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6 주일설교, '주는 그리스도', 마 16:15-18

강대식 2022. 1. 17. 16:11

2022-01-16 주일설교

본문: 16:15-18

제목: 주는 그리스도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

 

당시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더러는 세례 요한, 더러는 엘리야,

어떤 이는 예레미야나 선지자 중의 하나로 여겼다.

기껏해야 선지자 중의 하나로 본 것이고 인간 그 이상으로 보지 못하였다.

 

르낭의 예수전과 같이, 유명한 예수전들을 읽어보면,

복음서에서 초자연적이고 신적인 요소들은 다 빼버리고,

소위 당대의 철학과 과학의 수준에 맞게 인간 예수로만 충실하게 그리고 있다.

 

학생들의 교과서에서도 4대 성인 중의 하나쯤으로 묘사하고 있다.

독일의 유명한 자유주의 신학자 불트만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신약 성경을 비신화화하자고 했다.

현대인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는 예수의 동정녀 탄생, 부활, 승천,

하늘과 땅과 지옥의 3층 구조를 갖고 있는 신화적 우주 관념. 등등.

만일 이런 신화적 요소가 배제된다면, 복음서 역사의 참다운 의미가 명확해진다고 주장했다.

 

헤겔의 실존철학의 도움을 빌려 현대적인 언어로 성경을 재해석해야 한다고 했다.

우리 나라에서는 이에 충실한 신학교가 한국신학대학이고, 감리교 일부도 그러하다.

교회로는 강원용 목사가 세운 경동교회가 이 신학에 충실하고 있다.

 

예수님을 누구로 아느냐는 지극히 중요하다.

세상 사람들이 누구로 아느냐는 그들의 자유이다.

그러나 예수를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누구로 아느냐는 너무도 중요하다.

 

참 신자냐 아니냐, 참 교회냐 아니냐를 판가름하는 시금석이고, 터와 문을 가르는 기준이다.

기독교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터 위에 세워져 있고, 그분이 세운 문으로 들어간다.

그리스도를 통하지 않고서는 하나님 아버지께 나아갈 수 없다.

 

그분의 신성과 초월성과 초자연성을 믿지 못하면 그것은 자연종교이지 기독교가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만든 종교요, 하늘에서 내려오고 임하는 하나님의 종교가 아니다.

베드로가 주님을 향해 고백하는 신앙고백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분명히 알아야 한다.

 

성경에서 안다는 것은 그냥 지식적으로 아는 것과 다르다.

마리아가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한다고 할 때 그것은 남녀가 하나되는 관계를 말한다.

안다는 것은 영적으로는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신 것과 같이, 관계를 영원히 맺는 것이고,

그분이 내 안에, 내가 그분 안에 거하며 끊을 수 없는 관계로, 동행하며

성령으로 마음에 새겨진 말씀으로 그 앎(지식)을 행하며 사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이 알게 해 주신 지식으로 성령이 가르쳐주시는 지혜로 사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사람의 지혜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헛된 예배이고 섬김이다.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성경해석을 아예 맛도 보지 못한 목사들과 교회가 수두룩하다.

 

세상에서 유명 대학과 대학원에서 공부 꽤나 하고 세상 살이 하다 뒤늦게 부름받아

목사가 된 저도 목사 10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의 은혜로 처음으로 맛을 보았다.

사람의 지혜로 가르친 것과 성령의 지혜로 가르치는 것의 차이를 비로소 맛 보았다.

 

하나님과 말씀을 안다는 것, 그것은 천지를 개벽하는 것이요,

이전 것은 지나가고 보라 새 것이 되는 것이다.

코페르니쿠스적인 대 전환이 일어나는 것이다.

참으로 마음이 하는 것, ‘회심이요, 마음이 소용돌이치고 뒤엎어지는 것이다.

 

사도 바울이 주님을 뵙고서는 가말리엘 문하에서 유대인 전통에서 배워서 알 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버리는 것이다.

이제까지 알던 모든 것의 변화, 페러다임의 대 변화, 이것은 그리스도인에게 필수이다.

 

하나님의 증거를 전할 때에 말과 지혜의 아름다운 것으로 하지 않았다는 것,

내 말과 전도함이 설득력 있는 지혜의 말로 하지 아니하고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했다는 것,

이는 너희 믿음이 사람의 지혜에 있지 아니하고 다만 하나님의 능력에 있게 하려 함이었다는 것,

사람의 말과 지혜가 가르친 말로 아니하고 오직 성령께서 가르치신 것으로 한다는 것.

영적인 일은 영적인 것으로 분별한다고 하는 말씀의 의미가 분명 깨달아져야 한다.

 

그것이 눈을 뜨는 것이고, 흑암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임을 알아야 한다.

그것이 보지 못하는 자들을 보게 하는 것이고, 본다고 하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는 심판이다.

하나님을 알되 힘써 알아야 한다.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매일 성경을 상고해야 한다.

 

예수님이 친히 가르치시고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알고 그리로 돌아가야 한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2.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 하느냐주님의 물음에 대한 베드로의 대답이다.

그리스도는 보냄을 받은 자, 기름부음을 받은 자의 뜻이 있다.

그리고 히브리어로 메시야, 곧 만왕의 왕, 만주의 주, 선지자, 제사장의 뜻이 있다.

 

주 하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그분이 그리스도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셨다는 의미다.

영생도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하셨다.

이 신앙고백은 기독교의 믿음의 대헌장이요, 반석이요 터가 되는 기반이다.

 

주님이 3년 반 동안 제자들을 가르친 것의 열매가 성취된 고백이었다.

이 신앙고백을 들으신 이때로부터 주님은 자기가 예루살렘에 올라가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하고

제 삼일에 살아나야 할 것을 제자들에게 비로소 나타내셨다. 수난고지라 한다.

 

주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확실히 알지 못하면,

주님의 십자가 죽음의 뜻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자들이 누구인지도 확실히 알지 못한다.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모르니까 유대교의 어르신들, 곧 장로들 대제사장들 서기관들이 못 박았다.

지금도 교회의 큰 어르신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고 있다.

이들이 지금도 내 아버지의 집’, ‘기도하는 집장사하는 집’, ‘강도 소굴로 만들고 있다.

 

주 예수님은 살아계신 하나님 아들, 하나님이시다.

그분은 만왕의 왕 만주의 주 그리스도이시다.

그분이 아버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자기 백성들, 택하신 자들을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셨다.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어린 양으로 희생제물로 대속제물로 화목제물로 죽으셨기에

우리는 그분을 영접하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고 구원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댜.

그분이 누군지를 알지 못하니까, 악세사리 믿음, 아편 종교로 교회를 우습게 만드는 것이다.

 

그분이 살아계신 성자 하나님이요, 만왕의 왕 그리스도시요,

하늘과 땅의 권세를 아버지께로부터 받아 보좌 우편에서 세상과 만물을 통치하시고

때가 되면 심판주로 오실 그리스도이심을 알고 믿고 경외하며 간절히 사모해야 할 분이시다.

 

그런데 왜 이분을 알지 못하느냐?

아버지가 알게 해주시지 않으면 알 수가 없기 때문이다.

베드로도 자기가 사람의 지혜로 율법으로 안 것이 아니다.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7)

 

바요나 시몬은 비둘기의 아들. 그의 가문의 비천함과 그의 출신의 미약함을 상기시킨다.

주님이 복이 있다고 하시면, 참으로 복이 있는 자요, 참된 신자이다.

그리스도를 올바로 아는 것에 모든 복이 있는 것이다.

 

베드로에게 주님이 누구이신지를 알게 하신 분은 하늘에 계신 주님의 아버지이셨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그분은 우리의 아버지가 되신다.

그분이 그리스도가 누구이신지를 우리에게 성령으로 말씀으로 계시하여 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비로소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의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는 것이다.

그러한 사람만이 복이 있고, 그리스도와 함께 아버지와 성령 앞에서 영생을 누리게 된다.

 

베드로가 한 신앙고백이 우리 안에서 확실해질 때,

아담이 범죄함으로 잃어버린 하나님의 형상과 왕권이 회복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형상이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고 영접할 때,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고,

그리스도로 영접할 때 통치권, 곧 왕권이 회복된다.

 

그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1:15)

이는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이시라”(1:3)

한 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생명 안에서 왕 노릇하리로다”(5:17)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천년 동안 그리스도와 더불어 왕 노릇하리라”(20:6)

 

우리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연합이 된다.

그 말씀은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 그리스도가 우리 안에 있음으로

하나로 연합하여 하나님의 형상이 그리스도의 왕권이 우리의 것이 된다는 것이다.

 

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고 신앙 고백을 한다는 것이,

그분과 연합한 우리의 신분과 특권을 보장하고 보증하고 보호한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하나님의 계시로만 우리는 이를 알 수 있고 사람의 지혜로는 알 수가 없다.

 

3.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반석이 베드로냐 그의 신앙고백이냐 해석이 갈리지만

참 교회는 이 반석을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인다.

베드로를 반석으로 받아들이는 자들은 교황 세력들이다.

 

그들은 베드로를 초대 교황으로 만들어 모시면서 자기들의 교황권의 근거로 삼고

성경 위에 자기들의 해석을 올려놓고 성직계급을 합리화 한다.

만인제사장을 부인하고 자기들의 특권을 위해 부패와 흑암과 혼돈으로 교회를 더럽혔다.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주님이 내 교회를 세운다고 하셨다.

사람이 세운 교회인지, 주님이 주님의 교회를 세운 것인지 잘 분별해야 한다.

신앙고백의 영적인 확실성과 성경 해석의 권위를 어디에 두느냐를 보아야 한다.

 

신앙고백이 확실하고 주님이 그 반석 위에 세운 교회인 것이 분명하면

음부의 권세가 결단코 이기지 못한다.

음부의 권세는 난하주를 보면, 음부의 대문이다. ‘죽음의 문들이라고도 번역하고 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전의 반석을 지하세계에 이르는 출입문을 봉한 것으로 이해했고,

거기에서부터 다른 세상이 펼쳐지고, 동시에 하늘에 이르는 문으로 생각했다고 한다.

 

음부의 대문은 귀신의 나라의 권세와 영향력을 가리킨다.

이는 어린 양을 향하여 싸우는 용의 머리와 뿔이다.

음부에서 꾸며낸 모든 것들이 대문에서 나온다.

 

이것들이 복음 진리들을 대적하고 복음의 규례들을 부패하게 만든다.

간교한 꾀로 사람들을 미혹하고 설득시키고, 잔인한 힘으로 강압하여,

순전한 신앙과는 다른 길로 나아가도록 함으로써 교회를 무너뜨리려 한다.

 

기독교의 이름을 말살시키고, 그 아이를 삼키고(12:4),

하나님의 성을 땅에 무너뜨리려는 것이 음부의 대문의 계교다.

 

그러나 그들이 이기지 못하리라하셨다.

이는 교회의 원수들이 그 뜻을 이루지 못하리라는 확신을 준다.

어둠의 권세들이 온갖 방법으로 대적하더라도, 세상이 존재하는 한

그리스도께서는 그 속에 교회를 두실 것이요,

또한 그 교회에서 그의 진리와 규례들이 유지되고 보존되게 하실 것이다.

그들이 ---나를 괴롭혔으나 나를 이기지 못하였도다”(129:1,2).

 

교회의 순결함과 광채의 정도가 항상 동일하지는 않으나,

교회가 완전히 끊어지는 법은 결코 없으리라는 것이다.

비록 광야에 있으나, 그 여자가 살아 있으며(12:14),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망하지 아니하는 것이다.(고후4:9)

 

너희는 말세에 나타내기로 예비하신 구원을 얻기 위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받았느니라

그러므로 너희가 이제 여러 가지 시험으로 말미암아

잠깐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으나 오히려 크게 기뻐하는도다

너희 믿음의 확실함은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할 것이니라”(벧전1:5-7)

 

로마 교회와 거짓 교회들의 잔인한 핍박과 화형과 온갖 학살과 만행에도 불구하고,

참 교회와 참 믿음의 신자들은 발도인들 롤라드인들 후스인들 위그노들 여러 이름으로 불리우며

결국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음부의 권세를 이기고 참 교회의 광맥을 이어왔고,

그들은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이 땅에서도 하늘에서도 얻고 있다.

 

그 교회들은 소수였지만, 세상과 교회들이 이단으로 몰고 학살을 일삼았지만,

그들은 베드로의 신앙 고백 위에 주님이 세우신 주님의 교회들이었다.

왜 어떻게 종교개혁이 일어났는지를 참 교회의 역사를 다룬 책을 다시 읽고 눈을 떠야 한다,

맹인이 맹인들을 인도하는 교회들에서 나와 따로 있고, 참 교회의 품으로 돌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