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로이드 존스, 그를 만든 세 가지 핵심 요소/ 이안 머리

강대식 2020. 10. 19. 17:11

로이드 존스, 그를 만든 세 가지 핵심 요소/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박사가 어떤 사람이었는가를 알려 주는 세 가지 핵심 요소는 첫째, 자연적 은사, 둘째, 그의 인생을 좌지우지한 신적 섭리 그리고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에게 주어진 신령한 은혜였다고 필자는 믿는다.

 

자연적 은사에 대해서는, 거의 말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이 은사는 분명히 태어날 때 그에게 주어졌고, 회심하고 목회자로 부르심 받으면서 이 은사의 용도가 바뀌었다. 로이드 존스가 갖고 있는 은사 가운데 가장 큰 것은 지성이었다. 로이드 존스는 여러 개의 터빈을 움직이기에 충분한엄청난 양의 지식과 지성적 명확성과 지성적 에너지를 갖고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문제를 단편적으로 보지만 로이드 존스는 종종 전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그리고 외간상으로는 혼란스런 세부적인 사실들을 적절한 관점에 따라 하나로 묶어 일반 원리로 진술하는 능력을 갖고 있었다.

 

로이드 존스의 인생을 좌지우지한 신적 섭리에 대해서는, 첫째, 하나님이 로이드 존스에게 정상적인 통로와 공인된 교단의 절차를 통해서가 아니라 전연 다르게 기독교 사역을 준비시키신 방법은 한평생 중요성을 갖고 있었다. 자유주의 신학의 이론이 지배하던 대학 강의실로 가는 대신 로이드 존스는 세계에서 가장 우수한 한 의학 대학에 들어가 평생의 사역을 위해 혹독한 훈련을 받았다. 로이드 존스는 의학 훈련에서 받은 인상을 평생 잊지 못했다.

1973년에 영국의학협회 모임에서 한 말이다. “46년 동안 저는 의학적 사고를 버리려고 애를 썼지만 결코 버리지 못하고 있다. 그것이 신학적 문제든 아니면 다른 어떤 문제든 아직도 모든 문제에 이 의학적 방법으로 접근하고 있고, 그래서 항상 원인과 함께 사고를 시작한다.”

 

로이드 존스가 현대 교회를 비판하게 된 것은 이런 접근법을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 교회는 약화된 참된 원인을 다루지 않고 증상들을 처리하거나 제거하려고 시도했다. 현대 교회는 하나님에게서 소외당한 상태에 있는 인간의 핵심 문제를 해결하는 데 충분히 근본적인 유일한 메시지가 아니라 단순한 고육책에 지나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교육의 진보와 과학의 확실성으로 볼 때 전통적인 교리적 기독교를 계속 눈으로 보는 것은 불가능하게 되었다고 가정되었다. 그러나 여기에 현대의 문제는 단순히 지성적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선포하도록 준비된 한 인물, 곧 과학의 요새인 바돌로메 병원 출신으로 토머스 호더- 당대에 가장 탁월한 합리주의자 가운데 하나- 병원의 진찰실에서 온 한 사람이 있었다. 현대의 문제는 도덕적이고 영적인 문제였다! 다른 시대에 이스라엘에서 선지자 학교가 제대로 역할을 하지 못할 때 하나님은 쟁기를 잡고 있던아모스를 선택하셨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로이드 존스를 선택해 특별한 사역을 위해 특별한 틀에 넣어 빚으셨다.

 

두 번째 신적 섭리는, 54년 이상 동안 베단은 로이드 존스에게 주어진 선물 가운데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의 전체 인생에 미친 영향력은 첫 번째 섭리 만큼 중요했고, 더 강력했다. 로이드 존스는 뉴캐슬 엠린에서 젊은 10대 시절에 처음 보고 사모하게 된 한 여성과의 결혼을 오랫동안 갈망했는데, 그 소망이 결국 이루어질 때까지 하나님의 손에 눈길을 뗀 적이 없었다. 일단 마틴에게 맡겨지고, 이어서 마틴의 도움으로 구원의 확신을 갖게 된 베단은 더 고귀한 목적을 위해 의사라는 공인으로서의 자격을 기꺼이 포기했다. 1970년대에도 베단은 여전히 저의 직업은 남편을 강단에서 지키는 것입니다라고 말하곤 했다. 로이드 존스가 일생을 마칠 때까지 그토록 큰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이 그에게 주신 아내의 덕이 컸다. 로이드 존스는 때로는 분명히 외롭기도 했지만 베단이 항상 옆에 있었다. 베단의 실제적인 은사로 말미암아 로이드 존스의 마음의 짐이 어느 정도 줄어들었다. 손자인 크리스토퍼가 말하는 것처럼, 베단은 집으로 달려갔다.” 베단은 로이드 존스의 다른 일들을 분담하고, 또 함께 토론했다. 크리스토퍼는 이렇게 말한다. “할아버지는 할머니의 지혜와 상식을 크게 존중하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주어진 신령한 은사는, 그의 탁월한 자연적 은사보다 그를 더욱 만들었다.

뷰케넌이 찰머스에 대해 한 말은 존스에게도 그대로 진실이다. “천재로서의 그의 자연적 은사보다는 회심한 그리스도인으로서 그의 깊은 확신과 진심어린 경험에 훨씬 더 두어져 있다.”

토머스 찰스, “견실하고 영속적인 사역은 그의 은사가 무엇이든 간에, 쓰임 받는 도구의 경건과 영성이 있는 곳에서 기대될 수 있다.”

 

로이드 존스를 가장 잘 알고 있던 사람들은 한결같이 로이드 존스가 자기들에게 준 최초의 그리고 가장 깊은 인상은 기독교적 경험의 실재에 대한 생생한 증인으로서의 모습이었다고 말한다. 로이드 존스의 생애는 우리에게 하나님에 대한 의식을 조용히 그리고 자연스럽게 각인시키는 성격을 갖고 있었다. 에드먼드 켈러미는 동료 청교도를 그 삶과 대화가 자체로 계속되는 설교였던사람으로 묘사한다. 이것은 로이드 존스에게도 당연히 사실이었다. 로이드 존스 안에 말보다 더 깊은 곳에 들어 있는 것들에 대한 증거가 있었기 때문이고, 이 증거가 없었다면 그의 말은 아무 힘도 갖지 못했을 것이다.

 

로이드 존스는 하나님이 인격적으로 그리고 개인적으로 자기 백성을 다루신다는 사실과 시간과 영원 속에서 그들의 최고의 특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라는 사실을 믿었다. 그는 하나님과의 이런 교제를 갈망했고, 그의 삶의 우선순위에서 다른 모든 것은 이차로 밀려났다. 하나님 중심의 신학은 로이드 존스의 개인 생활에 덧붙이는 부록이 아니라 그의 개인 생활이 하나님 중심의 신학이 중심이 되었다. 만일 칼빈주의가 하나님이 사건들의 선봉에 있다는 사실을 즐겁게 확신하는 것을 의미한다면, 로이드 존스는 모든 면에서 칼빈주의자였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시샘,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믿음,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존중, 죄가 마땅히 갖고 있는 것에 대한 의식, 감사, 거룩한 일을 가볍게 여기고 경솔하게 대하는 모든 것에 대한 미움, 진지함, 오류의 주모자들을 반대하는 담대함- 이 모든 로이드 존스의 특징과 그 외의 특징들은 자신이 하나님의 임재 속에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데서 흘러나온 것들이다. 로이드 존스가 두드러지게 사람을 기쁘게 하지 않고 외로움과 반대를 물리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임재에 대한 깨달음 때문이었다.

 

하나님에 대한 참된 의식은 항상 사랑의 삶과 연결되어 있다. 로이드 존스가 두드러지게 중점을 두고 산 삶의 요소는 사랑이었다. 사랑이 로이즈 존스의 사역의 주도적 충동이었다. 그는 교회를 사랑했고, 교인들을 사랑했고, 모든 사람을 사랑했다. 로이드 존스의 설교를 직접 들어본 자들은 종종 그 설교의 따스함에 대해 언급하고, 로이드 존스가 설교를 불타고 있는 사람을 통해 제공되는 신학으로 보는 정의에 대해 설명했다. 이 불은 하나님이 주신 사랑 그리고 하늘에서 찾아야 하는 기름 부음이었다. 로이드 존스의 웅변은 내면에서 나왔고, 때때로 강단에 등장할 때 거룩한 불의 폭포가 떨어졌다. 그것은 18세기 복음주의 지도자들의 것과 똑같은 기풍에 속한 설교와 가르침이었다. 존 스토트와의 불화에 대해 그는 스토트에게 이렇게 말한다. “그들은 원리와 인격 사이를 구분하지 못하는군요.”

 

-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평전 3, pp 564-5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