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0-10 주일설교
본문: 빌 4:11-13
제목: 능력 주시는 자
1.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빌4:11)
어떠한 형편에 처해 있든지, 스스로 만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자족하기를 배우지 못하면 동물적 본능과 욕심에 따라 행동하게 된다.
그러나 자족하기를 배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사람들은 고난에 처하면 누군가의 도움을 청하고 의지할려고 한다.
자족한다는 것은 그러한 일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살아야 하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더욱 그렇다.
목회자라면 더욱 그래야 하는데 그렇지를 못하다.
주의 일을 하면 필요한 도움 청하는 것을 당연한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있다.
기도와 간구는 하나님께 해야지, 사람에게 해서는 자족하기를 배울 수 없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빌4:4,6-7)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는 예외가 없다. 어떤 형편과 처지에서도 항상 기뻐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주 안에 있으니까,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아야 항상 기뻐할 수 있다.
세상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은 염려와 근심이 그칠 수가 없다.
다만 모든 일에, 구할 것은 감사함으로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야 한다.
아무리 필요하고 구할 것이 있더라도, 사람에게는 아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의 일이라는 대의명분이 있을지라도, 사람에게 구하라는 말씀은 성경에 없다.
“성경에 일렀으되 곡식을 밟아 떠는 소의 입에 망을 씌우지 말라 하였고
또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하였느니라”(딤전5:18)
소를 염려하는 것이 아니라 사역자들을 부양하라는 것이고,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은 당연하지만,
그것은 성도들의 의무를 말한 것이지, 사역자들이 강요하고 구할 권리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이들에게는 더욱 배나 존경할 자로 여기라고, 성도들에게 말한다.
사역자가 할 일은 오직 말씀과 가르침에 수고하는 것이다.
그 일한 삯과 부양은 사람들에게 강요하거나 구할 것이 못 된다.
그것이 그렇게 중요하다면 사역은 치우고 돈 버는 일을 하러 가면 된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구할 것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면
하나님도 금방 주신다는 말씀은 성경에 없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 곧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이
평강부터 주셔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고 하신다.
만유를 다스리시고 만유 위에 만유 안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가 갈급해 하는 ‘우리의 때’가 아니라, ‘하나님의 때’에 주신다.
하나님의 약속을 자기 기업으로 받는 사람들은 믿음과 오래참음으로 받는다.
현재 우리의 형편 고난들은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이 친히 섭리 가운데 주신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이 주신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워야 한다.
염려하라고, 사람한테 구해서 해결하라고, 주신 형편이 아니다.
주님도 때가 차매 오셨고, 모세도 40년이 차매 천사가 왔다.
이루어지기까지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함으로 구하고 아뢰어야 한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라 했다.
“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 그래도 이스라엘 족속이 이같이 자기들에게 이루어 주기를
내게 구하여야 할지라 내가 그들의 수효를 양 떼 같이 많아지게 하되 —
예루살렘이 정한 절기의 양 무리 같이 황폐한 성읍을 사람의 떼로 채우리라”(겔36:37-38)
항상 기뻐하며 범사에 감사하며 쉬지 않고 기도하며,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힘써 배워야 한다. 죽어도 안 배우는 데 문제가 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사람에게 절대로 구하지 말고, 하나님께만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한다.
2.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워야 한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4:12)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우는 것을 다시 구체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다.
비천한 형편에는 그 비천에, 풍부한 형편에는 그 풍부에, 처할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이다.
모든 일이라 했다. 곧 배부를 때나 배고플 때나, 풍부할 때나 궁핍할 때나, 다이다.
궁핍과 배고픔에 처할 줄도 알고 일체의 비결을 배운다는 것은
돈 떨어지고 양식 떨어지고 살 집도 없고 갈 곳도 없을 때,
하나님께만 아뢰면서 묵묵히 인내하며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한 달, 두 달, 일년, 이년, 십년 이십년 사십년이든지, 역사가 있을 때까지 기다릴 줄 아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구걸하거나 강요하거나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을 욕되게 할 뿐이다.
그러노라면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역사하심을 경험하게 되고,
하나님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성실을 먹을거리로 삼고 사는 것을 배우게 된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구하면 모든 것을 더하신다는 것을 경험하고 배우게 된다.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음을 경험하고 배우게 된다.
배고프고 궁핍할 때 하나님만 의지하는 것을 배우지 못하면, 거지 근성만 배우게 된다.
배부름과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야 한다.
오랜 고난을 겪다 보니까, 그 고난에만 처할 줄 아는 것만 몸에 베어서,
하나님이 배부르게 하시고 풍부하게 공급해 주시는 데도, 그것을 감사히 즐기고 누릴 줄 모르고,
궁상만 떨고 있다면, 궁상 심리, 결핍 심리에서 벗어나지 못한다면, 그것도 잘못된 것이다.
풍부한 공급 가운데서, 배부름과 풍부에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도 배워야 한다.
냉탕에만 익숙한 것이 아니라, 온탕에도 익숙할 줄 알아야 한다.
고난의 세월을 보낸 다윗에게 하나님은 헤브론에 올라 왕이 되게 하셨고
예루살렘에 왕궁도 짓고 누리게 하셨다.
그 아비 다윗 덕분으로 솔로몬은 두 집 곧 성전과 왕궁을 짓게 하였다.
하나님은 고난으로 먼저 주의 교훈으로 인도하시고 후에는 영광으로 나를 영접하신다.
배고픔과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잘 배운 사람이
배부름과 풍부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잘 배우게 된다.
결국 하나님은 우리가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하신다.
냉탕 온탕에도 잘 처할 줄 아는 의연한 믿음의 사람 만들기 원하신다. 있고 없고에 초연해야 한다.
온유하다는 것은 궁핍에도 풍부에도, 고난에도 축복에도 의연하고 겸손한 것이겠지요.
모세를 지상에서 가장 온유한 자로 만들어 놓으니까, 광야 고난의 때에 비굴하거나
출애굽 지도자의 때에 영광의 능력에 교만하거나 하지 않았다.
고난의 시절에 엎드릴 줄 안 모세는 성난 백성들이 돌로 쳐 죽일려고 할 때도 엎드렸다.
궁핍에도 풍부에나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되면,
사람이 한결 같아서, 고난의 때엔 낮아지며 잘 견디고, 풍부의 때에도 더욱 겸손해질 것이다.
하나님이 떡으로만 살지 않고 말씀으로 살게 하기 위해
낮추시고 주리게 하실 때 그에 처할 줄 아는 비결을 배워서,
풍부의 때에도 잘 누리면서도, 더욱 겸손하고 온유할 수 있을 것이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가 쓸 것을 보내 왔을 때, 이 진리의 교훈을 하고 있다.
내가 궁핍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하다. 자족할 줄 알고 자족하기를 배운 것이다.
그러나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고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다.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다.
바울은 필요한 것을 빌립보 교회에 구한 적이 없다.
그러나 빌립보 교회가 쓸 것을 보내 왔을 때 감사하고 칭찬하고 기뻐하고 있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사역과 교회에 드리는 예물은 하나님이 받으실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임을 성도들은 알아야 한다.
인색한 사람은 이 진리를 알 수도 없고 하나님의 축복을 알 수도 없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빌4:19-20)
하나님의 일에 쓸 것을 드릴 줄 아는(4:16) 성도들을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주고 받을 줄 알면(4:15) 어떻게 축복하시는지,
영적인 것을 받았으면 육적인 것으로 섬기면(롬15:27) 어떻게 축복하는지,
그리고 받은 사역자는 그 성도들을 어떻게 축복의 기도를 하게 되는지 알게 해주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 놀라운 영광 가운데서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다.
조금 쓸 것을 드렸는데 하나님은 모든 쓸 것을 채워 주신다.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함으로.
예물에 인색한 사람은 모든 것이 점점 줄어들고 점점 돈 들어갈 일만 많아지는데,
예물에 풍성한 사람은 모든 것에 부족함이 없게 점점 풍성해지게 하신다.
땅의 계산법으로만 사는 사람들은 이 하늘의 계산법을 도무지 알 길이 없다.
경험한 사람만이 그 기쁨과 그 유익함과 그 풍성한 열매를 안다.
3.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
이 본문 만을 좋아서 애용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이 본문은 앞 두 절의 결과이지, 그 배움 없이 쓰다가는 큰 일 날 말씀이다.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운 사람,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에게 해당하는 말씀이고, 결과이다.
냉탕 온탕에도 자족하고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에게
하나님은 능력 주셔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는 말씀이다.
아브라함이 그랬고 요셉도 모세도 다윗도 그러하였다.
배고프고 궁핍할 때도 사람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만 의지하며 자족하기를 배우고,
배부르고 풍부할 때도 그 소유로 인하여 교만하고 인색하지 않고 더욱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며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에게
하나님은 능력 주셔서 그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해 주신다.
하나님은 고난으로 연단하신 후에는 반드시 마침내 복 주심을 믿어야 한다.
시글락 시절,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한 후에는 헤브론에 오르게 하시고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
두 집을 짓는 축복, 성전과 왕궁을 짓는 축복을 주셔서 일하고 누리게 하신다.
어떤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우고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고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사람에게
하나님은 그의 뿔을 들소의 뿔 같이 높여 주시고 그에게 신선한 기름을 부어 쓰신다.
고난의 시절, 그의 원수들이 보응 받는 것을 그의 눈으로 보게 하시고
그를 치던 행악자들이 보응 받는 것을 그의 귀로 듣게 하신다.
의인은 종려나무 같이 번성하며 레바논의 백향목 같이 성장하게 하신다.
그 작은 자가 천명을 이루고 그 약한 자가 강국을 속히 이루게 하신다.
이는 여호와의 집에 심겼기 때문이고, 우리 하나님의 뜰 안에서 번성하게 하시기 때문이다.
그는 늙어도 여전히 결실하며 진액이 풍족하고 빛이 청청하게 하신다.
늙어도 눈과 귀가 흐리지 않으며, 입술이 분명한 발음을 하고, 기력이 쇠하지 않게 하신다.
그의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시고, 그의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지게 하시고
그의 입술이 그의 원수들을 향해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크게 열리게 하신다.
여호와와 같이 거룩하신 이가 없으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신다.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신다.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신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이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는 말씀의 의미이다.
고난의 시절에는 하나님이 나의 반석 나의 피난처이심을 믿고
형통의 시절에는 하나님이 나의 영광 나의 축복이심을 믿고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라.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0/24 주일설교, '향하신 하나님의 뜻', 살전 5:16-18 (0) | 2021.10.24 |
---|---|
10/17 주일설교,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 , 살전 1:2-5 (0) | 2021.10.18 |
10/3 주일설교, '하나님의 충만하신 것', 엡 3:14-19 (0) | 2021.10.05 |
9/26 주일설교,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갈 2:20 (0) | 2021.09.28 |
9/19 주일설교, '예수의 생명', 고후 4:7-11 (0) | 2021.09.2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