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12-03 주일설교
본문: 누가복음 14:25-33
제목: 능히 내 제자
1. ‘수많은 무리’는 망대도 세우지 못하고 전쟁도 승리할 수 없다
‘수많은 무리’가 교회에 모이면 부흥했다고 기뻐한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 부흥에 전혀 기뻐하지 않는 것 같다.
돌이키사 이르시되 세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하신다.
‘능히 내 제자’가 되는 것은 망대를 세우는 것과 같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질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28-30)
망대를 세우는 것은 내 인생의 망대 곧 내 운명의 축복과 영광을 세우는 것이다.
망대를 ‘능히 이루지 못하는 것’은 능히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이다.
준공하기까지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않으면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할 것이다.
보는 자가 다 비웃으며 공사를 시작만 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할 것이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인 것을 깊이 생각도 해보지 않고
보기 좋고 듣기 좋고 말하기 좋은 것만 바라보고 가다가는
공사를 시작만 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여 비웃음만 사게 될 것이다.
‘능히 내 제자’가 되는 것은 전쟁에 승리하는 임금과 같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31-32)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인 것을 모르고 가는 사람은
전쟁을 하기 전에 미리 깊이 생각하여 계산하지 않고 임했다가 패망하고 마는 임금과 같다.
수많은 무리들은 이와 같이 망대도 세우지 못하고 전쟁에 이기지도 못하고 패망하고 만다.
그 말은 ‘능히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구원’도 ‘천국’도 없다는 말이다.
제자 수준 따로 있고 아닌 수준 따로 있다고 안심하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사탕발림과 미혹에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7:13-16)
그들의 성품과 삶의 열매를 보면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입은 ‘양의 옷’ 곧 외모와 외식, 학력과 경력만 보고
‘노략질하는 이리’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까지 교회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은
구약 이스라엘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무리들과
중세 카톨릭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무리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들의 운명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의 다수의 운명과 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그들의 다수는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신 자들이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인데, 그들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하셨다.
홍해를 건넌 다수들이여, 나라의 본 자손들이여, 주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눅13:28)
2. 부모 처자 형제 자매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 되지 못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26)
마태복음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하셨다.(10:37)
능히 주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부모형제 혈연 사랑에다가 악세사리 하나 더 차는 것이 아니다.
주를 따른다고 하는 ‘수많은 무리들’, ‘나라의 본 자손들’은 악세사리 하나 더 차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 속 어디에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먹으로 돌판에 그리스도를 쓸뿐이다.
부모 처자 형제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인연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다.
혈연을 더 사랑하는 자는, 주님을, 마음으로 사랑할 수 없고 마음으로 따를 수 없다.
머리 돌판에서 먹물로 맴돌 뿐이다.
신명기 33장에서 모세는 동일한 내용으로 레위 지파가 곧 주의 제자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는 자기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으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9-10)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킨다면, 혈연 관계가 하나님보다 우선일 수 없고,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주의 법도와 율법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고,
예배도 제사도 제대로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혈연 관계가 중심이고 우선인 사람은 주의 말씀과 언약을 지킬 수도 없고
그 말씀을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고 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없다는 말씀이다.
능히 주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담학 가르침처럼 가정 행복이 최우선인 사람들은 주의 제자가 능히 될 수 없고,
오직 능히 혈연의 제자가 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말 혈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도, 혈연도 자신 같이 사랑할 수가 없다.
자기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왕이고 주인이고 선장이고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혈연도 말뿐이지 오직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자기 사랑일 뿐이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으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눅14:27)
‘능히 내 제자’가 되는 길은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죽은 십자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 ‘능히 내 제자’의 길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능히 내 제자’의 길이다.
내 지혜와 의지와 노력으로는 될 수가 없는 길이고 삶이다.
무슨 수로 내가 죽은 ‘자기 십자가’를 질 수 있을까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길이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길이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내 의지와 결단으로는 작심3일로 끝날 뿐이다.
말로야 입술로야 먹물로야 언제라도 가능하겠지요, 능히 주의 제자가 되겠지요.
그러나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이다.
선지자와 사도들은 발도인들과 위그노들은 주님을 따라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다.
능히 주의 제자가 되어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다.
그들에게 주의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었다.
어떤 환경과 처지, 어떤 박해와 처형에도, 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다.
마음판에 영으로 쓴 주의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되어
주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말씀이 마음에 생각에 기록되어 행함으로 살았다.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지었다.
망대를 세웠고 마귀와의 전쟁에서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겼다.
사망도 생명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하였다.
자기가 죽지 않는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도 이웃 사랑도
형식적이고 외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그 마음을 차지하지 않으면,
혈연 사랑 이웃 사랑 다 자기 사랑의 포장이요 겉치레일 수밖에 없다.
첫째 계명 없이 둘째 계명 있을 수 없고, 두 계명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순서가 있을 뿐이지 하나로 전체인 것이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는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살의 살인일 뿐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항상 내 몸에 짊어짐이요
예수를 위하여 자기가 항상 죽음에 넘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11)
우리는 질그릇인데 보배이신 그리스도 예수를 중심에 모시고 산다.
심히 큰 능력은 하나님께 있지 우리 질그릇에 있지 아니한다.
우리가 약한 그때에 곧 강하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해도 싸이지 아니하고,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박해를 받아도 버린 바 되지 아니하고,
거꾸러드림을 당해도 망하지 아니한다.
나의 고난 가운데서 하나님의 능력은 더욱 온전해지고 예수의 생명은 우리 몸에 나타나게 된다.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속량과 승천과 영광을 낳았고,
순교자들의 죽음이 예수의 생명을 더욱 나타나게 했고,
그로 인하여 참교회들을 세웠고, 참된 개혁과 르네상스를 낳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 참된 부흥과 세상의 변화, 르네상스를 낳았다.
자기 십자가가 아닌 자기 영광을 지고 주님을 따르는 자들은
교회를 장사하는 집 강도의 소굴로 만들고 세상을 더욱 암흑으로 패망으로 만들 뿐이다.
자기 성공을 지고 주님을 따름으로 예수를 팔고 예수를 죽이고 세상을 더 잔인하게 죽인다.
4.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
너희 중의 누구든지, 수많은 무리 중의 누구든지, 한 사람의 예외도 없이,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하신다.
자기의 혈연 자기 자신을 버려야 하고 그 외 자기의 모든 소유이다.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는 그물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렸다.
입으로는 사랑을 말하나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르는 사람들은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한다.
자기 소유 중 어느 것 하나 버리지 못하는 사람들이,
비 오는 날 미친 년 보따리 챙기듯이 보따리만 잔뜩 움켜쥔 자들이, 주의 제자라고 한다.
주의 말씀을 준행한다고 하고 율법을 가르친다고 하고 예배를 드린다고 한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면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할 뿐이다.
철학과 헛된 속임수에 사로 잡혀서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르는 것이지,
그리스도를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먹으로 돌판에 쓴 ‘먹물개혁’에 오백년 동안 속아
교리들 신조들로만 교회를 세우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행함은 온데간데 없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마 25장)도,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사 58장)도,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약 1:27)도 찾을 길 없다.
더욱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인 마음, 뜻, 목숨을 다한 하나님 사랑의 첫째 계명도,
이웃을 자신 같이 사랑하는 이웃 사랑의 둘째 계명도, 입술 뿐, 머리의 돌판 먹물 뿐,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리 멀리 떠나 있을 뿐이다.
이 모든 것의 원인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부모 처자 형제를 주님보다 더 사랑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지 못하고,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못하고, 입술로만 머리로만, 먹물로만, 주님을 따르기 때문이다.
혈연을 주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다고 하셨다.
“자기 목숨을 얻는 자는 잃을 것이요,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는 자는 얻으리라”(마10:39)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맞는)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하셨다.
주님을 깊이 생각하고 충성을 다해, 망대를 준공하고, 전쟁에 승리하는, ‘능히 내 제자’가 되자.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12/17 주일설교, '거듭나지 아니하면', 요 3:1-8 (1) | 2023.12.17 |
---|---|
12/10 주일설교, '진리의 영, 미혹의 영', 요일 4:1-6 (1) | 2023.12.10 |
11/26 주일설교, '고난과 오래 참음', 약 5:7-11 (1) | 2023.11.26 |
11/19추수감사절설교, '추수와 심판대', 레 23:39-43 (1) | 2023.11.19 |
11/12 주일설교, '믿는 도리를 굳게 잡으라', 히 4:12-14 (1) | 2023.11.1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