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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칼뱅, 그의 위대함의 비밀과 힘의 원천/ 워필드

강대식 2021. 5. 31. 09:26

장 칼뱅, 그의 위대함의 비밀과 힘의 원천/ 워필드

 

개신교 세계에 속한 모든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로 그 역할을 다할 수 있는 자유를 누리는 것은 모두 장 칼뱅 덕분이다. 그는 교회의 자율성을 끊임없이 주장했으며, 그것을 주장하고 옹호하기 위해 겪어야 하는 고통을 언제나 마다하지 않았다. 평생을 반대세력에 맞서 단호히 싸웠고 마침내 교회의 자율성을 1555년에는 최초로 얻어냈다. 결국 그는 승리했다. 제자들에게 교회의 자유를 생명보다 귀하게 생각하라고 가르친 사람도 바로 칼뱅이었다. 칼뱅은 참된 의미에서 개신교 교회를 창조한 사람으로뿐 아니라 교회가 영적 영역에서 행사하는 모든 자유를 만들어낸 사람으로 우리에게 위대하게 나타난다.

 

칼뱅의 위대한 업적은 칼뱅이 기본적으로 가졌던 경건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고, 칼뱅의 정신은 그의 계승자들에게 이어져 우리 세계가 가지고 있는 자율적인 제도들로 꽃을 피웠다. 칼뱅은 말씀의 사람이었으며, ‘사상의 사람으로서의 칼뱅, ‘행동의 사람으로서의 칼뱅보다 더 위대하다고 한다. 칼뱅은 25년 동안 매일 제네바 설교단에 서서 한 번 혹은 두 번씩 설교를 했다. 칼뱅은 예배 음악을 선물했다. 개혁파 교회들은 칼뱅이 찬송을 부르라고 가르치기 전까지 교회 안에서 찬송을 부르지 않았다. 심지어 칼뱅의 업적 중 시편 찬송(Psalter)을 만든 것만큼이나 위대하고 영향력 있는 것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시편 찬송은 처음 나온 해에 25판이나 나왔으며 그 후 4년 동안 62판이 더 출간되어 유럽 대부분의 언어로 번역되었다. 이 찬송들은 개신교 역사의 모든 살인 시대(Killing time)’ 동안 사투를 벌리던 성도들의 살과 뼈가 되었다.

 

칼뱅은 하나님의 진리를 담은 체계를 설득력 있게 다시 표현하고 강력하게 옹호함으로써 그 체계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개신교 최고의 신학자, 아마도 서방 신학자들 중에서 아우구스티누스 이후로 후대 사람들이 가장 끊임없이 따르는 신학자라고도 한다.(로마 카톨릭 저술가 윌리암 베리). 현대 역사가들은 칼뱅의 천재성이 독창성에 있지 않고 체계화에 있다고 주장한다. ‘칼뱅은 기독교의 생각을 모은 체계를 매우 섬세하게 정리해서 이해하고, 연구 결과를 적절하게 표현할 수 있는 놀라운 재능을 지녔다.’ 칼뱅은 루터처럼 금 원석이나 멜란히톤처럼 불순물이 섞인 금화를 남기기보다는 아직 유통되지 않고 불순물이 섞이지 않은 좋은 금화를 남겼다.

 

칼뱅은 독자적으로 성경을 연구한 사람이었다. 그는 성경이라는 보물 창고에서 옛 것만이 아니라 새로운 것도 발견해냈다. 그는 오직 믿음을 통한 칭의 교리와 같이 혁명적인 교리를 회복시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의 풍성한 사상이 교리 발전에 이바지한 바는 크고 중요했다. 그는 삼위일체 교리의 역사에서 큰 분수령을 이루었다. 그는 자존성을 성부뿐 아니라 성자와 성령의 본질적 속성이라고 주장했다. 이를 통해 종속설의 잔재를 몰아냈고, 하나님의 위격들의 상호 동등성에 대한 깊은 이해를 교회에 인식시켜주었다. 그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설명할 때 예언자와 제사장, 왕이라는 삼중직분 개념을 도입하였다. 또한 기독교 윤리라는 분야를 만들어냈다. 무엇보다 칼뱅은 교회에 성령 사역에 대한 온전한 교리를 제시했다. 그것은 깊은 이해와 세밀한 구성으로 이루어진 성령론이었다. 성령의 일반적 은혜와 유효적 은혜를 구분했고, 성령의 지성적 영향과 심미적 영향, 의지적 영향을 구분하였다. 매우 유익한 구분이었다. 그래서 우리가 성령 신학자로서의 칼뱅을 은혜 신학자로서의 아우구스티누스와, 속죄 신학자로서의 안셀무스, 칭의 신학자로서의 루터와 같은 위치에 올려놓은 것은 아주 공정한 일이다.

 

칼뱅의 교리체계는 그 자신과 모든 개혁가가 공통적으로 받아들이는 복음이었다. ‘복음에 근거하기에 그들은 스스로를 개신교인들이라고 불렀다. ‘복음을 회복하면서 우리가 종교개혁이라고 부르는 역사가 이루어졌다. 칼뱅은 이러한 진리 체계의 창시자가 아니다. 그는 ‘2세대에 속한 사람으로서 그 체계를 이어받은 것이다. 그가 뛰어난 기독교 교사로 매우 중요한 이유는 그 교리들의 가치와 관계를 정확하고 세심하게 파악하여 그것들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천재성을 발휘한 데 있다. 그는 종교개혁이 공통적으로 발견한 교리들을 매우 압축적이면서도 논리적으로, 그리고 경건한 마음을 불러일으키는 전체적인 하나의 체계로 만들어냈다. 누구도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개신교 운동에 신학을 제공한 사람은 바로 칼뱅이었다.

 

칼뱅이 가르쳤던 교리 체계는 당시 모든 종교개혁가가 공유했던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이었다. 왜냐하면 종교개혁은 영적인 관점에서 볼 때는 경건을 향한 위대한 부흥운동이었고, 신학적 관점에서 볼 때는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향한 위대한 부흥운동이었기 때문이다. 칼뱅은 루터의 풍부한 사상을 완전히 소화하면서 아우구스티누스 신학을 배웠다. 그리고 마르틴 부처에게서 보다 직접적이고 세부적으로 배웠다. 그는 부처의 실천적이고 윤리적인 관점에 매료되었다. 칼뱅이 예정과 믿음, 구원의 서정, 교회, 성례 등과 같은 주제에 대해 매우 독특하게 말하는 방식은 대부분 부처의 가르침을 정확하게 재현하는 것이다. 매우 경건하게 표현했다. 따라서 부처는 칼뱅의 가장 중요한 신학적 스승이다. 칼뱅이 신학자로서 갖는 독창적인 특징은 그의 생각 전반을 끌어가는 실천적 관심과 그의 생각 곳곳에 깊게 펴져 있는 경건함이다. 칼뱅을 신학자로 만든 것은 그의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었다. 그가 신학에서 일차적으로 말을 거는 대상은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물론 칼뱅은 하나님과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자신의 신학을 시작한다. 그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하나님을 향한 순종이 인간이 가질 수 있는 지혜의 절정이라고 밝힌다. 그러나 칼뱅이 생각하는 하나님은 공의로운 사랑의 하나님이다. 칼뱅은 아버지이자 주님이 되시는 하나님, 주님이자 아버지가 되시는 하나님을 생각한다. 물론 하나님의 뜻은 사물의 제1원인이시다. 하나님이 사물의 제1원인이 아니시라면, 그분은 하나님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은 우리의 지혜일뿐 아니라 우리의 기쁨이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시기 때문이다.

 

칼뱅이 예정 교리를 진실로 받아들인 이유는 우리 자신이 온전히 의로우시고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놓여 있음을 발견할 수 있다는 데 있다. 예정이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절대 통치를 선포하는 것이다. 칼뱅이 선택 교리를 열렬하게 받아들인 것은 우리의 영원한 행복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강력한 사랑에 달려 있으며 우리의 죄된 연약함에 달려 있지 않다는 것을 거르치고자 했기 때문이다. 선택 교리란 우리의 구원 전체를 하나님 덕분으로 여기는 것이다. 인간의 아버지이신 이 주권자의 위대함을 깊이 인식하자, 칼뱅은 자신의 전 존재를 다해 그분을 경외하면서 그분 앞에 엎드렸다. 그리고 그의 가슴 전체가 그분의 영광을 위한 열망으로 불타올랐다. 이 위대하신 하나님이 자신의 성자 안에서 죄인들의 구속주가 되셨다는 사실을 칼뱅이 기억했을 때, 그는 구속주의 은혜의 영광을 선포하는 데 자신을 드렸다. 그리고 그는 구속주의 손에 자신을 전적으로 맡겼다. 그의 영 전체가 모든 움직임에 있어 하나님의 퉁치에 따르기를 갈망했다. 아니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성령의 인도를 갈망했다.

오직 하나님께 영광성령의 인도하심이 칼뱅의 모든 생각과 삶의 두 원리가 되었다. 그것은 성령의 통제, 지배였다. 이 둘은 근본적으로 하나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이 하시는 모든 일을 성령을 통해서 하시기 때문이다.

 

칼뱅의 위대함의 비밀과 그의 힘의 원천이 바로 여기서 드러난다. 칼뱅만큼 하나님을 깊이 이해한 사람은 없었다. 칼뱅만큼 하나님의 지시에 조건 없이 따른 사람도 없었다. ‘고대 이스라엘의 영적 거장인 다윗 이후로 칼뱅만큼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인간의 비천함을 인식하고 그것을 진심으로 고백한 사람은 없었다. 칼뱅이 보기에 하나님은 일어나는 모든 일의 이면에 계시는 전능한 의지이시다. 하나님의 신실하심과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 이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의 궁극적 목적이다.’(베른하르트 베스)

 

아돌프 하르낙의 말에 따르면, 아우구스티누스는 하나님께서 사도 바울과 종교개혁가 루터 사이에 교회에게 주신 가장 위대한 인물이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종교개혁가 루터와 우리 시대 사이에 장 칼뱅보다 더 위대한 인물을 교회에 주신 적이 없다는 말을 확실히 덧불일 수 있다. (참고; 로이드 존스는 루터와 칼뱅 위에 조나단 에드워즈를 둔다.)

 

- 벤자민 워필드, 칼뱅, pp 39-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