그렇게 사랑하는 사람은 결코 성경을 그렇게 사랑할 수 없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사랑할 수 없다는 주의 말씀이 그것이다.

하나가 중심을 차지하면 다른 것은 멀리 밀려날 수 밖에 없다.

 

하나를 사랑하면 다른 것은 미워할 수 밖에 없다.

세상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와 그 의를 구할 수 없다.

땅에다 보물을 쌓는 사람은 하늘에 보물을 쌓을 수 없다.

 

어떻게 하면 성경을 즐거워할 수 있을까?

맛있는 음식은, 멀어도 찾아가고, 줄을 서서 기다려서도 먹는다.

왜 그런가? 그 맛을 보았고, 맛이 좋았기 때문이다.

 

성경도 좋은 맛을 경험해야 한다.

다윗은 꿀보다 말씀이 더 달다고 했다.

주의 말씀의 맛이 내게 어찌 그리 단지요 내 입에 꿀보다 더 다니이다”(119:103)

여호와를 경외하는 도는 정결하여 영원까지 이르고 여호와의 법도 진실하여 다 의로우니 금 곧 많은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며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도다”(19:9-10)

 

여호와의 도, 곧 말씀이요 성경이다. 여호와의 법, 곧 말씀이요 성경이다.

말씀이 정결하고 진실하고 다 의로우니 꿀과 송이꿀보다 더 달다는 것이다.

순금보다 더 사모할 것이라 한다.

 

말씀이 정결하고 진실하고 다 의로운 것을 경험해야 그 단맛을 알 수 있다.

통독하고 암송하고 큐티하는 정도로는 바리새인의 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베뢰아 사람들처럼 말씀을 간절히 사모하고 매일 상고, 자세히 연구해야 한다.

 

성경의 맛을 알고, 아는 맛대로 살고, 그 맛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설교하고, 가르친

사람들의 책을 읽어야 한다.

사람의 지혜가 아닌 성령의 지혜로 쓴 그들의 책을 통해서

내가 얼마나 성경을 피상적으로만 알고 그 깊이와 맛에는 동떨어져 있는지를 통감해야 한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은 중세 1200년 동안의 어둠과 혼란과 부패를 깨뜨리고

초대교회와 성도들, 선지자와 사도들이 살았고 성령이 가르친 전통을 회복하였다.

그 뒤 5백년이 흐르는 동안 교회와 교인들은

중세 암흑으로, 왕정시대 암흑으로, 사사시대 암흑으로, 광야시대 암흑으로 돌아갔다.

 

나라의 본 자손,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멸망할 때까지 까맣게 그 어둠을 몰랐던 것처럼,

우리 시대의 소위, 나라의 본 자손, 택한 백성도 멸망할 때까지 까맣게 모를 것이다.

성경은 읽어도 설교를 하고 가르쳐도, 죽이는 문자로만 알고, 살리는 영으로는 알지 못한다.

 

20세기, 21세기를 걸쳐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가르침을

성령의 지혜로 가장 잘 가르치는 분이 영국의 로이드 존스 목사이다.

그의 로마서 강해, 에베소서 강해, 교리강좌 등을 통해 성경의 단 맛과 깊이를 느껴야 한다.

 

그의 설교를 통해 사람의 지혜의 가르침과 성령의 지혜의 가르침의 차이를 분별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를 좋아하는 사람은 많아도 지혜의 차이를 느낄 줄은 모른다.

그 차이를 느낄 때 성경의 맛을 알게 되고 깊이를 알게 되고

성경에서 진리의 보화를 발견하고 성령의 임재를 경험하게 된다.

 

껍데기만 붙들고 있는 개혁주의자들, 청교도주의자들의 함정에 빠지지 말아야 한다.

뭐든지 주의자들은 이데올로기만을 붙들고 이용하고 실체와 내용은 무관심한 자들이다.

말씀은, 영으로 생명으로 살지 않으면, 성령의 지혜로 새롭게 가르침을 받지 않으면,

바리새인과 서기관의 외식에서 한치도 벗어날 수가 없다.

 

사람의 지혜로 잘못 인도하고 엉뚱한 해석을 갖다 붙이는 자들이 많아서 조심해야 한다.

로이드 존스를 통해 입문하고 인도함 받으면 조나단 에드워즈를 읽게 되고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을 안전하고 확실하게 만날 수 있게 된다.

그는 칼빈, 루터보다 에드워즈를 정상(에베레스트)에 두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성경의 단맛을 알게 되고

그러면 성경을 즐거워하며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게 될 것이다.

그것이 복 있는 사람이 되는 유일한 길이다.

 

3. 복 있는 사람이 받는 형통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철을 따라 열매를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리로다”(1:3)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는 비결을 말씀하고 있다.

만사 형통을 그렇게 원하면서도 대부분의 사람들은 만사 불통의 길을 가고 있다.

천국을 원하면서도 지옥으로만 달려가는 것과 같다.

 

악인의 꾀를 따라 살면 죄인들이 되고 오만한 자들이 되어 멸망에 이른다.

복 있는 사람은 성경을 즐거워하고 그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다.

그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다. 철을 따라 열매를 맺고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않는다.

그가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게 된다.

 

지금 성경을 즐거워하지 못하고 성경을 주야로 묵상하고 있지 못하다면

지금 악인의 꾀를 따라 살고 있고, 죄인들의 길에 서 있거나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아 있다.

무릇 의인들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들의 길은 망하게 된다.

 

악인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4절에 말씀한다. .

악인들은 심판을 견디지 못할 것이며 죄인들은 의인들의 모임에 들어갈 수 없다.

당장 저주와 화와 재앙이 내리지 않는다고 해서 안심하고 있다가는

이스라엘처럼 돌이킬 수 없는 낭패를 당하게 된다.

 

너희가 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 하신다.

이 땅에서 교회와 교인들이 무섭고 놀라운 일들을 하고 있다.

목사들은 거짓을 설교하고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교인들은 그것을 좋게 여기고 있다.

 

복 있는 사람이 하지 않는 일들만을 하고

복 있는 사람이 하는 일들은 하지 않고 있으니 무섭고 놀라운 일이다.

악인들의 꾀인 사람의 지혜와 초등학문에만 사로잡혀 있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성경을 전혀 모르고,

유명 신학교와 교단과 유명 교회는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을 가르치지 않고 있다.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서야 한다.

그들을 계승하고 회복한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의 성경 해석의 책들을 읽어야 한다.

성령의 지혜로 성경의 맛을 알고 성경을 즐거워하며 성경을 주야로 묵상해야 한다.

그것이 복 있는 사람이 가는 길이다. 하는 모든 일이 다 형통하는 복이 기다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