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5/9 주일설교, '믿음의 증거', 히 11:1-6

강대식 2021. 5. 9. 18:52

2021-05-09 주일설교

본문: 11:1-6

제목; 믿음의 증거

 

1.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한다.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1:6)

 

믿음은 누구를? 무엇을? 어떻게? 믿는가가 중요하다.

기독교 믿음은 하나님과 그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또한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하시는 일(과거 현재 미래)을 믿는 것이다.

 

기독교 믿음에 중요한 것은 그 믿음이 인간의 생각과 의지의 산물이 아니라는 것이다.

믿기로 결심한 사람은 나오라고 하는 결신의 초청은 성경의 교리와는 전혀 다른 것이다.

기독교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 선물로 성령에 의해 믿어지는 것이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2:8-9)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는 말씀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들어갈 수 없다는 말씀도 같은 말씀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도 들어가지도 못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선물인 믿음을 가질 수 없다.

 

부흥주의는 어떻게든 사람의 수를 늘리는 것을 전도라 하고 심지어 전도폭발이라 한다.

참다운 부흥은 성령의 부어주심이요 인간이 조작하고 동원하고 집회와 행사를 치루는 것이 아니다.

부흥주의는 사람의 행위에서 난 것을 자랑하는 것이고,

혈통이나 육정으로 사람의 뜻으로 난 것을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으로 착각하고 속이는 것이다.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고 회심하고 코페르니쿠스적 변화가 없다면, 증거와 열매가 없다면, 가짜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8)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여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만이,

하나님의 자녀되는 권세를 가지며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다.

 

이 믿음을 가진 사람의 특징은 성경대로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과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것이다.

성경에 보여 주셨기에, 성경에 말씀하셨기에, 우리는 그것을 알 수 있고, 믿을 수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영감으로 쓰여진 하나님의 말씀인 것을 믿고,

성경이 인간 삶의 최고 권위의 규범이요 기준이요 그 무오성을 믿는 자만 그것을 믿을 수 있다.

 

그분이 영원전부터 영원후까지 살아계셔서 우주만물과 인간의 역사를 통치하시고 심판하시며

반드시 상벌을 주시며 심은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한 대로 갚아 주신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심판과 상벌의 기준이요 공의의 잣대이다.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베드로는 금보다 더 귀한 보배로운 믿음이라 하였다.

의인 곧 그리스도인은 소유나 환경이나 사회적 지위로 사는 것이 아니다.

믿음으로 살고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그를 찾는 자들에게 상을 주심을 믿는다.

이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이 믿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난다.

그래서 믿음과 성경은 불가분리이다.

성경을 멀리하는 자, 믿음과 멀어지는 자이다.

 

인간이 스스로 만든 믿음, 인간이 믿기로 결정한 믿음,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온 믿음이 아니다.

그 믿음은 표면적 믿음이요 유대인들의 믿음이요 카톨릭의 믿음일 뿐이다.

현대교회에 이런 믿음을 가진 자들이 많은 것이 큰 문제이다.

 

2.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11:1-3)

 

믿음은 바라는 것을 믿고 보지 못하는 것을 믿는다.

성경에 기록된 것을 성령에 의해 믿는 것이다.

성령은 성경의 약속을 따라서 바라는 것들을 실상으로 붙들고 믿게 해주시고

보지 못하는 것들을 증거로 붙들고 믿게 해주신다.

 

아브라함은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다.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을 믿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4:18-22)

 

바라는 것을 실상으로 붙든 믿음이었고 보지 못하는 것을 증거로 붙든 믿음이었다.

믿음의 선진들은 다 이로써 증거를 얻었다.

믿음이 없으면,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알 수가 없고,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님을 알 수가 없다.

 

과학은 아는 것만을 말하고, 철학은 모르는 것만을 말한다.

현대인들은 과학을 맹신하여 과학의 이름으로 증거도 없는 가설들을 믿고 있다.

진화론이 그것이고, 성경에 대한 고등비평, 상담학이 그 대표적 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사람들은 하나님이 말씀하시면 실상으로 증거로 붙들고 믿었다.

성경이 완성된 후 믿음의 선진들은 말씀을 통해 약속을 실상으로 증거로 붙들고 믿었다.

그 많은 핍박과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들의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의심하지 아니하였다.

토굴과 동굴과 광야에 유리하면서도 믿었다. 세상이 감당하지 못하는 사람들이었다.

 

우리도 말씀을 읽으며 들으며 묵상하며 주신 약속의 말씀들을

실상으로 증거로 붙들고 흔들림 없이 견고하게 믿어야 한다.

약속의 말씀들을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자기 기업으로 받는 자들을 본받는자가 되어야 한다.

 

왜 못 믿느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살아 역사하시고 상을 주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이 없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떡으로만 살고 약속의 말씀대로 말씀으로 살지 않는다.

눈에 보이는 돈과 재물과 성공만을 믿고 살고, 실상으로 증거로 붙든다.

말씀으로 사는 자를 축복하신다고 상주신다고 성경에 기록된 약속의 말씀을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해주신다는 말씀을 믿지 않는다.

다 내 나라 내 왕국을 구하고, 내 의 곧 내 소견에 옳은 대로 사느라

말씀을 거들떠 보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도 거들떠 보지 않는 것과 같다.

 

그 약속의 말씀을 실상으로 증거로 붙드는 믿음의 사람을 보기가 매우 어렵고 불가능하다.

하나님은 말씀에 순종하는 자를 축복하시고 말씀으로 살지 않고 떡으로만 사는 자를 저주하신다.

하나님이 계시고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믿음이 없는 자들을 미워하시고 저주하신다.

그 사람들이 하나님 아닌 것을 믿고 의지하고 살기 때문이다.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고 회심하였다면 믿음의 선진들처럼 말씀으로 믿음의 증거를 얻어야 한다.

하나님이 바라게 하신 것들을 실상으로 붙들어 믿고

현재는 보지 못하지만 그것을 증거로 붙들어 믿고, 능히 이루실 줄을 믿고,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구하고 준비하고 게으르지 않아야 한다.

 

3. 믿음의 선진들은 증거를 얻었다.

 

믿음으로 아벨은 ---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며 --

믿음으로 에녹은 ---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11:4-5)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다.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상 주시는 분임을 믿는 자에게 어찌 행함이 따르지 않겠는가?

죽은 믿음이니까, 악세사리 믿음이니까, 행함도 증거도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먼저 구하며 살음으로써 모든 것을 더해 받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본 증거가 있어야 하고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어떤 환경에서도 자족하기를 배우고

풍부에나 궁핍에나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기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증거를 얻어야 한다.

 

믿음으로 살았기에 다윗처럼 헤브론에 오른 증거가 있어야 하고

갈렙처럼 헤브론을 얻고 정복한 증거가 있어야 할 것이다.

주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에 목숨을 아끼지 않은 증거가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다.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신다.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고 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다.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다.

 

믿음으로 노아는 아직 보이지 않는 일에 경고하심을 받아 경외함으로 120년간 방주를 준비하였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을 때에 순종하여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

믿음으로 모세는 왕궁의 신분과 특권을 버리고 하나님의 백성과 함께 고난 받기를

잠시 죄악의 낙을 누리는 것보다 더 좋아하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받는 수모를

애굽의 모든 보화보다 더 큰 재물로 여겼다. 이는 상 주심을 바라보았기 때문이었다.

 

하나님이 살아계셔서 상 주시는 분임을 믿었기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었고,

그들은 바랄 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이는 것처럼 바라보았다.

하나님은 능히 이루실 줄을 믿었고, 약속을 실상으로 증거로 붙들었다.

 

우리도 성경을 읽으며 들으며 배우며 묵상하며 약속을 실상으로 증거로 붙들어야 한다.

보이는 것 손에 쥔 것이 다가 아니다.

그것들은 다 없어질 것이고 썩어질 것이다. 그것이 우리를 구원하지 못한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삼는 믿음을 버려야 한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 상과 복과 영생을 받아야 한다.

믿음으로 살아서 의로운 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 하시는 증거를 받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