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06-01 주일설교
본문: 고후 3:3,6 제목: 성경도 선언문 성경도(聖經徒, BIBLIST) 선언문 ‘도(徒)’는 사람, 무리이면서, 제자, 하인, 종의 의미를 지닌다. 성경도는 오직 성경의 사람, 성경의 제자, 성경의 하인 종이 되는 것이다. 청교도가 그 대표로 알고 높이고 숭앙했지만, 그 중 극히 일부만 그랬을 뿐 다가 아니었다. ‘성경도’는 참 그리스도인, 발도인, 새언약의 일꾼의 다른 이름일 뿐이다. ‘성경도’는 청교도들 중 핵심과 중심을 이루는 사람들을 일컫고, 익히 알려진 청교도들에 대비하여, 청교도가 아닌 성경도를 가리키며, 성경의 경외와 사랑의 신앙을 불러 일으키기 위한 이름이다. 성경도는 주 예수께 받은 사명, 곧 은혜의 복음을 생명 바쳐 증언한다.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영으로 생명으로 새언약으로 살아야 한다. 사도들이 가르친 초기교회의 순수하고 단순한 은혜의 복음은 발도인들, 알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에 의해 그 가르친 전통이 대를 이어온 역사적 사실을 믿는다. 13세기에 유럽 전역에 폭발적으로 종교개혁이 이루어진 역사적 사실을 믿는다. 그 종교개혁의 실체와 영광을 밝히고 그 순전한 전통을 이어간다. 그것이 초기교회의 뿌리와 영 줄기인 것을 증언한다. 16세기의 종교개혁과 그를 이어받은 전통들은, 뿌리와 영 줄기가 전혀 다른, 로마교회의 전통인 것을 밝히고, 해로 배설물로 여기고, 버린다. 묵은 포도주는 개혁해도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며, 말뿐이고, 책뿐이고, 높은 지식 자랑하는 회색 이론뿐임을 증거한다. 그 많고 두꺼운 교리책들, 그 긴긴 신조들 다 먹으로 돌판에 쓴 것이었다. 사람의 아름다운 지혜이고, 바리새인의 율법조문이었다.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으로 쓴 먹물이었다. 우리는 오백년 동안 그것들이 영으로 쓴 것으로 착각하고 속아 왔다. 이들은 교리와 신조의 신학지식들로 특권층이 되어 교회를 지배하였지만, 베드로와 안드레와 야고보와 요한, 마태 같은 사람들은 목사가 되지 못하게 하는 제도를 만들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입술로는 하나님을 공경하지만, 마음은 하나님께 멀리 떠나게 하는 사람의 계명이었다. 하나님을 헛되이 경배하게 하는 것이었다. 새 언약의 일꾼처럼 마음판에 영으로 쓴 것이 아니었다. 율법 조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다. 오직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랑하고 높이고 실천하는 성경도가 되어야 한다. 오직 성령으로 말씀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야 한다.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 아버지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해야 한다. 오직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이 되어야 한다. 마태복음 22장의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고,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다. 마태복음 25장의 양과 염소의 분리, 이사야 58장의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 야고보서 1장의 정결한 경건에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함의 실체를 기본으로 삼아야 한다.(행동강령) 주님이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함으로, 팔복을 실천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한다. 청교도는 16세기 종교개혁을 이어 받아 완성한 무리들로 여겨 왔다. 그 종교개혁이 초기교회의 신앙과 삶을 이어받았다는 것이 확실할 때 가능한 이야기이다. 그러나 참다운 종교개혁은 13세기에 일어났다는 것이 확실해지고 있고, 16세기 종교개혁은 그 영향으로 그 일부를 흡수하여 성공한 지성주의 열매였다. 문서 곧 책 위주의 개혁이었고, 율법주의의 변형인 지성주의 개혁이었다. 교리는 삶의 실천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 교리를 위한 교리, 방대한 책들은 성경을 어렵게 하고 멀리하게 만든다. 바울서신들은 앞 부분은 교훈, 뒷부분은 이 교훈의 실천을 다루는 모범을 보이고 있다. 우리는 성경에서 교훈과 책망을 받고 바르게 되고 의로 교육을 받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된다. 초기교회와 발도인들은 이러한 사람들이었다. 16세기 종교개혁자들은 4세기의 어거스틴이 초기교회의 전통을 집대성한 것으로 여겼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로마교회의 소속이고 로마교회는 초기교회의 전통과는 다른 전통이다. 로마교회는 콘스탄틴 황제가 세운 국가 교회일 뿐. 초기교회의 전통과는 관계가 없다. 초기교회의 전통은 알프스 계곡의 발도인 바울인 위그노들로 이어졌다. 로마교회는 십자군을 동원하며 이들을 말살시키려 했다. 왜냐하면 로마교회가 성경과 거리가 먼 교회임을 성경적으로 영적으로 비판한 사람들이 이들이었다. 이들은 초기교회의 성경적이고 영적인 전통과 말씀으로 사는 삶의 모범을 보였고, 이들의 복음 선교와 삶의 변화를 보고 사람들이 이들을 따랐기 때문이었다. 유대종교와 지도자들이 예수님을 핍박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것 같이 로마교회와 지도자들은 십자군을 동원하여 고문과 학살과 화형으로 이들을 말살하려 하였다. 어거스틴도 이 전통의 존재를 알지 못하였고, 이단시하였고, 로마교회 소속의 학자였다. (초기교회로 돌아가려고 하는 도나투스파를 학살하였다.) 16세기 종교개혁의 주역인 루터 칼빈 츠빙글리도 초기교회의 전통과는 관계없이 개혁을 주장했다. (초기교회이 전통을 찾을려고도 하지 않았다.) 결국 이들은 로마교회를 개혁할려고 하였을 뿐이다. 이들은 여전히 로마교회의 역사관과 영 줄기를 충실히 따랐다. 개혁교회의 학자들도 여전히 초기교회의 전통을 이어받은 이들을 이단으로 여기고 있고 현대에 이르기까지 교회사는 로마교회의 주장들을 충실하게 따르고 있다.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는 초기교회와는 다른 영 줄기를 따르고 있다. 나도 16년 동안 청교도를 사랑하고 흠모하며 그들에게 충실하였다. 이제는 청교도의 실체를 알게 되었고, 청교도가 아닌 성경도가 되어야 함을 확인했다. 유대교회 로마교회 개혁교회 현대교회는 시대와 표현은 달라도 같은 영 줄기의 연속이고 계승인 것을 알게 되었다. 사생자들이 아들 노릇하며 참 아들들을 핍박하고 존재를 무시하고 잊게 만들어 왔다. 묵은 포도주가 새 포도주 노릇하며 예수님을 죽이고 참 아들들을 죽여 왔다. 우리의 참 스승인 로이드 존스도 성경도들에게 돌려야 할 영광을 청교도들에게 돌렸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청교도가 아닌 성경도의 에베레스트이고, (“진리의 열쇠”가 8세기에 완성된 에베레스트이고 존스는 그 다음이다) 다음은 존 라일, 파렐, 조나단 에드워즈, 뷰캐넌의 순이다. 다음은 쉐퍼, 메이첸, 크롬웰, 윌리엄 틴달, 윌리엄 테넌트의 순이고, 다음은 워필드, 커닝함, 호튼. 다음은 존 오웬, 플라벨, 퍼킨스, 에임스, 베일리, 낙스, 터툴리안의 순이다. 행동하는 믿음의 사람들이고, 새 언약의 일꾼들이다. 성경 본문 없이는, 성경 본문을 떠나서는, 말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이에 대해서는 견해가 다를 수 있다. 기도하며 성령의 인도를 받자. 사람들은 성경도에 돌려야 할 실체와 내용들을 개혁자들과 청교도들에게 돌려왔다. 하나님은 섭리 가운데 16년 동안 청교도의 품속에서 살게 하셨고, 섭리 가운데 이제 성경도의 길을 가도록 인도하심을 믿는다. 교회 개혁은 책들로 지성주의로 하는 것이 아니다. 발도인들 바울인들 위그노들처럼 초기교회의 가르침과 영적 전통을 따라 성경적 삶의 모범과 실천으로 하는 것이다. 사람들은 16세기 종교개혁과 르네상스 중 누가 먼저냐 하는 논쟁을 해왔다. 역사서들은 르네상스가 먼저이고 그 영향으로 종교개혁이 일어났다고 한다. 그러나 종교개혁 없이 어떻게 르네상스가 일어날 수 있겠는가 하며 교회 쪽에서는 순서를 뒤집어 왔다. 13세기에 유럽 전체를 폭발적으로 변화시킨 종교개혁을 안다면 자연스레 해결이 된다. 13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사회 전반에 변화가 오면서 르네상스가 일어났고, 그 영향을 분명 받으면서 16세기 종교개혁이 일어난 것이다. 그 지역이 일치하고 있다. 참다운 종교개혁 없이 르네상스는 일어날 수 없고, 16세기 지성주의 종교개혁도 일어날 수 없었던 것이다. 참다운 교회 개혁은 르네상스를 동반한다. 성경도의 사명: 1. 16C 종교개혁 5백년 견고한 진과 모든 이론을 무너뜨린다.(전복) 2. 초기교회와 발도인의 전통과 가르침을 이어받는다.(회복) 3. 13C 폭발적 교회개혁과 14-15C 르네상스를 함께 재현한다.(부흥) 필독서: 권현익, ‘16세기 종교개혁 이전 참 교회의 역사’ ‘기욤 파렐과 종교개혁’ 알렌 크라이더, ‘초기 교회와 인내의 발효’, ‘회심의 변질’ 22.12.12.초안 23.01.26. 06.21. 12.22. 24.5.29. 25.06.01. 보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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