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드 존스가 결국 1970년대 중반에 새로운 신학 대학을 출범시켜야 한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은 현재와 미래의 사역에 대한 관심 때문이었다. 이런 조치에 대한 생각 때문에 20년 가까이 기회가 있을 때마다 이 문제를 거론했었다. 이에 따라 로이드 존스는 신학생들이 자신의 은사를 제대로 시험받지 못하고, 대학의 신학 교수들이 정한 기준에 따라 결과를 평가받는 공부 체계를 거치는 목회 훈련을 받는 것의 위험성에 대해 경고했다
확실히 사람들의 지성은 힘든 공부를 통해 날카롭게 다듬어질 필요가 있고, 로이드 존스는 “훈련된 지성”을 목회의 본질적인 요소로 간주했다. 그러나 어떤 신학 대학이라도 필요하다는 것에 대해서는 얼마간 의구심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실제적인 상황의 필요 때문에 로이드 존스는 무엇이든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1976년 9월에 5회에 걸쳐 개최된 발기인 위원회 모임의 의장이 되었고, 1976년 10월 6일에 핀칠리, 헨드 레인에 네 명의 교수단으로 런던 신학교를 개교하고, 개교 예배에서 “설교했다.” 이 신학교가 존재하게 된 목적은 이렇게 설명된다. 곧 이 신학교는 “현재의 제도와 현재의 입장을 단순히 수정하는 것”에 목적을 두지 않았다. 신약 성경 자체에 기초를 둔 새로운 출발, 새로운 접근이 있어야 했기 때문이다.
로이드 존스는 런던 신학교 이사회의 위원장 직분을 계속 유지했고, 남은 생애 동안 이 새로운 사업을 충분히 지원했다. 이 이사회의 동료 위원인 오므리 젠킨스는 이사회 초기 모임에서 로이드 존스의 강력한 리더십에 대해 말하면서, 자신이 보기에 그것은 아더 핑크가 선지자를 “악한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사람”으로 정의한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켰다고 말했다. 확실히 새로운 신학교를 세운 것에 대한 일관된 기도는 이 학생들이 앞날에 쓰임 받게 해달라는 것이었다.
- 이안 머리, 『로이드 존스 평전 3』, pp 487-4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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