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4/25 설교, '하나님의 감동으로', 딤후 3:16-17

강대식 2021. 4. 25. 14:02

2021-04-25 주일설교

본문: 딤후 3:16-17

제목: 하나님의 감동으로

 

1.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이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영감)으로 된 것으로”(딤후3:16)

모든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되었다는 이 구절은 모든 논란을 잠재우는 말씀이다.

이 말씀은 세상의 모든 것이 자연적으로 되었다는 계몽주의 자유주의자들에게

성경이 초자연적으로 하나님에 의해 만들어졌음을 선포하는 것이다.

기독교의 모든 역사는 초자연적임을 증언한다. 기독교는 초자연주의가 핵심이다.

 

기독교 만사가 초자연주의와 함께 서고 함께 넘어진다.

만약 초자연주의가 무너지면 성경적이고 역사적 신앙으로서의 기독교도 무너지고,

복음적이고 개혁적인 기독교도 무너지고 만다.

 

16세기 종교개혁을 힘입어 인간들은 문예부흥을 일으켰고, 계몽주의를 발달시켰다.

18세기 후반부터 19세기 전 기간은 변화로 특징되는 시대였다.

정치적, 철학적 격변이 일어났고 기술적 진보가 생활과 문화를 극적으로 변화시켰다.

학문에도 새로운 이해와 방법들이 거의 모든 분야에 제시되었고

성경과 기독교에도 자연주의(계몽주의의 자매)로 공경과 압박을 가했다.

다윈의 진화론과 성경의 고등비평이 대표적이다.

 

아담 이후 인간의 타락한 죄성은 조금만 힘을 가지면 하나님부터 부인할려고 해왔다.

성경은 기독교의 보루이기 때문에 자연주의 또는 자유주의 이름으로

20세기 초반에 성경 자체에 대한 공격과 비판이 유럽과 미국을 휩쓸었다.

 

독일의 유명 신학대학은 자유주의의 온상이 되었고,

미국은 그 신학을 수입하여 유명 신학대학들과 교단들이 자유주의로 변질되었다.

미국제 영성을 도입하기에 급급한 한국 유명 교단들과 신학대학들도 여지없이 물들었다.

 

100년 동안 기독교의 역사적 신앙과 전통을 지켜온 미국의 프린스톤 신학교도

자유주의를 대항하여 우뜩 솟은 독보적 존재였던 워필드가 1921년 죽고

10년도 채 못되어 변질되고 말았다.

그의 제자였던 메이첸과 몇 교수는 따로 나와서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세웠다.(1929)

 

워필드는 성경이 가르쳤고 교회가 역사적으로 견지해온 교리 없이는,

기독교라는 용어의 의미가 제거되고 만다고 역설했다.

근래 기독교라 불리는 것이 다 기독교라면, 기독교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구별 없이 모든 것에 적용되는 명칭은 아무것도 지칭하지 않는다.”

 

워필드는 성령 없이 우리가 진리에 무능한 것처럼 말씀 없이도 진리에 무능하다.

성령의 역할은 말씀을 그 본래 의미대로 확증하는 것이다.”

성령은 인간 영혼을 변화시키고 증거를 사용하여 설득하는 일을 하신다.

성령과 말씀, 어느 것도 홀로는 신앙이 산출되지 않는다. 둘 다 있어야 한다.

 

성경의 영감론은 인간의 모든 권위를 초월하여 성경에 최고 권위를 부여하고

전능하신 하나님이 사람에게 친히 전한 메시지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 수 없음을 선언한다.

현대 교인들은 자신도 모르게 이런 저런 자연주의 자유주의에 물들어 있다.

 

인간이 만든 누룩들, 곧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들을 조심해야 한다.

성경의 초자연주의적 권위가 흔들리면 기독교와 교회가 흔들리고 일반 종교화되고 만다.

구원도 천국도 의미가 사라지고 그저 이 땅에서의 영화만이 삶의 목적이 되고 만다.

 

요즘 교회에 만연한 상담학도 하나님 없이 인간의 심령의 문제를 해결할려는 학문일 뿐이다.

성경적상담학, ‘기독교상담학 등등 이름을 붙여도 그 내용은 일반 심리학이다.

교회 안에서 성경의 권위가 무너졌다는 단적인 예와 증거이다.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진리를 가르쳐 지키게 하는 진리의 기둥과 터인데,

사람의 지혜들이 설교와 가르침을 지배하고 그 결과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고 있다.

성경의 초자연적 권위가 무너지는 곳에서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고 미신과 우상숭배가 지배한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곧 영감으로 된 것이다.

글자 하나 하나에 이르기까지 하나님이 오류가 없도록 통제하면서 기록하게 하신 말씀이다.

타락한 죄의 본성이 산출한 자연주의적 온갖 훼방에 휘둘리지 않아야 한다.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성경을 믿지 못하면

하나님을 알 수도 없고 믿을 수도 없음을 알아야 한다.

믿음이 다 믿음이 아니고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님을 알아야 한다.

 

성경을 사랑하는 만큼 하나님을 사랑한다.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한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신비주의로 가지 않고 성경을 붙든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고 말씀에 불순종하는 자를 저주한다.

 

성경을 연구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사모해야 한다.

성경이 멀어지면 하나님과 멀어지고 교회와 멀어진다.

검증된 경건서적들을 읽어야 성경의 참 맛과 경건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다.

 

2.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교육하기에 유익하다

 

모든 성경은 ---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성경이 첫째로 우리에게 주는 것은 교훈이다. 교리이다. 진리이다.

유대인들은 성경을 줄줄 외고 가르침을 받으면서도 그 안에 담긴 교리 곧 진리를 못 봤다.

현대 교인들도 성경은 외면서도, 가르치고 큐티를 하면서도, 그 진리 곧 교리를 모른다.

 

성경의 말은 많이 알면서도 진리에 대해서는 문외한일 수 있다는 지적을 기억해야 한다.

율법과 선지서와 시편들이 나를 가리켜 기록된 것이라고 주님이 말씀하셨는데,

구약 성경과 전통을 지켜온 유대인들은 하나 같이 그리스도 주 예수를 알지 못하였다.

심지어 박해하고 하나님을 위한 일이라고 여기며 십자가에 못 박았다.

 

이 얼마나 아이러니 하고 놀랍고 엄청난 일인가?

이 땅에서 무섭고 놀라운 일이 항상 있다.

선지자들은 거짓을 예언하고 제사장들은 자기 권력으로 다스리고 내 백성은 좋게 여기는 것이다.

너희가 마지막에는 어찌하려느냐 경고해도 소용이 없다.

 

성경은 교리로 진리의 명제로 알지 못하면 모르는 것이다.

교리로 알아야 그 진정한 의미를 알고 실천할 수가 있는 것이다.

교리는 삶을 위한 것이지 지식을 위한 것이 아니다.

 

자유주의자들은 기독교적인 삶이 있으면 되지 교리가 무슨 소용이 있느냐 한다.

알지 못하는 것을 어떻게 산다는 말인가?

모양만 비슷하고 사람의 지혜와 상식으로 선한 것을 살면 된다는 것이다.

 

교리를 안다는 사람들에게도 문제는 있다.

교리를 선언하고 가르치고 주장하면서도 살지 않으면 그 또한 자유주의자와 다를 것이 없다.

청교도를 말하고 주장하면서도 살지 않으면 그 또한 자연주의자와 다를 것이 없다.

 

교리는 진리로 살기 위한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사도와 선지자들, 개혁자와 청교도들, 그들은 교리를 진리로 살았기에

기독교와 교회의 터와 기둥이고 모범인 것이다.

 

사람은 성령의 지혜로 가르침을 받기 전에는 사람의 지혜로 밖에 성경을 모른다.

성령의 지혜로 고침을 받아야 비로소 성경을 알고,

성경을 알아야, 하나님이 그리스도가 성령이 어떤 분인지 비로소 알 수 있고,

구원이 교회가 종말이 무엇인지 비로소 알 수 있다.

 

먹고 살기 위해서는, 돈과 출세를 위해서는, 시간과 정력을 바치면서도,

성경을 알고 삼위 하나님을 알고 구원 교회 종말을 알기 위해서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이

교회만 다닌다고 구원 받고 천국에 가는 줄 알았다가는 큰 일 난다.

 

모르면 살 수 없는 것이고, 알아도 살지 않으면 신앙 생활은 아무 유익이 없다.

먼저 아는 일부터, 가르침을 받는 일부터, 시작을 해야 한다.

제대로 알면 살게 돼 있다. 어설프게 아니까 살지 않는 것이다.

 

천하보다 귀한 영혼이고 한 번밖에 살지 못하는 내 인생인데,

어찌 영원 세상은 내 몰라라, 이 땅에서도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복을 받을 생각을 하는가?

교리 곧 초자연적 진리를 알기 위해 시간과 땀을 쏟아야 한다.

 

내 마음이 세상의 사고방식과 가치관으로 그대로 있고, 진리로 고침을 받지 못하면,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가 되고, 홍해를 건넌 다수일지라도 멸망을 당하는 결과가 되고 만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으로 끌려갔고 돌아와서도 결국 가나안땅에서 멸망을 당했다.

 

말씀에 불순종하는 이스라엘은 내내 폭정과 외세에 눌리고 병과 고난으로 불행한 삶을 살았다.

말씀으로 살지 않고 떡으로만 살면 하나님은 주리게 하시고 낮추신다.

그래도 돌이키지 않으면 그 심판으로 이 땅에서도, 영원 세상에서도, 얻을 복과 기업이 없다.

 

성경은 회개하라고 책망하신다.

성경을 읽으면서도 왜 그 책망을 나에게 주는 책망인 줄을 모를까요?

선지서들을 외면하고 가르치지 않고 설교하지 않는다고 그 심판과 재앙이 빗겨 갈까요?

 

하나님은 이 땅에서도, 영원 세상에서도, 성경의 교리 곧 진리로 통치하심을 명심해야 한다.

하나님은 성경의 교훈대로, 교리대로, 복 주시고, 저주하시고, 심판하신다.

그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진리이다.

모른다면 되고, 없다고 하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이미 완벽하게 주셨어요.

성경을 공부하고 연구함으로 의로 교육을 받아야 하고 바르게 하여야 한다.

내 의, 자기 의로는 하나님의 의를 알 수도 없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을 뿐이다.

 

그러다가 이스라엘은 멸망하였고 그와 동일한 사람도 언제나 멸망을 받을 것이다.

거짓 목사들과 신학자들은 천국 가는 길을 한없이 넓혀놓고 문도 한없이 크게 열어 놨지만,

그거 믿었다가는 지옥 문 앞에 도착해서야 이를 갈며 슬퍼하게 될 것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사도와 선지자들, 개혁자와 청교도들에게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초대교회는 첫째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2:42) 였다.

지금 교회도 마땅히 그래야 한다.

 

성경의 교리, 곧 진리가, 터가 아니고 기둥이 아닌 교회는 하루 속히 나와야 한다.

출세와 성공, 세상의 축복과 형통이 교회의 기둥이고 터가 되는 교회는 하루 속히 나오는 것이

멸망에서 벗어나는 것이고, 천국을 시작하는 것이다.

 

돈과 세상에다 바치는 시간의 7분의 1, 아니면, 10분의 1만이라도, 성경에 바치시라.

아니면, 주일 하루라도 바치시라. 안되면 주일 한나절이라도. 주일 한 밤이라도.

정말 살아계신 하나님으로부터 구원 받고 복을 받고 영생을 받을려면 말이다.

 

3. 온전한 성품과 모든 능력을 갖추게 한다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온전한 성품을 이루고 모든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그것은 인간의 완성이다.

성품은 좋은데 능력은 없다. 능력은 있는데 성품은 엉망이다.

그것은 절름발이 인생이요, 성품도 능력도 없다면 그것은 무익한 인간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2:14)

주님은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자신을 주셨다.

그 목적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깨끗한 성품으로 만드셔서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능력의 자기 백성이 되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성품은 말씀과 성령으로 깨끗하고 온전해져야 한다.

능력은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능력이어야 한다.

죄를 열심히 짓는 능력은 능력이 아니다.

 

그의 종 다윗을 택하시되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며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그를 이끌어 내사

그의 백성인 야곱, 그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기르게 하셨더니 이에 그가 그들을

자기 마음의 완전함으로 기르고 그의 손의 능숙함으로 그들을 지도하였도다”(78:70-72)

 

그리스도인도 양의 우리에서 취하시고 젖 양을 지키는 중에서 이끌어 내신다.

이끌어내서 말씀과 성령으로 훈련하고 연단하여 자기 백성을 기를 수 있는 사람으로 만드신다.

그러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곧 마음의 완전함을 이루고

모든 선을 행할 능력, 곧 손의 능숙함을 갖추게 된다.

 

성품이 온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만들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신 모든 성경이고

그 성경이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여 그렇게 한다는 것이다.

 

성경 그 자체만으로 된다는 것이 아니다. 교리만 안다고 된다는 것이 아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최고 권위와 삶의 기준이며 오류가 없는 것임을

믿는 것이 최우선이고 대전제이지만, 성령의 조명이 없이는 그것을 알 수 없다.

반드시 모든 능력으로 역사하시고 함께 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함께 의지해야 한다.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하노라”(1:28-29)

 

모든 지혜로 가르침을 받을려면 성령의 지혜로 가르친 성경의 책들을 읽어야 함을 의미한다.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이 남긴 고귀한 유산들을 읽어야 한다.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역사를 따라 나도 힘을 다하여 수고해야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는 바로 온전한 성품과 모든 선을 행할 능력을 갖춘 사람이다.

하나님은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 하시고 내가 완전하니 너희도 완전하라 하신다.

사람이 어떻게 완전할 수 있냐 하는 심리학적인 합리화는 그리스도인에겐 통하지 않는다.

 

거룩과 완전이 우리의 달려갈 푯대이고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이다. 심는 대로 거두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