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04-21 주일설교
본문: 딤전 6:3-8
제목: 자족하는 마음
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라야 한다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딤전6:3)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은 신구약 성경을 통해 하나님이 직접 계시한 말씀이라 할 수 있고,
경건에 관한 교훈은 사도와 선지자들이 계시를 받아 가르친 교훈이라 할 수 있다.
이 둘은 합해서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다.
경건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는 것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의 터 위에,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워졌다.
가장 중요한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이다.
구약 율법은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받는 길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초등교사이다.
그러니 성경을 아무리 교리로 신조로 율법 조문으로 해석을 잘하고 요리를 잘 해도,
그것으로는 구원을 받을 수가 없다. 지옥 형벌과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오직 우리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받아 천국 백성이 된다.
그 믿음은 물과 성령으로 거듭남으로 은혜로 선물로 받은 믿음이어야 한다.
율법조문, 교리조문, 철학조문을 앞세우다 보니 그리스도의 말씀을 잃어버렸다.
순수하고 단순하게 말씀을 듣고 그대로 행하는 것이 중요하다.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
머리 돌판에 먹으로 쓴 것들은 입술로만 하나님을 경외하고 마음은 하나님에게서 멀게 한다.
오직 영으로 마음판에 쓴 말씀들만이 행하게 되고 사람들을 변하게 한다.
그 변화된 믿음과 행함이 교회가 급속히 성장하는 동력이었고, 세상을 놀라게 하였다.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은 위그노들은 성경을 교리로 보지 않고 신조 체계를 만들지 않았고,
순수하고 단순하게 그리스도의 말씀 특히 산상설교 팔복을 말씀 그대로 실천하려 하였고,
다른 모든 성경 말씀도 순수하고 단순한 그대로 이해하고 영으로 살고자 하였다.
우리도 이제는 성경을 교리로 신조로 율법 조문으로 철학으로 보는 늪에서 헤어나와야 한다.
주님은 내 말이 곧 영이고 생명이라 하셨으니 우리는 그리스도의 말씀을
영으로 생명으로 이해하고 마음에 담아 그대로 행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주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그대로 실천하는 자가 복이 있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께 열심은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은 이스라엘을 닮지 말아야 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살면 가나안 땅도 사사시대 암흑의 땅이 되고 만다.
사도 바울은 교훈도 복음을 따르는 것임을 강조하고 있다.
“이 교훈은 내게 맡기신 바 복되신 하나님의 영광의 복음을 따름이니라”(딤전1:11)
그리고 이 교훈의 목적을 바울은 명쾌하게 말씀하고 있다.
“이 교훈의 목적은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과 거짓없는 믿음에서 나오는 사랑이거늘
사람들이 이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나
자기가 말하는 것이나 자기가 확증하는 것도 깨닫지 못하는도다”(딤전1:5-7)
청결한 마음과 선한 양심은 우리의 내면의 성결을 의미한다.
속을 먼저 깨끗하게 해야 겉도 깨끗해질 수 있다.
주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어야 함을 강조하는 이유이다.
그 성결에서 나오는 사랑이 교훈의 목적이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역사하는 것이 없다면 그 믿음도, 마음도, 양심도, 헛된 것이다.
거짓 없는 믿음은 내 마음 영혼 중심으로부터 나오는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단순하게 믿고 순수하게 행해야 한다.
우리는 성경에서 책망과 교훈을 받아야 하고 바르게 되고 의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여태 교리를 조문화 한 것에만 사로잡혀 살아 왔다.
그러니 행함이 없고 믿음이 역사하는 사랑이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지도 못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항 능력도 갖추지 못하고 있다.
2. 다른 교훈을 하는 자는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한다
“누구든지 다른 교훈을 하며 바른 말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을 따르지 아니하면 그는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니
이로써 투기와 분쟁과 비방과 악한 생각이 나며 마음이 부패하여지고
진리를 잃어 버려 경건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는 자들의 다툼이 일어나느니라”(딤전6:1-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과 경건에 관한 교훈이 아니면, 그것이 바로 다른 교훈인 것이다.
믿음으로 역사하는 사랑은 없으면서 이 사랑에서 벗어나 헛된 말에 빠져
율법의 선생이 되려 하는 자들이 가르치는 것이 다른 교훈이다.
사도 바울이 교회를 세우는 시대에 이미 교회 안에서 다른 교훈을 가르치는 자들이 많았다.
다른 교훈을 하는 모든 형제들에게서 떠나라고 한다.
그런 자들은 교만하여 아무 것도 알지 못하고 변론과 언쟁을 좋아하는 자들이라고 한다.
그들의 실행은 투기와 분쟁과 비방이요 악한 생각이 나서 마음은 부패하고 만다.
그래서 결국 그들은 진리를 잃어버리고 경건마져도 이익의 방도로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과의 관계마져도 자기 이익을 위한 수단과 방법으로 전락한다는 것이다.
교리로 율법으로 철학으로 쌓은 아성들이 결국은 당파싸움으로 수많은 교단을 낳았다.
발도인들은 유럽 어느 곳에서 만나건 동에서 만나건 서에서 만나건 그대로 하나가 되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성경을 단순하고 순수하게 믿으니 만나면 하나가 되었다.
교리로 먹으로 돌판으로 싸울 일이 없었다. 자기네 교단을 내세우지 않았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니,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딤후3:5)고 한다.
사람의 지혜와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가르치니 헛되이 하나님을 경배하게 한다.
교회 안에 다른 예수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교훈이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을 지배해 왔음을 알아차려야 한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 곧 이스라엘이 멸망한 것처럼, 멸망의 세대들이 되고 말 것이다.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 발도인들을 통해서 전해온 전통으로 돌아가야 하는 이유이다.
가르친 전통이 다르다는 것은 영 줄기가 다르다는 것이요, 뿌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인간들은 먹물로 진리와 교훈을 삼고 행하는 것은 오직 탐욕과 이익을 따를 뿐이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는 말할 것 없고 교회마저도 이들의 온상이 된지 오래이다.
무엇으로 이를 바르게 개혁할 수 있겠는가?
마음 속 구조와 행함의 구조가 동일한 사람들은 말뿐이지 달라질 수가 없다.
초대교회가 세상을 바꾼 것처럼, 발도인들이 꾸준히 개혁을 주도하다가 유럽 전체를 13세기에
폭발적 성장으로 변화시키고 그것이 14세기 15세기의 르네상스로 이어진 것처럼 해야 한다.
개혁은 교회로부터 시작해서 사회 전체로 나아가야 한다.
그리고 교회는 무슨 수로 바꾸나요?
내가 변하지 않았는데 가정이 변할 리 없고 교회가 변할 리 없고 세상이 변할 리 없지요.
초대교회처럼, 믿음에, 행함에, 소속에, 변함이 있는 회심이 나에게서부터 있어야지요.
그 가르치고 행함의 전통이 발도인들에게 위그노들에게 천년이 넘도록 이어졌지요.
그런데 우리는 16세기 종교개혁이 그 이후 5백년의 교회 전통이 개혁을 이루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들은 로마교회를 개혁하였을 뿐이요 그것도 정부 권력과 야합하여 하였고
로마교회 자리를 그대로 차지하였을 뿐이고, 하는 짓은 달라진 게 없었다. 말과 글만 요란하였다.
로마교회는 기독교 공인이라는 황제 덕에 기독교 왕국(크리스텐덤)을 세웠지만
천년 동안 그들이 한 짓은 유대교회를 그대로 확대 재생산한 것이었고,
참 교회들을 잔인하게 대량학살하고 입술 따로 마음 따로 살며 세상을 암흑시대로 만들었다.
개혁교회가 저지른 학살도 이제야 밝히 드러나고 있다.
어거스틴은 참 교회였던 도나투스파를 대량학살하게 하였고,
루터와 칼빈은 참 교회로 돌아가자는 제세례파를 대량학살하게 하였다.
어찌 똑같은 악행을 저지르면서 자기들을 옳다고 하고
정부 권력과 야합하여 권세와 이익을 누리고,
세상을 날로 어둡고 무질서하게 만드는 주범이고 원인 제공자가 아닌가 말이다.
3.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이익이 된다
다 자족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이다.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고 있다.
구약 4천년, 신약 2천년, 긴 역사에 교회는 세상에 변함없이 군림하고 있었지만
그들이 만든 열매는 흑암이요 혼돈이요 공허였을 뿐이다.
유대교회로 시작해서 로마교회로 개혁교회로 현대교회로 그 전통을 이어왔지만
진리는 말뿐이었고 따른 것은 하나 같이 마음 속 탐욕과 자기 이익이었다.
이제라도 수천년 동안 묵고 또 묵은 땅에 더 이상 기경하지 말아야 한다.
수천년 동안 뒤덮은 가시덤불에 더 이상 파종하지 말아야 한다.
그럴려면 어떤 환경에서든 고난에서든 자족하는 마음이 있어야 한다.
그 경건이 결국은 큰 이익이 된다는 것을 알고 참고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인내’는, ‘사건들을 통제하지 않고, 걱정하거나 서두르지 않고,
목적을 이루기 위해서 절대로 힘을 사용하지 않는 것’이다.
초대교회가 남긴 책 중에서 가장 강조하는 덕목이라고 한다.
이 인내가 로마를 급속히 기독교화 하였고,
참된 하나님의 나라를 하나님의 능력으로 지상에 세우게 하였다.
세상이 아직도 그래도 빛이 있는 것은 사실은 그 뿌리에 초대교회가 있고
그 초대교회의 인내가 긴 역사를 통해 발효하고 열매를 맺은 결과라 할 수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때까지 흠도 없고 책망 받을 것도 없이 이 명령을 지키라 하신다.
그리스도의 말씀이요 경건에 관한 교훈이다.
참된 경건으로 인도하는 것도 자족하는 마음이다.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다.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빌4:11-13)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이고, 부하려 하는 자들은 파멸과 멸망에 빠지게 한다.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은즉 족한 줄로 알아야 한다.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이익이 되는 것을 경험하게 하신다.
내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실 날이 온다.
풍부에도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자. 자족하는 마음을 배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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