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2/7 주일설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막 8:34-38

강대식 2021. 2. 7. 15:51

2021-02-07 주일설교

본문: 8:34-38

제목: 자기 십자가를 지고

 

1.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라야 한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8:34)

주님을 따른다는 것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셨다.

이 말씀은 주님이 당신의 십자가를 앞에 두고 하신 말씀이다.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 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할 것을 비로소 그들에게 가르치시되”(8:31)

이 말씀은 제자들의 신앙고백이 확실함을 알고서 비로소 가르치신 말씀이다.

주님께 대한 신앙고백이 확실치 못하면 주님의 십자가를 알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주는 그리스도시니이다베드로의 대답이다.

 

그런데 주님이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살아나실 것을 말씀하니까

베드로가 주님을 붙들고 항변하였다. 죽으시면 안 된다는 것이지요.

주님이 죽으시면 자기들도 끝이고 모든 헌신이 무위로 끝난다고 생각했겠지요.

 

주님은 베드로를 꾸짖었다.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33)

 

사람의 일로 생각하면 주님은 죽으시면 안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일로 생각하면 주님은 죽으셔야 하고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일로, 사람의 생각으로 보면, 이해할 수도 없으니까,

그러시면 안 된다고, 죽으시면 안 된다고 할밖에 없을 것이다.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리스도로 오셨는데,

유대교 권력자들에게 죽으시면 안 된다는 것이다.

주님이 당장 그리스도의 왕권으로 다스릴 것을 기대하고,

주님 좌우편에 누가 앉느냐, 누가 크냐로, 제자들은 다투고 있는 상황이었다.

 

이 상황에서 주님은 주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말씀해 주셨다.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당시 제자들 수준으로 당장 왕권의 축복을 곧 받는 것처럼 오해하고 있다.

영광과 축복은, 광야를 통과하며, 십자가 고난을 통과하여, 오는 것임을 모르고 있다.

 

예수 믿기만 하면 모든 것이 해결되고 만사형통해진다고 전도하는 자들이 많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만 건너면 가나안에 이르는 줄 알았고,

광야의 연단은 견디지 못하고 원망 불평으로 일관하다가

그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셔서 다 광야에서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2세들은 가나안엔 들어갔지만 거기서의 십자가 고난은 견디지 못하고 가나안에서 멸망하였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으면 주님을 따를 수 없다.

자기의 자아를, 옛 사람을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매일 져야 한다.

 

자기가 펄펄 살아 있는 사람은 자기 십자가를 질 수가 없다.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이 자기가 죽은 자기 십자가를 질 수가 있다.

그리스도인은 우리 옛 사람이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죽었음을 믿고

이제, 새 생명으로, 새 사람으로, 사는 사람이다. (내가 옛 사람을 죽일 수는 없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는 사람은 주님의 제자가 아니다.

자기가 모든 것의 주인인데, 주님이 주일 수 없고,

아마도 주님이 자기를 따라야 한다고 주장할 것이다.

내 생각대로 해 달라고 내 요구를 들어달라고 금식하고 철야하는 사람들은 그런 격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져야, 주님과 주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다.

말씀으로 살지 못하고 떡으로만 사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주님이 주시는 대로 사는 사람, 어떤 환경에도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풍부에도 처할 줄 알고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사람이다.

하루 아침에 열 아들을 잃고 재물을 다 잃었을 때 욥의 고백이 자기 십자가를 진 모습이다.

 

내가 모태에서 알몸으로 나왔사온즉 또한 알몸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거두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 모든 일에 범죄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원망하지 아니하니라”(1:21-22)

 

자기를 부인하지 못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한 욥의 아내는

욥의 몸까지 쳐서 욥이 재 가운데 앉아서 질그릇 조각으로 몸을 긁고 있을 때 말했다.

당신이 그래도 자기의 온전함을 굳게 지키느냐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

그대의 말이 한 어리석은 여자의 말 같도다.

우리가 하나님께 복을 받았은즉 화도 받지 아니하겠느냐

하고 이 모든 일에 욥이 입술로 범죄하지 아니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2:8-10)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내 결심과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다.

욥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바울도 큰 사망과 같은 고난을 체험하게 하신다

아시아에서 당한 환난을 ---힘에 겹도록 심한 고난을 당하고 살 소망까지 끊어지고

사형 선고를 받은 줄로 알았으니 이는 우리로 자기를 의지하지 말고 오직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하나님만 의지하게 하심이라 그가 이같이 큰 사망에서 우리를 건지셨고

또 건지실 것이며 이 후에도 건지시기를 그에게 바라노라”(고후1:8-10)

 

고난은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우고,

풍부함에도 궁핍함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는 과정이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훈련과 연단인 것이다.

 

이 훈련과 연단을 통과한 사람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른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사람들이다.

그 끝에 마침내 하나님을 복을 주신다.

 

원수의 목전에서 상을 차려주시고 기름을 머리에 부어주시고 잔이 넘치게 하신다.

잠시 받은 환난의 경한 것이 지극히 크고 영원한 영광의 중한 것을 누리게 하신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와 함께 고난을 받는 것이다.

 

다윗이 헤브론에 오른 것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고

마지막으로 시글락 위기까지 경험하면서 모든 것을 잃고 하나님만 의지하였을 때이었다.

다윗을 돌로 치자 하니 크게 다급하였으나

그의 하나님 여호와를 힘입고 용기를 얻었더라”(삼상29:6)

 

2.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신다

 

누구든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8:35)

사람들은 자기 목숨이 위기에 처하면 구원하기 위해 무슨 짓이든 할려고 한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믿음은 역설이 많다.

얻고자 하면 오히려 잃고, 대의를 위해 잃고자 하면 얻는다.

 

나와 복음을 위하는 것보다 더 큰 대의는 없다.

주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 증언하는 일보다 더 큰 대의는 없다.

이를 위해서라면 자기 생명조차 조금도 귀한 것으로 여기지 않는다고 했다.

이 대의를 위해 전제와 같이 다 부어지고 나의 세상 떠날 시각을 맞이한다고 했다.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해! 그것이 그리스도인의 사명이고 삶의 목적이다.

그것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그 은혜의 말씀으로 강건해져야 한다.

지금 내가 여러분을 주와 및 그 은혜의 말씀께 부탁하노니 그 말씀이 여러분을 능히

든든히 세우사 거룩하게 하심을 입은 모든 자 가운데 기업이 있게 하시리라”(20:32)

 

주님과 그 말씀이 우리를 든든히 세워주시고 영광스런 기업을 받게 한다.

떡만을 구한 사람은 그 떡이 자기를 든든히 세워주고 큰 기업을 이룰 줄로 착각한다.

자기 목숨을 구원할려고 하는 자는 모든 것을 잃게 될 뿐이다.

그것은 역사가 증명하고 우리 주변 사람들의 생애를 보면 알 수 있다.

 

사람의 일생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는 몸부림이요 달음질이다.

자기를 위하여 땅에다 보물을 쌓지만,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둑질해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지프의 신화처럼 계속 바위를 굴려 산 위에까지 올리지만 굴러 떨어지고

또 굴리고 올리지만 또 굴러 떨어지고를 반복할 뿐이다.

 

그것이 자기 목숨을 잃는 죄인 줄을 알고, 회개하고, 그리스도와 복음을 믿는 것,

그것이 구원이고 자기 목숨을 얻는 것이다.

 

사람이 만일 온 천하를 얻고도 자기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겠는가?

자기 목숨을 잃으면은 살아 생전에 망하고 죽는 것도 있지만,

자기 영혼을 잃으면, 자기 영혼이 지옥의 멸망에 떨어지면,

자기에게 유익하게 남는 것이 뭐가 있겠느냐 하는 말씀이기도 하다.

 

사람이 무엇을 주고 자기 목숨과 바꾸겠느냐

무엇을 주고도 자기 목숨, 자기 영혼은 바꿀 수 없다. 구원할 수 없다.

아무리 많은 부와 재물, 권력과 명예를 가지고도 자기 목숨 죽는 것 구할 수 없고,

자기 영혼 잃고 멸망 지옥에 떨어지는 것, 구원할 수 없다.

 

나와 복음을 위해! 그리스도와 말씀을 위해!

이것이 내 인생의 궁극적인 목적이요, 푯대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란다.

 

지금 내가 내 사명을 따라, 직업 생활을 하든, 주의 일을 하든,

이 목적을 위해, 이 푯대를 향해, 달려갈 때,

하나님은 축복하시고 영광의 상을 주시는 날을 맞이하게 하신다.

 

내가 세상에서 세상의 것들을 얻고자 하면 잃게 된다.

그러나 내가 세상에 살면서도 세상에 속하지 않고, 하늘의 것을 먼저 우선순위로 구할 때,

하나님은 모든 것을 더하여 주시고 부족함이 없게 하신다.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그리스도와 복음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축복과 영광을 열매로 거두게 될 것이다.

 

3.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그를 부끄러워할 것이다

 

누구든지 이 음란하고 죄 많은 세대에서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면

인자도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리라”(8:38)

예수님 당시나 지금이나 세상은 음란하고 죄가 관영하는 죄 많은 세대이다.

그들은 주님과 주님의 말을 부끄럽게 여긴다. 멸시하고 조롱한다.

교회는 다니면서도 예수 믿는다는 것, 성경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여기는 것이 따로 있다는 얘기이다.

굳게 붙들고 크게 확신하는 것을 자랑스럽게 여긴다.

부와 권력, 명예가, 세상이 자랑하고 높이고 찬양하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복음을 부끄럽게 여기지 않는다는 것은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이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1:16)

 

주님의 나와 내 말이 복음이고,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주님의 말은 그냥 말이 아니다. 능력이다. 영이고 생명이라고 하셨다.

 

내가 분부한 모든 말씀을 가르쳐 지키게 할 때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 하신다고 하셨다.

성경을 사랑하는 만큼 그리스도를 사랑하고, 성경을 높이 섬기는 만큼 그리스도를 높이 섬긴다.

 

복음은 그냥 말로만 전하는 것이 아니고, 그냥 말로만 사는 것이 아니다.

우리 복음이 너희에게 말로만 이른 것이 아니라

또한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임이라”(살전1:5)

 

복음에는 주님의 능력의 나타나심이 있어야 하고, 성령의 친히 증거하시는 역사가 있어야 하고,

큰 확신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교회는 이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을 믿지 못하고 있다.

 

나와 내 말을 부끄러워하지 않는 곳에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은 있게 마련이다.

능력과 성령에 따른 큰 확신이 없으니까, 주님과 복음으로 살지 못하고,

떡을, 복음처럼, 능력처럼, 바라보고 목말라하고 배고파한다,

세상의 염려가 많고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한다.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 난 믿음이 아니면, 그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죽은 믿음은 세상 영광을 자랑하고 복음의 고난을 부끄러워한다.

너는 내가 우리 주를 증언함과 또는 주를 위하여 갇힌 자된 나를 부끄러워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딤후1:8)

 

오직 하나님의 능력을 따라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는 종교는 기독교 뿐이다.

바울은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 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함이라고 했다.(딤후1:12)

 

베드로도 그리스도인으로 고난을 받으면 부끄러워하지 말고

도리어 그 이름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다.(벧전4:16)

복음으로 인한 고난, 그리스도인으로서의 고난을 부끄러워하면,

주님이 아버지의 영광으로 거룩한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그 사람을 부끄러워하실 것이다.

 

본인도 양심에 거리낌이 있어 떳떳하지 못할 것이고 비로소 자신을 부끄러워하게 될 것이다.

주님과 복음을 부끄러워한 영혼들은 불과 유황이 타는 불못에서 영원히 살게 될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은 댓가를 심은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