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8/4 주일설교, '상 주시는 하나님', 고전 9:24-27

강대식 2024. 8. 4. 20:14

2024-08-04 주일예배

본문: 고전 9:24-27

제목: 상 주시는 하나님

 

1. 하나님은 상 주시는 분이시다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전9:24)

 

믿음의 경주에서 달리는 자세와 달리는 목표를 말씀해 준다.

다 달릴지라도 일등 상, 금메달은 한 사람만 받는다. 그래서 금메달이 귀한 것이다.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고 하신다.

 

향방 없는 달음질, 허공만 치는 싸움은 하지 말아야 한다.

열심히 달리는 것만이 다가 아니다.

올바른 지식을 따르지 않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않는 열심은

이스라엘의 멸망을 가져올 뿐이었다.

 

우리의 상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주시는 부름의 상이어야 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오직 내가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을 잡으려고 달려가노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3:14)

 

우리의 상은 하나님이 부르신 사명의 상이요 소명의 상이다. 그것이 우리의 푯대이다.

내가 만들고 내가 선언하는 사명, 소망, 야망이 아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 예수께 잡힌 바 된 그것이어야 한다.

세상 안에서,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에 잡힌 바 된 그것이 아니다.

 

달려갈려면, 이미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과거가, 귀한 것이든 추한 것이든, 뒤에 것은 잊어버려야 한다.

과거에 매인 사람은 앞으로 달려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실존주의 철학을 인용하며,

과거에 매이는 것을 죄라 하고, 미래를 향해 달려가는 것을 구원이라 한다.

죄와 구원을 가볍게 여기고 소위 철학적 신학자들이 말장난을 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 이룬 일, 겪은 일은 그것이 귀한 것이든 추한 것이든,

잊어버려야, 앞으로 목표를 향해 달려갈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공을 세우면 거기 머물지 말라(공성(功成而不居)는 노자의 유명한 말이다.

말이 아무리 멋 있어도 그것을 살지 못하면 공염불이고 허공을 칠 뿐이다.

 

광야 연단 중에서도 하나님이 인도하시는 인도를 따라 달려가야 한다.

모세와 이스라엘처럼, 구름 기둥 불 기둥을 따라 행진해야 한다.

구름이 떠오르면 행진하고 머물면 한달이고 일년이고 진영에 머물며

여호와의 명령을 따라 진을 치며 행진하며 직임을 지키는

모세의 광야 행진법을 우리도 배워야 한다.

 

모세는 40년을 광야에 머물러야 했지만, 그 결과는 40년의 영광이었다.

아브라함은 25년을 기다려야 했지만, 그 결과는 대를 이을 믿음의 후손 이삭이었다.

욥은 모든 재산과 10남매를 잃고 목숨까지 위태한 고난을 겪었지만,

그 결과는 갑절의 축복과 10남매와 백사십년을 더 살며 4대의 손자를 보는 복을 받았다.

요셉도, 다윗도, 하나님의 광야 행진법에 따라, 고난 후 영광을 누렸다.

 

그러나 고난의 연단 없이 왕권의 복을 받은 사람들은 멸망으로 끝이 났다.

사울 왕이 그랬고, 솔로몬 왕이 그러했다.

손 쉬운 복과 형통이 우선은 좋은 것 같아도, 끝은 비참하다.

 

구제할 때 기도할 때 금식할 때 외식하는 자들은 상을 이미 받았다고 하셨다.

세상 사람들이 보고 알아 주었기 때문이다.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께서 상으로 갚으신다고 하셨다.

 

의를 위해 박해를 받는 것은 상이 크다고 하셨다.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5:10-12)

 

하나님은 우리를 고난 중에 만들어 쓰시기 때문에 그 상이 크다.

하나님이 주시는 어떤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울 때 상이 크다.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울 때

하나님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상을 주신다.

 

하나님은 반드시 상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있다.

사무엘을 하나님께 서원대로 드리며 하는 한나의 찬양 고백이 우리의 찬양 고백이 되어야 한다.

내 마음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즐거워하며 내 뿔이 여호와로 말미암아 높아졌으며

내 입이 내 원수를 향하여 크게 열렸으니 이는 내가 주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니이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시기도 하시며 여호와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부하게도 하시며

낮추기도 하시고 높이기도 하시는도다

가난한 자를 진토에서 일으키시며 빈궁한 자를 거름더미에서 올리사

귀족들과 함께 앉게 하시며 영광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시는도다.”(삼상2:1-8)

 

한나가 경험하고 만난 하나님을 우리도 만나고 경험해야 한다.

하나님은 감당 못할 시험을 주지 않으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능히 감당하게 하심을 믿으라.

 

2. 상을 받으려면 다른 모든 일에는 절제해야 한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9:25)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는 사람도 다른 모든 일은 최대한 절제한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필요한 일 외에는 다른 모든 일은 멀리하고 집중한다.

선택할 때부터 다른 모든 것은 없을 무가 되는 것이다.(존재와 무, 싸르트르)

 

태릉 선수촌, 합숙 훈련, 기타 등등은 목표의 메달을 위한 절제이다.

믿음으로 사는 우리의 절제는 썩지 아니할 영원한 면류관을 얻기 위한 절제이다.

세상과 세상에 있는 것들을 정욕과 자랑으로 취하지 않고 멀리해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거나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은,

다른 모든 일에 절제하지 못하는 것이다.

하나님과 세상을 겸하여 섬기는 것만큼 어리석은 것은 없다.

 

자기를 위해 땅에다 보물을 쌓는 사람은

좀과 동록이 해하고 도적이 구멍을 뚫고 도적질해 갈 것이다.

오직 자기를 위해 하늘에다 보물을 쌓아야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고 도둑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둑질도 못한다.

 

자기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둘 것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자는 모든 것을 더해 받을 것이다

 

썩지 않을 면류관을 얻기 위해서도 다른 모든 것을 절제해야 한다.

하늘과 땅, 성령과 육체, 하나님과 재물, 이 둘은 겸하여 가질 수 없다.

이 둘 다 가진다는 자는 실상은 땅과 육체와 재물만 탐하는 자이다.

 

땅과 육체와 재물을 절제하지 못하는 자는

달음질 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하고

싸우기를 허공을 치는 것 같이 하는 자이다.

 

정말 성령으로 거듭나고 말씀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내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여기고 배설물로 여기고 버릴 것이다.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힌 것 외는 아무 것도 알지 않기로 작정할 것이다.

그렇게 결단하는 것이야말로 상 외에 다른 모든 것을 절제하는 것이다.

 

부름의 상 외에 모든 다른 것을 절제하지 못한다면,

부름의 상은 일찍암치 멀어진 거나 다름 없다.

그러면서도 교회 생활에 흔연스럽게 만족하고 있다면,

마지막에는 이스라엘과 같은 운명으로 끝이 나고 말 것이다.

 

그 이스라엘 백성과 지금의 교회와 내가 다르다고 생각한다면,

거짓 선지자들의 사탕발림에, 미혹의 영에, 사로잡힌 결과이다.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 다 같은 영 줄기이고 쌍둥이들이다.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이 살고 맺은 열매를 그들은 맺을 수 없었다.

발도인들은 오직 성경, 오직 성령을 따라, 새로운 피조물로 변화되었고,

주 예수님의 말씀을 단순하게 그대로 믿고 삶의 실천으로 의의 열매들을 맺었다.

 

주님은 외식하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을 향해, 말씀하셨다.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너희가 어떻게 지옥의 판결을 피하겠느냐”(23:33).

 

나라의 본 자손들로 안심하고 있다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갈 것이다.

부름의 상 외에 다른 모든 것에 절제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에 사로잡혀 따르는 것이 얼마나 무섭고 놀라운 일인지를,

이제라도 눈을 뜨고 분별하여 알고, 그들을 떠나고, 인사도 하지 말기를 바란다.

 

3.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해야 한다

 

내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함은

내가 남에게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까 두려워함이로다”(고전9:27)

 

발도인들은 내 몸을 쳐 복종하게 하여 초대교회의 사도들이 가르친 전통을 그대로 지켰다.

16세기 루터와 칼빈의 종교개혁 세력들은 내 몸을 쳐 그 전통에 복종하지 않았다.

자기들이 만든 교리체계에 만족하였고, 로마교회의 권세를 차지하는 데 만족하였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발도인들은 참 교회의 실상과 역사를 온전히 이루어 갔다.

종교개혁 세력들은 초대교회의 실상도, 역사도, 찾지 않았고,

정부 권력과 야합하며, 무너져가는 로마교회의 빈 자리를 차지하는 데 급급하였다.

 

초대교회의 뿌리와 영 줄기를 따른 사람들은, 발도인들, 알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이었지,

16세기 종교개혁 세력들이 결코 아니었다. 진리의 영이 아니고 미혹의 영이었다.

죽이는 교리조문들이었고, 살리는 영이 아니었다.

 

내 몸을 쳐서, 초대교회와 발도인 교회의 실체에 복종시키지 않으면,

실컷 예수 믿은 후에 자신은 도리어 버림을 당하게 될 것이다.

반복되는 율법주의에, 바리새인의 의에, 그 누룩에, 그만 속아야 한다.

유대교회가 로마교회로 개혁교회로 현대교회로 명칭만 다를 뿐 역사를 반복하고 있다.

새 포도주를 새 부대에 넣지 않으면, 큰 상이 아니라, 큰 벌을 받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