Ⅰ 우림과 둠밈, 에봇에 관하여
(출28:30) 너는 우림과 둠밈을 판결 흉패 안에 넣어 아론이 여호와 앞에 들어갈 때에 그의 가슴에 붙이게 하라 아론은 여호와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의 흉패를 항상 그의 가슴에 붙일지니라
(민27:21) 그(여호수아)는 제사장 엘르아살 앞에 설 것이요 엘르아살은 그를 위하여 우림의 판결로써 여호와 앞에 물을 것이며 그와 온 이스라엘 자손 곧 온 회중은 엘르아살의 말을 따라 나가며 들어올 것이니라
(신33:8-11) (8)레위에 대하여는 일렀으되 주의 둠밈과 우림이 주의 경건한 자에게 있도다 주께서 그를 맛사에서 시험하시고 므리바 물 가에서 그와 다투셨도다 (9)그는 그의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이로다
(10)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 (11)여호와여 그의 재산을 풍족하게 하시고 그의 손의 일을 받으소서 그를 대적하여 일어나는 자와 미워하는 자의 허리를 꺾으사 다시 일어나지 못하게 하옵소서
(삼상28:6)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하지 아니하시므로
(스2:63) 방백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느7:65) 총독이 그들에게 명령하여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이 일어나기 전에는 지성물을 먹지 말라 하였느니라
삼상(23:9-12) 다윗은 사울이 자기를 해하려 하는 음모를 알고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에봇을 이리로 가져오라 하고 다윗이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여 사울이 나 때문에 이 성읍을 멸하려고 그일라로 내려오기를 꾀한다 함을 주의 종이 분명히 들었나이다 그일라 사람들이 나를 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주의 종이 들은 대로 사울이 내려 오겠나이까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원하건대 주의 종에게 일러 주옵소서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가 내려오리라 하신지라 다윗이 이르되 그일라 사람들이 나와 내 사람들을 사울의 손에 넘기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그들이 너를 넘기리라 하신지라
(삼상30:7-8) 다윗이 아히멜렉의 아들 제사장 아비아달에게 이르되 원하건대 에봇을 내게로 가져오라 아비아달이 에봇을 다윗에게로 가져가매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이 군대를 추격하면 따라잡겠나이까 하니 여호와께서 그에게 대답하시되 그를 쫓아가라 네가 반드시 따라잡고 도로 찾으리라
우림과 둠밈의 사용은 사사기, 사무엘 상하에서 찾아볼 수 있다.
스가랴서 느혜미야서에서도 우림과 둠밈을 가진 제사장을 언급하고 있다.
신약에서는 제비뽑기만 언급하고 있다.
그 후 기독교 역사를 통해서 "막대점과 진동자 점술“(ROD AND PENDULUM)에 관한 논란이 있어 왔다. (쿠르트 코흐, 사탄의 전술전략, 147-156 참고)
이것의 사용을 사탄의 도구와 심령의 역사로 공격하는가 하면,
이를 은사로 받아들여 옹호하는 하나님의 사람들간의 논쟁이 있어 왔다.
하나님께로부터 이 은사를 받았다고 믿는 목사, 선교사, 의사, 복음전도자들이 있어왔다.
출애굽기에서 성막과 제사장 옷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자세히 나와 있으면서
왜 우림과 둠밈의 만드는 법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이 없을까?
그것은 아마도 그 당시 민간에서 사용돼 오던 일반적인 도구였기에 그렇지 않을까?
우림과 둠밈이라고 하면 다 아는 것이었기에 만드는 법이 생략되지 않았을까?
그리고 이 우림과 둠밈은 창세 이래 여러 도구로 사탄의 사람들도 썼고,
하나님의 사람들도 써 오던 것이 아니었을까?
예언, 방언, 병고치는 은사, 영분별의 은사 등은 사탄의 사람들도 써왔고
하나님이 사람들도 써왔듯이 말이다.
우림은 빛의 뜻이 있고, 둠밈은 완전의 뜻이 있다.
히브리어 첫글자와 끝글자로 볼 때 헬라어 알파와 오메가의 뜻도 있다.
주석가들은 우림과 둠밈은 돌맹이나 보석을 한 쌍으로 가부를 판결했을 것으로 본다.
판결의 흉패로 불리우고, 어떤 사실(사건)의 진위를 분별한 것은 틀림이 없다.
앞으로 일어날 일의 가부를 묻기도 했다.
은사의 사용은 금하지 말라고 성경은 말한다. 성령을 소멸치 말라고 한다.
다만 품위있게 질서 있게 사용하라고 한다(고전14:40).
교회의 덕(유익)을 위해 사용하라고 한다(고전12:7).
사랑을 따라 구하고 사랑으로 사용하라고 한다.
그 사랑은 고전 13장에 나오는 사랑이다.
(고전13:4-7)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은사를 구하고 사용하는 동기가 순수한 사랑이어야 한다.
사랑이 없으면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다. 사탄의 도구로 전락하고 만다.
우림과 둠밈은 물을 찾고 파는 데 사용한 기록도 있다.
(민21:18) 이 우물은 지휘관들이 팠고 백성의 귀인들이 규와 지팡이로 판 것이로다 하였더라
왜 우림과 둠밈이 없어졌을까?
자기들 맘대로 하기 위해서 였을 것이다.
아니면, 타락한 그들에게서 은사의 기능을 멈추게 하셨을지도 모른다.
우림과 둠밈을 은사로 사용한 결과 검증되고 확실한 것이 있다.
책에 대한 분별이다.(앞으로 검증이 필요한 부분이다.)
지난 11월부터 금년 8월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시험해 본 결과는
일관성 있는 분별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순수한 하나님의 말씀의 책들은 직선운동을 한다. (추로 하든 엘로드로 하든 같다.)
그러나 세상 지식과 지혜가 섞여진 책들, 성경을 왜곡한 책들은 계속 회전운동을 한다.
순수한 성경책은 회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주석이 달린 성경 또는 쉬운 번역들은 회전한다.
순수한 청교도서적들은 회전하지 않는다.
시대 사상과 문화가 어떤 형태로든 섞인 책들은 어김없이 회전운동을 한다.
또한 성령에 관한 책들도 분별이 된다.
순수한 부흥 또는 성령운동의 책들은 회전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을 왜곡하거나 과장하거나 거짓 미혹의 책들은 회전한다.
다시 정리하면, 성경을 왜곡하거나 또는 성령을 왜곡한 책들은 회전운동을 한다.
좌로나 우로나 치우친 책들은 회전운동을 한다.
바리새인의 누룩과 사두개인의 누륵들이 들어간 책들은 회전운동을 한다.
이 책에 대한 분별은 수맥분별과 동일하게 사진을 통해서도 된다.
여기서 우리가 얻을 수 있는 유익은 책을 사서 읽어보지 않고도
인터넷 서점에서 광고하는 책들을 손으로 대고 분별할 수 있다는 것이다.
내가 시도해서 분별해 놓은 책들의 분류표는 별표와 같다.
세상에 내놓기에는 너무 놀라운 분별이 나와서 참으로 망설여지기도 한다.
여러분들도 순수한 동기와 하나님을 경외하고 영혼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시도해서
동일한 결과가 나올 수 있기를 기도한다.
우림과 둠밈은 위와 같이 검증된 일에만 제한적으로 사용할 것을 제안한다.
앞 일이나, 남의 비밀을 알아보는 일 등은 자제가 요망된다.
하나님께서 다 맞게도 하지 않거니와, 점술로 오해되어 공격받을 위험이 있고,
확실한 검증된 분별(판결의 흉패)까지도 신뢰성을 떨어뜨리게 될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것은, 성경으로 돌아가자는 종교개혁운동과 순수한 청교도 신앙을 본받는 것이다.
종교개혁이 일어난 16세기에서부터 18세기 어간의 사람들의 신학이 청교도 신학이다.
청교도들은 종교개혁을 완성한 사람들이다.
창시자로 존 녹스가 있고, 그 정상에 조나단 에드워즈가 있다.
우리 시대에 와서 그 방대한 청교도 신학을 가장 잘 종합하고,
가장 잘 안내해줄 수 있는 분이 마틴 로이드 존스이다.
로마 국교화 이후 중세 로마가 성경과 멀어져 세속화 타락의 길을 걸을 때
성경으로 돌아가도록 개혁한 것이 종교개혁이다.
청교도들은 교회 뿐 아니라 삶의 전 분야에 성경 말씀을 적용하여 살며 그 본을 보였다.
19세기 말부터 급속도로 발달한 과학과 휴메니즘 사상이 교회 안에 밀려 들어와
청교도신학은 자취를 감추고 복음주의 자유주의 할 것 없이 시대사상과 야합하였다.
1950년대부터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체플에서 로이드 존스가 청교도신학을 설교하며
사람들의 관심을 다시 불러일으켰고 청교도 서적들이 다시 인쇄 보급되기 시작하였다.
청교도 신학은 다른 것이 아니다.
오직 성경으로 돌아가고, 오직 성경을 삶의 기준과 원칙으로 삼고
살아계신 삼위 하나님을 삶속에서 섬기는 신학운동이다.
그렇지만 그 많은 청교도 신학 서적들을 다 공부할 수도 없고 다룰 수도 없다.
거기에도 옥석의 구분이 필요하다.
누가 무엇으로 이를 분별할 것인가?
우림과 둠밈의 사용은 분별에 도움을 줄 것이다.
왜 회전하고 안하고의 이유를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우리는 청교도들 책중에서도 진위가 분별이 된 책들만을 공부하고 추천할 것이다.
청교도신학을 잘 정리해서 안내해주는 사람들 가운데서도 지나친 사람들이 있다.
청교도에 관해 쓴 책들 중 상당수의 책들이 회전운동을 한다.
19세기 말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의 성경 해석방법과 지식들은 배설물처럼 내려놔야 한다.
사도와 선지자들의 터 위에 순수한 청교도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신앙을 다시 세워야 한다.
청교도 책들을 읽어 보면 우리가 얼마나 성경을 잘못 알고 잘못 배웠는지를 알 수 있다.
(고후2:14-17) (14)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15)우리는 구원 받는 자들에게나 망하는 자들에게나 하나님 앞에서 그리스도의 향기니 (16)이 사람에게는 사망으로부터 사망에 이르는 냄새요 저 사람에게는 생명으로부터 생명에 이르는 냄새라 누가 이 일을 감당하리요 (17)우리는 수많은 사람들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하게 하지 아니하고 곧 순전함으로 하나님께 받은 것 같이 하나님 앞에서와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노라
(순전한 말씀과 혼잡한 말씀을 분별해 주는 것이 우림과 둠밈이다.)
(마 7:15-20)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져지느니라 이러므로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골 2:8) 누가 철학과 헛된 속임수로 너희를 사로잡을까 주의하라 이것은 사람의 전통과 세상의 초등학문을 따름이요 그리스도를 따름이 아니니라
(고전 11:7-9) 그러나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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