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11/5 주일설교, '온전함과 능력', 딤후 3:16-17

강대식 2023. 11. 5. 20:49

2023-0-11-05 주일설교

본문: 딤후 3:16-17

제목: 온전함과 능력

 

1. “모든 성경은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딤후3:16)

 

모든 성경은 성경으로 완성된 신구약 성경 66권을 가리킨다.

로마교회는 외경과 위경까지 일부 포함시키는 우를 범하고 있다.

모든 성경은 사람이 기록하였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계시로 받아 기록한 것이다.

 

성령의 감동으로 되었다는 것은 성령의 영감으로 되었음을 의미한다.

글자 한 자 한 자를 기계적으로 받아 썼다는 뜻이 아니다.

쓰임 받은 저자들의 기질과 성품과 문체를 자유롭게 허용하시면서

하나님의 계시에 오류가 없도록 통제하셨다는 뜻이다.

바울 요한 베드로가 쓴 성경에서 각기 서로 다른 그들의 성품의 향을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가 기계적으로 복종하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자발적으로 마음과 뜻과 목숨을 다해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아담의 후손으로 원죄를 받고 태어난 인간은 모든 것을 다해 하나님을 대적한다.

 

그래서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게 하시고 새 피조물로 재창조하시고,

은혜와 선물로 믿음을 주셔서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함 받게 하신다.

사람에게서가 아니고 하나님에게서 난 믿음이어야 한다.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비로소 인간은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영으로 생명으로 살게 된다.

세상의 영을 받아 사람의 지혜와 학문으로 가르침 받아서는

입으로 입술로만 하나님을 공경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고 만다.

 

믿음도, 사람의 지혜에 있게 되고 하나님의 능력에 있지 않게 된다.

성령의 감동으로 쓰여진 성경은 사람의 지혜로가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영으로 배워야 한다.

새 언약의 일꾼들에게서 성경도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초대교회와 그 가르친 전통을 이어받은 발도인들은

성경 말씀을 영으로 가르침 받고 생명을 다해 그 말씀을 살았다.

개혁주의와 현대교회는 사람의 지혜와 초등학문으로 가르치고 배우기에 외식으로 끝나고 있다.

 

먹으로 돌판에 쓴 편지가 아니라,

사도들의 전통을 따라 영으로 마음판에 쓴 그리스도의 편지가 되어야 한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다.

 

사람의 지식으로 혼잡한 두꺼운 교리책들, 긴긴 신조들을 이제 멀리 떠나 보내고,

단순하면서도 순전하며 영적이며 깊이가 있는 말씀 공부로 돌아가야 한다.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씀 공부해야 한다.

 

사도 바울이 사람의 지혜로가 아니라 다만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전했다는 말씀에서

우리는 사람의 지혜와 성령의 가르치심의 차이와 분별을 배워야 한다.

미혹의 영과 진리의 영의 차이와 분별을 깊이 깨달아야만 한다.

 

16세기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이후 5백년 동안 교회를 지배하여 온

신학과 방대한 교리책들 긴긴 신조들은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쓴 것들이었음을

우리는 이제 비로소 깨닫고 그 견고한 진들을 무너뜨려야만 한다.

 

바리새인들의 율법주의와 다를 바 없고,

로마교회의 스콜라신학과 다를 바가 없는 것이다.

인간들의 지성주의로 성경을 해석하고 하나님을 헛되이 예배하고 섬겨온 것이다.

 

개혁주의와 현대교회 5백년은 왜 초대교회 발도인교회와 같은 삶의 열매 맺지 못하는가요?

그 차이가 바로 먹으로 머리 돌판에 쓴 것과 영으로 마음판에 쓴 것의 차이인 것이다.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성령의 감동으로 된 모든 성경은 지식으로가 아니라, 성령의 감동과 조명으로 읽어야 한다.

그럴 때만이 그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될 수 있다.

초대교회처럼 발도인교회처럼 영으로 마음판에 새기고 생명 바쳐 그 말씀을 살 수 있다.

 

지식은 사람을 교만하게 하고 사랑은 덕을 쌓는다.

믿음이 역사하는 사랑이다.

하나님을 마음을 다해 사랑하고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사랑이다.

그 사랑이 교회를 바로 세우고 사람을 온전하게 만들고 사회를 변화시킨다.

 

2.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을 받는다”(16b)

 

성경을 영으로 읽으며, 성령의 나타나심과 능력으로 마음판에 새기며,

새 언약을 지켜 행해야 한다.

마음과 생각에 말씀을 기록하여 행하는 이 새 언약을 세우기 위해

우리 주님은 십자가에서 피 흘리셨고 우리 마음에 부어주셨다.

 

우리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영으로써 교훈을 받아야 한다.

교리가 아니다. 교훈으로 가르침을 받아야 한다.

그 교훈대로 살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책망을 받아야 한다.

 

구약 이스라엘 대한 책망이, 신약 바리새인에 대한 책망이

바로 나와 교회에게 하는 책망인 것을 알고 회개해야 한다.

그들의 다수가 나라의 본 자손들이 된 양 착각하다가는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

 

교훈과 책망을 순전하게 받음으로 하나님 앞에서 바르게 되어야 한다.

성경을 오히려 멀게 만드는 방대한 교리책들 긴긴 신조들 늪에서 빠져나와야 한다.

내 손때가 묻은 성경, 줄치고 빈 자리에 메모한 내 성경과 친해져야 한다.

 

주일에 설교한 본문은 꼭 내 성경에 줄을 치고 간단한 메모를 곁들이는 습관을 가지시라.

내 성경은 항상 성령의 조명을 구하며 읽고 또 읽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에 기록하도록 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지켜 행하는 것이 목적이다.

내가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성경에서 교훈과 책망을 받으며 사람이 바르게 되어야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고 말씀에만 충실하고 충성하는 내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로 교육을 또한 받아야 한다.

자기를 사랑하고 돈을 사랑하는 말세의 세상을 본받지 말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하는 나로 변화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열심은 있었으나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다가 결국 멸망을 당하고 말았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가나안이 사사시대 곧 암흑의 땅이 된 것은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기 때문이었다고 사사기 마지막 절은 말씀하고 있다.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이다.

자기의 소견에 옳은 대로 자기 의대로 살다가는 결국 멸망에 이르고 만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의를 배우고 내가 바르게 되어야 한다.

 

성경을 항상 가까이 하면서 성경의 사람, 성령의 사람이 되어야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람의 지혜나 세상 학문으로 성경을 해석하고 안심하다가는 큰일나고 만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이 말씀이 바로 이제까지의 나의 신앙생활을 말해주고 있음을 깨달아야만 한다.

개신교 5백년 교회가 빠진 지성주의요 먹으로 돌판에 쓴 편지였음을 이제 알아차려야 한다.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고후2:17)

 

오늘날 교회가 이렇게 설교하고 가르치고 있는가?

말씀을 위해서 성령을 구하지도 의지하지도 않고

세상에서 쌓은 지혜와 학문으로 교만하게 가르치고 배우고 있지 않은가?

 

정말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는가?

이전 것은 지나고 보라 새 것이 되었도다하는 변화가 있었는가?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를 의미하는 회개와 회심이 있었는가?

 

3.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함과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한다

 

성경에서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하나님의 의로 교육을 받노라면

어느새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내가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하고 지켜 행하려고 충성을 다할 때

성령께서 능력으로 역사하시지 않을 리 없다.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라

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할 수도 없음이라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8:6-8)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목적도 아들의 형상을 이루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8:29)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 닮아가는 것, 그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는 것이다.

성령의 사람, 성경의 사람이 될 때에

우리는 그리스도를 가장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할 수 있는 것은

고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을 소망을 이루기 때문이다.

고난의 인내를 통해서 우리 육신의 성품은 연단되어 순금이 되어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세를 미디안 광야에서 40년 동안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드시고

애굽과 시내산 광야에서 40년 동안 능력으로 영광스럽게 사용하셨다.

광야생활은 낮추기도 하시고 주리게도 하시면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만드시는 과정이다.

 

아브라함도 요셉도 다윗도 광야 생활의 연단을 거쳐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구습을 따르는 옛사람을 벗어버리고

오직 심령이 새롭게 되어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으심을 받은 새 사람을 입었다.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되는 새 사람을 입었다.

 

우리 몸에 벤 옛사람은 광야 생활의 고난의 연단을 통해 벗겨지며 성숙함으로 성장한다.

몸과 마음의 성화는, 사고방식과 가치관의 코페르니쿠스적 변화는, 성장을 통해 이루어진다.

 

그래서 주의 은혜와 그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고 하는 것이다.

거듭남 회심 이후의 성화를 강조하는 것이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성품과 능력을 닮아가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온전함은 모든 선한 일을 행하는 능력을 갖추어가야 한다.

다윗이 갖춘 균형, 곧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을 함께 갖추어 가야 한다.

그러나 성품의 온전함 없이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출수 는 없다.

 

세상은 능력이 많은 자들로 넘쳐 나지만,

성품의 온전함에서 나온 것들이 아니기에

악을 밭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양산하는 것이다.

 

은혜와 선물로 주시는, 하나님에게서 난, 믿음이 아니면,

마음을 다하는 하나님 사랑이 이웃 사랑으로 역사하여 율법을 완성할 수가 없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참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어야 한다.

그 선한 행실로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세상도 빛과 소금으로 변화되어 가는 것이다.

 

그것이 초대교회의 역사였고, 발도인들의 역사였다.

2천년 동안 이어온 참 교회의 역사였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요,

여기 형제 중 지극히 작은 자에게 행한 것이 곧 주께 행한 것이다.

이웃 사랑이 곧 하나님 사랑이 되는 것이다.

 

바울처럼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려야,

비로소 주 예수 그리스도를 얻을 수 있고 그 안에서 발견될 수 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고,

부모 처자 형제 자매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고,

모든 소유를 버려야, 능히 주님의 제자가 될 수 있다.

 

주님 주시는 어떠한 형편에도 자족하기를 배우고,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알고, 배부름과 배고픔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운 다음에

하나님은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신다.

 

40년 동안 양을 몰던 모세의 지팡이가

능력을 행하는 하나님의 지팡이가 되게 하신다.

거룩한 땅에서 신을 벗어야 하나님의 능력으로 옷 입혀진다.

 

먼저 교훈으로 인도하시고 후에 영광으로 영접하신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이 요단물을 밟을 때 갈라지고, 가나안이 열린다.

성경을 즐거워하고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이 복 있는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