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2 장 발 디딜 데를 확보하라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시73:15)
- 시편 기자가 자신을 견고하게 가누고 급기야 믿음의 위대하고도 견고한 자리로 돌아가는 방식을 알아보기 위하여 그 결론으로 돌아가 보겠다. 시편을 마약처럼 사용하여 심리학적 처방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 물론 시편에는 그 모든 것이 있다. 그러나 일차적으로 시편은 우리에게 유익을 주기 위하여 기록된, 영적 체험에 대한 진술임을 보여 주고자 한다.
시편을 분석하고 관찰할 때에는 말의 아름다움 같은 것이 아니라 그 의미에 관심을 집중해야 한다. 그렇게 함으로써 우리는 시편 기자가 매우 분명한 원리를 가지고 있음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훈련의 필요성
이 시편 기자는 갑자기 하나님이 선하시다는 결론에 도달한 것이 아니다. 과정상의 단계들이 있어 이 단계들은 사람을 ‘거의 넘어진 데서’ 건져 요동하거나 흔들릴 수 없는 믿음의 견고한 상태로 되돌아가게 해 준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생활의 단련’과 같은 것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우리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든지 ‘주님을 바라보기만 하면’ 형통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은 비성경적이다. 만일 우리가 그저 ‘주님만 바라본다면’ 서신서들은 결코 기록되지 않았을 것이다. 서신서들은 우리를 교훈하기 위하여,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가르치기 위하여 기록되었다. 서신서들은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 진수가 되는 ‘훈련’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 준다.
안타깝게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은 믿음의 이러한 국면을 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로마 카톨릭의 가르침을 향한 반작용으로 프로테스탄트들이 반감을 가지게 된 것이다. 로마 가톨릭 체계 속에서는 ‘방식’이 ‘영적인 삶’ 자체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기 때문에 그러한 것에 대해 전적으로 반대해야 하는 것은 옳다. 그러나 그 방식의 오용 때문에 그리스도인의 삶에는 훈련 같은 것은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사실 프로테스탄티즘 역사 속에서 진실로 위대한 시기는 언제나 그러한 훈련의 필요성을 인식할 때였다. 청교도들은 훈련하는 삶의 중요성을 알았고, 우리가 만나는 여려 상황에서 자신을 다스리는 법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고 믿었다.
이 시편을 쓰는 사람은 우리 자신을 관리하는 방법을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큰 위기 앞에서 자신을 다루는 법을 아는 것은 가장 위대한 기술이다.
2. 자신을 다스리라
1) 첫 단계, 이에 대한 반응은 우리의 영적 총명을 시험하는 훌륭한 시금석이다.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15) 그가 행한 첫 번째 일은 자신을 다스리는 것이다. 그는 자기 혀 끝에 나오려는 말을 꾹 참고 내뱉지 않았다. 그리스도인이 성급하게 말하는 것은, 그것이 무엇이든지 잘못된 일이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너희가 알지니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약1:19) 만일 여러분이 다른 어떤 일도 할 수 없거든 멈추라. 충동적으로 행동하지 말라.
2) 둘째 단계, 말하려던 것을 분명하게 숙고하고 재고해 보라. 눈멀게 하는 힘을 가진 시험 앞에서 마귀와 싸우는 완벽한 전략은 한 번 살펴보는 것이다. 한 번 더 살펴보는 것이 여러분을 시험에서 구해 줄 것이다. 시편 기자는 그것을 다른 시각으로 점검해 보았다. 자기가 말하려는 것의 결과들을 숙고하였기 때문이다.
여기서 또 하나의 큰 원리는 이 땅에서 행하는 모든 일은 반드시 어떤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그렇게 많은 우리의 고통은 원인들이 반드시 효과들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망각한 데서 야기된다. “내가 만일 스스로 이르기를 내가 그들처럼 말하리라 하였더라면 나는 주의 아들들의 세대에 대하여 악행을 행하였으리이다”(15)
느헤미야의 경우, 느헤미야의 목숨이 위험천만할 때에 거짓된 친구가 찾아와서 살 수 있는 방도를 제시하였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나 같은 자가 어찌 도망하여”(느6:11)라고 스스로에게 말하면서 자신을 붙잡았다. 만일 느헤미야가 그 말을 들었다면 이스라엘 전체 역사는 바뀌엇을 것이다.
3) 셋째 단계, 자기가 확신하는 일을 붙잡되, 있는 힘을 다하여 붙잡는 것이다. 그는 자기에게 닥친 난제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러나 다시 문제를 살펴보고서, 자기가 시험에 굴복하여 말하고 싶은 대로 하면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악의 원인을 제공하는 자가 될 것임을 인식하게 되었다, 그는 하나님의 자녀들을 향하여 걸림돌이 되거나 범죄의 원인이 되는 것은 틀림없이 악한 것이라는 강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에 따라 행동하였다. 사실 그는 하나님의 성소에 들어갈 때까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3. 자기 훈련을 위한 삶의 원리
시편 기자의 방식은 얼마나 단순한가! 그러나 그것은 모든 단계마다 사활을 좌우할 만큼 얼마나 중요한가!
1) 우리가 언제나 긍정적인 것을 말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나아갈 길을 인도하는 원리가 되어야 한다. 즉 우리가 언제나 우리의 불확실함을 표현하려고 벼르고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을 훈련하는 법을 배워야 하며, 우리의 난제들을 발설하거나 우리가 확신하지 못하는 것들에 관하여 너무 많은 말을 하지 않는 법을 배워야 한다. 이 사람은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선을 행하시나니”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2) 다음으로 진리는 포괄적이며 진리의 여러 부분들이 서로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기억하라. 한 가지 사실이나 일련의 몇 가지 사실들로 어떤 견해를 형성하려고 하지 말라. 생각할 수 있는 모든 국면에서 주제를 살펴 보고, 그 일 자체뿐만 아니라 그 귀추와 적용 결과도 마음에 두라.
3) 우리가 관계를 맺고 있음을 절대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 중에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고 자기를 위하여 죽는 자도 없도다”(롬14:7), “내가 말한 양심은 너희의 것이 아니요 남의 것이니 어찌하여 내 자유가 남의 양심으로 말미암아 판단을 받으리요”(고전10:29). “너희가 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의 차원에서 이 문제를 결정하지 말라. 그리스도께서 더 약한 형제들을 위하여 죽으셨는데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겠는가? 약한 형제의 양심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아무도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다”라고 말하고 있다.
우리는 모두 하나로 묶여 있다. 만일 여러분이 자신을 위하여 스스로 제어하기 힘들다면, 더 약한 형제 때문에라도 자신을 제어하여야 한다. 다른 사람들을 기억하고, 그리스도를 기억하고, 하나님을 기억하라. 우리가 넘어지는 것은 혼자 넘어지는 것이 아니라 전체 교회와 함께 넘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하늘나라의 자녀들이다. 우리는 모두 그리스도와 한 몸의 지체들이다.
4) 우리의 생활에 있어서 어떤 절대율을 가지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가 절대 생각할 수도, 행할 수도 없는 일이 있다는 것을 인식해야 하는 것이다. 삶 속에서 우리가 해서는 안 될 일들에 대한 목록을 작성해 놓아야 한다. 결혼식은 하나님과 여러 사람들 앞에서 엄숙하게 서약하는 것은, 뒷문을 절대로 열리지 않는 자물통을 채워 놓는다는 뜻이다. 오늘날과 같이 이혼이 증가하는 것은 사람들에게는 더 이상 자기의 절대율이 없다는 것이다.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절대로 해서는 안 되며 생각할 수초차 없는 것으로 못 박아 두어야 하는 어떤 것들이 있어야 한다. 시편 기자에게는 “나는 형제들을 결코 해롭게 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한 원리를 발판으로 삼아서 강건하게 서 있었다. 우리의 절대율을 정해두자. 여러분이 아무 일도 할 수 없을 때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말라.
5) 여러분이 누구이며 어떠한 사람인지를 기억해야 한다. 우리는 이 악한 세상에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우리는 갈보리 언덕 십자가에서 흘려진 하나님의 독생자 아들의 피를 대가로 사신 바 된 자들이다. 그것은 우리를 모든 죄와 불의에서 건짐을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딛2:14) 그것을 기억하라. 비록 여러분이 그 일 자체를 이해하지 못한다 할지라도 그 빛에 비추어 보라.
- 우리 영혼이 원수를 대적하여 서 있다면 그 높이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느 것이든지 여러분에게 가능한 것을 의지하여 서라. 그렇게 하는 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는 것이 있다면 그것을 딛고 서라. 우리는 지금 영적 등산을 하고 있다. 아무리 작은 턱이라도 거기에 발을 의지하라. 미끄러지는 것을 멈추기만 한다면, 다시 위로 올라갈 수 있다.
시편 기자가 미끄러지는 것을 멈춘 것은, 발 디딜 만한 아주 작은 틈을 발견하고는 거기에 발을 의지시켰기 때문이다. 그는 다시 올라가 급기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통하여 다시 한번 더 즐거워할 수 있게 되고, 그를 답답하게 만든 난제까지도 이해하기 시작하게 되었다.
“하나님은 언제나 이스라엘에게 선하신데, 내가 얼마나 어리석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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