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3-02
본문: 창 35:1-7
제목: 엘벧엘의 제단
1. ‘엘엘로헤이스라엘’은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지은 제단이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 땅 세겜 성읍에 이르러 그 성읍 앞에 장막을 치고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엘로헤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창33:18-20)
‘엘엘로헤이스라엘’은 ‘하나님, 이스라엘의 하나님’의 뜻이라고 성경 난하주에 나와 있다.
하나님 이름 ‘엘’이 두 번 들어가고, 자기 이름 ‘이스라엘’이 나란히 들어가 있다.
하나님을 두 번 불러 높이고, 자기 이름도 한 번 불러 높인 제단 이름이다.
야곱은 밧단아람에서 라반 삼촌 밑에서 20년을 섬기고 일가를 이루고 큰 재산을 형성했다.
20년 만에 만난 형 에서에게 세일로 올라가리라 약속해 놓고
야곱은 그곳에 자기를 위하여 집을 짓고 막들을 세우고 숙곳이라 이름하였다.
그곳에서 자기 좋을 대로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제단을 쌓고 만족한 것이다.
아무데나 내가 자리 잡는 곳에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예배만 하면 되는 것으로 여겼다.
종교적 의무를 다하였고,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 것 같았다.
그런데 그 다음 장인 창 34장에서 큰 재난이 벌어지고 만다.
하나님이 그 제단과 예배를 받으셨다면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일어난다.
아마도 그 사건이 없었다면 이스라엘은 만족하고 계속 거기에 머물렀을 것이다.
하나님은 아직 그를 높이지 않았는데 하나님 옆에 자기를 스스로 높인 것 같다.
사울이 아말렉을 물리치고 자기를 위하여 기념비를 세운 것과 같다.
그곳에서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을 쌓았는데
하나님은 그 예배를 받으시지 않은 것 같은 큰 재앙이 벌어지고 만다.
하나 밖에 없는 외동딸 디나가 세겜의 추장 아들에게 강간을 당하고 결혼을 강요받는다.
이에 시므온과 레위가 할례를 조건으로 약속하였다가 그들이 할례를 행하고 불편할 때에
쳐들어가 남자들을 다 도륙하여 죽이고 여자와 아이들은 사로잡고 재산을 강탈한다.
야곱은 이로 인하여 보복을 당하고 멸망 당할까 두려워 떤다.
그 제단을 쌓은 직후 일어난 것을 보면 연관성이 있어 보이지 않는가?
그 일 후 벧엘로 올라가라고 하신 것을 보면 더욱 분명해 보이지 않는가?
하나님은 아무곳에서나 자기들 마음대로 드리는 제사와 예배를 받지 않으신다.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그 이름을 멸하라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 예물들을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지니라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신12:2-8)
11절에도 같은 말씀이 나오고, 그 이후 계속해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으로” 가서
예물과 십일조를 드리고 예배하며 그 앞에서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많은 사람들이 멸망의 큰 문 넓은 길로 가고 있다.
그곳이 과연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인지 묻지 않는다.
그곳에 예물과 십일조를 드리고 예배를 드리면 받으신 줄로 알고 거기서 복을 구한다.
세상이 알아주고 나도 높여지고 자랑스런 곳에서 근사한 예배를 매주 드렸는데,
그곳이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이면 어쩌나?
하나님은 이스라엘과 솔로몬의 화려한 성전과 제사를 폐하시고 말았다.
예수님은 헤롯 성전도 돌 위에 돌 하나 남김 없이 폐하셨다.
그곳을 주님은 ‘장사하는 집’이라 하셨고 ‘강도의 소굴’이라 하셨다.
그 종교지도자들을 “뱀들아 독사의 새끼들아” “맹인들”이라 하셨다.
주님은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셨다.
“이 산에서도 말고 예루살렘에서도 말고 --- 아버지께 참되게 예배하는 자들은 영과 진리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자기에게 이렇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요4:21-24)
제단이 다 제단이 아니고 교회가 다 교회가 아니고 선지자가 다 선지자가 아니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인지, 엘벧엘의 제단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곳인지, 강도의 소굴, 장사하는 집인지를 분별할 줄 알아야 한다.
사람의 계명을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셨다.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 하셨다.
하나님의 순전한 말씀을 들을 수 없고 듣지 못하는 기갈의 시대가 벌써 되었다.
“형제들아 굳건하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편지로 가르침을 받은 전통을 지키라”(살후2:15)
초대교회와 발도인들은 이 전통을 지키며 참 교회 공동체를 세웠다.
세상이 빛과 소금이 되어 선한 행실로 말미암아 아버지의 이름이 영화롭게 하였다.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는 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들이 되었고,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가르쳤고, 사도들의 가르친 전통을 지키지 않았다.
2. 벧엘에 오르려면 갖추어야 할 세 조건이 있다
“너희 중에 있는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 의복을 바꾸어 입으라”(창35:2)
디나의 불행과 할례 살인과 약탈의 재난을 겪은 후에야 야곱은 깨달았다.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을 쌓을 때는 이렇게 하지 않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방 신상들을 지닌 채, 정결하지도 않고, 의복을 바꿔 입지도 않고 예배한 것이다.
현대 교회와 예배들이 과연 이 엘엘로헤이스라엘 제단과 닮지 않았는지 돌아보아야 한다.
마음 속 우상들을 그대로 지닌 채, 자신을 정결하게 하지도 않고,
옛 사람과 그 행위들을 새 사람의 그것으로 바뀌 입지 않은 채 예배하고 있지 않는지 말이다.
마음을 다해 뜻을 다해 힘을 다해 목숨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고 섬기고 있는가?
재물을 권력을 명예를, 자녀와 가족을, 성공과 출세를, 그렇게 사랑하고 섬기고 있지 않은가?
그것이 바로 우상인 것이고 이방 신상들을 그대로 지닌 것이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기 전에는, 거듭나기 전에는, 소견에 옳은 대로 행했지만,
이제는 빛의 자녀가 되었으니 그렇게 하지 않아야 한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고 하나님의 나라와 그의 의를 먼저 구해야 한다.
우리의 소망은 주님과 더불어 영원한 천국을 사는 것이고, 이 땅에서도 천국을 살아야 한다.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을 누려야 한다.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주님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해야 한다.
주님 다시 오실 때 아버지 앞에서 거룩함에 흠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흠없게 보전되어야 한다.
거룩함이 없이는 주를 보지 못한다고 하였다.
우리가 어떻게 거룩하고 옳고 흠 없이 행하였는지 너희가 증인이요 하나님도 그러하시다고 했다.
사람들이 보고 있고 하나님이 보고 계신다.
속이 깨끗해야 겉도 깨끗해진다.
바리새인들은 겉은 깨끗하였지만 속은 탐욕과 방탕으로 채웠다.
맹인된 인도자들은 하루살이는 걸러내고 낙타는 삼켰다.
박하와 근채의 십일조는 드리면서 더 중한 정의와 긍휼과 믿음은 버렸다.
말씀과 기도로 거룩해져야 한다.
말씀으로 살 때 거룩해지고 성령 안에서 기도할 때 거룩해진다.
경건의 모양만 있고 경건의 능력이 없으면, 거룩함의 실천이 없으면, 위선자가 될 뿐이다.
벧엘로 올라갈려면 의복을 바꿔 입어야 한다.
“너희가 서로 거짓말을 하지 말라 옛 사람의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었으니
이는 자기를 창조하신 이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자니라”(골3:9-10)
그리스도와 연합한 자이면, 옛 것은 지나가고 새 것, 새 피조물이 되었다.
옛 사람과 그 행위를 벗어 버리고 새 사람을 입은 것이다.
그 새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입은 것이다.
옛 사람과 그 행위는 우리의 타고난 성품과 행실이요 세상에서 형성된 것들이다.
이제 거듭남으로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한 사람들은 그것들을 헌 옷 벗듯 벗어버려야 한다.
새로운 하나님의 형상을 입어야 하고, 의와 진리의 거룩함으로 지식까지도 새로워져야 한다.
그것이 성화요 그것이 주님의 형상을 입고 그 형상을 따라 사는 것이다.
광야 생활의 연단이 있고, 그 끝에 가나안이 있고 영광의 풍성함과 축복과 형통이 있다.
3. 엘벧엘의 제단이어야 한다.
“우리가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 내 환난 날에 내게 응답하시며
내가 가는 길에서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께 내가 거기서 제단을 쌓으려 하노라”(창35:3)
하나님은 그 사면 고을들로 크게 두려워하게 함으로써 추격하는 자들이 없게 하셨다.
가나안 땅 루스 곧 벧엘에 이르고 거기서 제단을 쌓고 엘벧엘이라 불렀다.
벧엘은 야곱이 그의 형의 낯을 피할 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신 곳이었다.
환난 날에 응답하시고 축복하신 곳이었다.
우리도 벧엘로 올라가서 엘벧엘의 제단을 쌓고 엘벧엘의 예배를 드려야 한다.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쌓은 제단 엘엘로헤이스라엘은 세상과 자기를 예배할 뿐이다.
그 제단은 자녀의 불행과 흑암의 재앙들을 불러오고 지켜주지 못한다.
하나님이 내 환난 날에 나타나시고 나를 만나 주신 곳 벧엘로 올라가야 한다.
이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 성전도 아닌 곳,
‘여호와 하나님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신 곳’을 찾아 올라가야 한다.
그곳에서 예물과 십일조를 드리고 예배하며 주신 복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해야 한다.
영과 진리로 참되게 하나님께 예배하는 곳,
두 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서 주님이 함께 하시는 곳,
문이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도 적지만 생명으로 인도하는 곳,
그곳이 엘벧엘 제단이요, 하나님이 그 이름을 두시려고 택한 곳이다.
여러분이 속한 제단은 어떤 곳인가? 엘엘로헤이스라엘인가? 엘벧엘인가?
모든 지혜로 가르치고 권면하여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울려고 하는 곳인가?
쉬운 몇 가지만 하면 성공하고 형통하고 복을 많이 받는다고 하는 곳인가?
지옥은 말하지 않고 천국만을 말하고, 저주는 말하지 않고 축복만을 말하는 곳인가?
다른 복음, 다른 영, 다른 예수를 가르치고 받는 자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다.
오직 엘벧엘의 제단을 쌓고 하나님이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시기 바란다.
이방 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케 하고, 의복을 갈아입고, 벧엘로 올라가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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