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0/11 주일설교, '다 해로 여김', 빌 3:7-9

강대식 2020. 10. 12. 17:34

2020-10-11 주일설교

본문: 3:7-9

제목: 다 해로 여김

 

1.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3:7)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해로 여긴다고 한다.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긴다.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전에는 내가 가진 모든 것은 내게 유익하였고,

그것이 나의 의가 되고 자랑이었다.

바울은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었다.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였다.

율법을 가장 잘 믿는 자가 바리새인이었다.

그 율법에 의하면 그리스도와 교회를 인정할 수 없었다.

교회를 박해하는 데 그는 열심이 타의 추종을 불허할 정도였다.

스데반을 돌로 쳐죽일 때도 옷을 맡는 증인이기도 했다.

 

형식적인 율법을 철저하게 지켰기 때문에 그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었다.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면서 그는 율법의 의에 있어서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었다.

바리새인들은 율법을 잘 지키는 것이 의이고 그 의로 구원 받고 복 받는다고 믿었다.

 

그것이 주님이 조심하고 삼가라고 하신 바리새인의 누룩이었다.

율법의 겉만 지키고, 조문화하여 얽어매고, 율법의 속은 버렸다.

율법의 더 중한 것()은 정의와 긍휼과 믿음이었고,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고 성령을 받아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받고서는

자기에게 그동안 유익하고 의로움이었던 그 모든 것이 해롭고 배설물인 것을 깨달았다.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리는 것, 이것이 진정한 회심이요 믿음이다.

 

예수를 믿고서도 사람이 변하지 않는 중심 이유가, 진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예수를 오래 믿었고, 목사 장로 권사가 되었는데도, 해로 여기고 버린 것이 별로 없다.

버린 것이 없고 잃은 것이 없으니 변할 것도 없는 것은 당연하다.

 

우리 주님은 보좌 우편을 버리셨고 십자가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버렸다. 모세는 40년 왕궁을 버렸다.

요셉은 아버지 집을 버렸다. 다윗은 집과 나라도 버렸다.

 

하나님을 나의 주님으로 만날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사랑할려면,

내게 유익하던 것을 다 해로 여기고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겨야 한다.

내 가진 것을 하나도 버리지 않은 채 하나의 악세사리로 아편으로 하나 덧붙이는 것이 아니다.

 

초대교회 교인들은 재산권과 인격권을 다 버렸다.

개혁자들도, 청교도들도 모든 소유와 목숨까지도 다 버렸다.

조나단 에드워즈는 23년 사역지와 사택과 수입원을 버렸고,

로이드 존스는 왕립협회 의사직을 젊은 나이에 버렸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성령으로 말씀으로 만나면 일생일대의 전환이 오게 마련이다.

그것이 성령으로 거듭나는 것이고 회심이다. 코페르니쿠스적 전환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는 것이다.

이전 것(옛 것, old things)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고후5:17)

 

유대인들이나 현대교인들이나, 마음 중심에는 자기의 유익과 사랑과 탐욕이 자리하고 있다.

마음을 비우지 않고서는 하나님도 주 예수 그리스도도 성령도 모실 수 없다.

내가 버려야 비우는 것이 아니라, 그분이 오시고 만났으면, 버리고 비우는 것이다.

정말 성령으로 거듭났으면 비우고 버리게 돼 있다.

 

청교도 아카데미에서 청교도 신앙을 10년 동안 가르쳤다.

진전이 없고 열매가 없는 것은

기존의 자기에게 유익한 지식과 소유와 가치관을 전혀 버리지 않기 때문이었다.

 

그 동안 자기를 지탱하고 자랑이었던 오래된 책들도 하나 못 버리고서,

알아주는 교단도 못 버리고, 공부 방식 사역 방식도, 묵은 친구도 하나 못 버리고서,

무슨 청교도며,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할 수 있는가?

 

바울과 같은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변화가 아니고 기독교의 참 모습은 그러한 것이다.

자기를 위해 땅에다 보물을 쌓던 사람은 이제 하늘에다 보물을 쌓는 변화,

육체를 위해 심던 사람이 성령을 위해 심는 변화,

자기 가족과 왕국과 그 의를 위해 살던 사람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는 변화,

그것이 성령으로 거듭남의 본질이고 특징인 것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이것이 구원의 길이다. 형통의 길이다.

찾는 이도 적은 좁은 문과 협착한 길을 찾아가는 것이 구원의 길이고 복의 길이다.

 

이러한 변화와 결단의 순간이 오는 날이 구원의 날이다.

참된 그리스도인이 될려면 바울을 본받아야 한다.

내게 유익한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다 해로 여기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기는 그 날이 오기를 축원한다.

 

2.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다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3:8-9)

 

그리스도를 얻을려면 그 전에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것들을 버려야지요.

문 밖에 세워두고 문 열 줄을 모르는 것이지요.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질 못하니까 못 버리지요.

 

주님은 새 포도주는 새 부대에 담아야 한다고 하셨다.

그 동안 내게 유익하던 것들이 바로 헌 포도주들이다.

그것을 나의 몸과 마음에 담고 있던 것이 헌 부대이다.

 

주님과 주님의 복음 진리는 새 포도주이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고 새 피조물로 변화해야 새 부대이다.

그 새 부대에 주님과 복음을 모셔야 그 안에서 발견될 수 있는 거지요.

 

성령으로 거듭나면서 우리는 주님과 연합이 이루어진다.

주님과 한 영이 되고 영원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 그리스도 안에서 택함을 받고

그리스도와 함께 우리 옛 사람은 십자가에 못 박혀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보좌 우편에 앉게 된다.

 

연합하신 주님이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고 성령을 주시고 능력을 주셔서

변화와 거룩과 성숙을 이루어가게 하신다.

우리의 옛 사람과 옛 본성을 가지고서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말씀으로 산다고 발버둥쳐 봐야 되지 않는 이유가 거기 있다.

말씀을, 성령의 지혜로 다시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해석한 성경은 바리새인의 누룩일 뿐이다.

 

주님은 승천하시면서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을, 성령의 지혜로, 사도와 선지자들의 전통을 따라 가르치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주님이 피로 세운 교회는 결코 아닌 것이다.

 

유대인들의 성전과 회당이 현대의 모습으로 옷을 갈아 입은 것일 뿐이다.

멸망으로 인도하는 넓은 길이요 큰 문이요 많은 사람이 몰려 있는 곳이 바로 그곳이다.

주여 주여 한다고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간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많다고 하셨다.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는 자가 많다고도 하셨다.

 

열심을 품고 주를 섬기며 침노하는 자가 천국을 빼앗는다고 하셨다.

바로 알고 바로 믿고 바로 가야 한다.

이 좁고 협착한 길을 가장 잘 가르쳐 주는 사람들이 청교도들이다.

 

그들은 성경을 사랑하고 성령을 힘입고 주 하나님과 주 예수 그리스도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고 섬긴 사람들이다.

2천년 기독교 역사에서 가장 성경적이고 가장 성숙한 사람의 모델이고 본보기이다.

 

오늘 우리 시대에 있어서 이 청교도 신앙을 가장 잘 안내하고 종합하고

가장 잘 가르쳐 주는 분이 로이드 존스 목사이다.

그분의 책들을 읽어야 한다. 로마서 강해부터 읽어가야 한다.

 

존스 목사는 청교도의 에베레스트는 조나단 에드워즈라고 한다.

그러나 내가 공부한 바로는 존스 목사가 우리 시대에는 청교도의 에베레스트이다.

존스 목사를 아버지 스승으로 모시고 청교도 신앙을 공부하면

조나단 에드워즈와 훌륭한 옛 청교도들을 바로 제대로 만날 수 있게 해 준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존스 목사를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일만 스승의 하나로 만나니까

참으로 배우고 얻어야 할 것들을 얻지 못하고 있다.

꼭 그분을 아버지 스승으로 모시고 배우시기 바란다.

 

3. 내가 가진 의는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다

 

내가 가진 의는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요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것이니 곧 믿음으로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라”(3:9)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의만 하나님은 인정하신다.

율법에서 난 것이 아니라는 것은 우리의 행위로 난 것이 아니라는 말이다.

우리에게 유익하고 자랑스러운 의와 선한 행위들을

거룩하시고 완전하신 하나님은 전혀 인정하지 않으신다.

 

그렇게 해서 의롭게 되고 구원 받을 수 있을 것 같으면

성자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실 필요도, 십자가에서 죽으실 필요도 전혀 없었다.

우리의 의는 다 더러운 옷 같으며’(63:18), 하나님 앞에 의로운 자가 하나도 없다.

 

오직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가 아니면 심판과 진노를 면할 수 없다.

그 의는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시고 대신 형벌을 받으심으로 주어진 의다.

믿음도 우리의 의지로 믿는 것이 아니고 성령의 선물로 받은 믿음이어야 한다.

 

그 믿음으로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난 의이어야 한다.

그 믿음이 구원얻는 믿음이고, 그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이다.

이 믿음으로 난 의를 받으면, 그 동안 내게 유익하던 것들이 오히려 해로운 것들이고

오히려 배설물인 것을 알게 된다.

 

모든 것을 해로 여기지 못하고 모든 것을 잃어버리지 못하고 배설물로 여기지 못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은혜로 받지 못했다는 것을 반증한다.

혹 받았더라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도무지 모르는 것이다.

 

내가 받은 은혜가 무엇인지 내가 받은 믿음이 무엇인지 내가 받은 의가 무엇인지

알려면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가르쳐 지키게 하라.”

주님의 말씀을, 영으로 가르치지도 않고, 배우지도 않는 곳은 주님의 몸인 교회가 아니다.

 

장사하는 집이요 강도의 소굴이요 멸망의 다수가 운집한 집일 뿐이다.

오순절 성령을 받고 처음 형성된 초대 교회가 제일 먼저 한 것이 가르침을 받는 것이었다.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2;42)

 

우리는 예수 믿는다고 하면서 제일 먼저 하는 것이 뭣인가?

가르침도, 귀신의 가르침을 받으면 안 된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르침을 받으면 성경도 하나님도 복음도 알 수가 없다.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에게 속지 말아야 한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으로 돌아가야 한다. 돌이켜야 한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종교개혁자들도, 청교도들도 바로 이 전통으로 돌아간 것임을 알아야 한다.

표면적 유대인들과 같이 현대교회들은 이 전통을 버린지 오래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할 뿐이다.

 

영적인 분별력을 키울려면 다른 길이 없다.

성경을, 성령의 지혜로, 다시 가르치고, 다시 배워야 한다.

이 가르침의 최고 아버지 스승이 로이드 존스 목사인 것을 거듭 강조한다.

 

주께서 헤브론청교도 아카데미를 세우시고, ‘말씀학교를 허락하시면,

낮이나 밤이나 곧 주야로 청교도 신앙을 가르치고 배우게 할 것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전통을 회복하고 교회를 개혁하며 참다운 부흥을 보여주게 될 것이다.

 

그 날을 꿈꾸며 기도한다. 건축자들이 버린 돌이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될 것이다.

이는 주께서 행하신 것이고 우리 눈에 기이할 것이다.

이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날이요 이 날에 우리는 즐거워하고 기뻐할 것이다.

주여 구하옵나니 이제 구원하소서, 주여 우리가 구하옵나니 이제 형통하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