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적 신앙

[스크랩] 리처드 개핀 저서 세트(전3권)

강대식 2010. 11. 11. 22:51
저자 : 리처드 개핀  |  출판사 : (주)갓피플
발행일 : 2010-02-25  |  SET

 

 

 

 

 

- 안식 · 종말 · 성신에 대한 성경 신학적 교훈 -

예수님께서 마태복음 28:18에서 풍부하게 가르쳐 주신 사실을 생각할 때, 교회의 선교 사명의 기초는 우리에게 있지 않고 그리스도에게 있습니다. ‥‥‥우리의 왕이신 예수님의 왕권이 온 세상에 걸쳐 유지되고 주장되도록 하는 것이 선교의 목적입니다. (1장)

우리가 매주 맞는 안식일의 안식은 저 완성을 반복해서 가리키는 지표입니다. ‥‥‥엿새 동안에 해도 좋을 활동을 할 수 있는 데로 쉬는 것 그 자체가 적극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 주일은 우리가 우리 자신과 우리 자신의 노력을 의지하지 않노라 하는 표지입니다. (2장)

여러분과 내가 기도에 관해서 배워야 할 가장 중요한 교훈은, 일차적으로 그리고 궁극적으로 기도란 우리가 내놓는 행위가 아니라 예수님께서 우리를 위해 해 주시는 일이라는 점입니다. (3장)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부활의 종말론은 십자가(고난)의 종말론입니다. 이 세상이 존속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부활의 권능은 교회가 십자가를 지신 구주를 본받아 고난에 참여하는 데서 발휘됩니다. (5장)



[책 소개]
리처드 개핀은 주석적 깊이와 객관성과 명료성을 갖고 예언과 방언을 검토하고, 사도 시대가 종결될 때 이 두 은사도 중지된 사실을 옹호한다. 개핀 박사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을 단회적인 그리스도의 사역의 필수 구성 요소의 하나로 제시하고, 전체 교회의 삶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사건으로 본다. 개핀 박사의 성경적-신학적 관점은 철저하다. 모든 신령한 은사를 일반적으로 정의한다. 또 예언 및 방언의 본질과 이 두 은사가 오늘날 교회에서 계속되고 있는지의 문제를 명확하게 제시한다. 그리고 이 주석적 연구가 은사에 관심을 두고 있는 현대인에게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지적한다. 이 책이 제시하는 오순절 성령 강림 사건의 관점은 감정주의와 현재 은사주의 운동을 둘러싸고 있는 혼란을 일소시킨다. 이 책은 신학생을 위한 믿을 만한 연구서로, 은사주의 운동에 연루되어 있는 사람이나 방언을 말하는 경험을 가진 친구나 가족이 있는 사람에게 특히 유용한 안내서다.

[서언]
이 책은 1974년 12월부터 1975년 1월까지 개최된 복음주의 개혁파 콘퍼런스의 후원 아래 뉴질랜드 전역을 다니며 행한 일련의 강좌에서 시작되었다. 이후에 이 강좌의 자료는 1976년 8월에 남아프리카 공화국의 케이프타운에서 개최된 개혁주의 연합 대회에서 실시한 성령 사역에 대한 콘퍼런스에서 발표하기 위한 자료의 기초로 사용되었다. 이어서 이 자료는 1977년 1월 겨울 학기에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12번에 걸친 강의의 자료로 확대 되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때로는 날카롭게) 제기된 비판들을 소중히 여겼고, 이 책에 기록되어 있는 내용은 이 비판들로부터 어느 정도 유익을 얻었음을 밝혀 둔다.
원고를 타이핑 해 준 베티 스티븐슨 부인과 메리 콜 마틴 부인 그리고 1977~1978년 첫 학기와 겨울학기 동안 부분적으로 이 책을 저술하도록 휴가를 허락해 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 이사회에 감사를 드린다.
1978년 6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리처드 개핀

[1장 약속과 당부]
교회 안에서의 논쟁은 고통과 희망을 동시에 안겨 준다. 고통을 안겨 주는 이유는 논쟁이란 본질상 역기능적인 것으로, 그 결과를 몇 가지만 언급해 본다면, 교회를 더럽히고 교회 자체와 세상에 대한 신뢰를 떨어뜨리며, 그리하여 교회가 세상에 미치는 영향력을 손상시키는 비정상적인 행위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의 논쟁은 세상 속에서의 논쟁과는 차이가 있다. 세상 속에서의 논쟁은 기껏해야 불안한 타협으로 논쟁을 누그러뜨리는 정도에 불과하지만, 교회 안에서의 논쟁은 건설적인 해결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특히 논쟁의 당사자들이 서로 간에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최종적인 권위를 두고 있음을 인정할 수 있을 때에는 해결 가능성이 더 커진다. 논쟁 자체가 최소한 잠시라도 아주 바람직한 상태에 있는 순간에는, 당사자들이 주님께 더 온전히 순종하기 위해 성경의 의미가 무엇인지 붙잡으려고 씨름하는 노력을 보여 주기 때문에, 진리 안에서 참된 연합이 이루어질 희망이 더 크게 존재한다.

1960년대 이후부터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에 대한 주제보다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킨 주제는 거의 없었다. 아니 사실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주제는 오늘날에도 세계적으로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바로 그 문제라고 말할 자도 있을 것이다. 확실히 말해, 교회 안에서 성령의 은사 주제만큼 논란과 분열의 계기를 제공한 더 큰 주제는 없었을 것이다. 성령 은사에 대한 논쟁은 격렬하다. 주장하는 의견들은 너무 강하게 대립되고, 때로는 너무 날카롭게 표현되기도 하는데, 이것은 충분히 이해할 만하다. 왜냐하면 이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실제 생활 곧 그리스도인이 된 자의 개인적 경험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 책은 치열한 성령의 은사 논쟁 속에 뛰어든 또 한 권의 책이다. 다른 많은 책들과 마찬가지로, 이 책도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과 동일한 성령이 분열의 원천이 되기 위해 교회에 부어지신 것이 아니라는 확신을 반영하고 있다. 그러나 일부 책들과 달리, 이 책은 성령이“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실”(요 16:13) 것이라고 말씀하신 예수님의 약속이, 예컨대, 사도 바울이 표현한 “하나님의 말씀은 매이지 아니하니라.”(딤후 2:9)는 보증의 성취와 불가분의 관계에 있다는 확신에 따라 쓰였다. 여기에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의 자유가 존재하리라! 종종 우리가 성경을 잘못 다루는 혼돈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확신 속에 내포된 약속과 교회 안에서 성령께서 행하실 일에 대한 확고한 기대가 처음부터 끝까지 성령의 은사에 대한 우리의 모든 관심사를 지배해야 할 것이다.

나아가 이 책에 대한 나의 두 번째 지배적인 확신은 경험 자체는 그리스도인의 지식과 교리의 원천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리스도인들이 체험하는 경험을 기독교적인 경험의 규범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단순히 모든 생각이 아니라 우리의 경험 전체를 그리스도에게 복종시켜야 한다(고후 10:5 ). 성경이 모든 참된 기독교적 경험을 재는 기준이다. 따라서 독자에게 한 가지 당부할 것은 혼란스러울 정도로 서로 대립적인 오늘날 성령의 경험에 대한 다양한 주장들 속에 성경적 가르침의 탐조등을 골고루 비출 때, 그 탐조등에 따라 이 주장들을 평가해 볼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독자 자신의 경험을 성경의 권위에 복종시키라는 것이다.

이 책의 기본 구도는 성령의 은사에 대한 주제의 주석적인 초점을 점차적으로 좁혀 가며 살펴보는 것이다. 이 작업은 다음과 같은 단계로 이루어졌다. 먼저 2장에서 교회 안에서의 성령의 전체 사역의 넓이와 풍성함을 간단하게 스케치하는 것으로 시작하여, 3장에서는 일반적으로 성령의 은사에 대한 다양한 관점들을 개관해 보고, 이어서 4장에서는 구체적으로 예언과 방언의 은사를 집중 조명하며, 5장에서는 성령의 은사의 중지 문제를 다루었다. 그리고 마지막 6장에서는 5장까지의 주석적인 결론을, 성령의 은사에 대한 오늘날 우리 시대의 고조된 관심으로 말미암아 야기된 몇 가지 근본 문제들과 관련시켜 간단히 설명하였다.

이 책을 쓰면서 내가 염두에 둔 독자는 특별히 전문적인 신학자와 공식적으로 신학 교육을 받고 있는 신학생들만이 아니라 성경에 대해 적극적인 관심과 진지한 태도를 갖고 있는 모든 연구자를 망라한 포괄적인 계층이다. 이 책이 나와 다른 배경과 안목을 가진 그리스도인의 손에도 들어가게 될 텐데, 그들에게 특별히 바라는 것은, 비록 이 책이 그들을 설복시키지는 못한다고 해도, 최소한 그들이 성경이 가르치는 것을 붙들고 더 깊이 씨름하도록 자극을 받는 것이다. 이와 같이 예상되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나는 각주를 거의 대부분 생략했고, 이미 너무 많은데도 불구하고 산처럼 계속 증가되고 있는 구입 가능한 이차적인 관련 문헌들을 거의 인용하지 않았다. 물론 거의 모든 면에서 다른 사람들의 저서의 도움을 받은 것을 인정한다. 박식하고 정통한 독자는 종종 내가 받은 이러한 도움이 어디서 왔는지 그리고 나와 입장이 다른 견해들의 관점이 어디서 왔는지 출처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나와 입장이 다른 견해를 제시할 때에는 관련 문헌을 광범하게 그리고 주의 깊게 읽고 명쾌하게 제시하려고 노력했다. 그리고 최대한 성경을 폭넓게 인용하려고 힘썼지만, 독자는 성경을 옆에 두고 대조해 가며 참조하는 시간을 갖도록 권한다.

마지막으로 많은 독자들이 때때로, 아니 어쩌면 종종, 내가 쓴 책에서 문제점을 발견할 수 있으리라는 것을 알고 있다. 명백한 대답과 온갖 복잡한 것으로부터 해방시켜 주는 해답을 기대하는 사람은 누구나 실망할 것이다. 성경의 궁극적 권위를 공통적으로 의지하는 그리스도인들 간에 성령의 은사 문제에 대해 견해가 나누어져 있다는 사실은 이 문제가 본질상 난제라는 사실을 암시하고 있고, (어떤 식으로든) 손쉬운 해결책을 기대하는 것은 그렇지 않아도 복잡한 상황을 더 큰 혼란 속에 빠뜨릴 뿐이다. 말할 것 없이, 이 책에는 수정을 해야 할 내용도 있을 것이다. 따라서 마지막으로 당부할 것은 이 책의 약점들을 무시하고 넘어가 달라는 것이 아니고, 이 약점들을 지적하고 거론하는 독자들은 말씀과 함께 역사하시는 성령께서 이 문제를 연구하도록 허락하신 힘이 무엇인가를 파악하는 데도 힘써 주기를 바랄 따름이다.



방언, 예언, 치유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
은사 중지론자들은 아니라고 말한다.
반면 오순절교파와 제 3의 물결에 속한 그리스도인들은 그렇다고 말한다.
신중 수용론을 주장하는 복음주의자들은 대체로 그럴지도 모른다고 말한다.
해답은 무엇인가? 해답은 과연 존재하는가?

<기적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유효한가?>는 독자들을 은사 논쟁의 핵심으로 이끌어간다.
본서는 은사 중지론, 신중 수용론, 제 3의 물결, 오순절/은사주의적 관점 등 은사에 대한 네 가지의 주요 입장을 비교하기 위한 공정한 형식을 제시한다. 필자들은 비판과 명료화와 변호가 가능한 상호 대화의 형식으로 자신의 입장을 개진한다.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이 책은 그리스도인들이 초자연적인 은사에 대한 논쟁의 모든 영역에서 자신의 입장과 다른 이들의 입장을 더 잘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서문]
성령은 오늘날 교회에서 어떻게 역사하시는가? 성령님은 지금도 실제로 신유와 예언과 방언의 메시지를 주고 계신가?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이 회심 이후 "성령 세례"를 체험할 때 그들에게 사역을 위한 새로운 능력을 주고 계신가? 성령님은 그리스도인들이 귀신에게 떠나라고 명령할 때 귀신을 쫓아내시는가? 아니면 그런 일들은 먼 과거, 신약 성경이 기록되고 있었고 살아 있는 사도들이 교회에서 가르치고 치리했던―그리고 기적을 일으켰던―시대에 국한된 일인가? 오늘날 복음주의적인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이런 질문들에 대한 일치된 의견이 거의 없다. 많은 오순절주의자들은 그리스도인은 회심 이후에 성령 세례를 추구해야 하며 그러한 체험은 사역에 새로운 영적 능력을 가져올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다른 복음주의자들은 성령 세례는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이미 발생했기 때문에 자신들은 이미 성령 세례를 받았다고 답한다. 누구 말이 옳은가? 양편의 논거는 무엇인가?

이런 질문들과는 별도로 구체적인 영적 은사에 관해서도 많은 견해 차이가 있다. 사람들은 오늘날 예언의 은사를 받을 수 있는가? 그래서 하나님이 실제로 그들에게 여러 가지 일들을 계시하시고 그들은 다른 사람들에게 그 계시를 말해줄 수 있는가? 아니면 예언의 은사는 서기 1세기에 신약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에만 한정되었는가? 신유는 어떤가?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에도 기도만 하면 하나님이 빈번히 기적적인 방식으로 병을 고쳐 주실 것으로 기대해도 되는가? 어떤 사람들은 지금도 신유의 은사를 가질 수 있는가? 아니면 우리는 하나님께 의사나 약 같은 일상적인 수단을 통해 병을 고쳐 주시도록 간구하는 데 기도의 강조점을 두어야 하는가? 아니면 우리는 대체로 사람들로 하여금 성화를 촉진시키는 질병의 가치를 깨닫도록 격려하고 그들이 병을 견딜 수 있는 은혜를 얻도록 기도해야 하는가?

방언의 은사에 관해서는 일치된 견해가 더더욱 적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방언이 기도 생활에 매우 큰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어떤 이들은 방언은 성령 세례를 받았다는 표시라고 말하며, 또 어떤 이들은 방언은 신약 성경이 완성될 때 종결된 하나님의 언어적 계시의 한 형태이므로 오늘날에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 밖에도 성령께서 오늘날 자신의 뜻에 대한 느낌이나 인상을 통해 우리를 인도하시는가에 대한 질문, 귀신을 쫓아내는 일에 대한 질문, 영적인 은사를 구하는 일에 대한 질문, 또는 오늘날의 복음 전파에는 하나님의 기적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일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주장에 관한 질문 등 물어야 할 질문은 얼마든지 많이 있다. 그러나 이 문제가 넓고 흥미로운 토론의 영역이며 오늘날 교회 생활에 있어서 무척이나 중요한 주제라는 요점은 이미 명확할 것이다.

은사에 관한 네 가지 입장
이러한 일련의 질문들과 서로 다른 관점에서부터 앞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길은 있는가? 첫 걸음은 복음주의 진영 안에서 현재 제기되고 있는 주요 입장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규정하는 일일 것이다. 만일 이 책이 이러한 과업만이라도 성공적으로 수행한다면 그것만으로도 가치 있는 일을 이룬 셈이 될 것이다. 그러면 이와 같은 주요 입장은 무엇인가? 전체 복음주의 진영이 이러한 질문들에 대해서 네 가지 입장으로 분류될 수 있는가? 내가 이 문제를 놓고 존더반 출판사의 편집 위원인 스탠 건드리, 잭 쿠하첵과 토론할 때 몇 가지 입장은 즉시 분명해졌다.
은사 중지론의 입장에서는 오늘날 성령의 기적적인 은사는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예언, 방언, 신유 등과 같은 은사들은 1세기에만 국한되었으며, 사도들이 교회를 세워가고 있었고 신약 성경이 아직 완성되지 않았던 시기에 사용되었다. 이 입장은 복음주의 학계 안에서 잘 정의되고 자주 옹호된 입장이다.

복음주의 내에는 개혁주의와 세대주의 모두에 은사 중지론자들이 존재한다. 개혁주의 은사 중지론은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여러 교수들, 그 중에서도 특히 리처드 개핀(Richard Gaffin)이 대표하고 있다. 세대주의 은사 중지론은 이 문제에 대해 개혁주의와 비슷한 입장을 취하지만 대표하는 교육기관이 다르다. 세대주의 쪽은 댈러스 신학교와 매스터스 신학교 등과 같은 기관들이 대표하고 있다. 루터교 전통 내에서는 미주리 회의(Missouri Synod) 같은 보수적인 교파도 대체로 은사 중지론적인 입장을 신봉한다.

은사 중지론적인 입장에 분명히 반대하는 편에는 오늘날의 모든 영적인 은사의 사용을 장려하는 세 분파인 오순절교회, 은사주의, 제3의 물결이 있다. 때때로 사람들은 "오순절교회"와 "은사주의"라는 용어를 이 세 분파 모두를 가리키는 데 무차별적으로 사용하지만 이 두 용어는 보다 정확하게는 다음과 같이 이해된다.

오순절교회란 1901년에 미국에서 시작된 오순절주의적인 부흥에 역사적 기원을 두며 다음과 같은 교리를 신봉하는 모든 분파를 지칭한다. (1) 신약에 언급된 성령의 모든 은사는 오늘날을 위해 계획된 것이다. (2) 성령 세례는 회심 이후에 능력을 덧입는 체험이며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추구해야 하는 것이다. (3) 성령 세례가 발생하면 사람들은 성령 세례를 체험했다는 "표시"로 방언을 말한다. 오순절 교파는 보통 자신들만의 독자적인 교단 조직을 갖추고 있으며 하나님의 성회(Assemblies of God),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Church of God in Christ), 그 밖에 다른 많은 교단들이 이에 속한다.

반면 은사주의란 1960년대와 70년대의 은사주의적인 부흥 운동에 역사적 기원을 두고 있으며 신약 성경에 언급된 (예언, 치유, 기적, 방언, 방언 통역, 영분별 등을 포함한) 모든 영적인 은사의 실행을 추구하는 모든 분파를 지칭한다. 은사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성령 세례가 회심에 뒤이은 사건인지와 방언이 성령 세례의 표시인지에 대해서 서로 다른 관점이 존재한다. 은사주의자들은 대체로 자신들만의 교파를 조직하는 일을 자제해 왔지만 자신들을 기존의 개신교와 로마 가톨릭 교회 내의 개혁 세력으로 본다. 오늘날 미국에 대표적인 은사주의 교파는 없지만 가장 저명한 은사주의의 대변자는 아마도 자신의 기독교 방송 네트워크(CBN), 텔레비전 프로그램인 "700 클럽"으로 잘 알려진 팻 로버트슨(Pat Robertson)과 리젠트 대학교(이전의 CBN 대학교)다.

1980년대에는 세 번째 갱신 운동이 일어났는데 이 운동을 풀러 신학교의 선교학 교수 피터 와그너(C. Peter Wagner)는 제3의 물결이라고 명명했다(와그너는 오순절 운동을 현대 교회에서 성령의 새롭게 하시는 역사의 첫 번째 물결로, 은사주의 운동을 두 번째 물결로 지칭했다). 제3의 물결 신봉자들은 모든 신자들이 오늘날 신약의 영적인 은사들을 갖추어 사용하기를 장려하며 복음 선포에는 보통 "표적과 기사와 기적"이 수반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들은 성령 세례가 회심 때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일어나며 회심 이후의 체험은 성령 "충만" 또는 성령의 "능력 주심"이라고 부르는 것이 더 적절하다고 가르친다. 그들은 방언의 은사가 오늘날에도 존재한다고 믿지만 오순절주의자들이나 은사주의자들만큼 방언을 강조하지는 않는다. "제3의 물결"의 가장 잘 알려진 대표자는 캘리포니아 주 애너하임 빈야드 교회(Vineyard Christian Fellowship) 목사이자 빈야드 교회 협회(Association of Vineyard Churches)의 지도자인 존 윔버(John Wimber)다.

은사 중지론, 오순절교회, 은사주의, 제3의 물결 등은 명확히 규정된 입장들이다. 하지만 이들 입장이 복음주의 진영 전체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자신은 이들 집단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수많은 복음주의자들이 신봉하는 또 다른 입장이 있다. 이들은 특정한 은사들을 1세기에만 국한시키는 은사 중지론의 논증에도 별 설득력을 느끼지 못하고 오늘날 그런 은사들을 강조하는 사람들의 교리나 관습도 마찬가지로 설득력이 없다고 본다. 이들은 오늘날 기적적인 은사들이 발생할 가능성은 받아들이지만 그런 은사들을 실행하는 집단 내에서 발견되는 은사 남용의 가능성에 대해서는 우려한다. 그들은 성경이 방언을 배제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현대의 많은 방언의 실례들을 성경의 지침과 일치하지 않는 것으로 본다. 어떤 이들은 또한 방언이 종종 오늘날의 교회에 불화와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한다는 점을 우려한다. 그들은 교회들이 기적적인 은사보다는 전도와 성경 연구와 신실한 순종을 개인 및 교회 성장의 열쇠로 강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들은 오순절, 은사주의 및 제3의 물결 교회들이 복음주의 진영에 가져온 몇 가지 유익, 그 중에서도 특히 신선한 현대적 분위기의 예배와 믿음과 기도의 혁신을 위한 도전을 높이 평가한다.

존더반 출판사의 편집자들과 나는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이 마지막 집단이 복음주의 진영 내에서 대단히 큰 몫을 차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집단을 지칭할 마땅한 명칭이 없다는 점을 인식했다. 그래서 우리는 본서의 목적상 이 집단을 신중 수용론(open but cautious)적 입장이라고 명명했다. 이 입장은 다른 여러 진영 가운데 어느 하나에 속하지 않는 복음주의자들의 폭넓은 중간 지대를 대표한다. 나는 이 입장이 적어도 미국에서는 오늘날 대다수의 복음주의자들이 신봉하는 입장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러면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 입장이 남게 된다. (1) 은사 중지론, (2) 신중 수용론, (3) 제3의 물결, (4) 은사주의, (5) 오순절 운동. 그렇지만 본서에 다섯 명의 글을 실으면 다섯 명 중에 세 명은 오늘날의 기적적인 은사들의 타당성을 긍정할 것이므로 본서가 책이 언급하고 있는 핵심 주제에 대해 균형 감각을 잃은 책이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독자들의 눈에는 불만족스럽게 보일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4)번과 (5)번의 입장을 하나로 합쳐서 오순절운동을 대표하는 저자에게 오순절교회적 관점과 은사주의적 관점을 함께 소개해 줄 것을 요청했다. 그렇게 해서 이제 본서에는 다음과 같은 네 가지 관점이 남게 되었다. (1) 은사 중지론, (2) 신중 수용론, (3) 제3의 물결, (4) 오순절/은사주의.

공저자 소개
이 네 입장의 가능한 가장 탁월한 진술을 얻기 위해, 편집 주간으로서의 나의 목표는 오늘날 복음주의적인 개신교 학자들 중에서 이 네 입장의 가장 책임 있는 대변자들을 찾는 것이었다. 나는 이 글들이 학구적인 질문들과 더불어 진지하게 상호작용하는 것을 원했다. 그래서 저자를 찾는 일은 박사 학위를 소지하고 있고 이전의 연구와 집필활동에서 성서 해석에 상당한 역량을 입증한 분들만으로 한정되었다. 나는 또한 자신과 견해가 다른 사람들의 입장을 공정하게 표현한다는 평판이 나 있으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신의 확신을 확고하게 진술하고 변론하는 분들을 찾았다. 존더반 사의 편집자들과 나는 이 책이 출판되었을 때 저자들이 자신의 견해를 매우 노련하고 공정하게 진술했다고 모든 독자들이 생각하기를 희망했다. 네 편의 글의 저자들은 다음과 같다.

(1) 은사 중지론: 은사 중지론의 입장을 대변하는 글을 얻기 위해 우리는 필라델피아의 웨스티민스터 신학교 조직 신학 교수인 리처드 개핀 박사와 접촉했다. 그는 이미 책 한 권 분량의 은사 중지론을 변호한 저서인 <오순절을 바라보는 관점: 성령의 은사에 관한 신약의 가르침에 대한 연구Perspectives on Pentecost: Studies in New Testament Teaching on the Gifts of the Holy Spirit> (Phillipsburg, N.J.: Presbyterian and Reformed, 1979)를 출간했는데 이 책은 출간 이후 상당한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그는 칼빈 대학(문학사)과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신학사, 신학 석사, 신학 박사)를 졸업했으며,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23년 동안 신약을 가르쳤고 1986년 이래 지금까지 조직 신학을 가르치고 있다. 개핀 박사는 정통  장로교회의 목사이기도 하다.

(2) 신중 수용론: 복음주의자들의 넓은 중간 지대를 대표하는 어려운 과제를 우리는 캘리포니아 주 탤벗 신학교의 저명한 조직 신학 교수인 로버트 소시(Robert L. Saucy) 박사에게 의뢰했다. 그는 탤벗 신학교에서의 34년에 걸친 교수 경력 속에서 오늘날의 많은 복음주의 지도자들을 가르쳤다. 그는 웨스트몬트 대학(문학사), 댈러스 신학교(신학 석사, 신학 박사)를 졸업했고 세 권의 책과 여러 학술지 논문을 출간했다. 소시 박사는 한 보수적인 침례 교회의 교인이다.

(3) 제3의 물결: 우리는 이 복음주의 내의 가장 최근의 견해를 대표하는 일을 캔자스시티의 메트로 빈야드 교회와 연결된 성경 학교인 그레이스 훈련 센터(Grace Training Center) 소장이자 메트로 빈야드 교회의 부목사이기도 한 새뮤얼 스톰스(C. Samuel Storms) 박사에게 부탁했다. 스톰스 박사는 오클라호마 대학교(문학사), 댈러스 신학교(신학 석사), 댈러스의 텍사스 대학교(철학 박사)를 졸업했고 20년이 넘는 목회 경험을 가지고 있으며 여섯 권의 책을 저술했다. 그는 최근에 빈야드 운동에 협력하겠다는 자신의 결심에 대해서 글도 쓰고 발언도 해 왔다.

(4) 오순절/은사주의: 이 견해를 대표하는 일을 우리는 미주리 주 스프링필드에 소재한 센트럴 성경 대학(Central Bible College) (하나님의 성회)의 해석학 및 신약학 교수이며 성경 및 신학 학부 학과장인 더글러스 오스(Douglas A. Oss) 박사에게 의뢰했다. 오스 박사는 센트럴 성경 대학에서 1988년부터 교편을 잡았다. 그는 웨스턴 워싱턴 대학교(문학사), 하나님의 성회 신학교(목회학 석사), 필라델피아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철학 박사)를 졸업했다. 또 <오순절주의의 해석학적 체계The Hermeneutical Framework of Pentecostalism>와 고린도후서 주석서 등 출간 예정인 두 권의 저서가 있고 몇 편의 학술지 논문을 발표했다. 오스 박사는 하나님의 성회에 소속된 한 교회의 교인이다.

(5) 편집 주간: 앞에서 소개한 다른 기고자들에 대한 정보에 덧붙여 필자는 현재 일리노이 주 디어필드에 소재한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교의 성경 및 조직 신학 교수이며 이 학교에서 1981년부터 가르쳐 왔음을 밝혀둔다. 필자는 하버드 대학교(문학사),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목회학 석사),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교(철학 박사)에서 학위를 취득했다. 나는 다음 세 번의 예외를 제외하면 일생의 대부분을 "신중 수용론"의 입장을 취하는 여러 교회에 출석해 왔다.

대학 시절에 나는 뉴욕의 마운트 버논에서 해럴드 브레드슨 목사님의 조수로 한 해 여름 동안 사역할 기회를 누렸다. 그분은 당시 은사주의적 혁신의 저명한 대변자였다. 다음으로 나는 신학교 시절에 뉴저지 주 웨스트필드의 "은사 중지론"을 신봉하는 한 정통 장로교회에서 한 해 여름 동안 교육 실습생으로 사역했다. 은사 중지론자인 그 교회의 로버트 애트웰 목사님은 내게 영적인 은사에 대한 내 신념을 교회 안에서 논쟁거리로 만들지 말 것을 요구하셨다. 마지막으로 1989년부터 1994년 사이에 내 아내와 나는 한 빈야드 교회의 일원이 되었고 또 다른 빈야드 교회를 개척하는 일을 돕기도 했지만 교회까지 가는데 차로 45분이나 걸리는 바람에 효과적인 교회 봉사를 하기가 어려웠다. 그 때문에 우리 부부는 집 근처의 한 훌륭한 남침례 교회에 다니기 시작했고 지금은 그 교회의 교인이 되었다.

이와 같은 다양한 배경으로 인해 나는 이 "네 관점"을 각각 신봉하는 사람들의 진실함과 그리스도인다운 삶에 대해 깊이 이해하게 되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이런 문제들이 중요하지 않다거나 각각의 입장들이 모두 똑같이 설득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어떤 관점이 가장 성경에 충실한가에 관한 문제는 독자들이 결정할 몫으로 남겨둔다!


 
 
리처드 개핀
 

리처드 개핀은 필라델피아에 있는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로서 그랜드 래피즈의 칼빈 대학을 졸업하고, 웨스트민스터 신학교에서 Th.M과 Th.D 학위를 취득했다. 또한 『기적의 은사는 오늘날에도 있는가』(부흥과개혁사), 『부활과 구속』이라는 책의 저자이기도 하다.

출처 : 영적 분별력
글쓴이 : 진실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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