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영적인 면에서 볼 때, 즉 교리와 실제 신앙생활, 그리고 그 시대의 요구 상항 등을 판단해 볼 때 헨리 벤은 휫필드나 그림셔와 전적으로 일치하는 사람이었다. 그는 그들의 사역을 기뻐했다. 그는 언제나 그들 편이었고 기회가 있을 때마다 그들을 도왔다. 그림셔가 죽었을 때 루더덴 교회에서 장례식 설교를 맡아서 한 사람은 헨리 벤이었다. 또한 휫필드가 죽었을 때 베스에 있는 헌팅돈 부인의 예배당에서 가장 아름다운 장례식 설교를 맡아서 한 사람도 헨리 벤이었다.
저는 벤이 지난 세기 동안 순회 전도 사역자들과 특별한 관계를 다져 나가면서 가장 지혜롭게 최선의 행동을 취했다고 생각한다. 저는 휫필드에 대해서 마지막 순간까지 변하지 않았던 두려움을 모르는 지지와 신뢰가 그의 성품에 있어서 가장 특별하고 고귀한 면이라고 평가한다. 휫필드가 죽음을 각오하고 미국으로 배를 타고 떠나기 전에 요크셔에서 한 마지막 설교가 이곳, 허더스필드 교회 강단에서 선포된 말씀이라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벤은 1768년경에 헌팅돈 부인에게 슨 편지에서 휫필드가 교회에서 설교하지 말라는 통보를 받은 후에 첼트넘 교구 교회 마당에 있는 묘지에서 설교를 했던 일을 적고 있다.
“우리가 첼트넘에서 눈으로 목도한 것과 우리의 마음이 지난 며칠 동안 느낀 것을 부인께 그대로 묘사해 드리는 것은 저의 연약한 힘으로는 감당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압도하는 듯한 임재와 능력이 제 영혼의 가장 깊은 곳을 꿰뚫고 지나가는 듯했습니다. 그분은 그곳에서 충만한 영으로 분명한 방식으로 찾아오셨습니다. 묘지를 가득 메운 수많은 군중들 속에서 영혼의 고통에 대한 확실한 증거를 찾을 수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이 압도당해서 거의 기절할 듯한 모습이었으며 또 다른 이들은 깊이 흐느끼고 있었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잠잠히 눈물만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에 모인 이들의 얼굴에서 엄숙한 애통함이 역력했습니다.
이때 그가 이사야 15:1을 본문으로 회심하지 않은 자들, 경건치 않은 자들에 대하여 말씀을 선포하자 마치 검처럼 말씀이 움직이는 듯 보였습니다. 그리고 많은 이들이 가슴을 찢는 듯한 깊은 울음을 토해냈습니다. 말씀을 전하던 휫필드 목사는 잠시 숨을 죽이고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자신도 울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 얼마나 유창하고, 얼마나 힘이 넘치며, 얼마나 사람들의 마음을 녹이는 부드러움으로 휫필드 목사는 죄인들에게 하나님과 화목하고 그분께 나아와서 영원한 생명을 얻으며 지친 영혼이 그리스도 구주 안에서 쉬기를 간청했는지요! 설교가 끝났을 때 사람들은 마치 땅에 몸이 달라붙기라도 한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다음의 말씀은 바로 그 순간을 두고 한 말처럼 느껴졌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에게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6:2)”.
- 존 라일, 『18세기 영국의 영적 거성들』, pp 407-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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