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4/7 주일설교,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골 1:28-29

강대식 2024. 4. 7. 12:15

2024-04-07 주일설교

본문: 1:28-29

제목: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

 

지난 주에 알렌 크라이더가 쓴 회심의 변질이라는 책을 읽었다.

초대교회의의 회심을 돌아보는 책이었다.

발도인들의 역사를 알고나서 초대교회에 관심을 갖고 책들을 찾아보니 너무 없었다.

 

그러다가 아나뱁티스트들이 그래도 초대교회를 찾고 복원하려는 노력을 만나게 되었다.

개혁교회는 말로만 초대교회 초대교회 하지 실제로는 그들을 찾는 것을 보지 못했다.

세상의 학문 지식으로 성경에서 교회론을 구성할 뿐이었다.

 

역사적으로 증거를 가지고 초대교회를 찾아가는 책은 내 28년 목회에 처음 만났다.

크라이더는 초대교회의 회심은 세 가지 변화가 수반됨을 확인하고는

큰 충격을 받았다고 기술하고 있다. 나도 충격과 감동을 받았다.

 

그 세 가지를 B라는 단어로 요약했다.

즉 신앙 belief, 행동 behavior, 소속 belonging 의 세 가지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려면,

우리도 세 가지에서 회심으로 변화가 있어야만 한다.

 

1. 회심으로 믿음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첫째가 믿는 것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세상을 믿던 사람이 하나님을 믿고, 나를 믿는 사람이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내 육신과 마음을 믿던 사람이 내 안에 오신 성령을 믿는 것이다.

 

성경에서 말씀하는 회심은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를 말씀한다.

땅에서 하늘로, 세상에서 하나님께로, 내가 왕에서 그리스도가 왕이 되는

그야말로 코페르니쿠스적인 변화가 내 마음 중심에서 일어나는 것이다.

 

무슨 수로?

사람의 지혜와 능력으로는, 심리학으로는, 세상 그 어떤 학문으로도 할 수 없는 변화이다.

먼저 그것들은 머리 돌판에만 쓰는 먹물들이요 죽이는 것임을 알아차려야만 한다.

말과 글은 그럴싸하고 완벽에 가깝지만 그것은 잔과 대접의 겉만 바꿀 수 있을 뿐이다.

 

사람의 마음 속에 영혼 속에 변화가 올려면 다시 태어나고 거듭나야만 한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야 한다.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너희가 거듭난 것은 썩어질 씨로 된 것이 아니요 썩지 아니할 씨로 된 것이니

살아 있고 항상 있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되었느니라”(벧전1:23)

 

성령의 기적적인 역사도 없고, 말씀의 기적적인 역사도 없다면,

그 사람은 교회를 아무리 오래 다녔다 할지라도,

그 사람은 태어난 육신 그대로 아무 변화 없이 원시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이다.

 

성령과 말씀은 균형과 보완을 이루어야만 한다.

성령 세례를 받고 거듭난 사람은 말씀을 모르면 신비주의 성령운동 은사주의만 알게 된다.

말씀만 교리로 철학으로 아는 사람은 지성주의 율법주의 누룩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세상 지혜와 세상의 보이는 것들과 사람만 의지하고 믿는 믿음은

영으로 말씀으로 거듭나면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아버지 하나님을 섬기고 성령을 모시는 믿음으로 변하게 된다.

 

믿음은 영접하는 것이지 사람의 지혜와 의지와 감정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여야 한다.

 

믿음은 또한 우리에게서 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 선물로 받은 것이어야 한다.

그 은혜에 의하여 그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

성령의 역사로 그 은혜의 역사로 믿어지는 것이지 내 결단으로 믿는 것이 아니다.

 

2. 회심으로 행함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나서

하나님의 은혜와 선물로 받은 믿음으로 회심의 변화를 시작한 사람은

이제 말씀의 가르침을 받아서 행함에 변화가 와야 한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2:28)

누구에게 가르침을 받느냐가 믿음생활 전반과 천국행의 열쇠를 좌우하게 된다.

사도들은 주님이 직접 가르치셨고, 사도들은 그 제자들을 가르쳤고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하였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사도의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지 않음으로 교회들은 항상 부패하였다.

사도들의 가르침은 성경에 기록된 것이었고,

그 공동체는 로마교회가 아니라 발도인 공동체를 통하여 지켜 왔다.

개혁교회와 현대교회는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지켜온 그 발도인 공동체에 관심도 없다.

 

믿음에 변화가 오니까 행동에 변화가 오는 것이다.

그 믿음에서 이웃 사랑으로 역사하는 행동이 나오는 것이다.

그 믿음과 행함이 입증이 되고 확실할 때에 세례를 주고 공동체에 소속하게 했다고 한다.

 

그러기까지 최소 3년을 신앙문답을 가르치면서, 행함의 본을 보이면서, 행함을 가르쳤다.

3년은 더 걸리기도 하고 덜 걸리기도 했다.

이 초대교회의 회심의 변화 과정이 변질되기 시작한 것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가 313년에 기독교를 공인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였다.

 

로마 제국이 기독교 국가가 되면서부터 기독교인 대량생산의 시대가 온 것이다.

대량생산을 할려니까 3년의 신앙문답 시간은 너무 길고 참을 수 없는 것이 되었다.

신앙도, 행함도, 소속도, 단기 속성코스가 되고, 변화는 형식적이고 간소화가 된 것이다.

어거스틴이 그 주도자가 된 것을 입증하고 있다. (기독교왕국으로 제도화되는 시기)

 

그 회심의 변질은 로마 국교 공인으로부터 시작하여 종교개혁시대에도 현대 교회에도

그대로 그 전통이 전수되고 있는 것이다.

전도, 전도 하면서 사람들을 끌어들이고 단기코스로 구원의 확신을 집어넣고

6개월에 학습 6개월에 세례로 교인이 되고 1년 지나면 집사 된다.

심지어는 영접 기도 한 번 따라하면 천국 백성이 된다.

 

믿음, 행함, 소속의 변화는 찾을 길이 없고 로마교회가 대량생산하던 방법 그대로이다.

3B의 변화가 없는 회심이니 나도 교회도 세상도 변화가 있을 수가 없지요.

화려한 교회 건물, 네온 싸인의 십자가가 아무리 빛을 발해도 세상은 어둡기만 하다.

 

3B의 변화가 회심으로 구성된 공동체 곧 초대교회는 전도의 필요성을 전혀 강조하지 않았다.

말이 아니라, 믿음의 행함의 본을 보이면 사람들은 그 매력에 이끌리어

그 어려운 신앙문답 과정도 마다하지 않고 사람들은 찾아 왔고 교회는 급성장을 이루었다.

 

초대교회가 세워지는 곳마다 번성하며, 세상은 변화하였고 르네상스가 이루어졌다.

13세기에는 전 유럽에 교회가 폭발적으로 부흥 성장하였고,

그 영향이 14세기 15세기의 르네상스로 나타났다.

 

믿음으로, 행함으로, 공동체 소속으로 3변화의 회심으로 세워지는

참 교회의 부흥 성장이 세상을 변화시키며, 산업 문화 전반의 변화, 르네상스를 낳은 것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진 참 성도와 참 교회가 이룬 참 열매였다.

왜 이렇게 이 붙어야 하느냐? 가짜와 거짓이 만연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가르침은 행동하는 가르침이었고, 죽음을 불사하는 살아 있는 행동하는 믿음이었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들의 행함의 역사를 보고 사람들은 매력에 끌렸고 교회는 급성장했다.

그 행함은 산상설교의 팔복을 실천하고, 마태복음 25장의 지극히 작은 형제에게 한 행함이었고,

이사야 58,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 흉악의 결박 풀어주고 주린 자에게 양식 주는 행함이었고,

야고보서 1장의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가운데 돌보는 정결한 경건의 행함이었다.

 

3. 회심으로 소속에 변화가 있어야 한다.

 

믿음으로 행함으로 변화하는 회심은 그 공동체에 소속함으로 완성되었다.

형제로 자매로 그리스도의 몸 안에서 각 지체로 연합하였고, 운명을 같이 했다.

인종의 차별이 없었고, 남녀의 차별이 없었고, 귀족과 노예의 차별이 없었다.

원수를 사랑하고 위해서 기도했고, 가진 것을 서로 나누었고, 한 가족 같았다.

핍박도 함께 받았고, 사자굴에도 함께 들어갔고, 차별 없이 임맞춤으로 죽음을 맞이했다.

 

그저 교회라고 소속만 하는 것은 아무 의미가 없다.

행함이 없는 믿음은 죽은 믿음이고, 그 교회는 장사하는 집이고,

멸망으로 인도하는 교회이고,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는 곳이다.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 곳에 쫓겨나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다른 예수 다른 영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는다. (분별이 되어야지요)

예수님이 오셨던 시대에 유대교회를 병들고 부패하게 만든 것은 무엇이었는가?

 

예수님이 조심하라고 하신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이고 율법조문들이었다.

그 이후 로마교회도 개혁교회도 현대교회도 부패하게 만든 것이 무엇이었는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의 누룩의 변형인 교리조문, 철학조문들이었다.

 

율법 조문, 교리 조문, 철학 조문들은 지식으로는 전혀 부족함이 없고 완벽에 가깝다.

인간의 지혜와 학문은 날로 발전하여 현대 문명을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속을 들여다 보면, 그 화려함과 완전함 속에서는 시체 썩는 냄새가 진동하고

이권 싸움 파당 싸움 탐심의 우상숭배가 뒤끓고 있다.

 

흑암과 혼돈과 공허가 하나님의 창조 이전의 세계와 마찬가지로 지배하고 있다.

눈뜬 맹인들은 이를 보지 못하고 느끼지 못하고 당연시 한다.

우리 주님은 이를 심판하시기 위해서 오셨다고 하셨다.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9:39)

바리새인들이 우리도 맹인인가하니, 예수님은 다시 말씀하셨다.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그 심판이 이루어질 때 비로소 그는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워지기 시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가 아니면, 그리스도와 영으로 연합하지 않고서는,

완전한 자’(주님의 제자)로 세워질 수 없음을 인식해야 한다.

, 사도 바울이 그리스도 안에서라고 하는지를 알아차려야만 한다.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완전히 행하는 자로 세워지려면, 이를 위하여 나도,

내 속에서 역사하시는 이의 역사를 따라 힘을 다하여 수고를 하여야 한다.

그저 교회가 아니고, 운명을 같이 하는 믿음과 행함의 공동체에 소속하여야 한다.(참 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