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번연

나를 부르실까? / 존 번연

강대식 2012. 7. 20. 12:17

그 무렵, 나는 모세가 정결하거나 불결하다고 평가해놓은 짐승들에 관해서 깨달을 바가 있었다. 그 짐승들은 사람들의 표상이었다. 정결한 짐승들을 하나님의 백성을 상징했지만, 불결한 짐승들을 ‘그 악한 자’(마귀)의 자식들을 의미했다. 그리고 정결한 짐승들이 새김질을 한다는 내용을 읽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먹고 살아야 함을 그 짐승들을 통해 보여주신 것이다. 또한 그 짐승들은 굽이 갈라졌다. 나는 그 의미를 불경건한 사람들의 길에서 떠나야만 구원받게 된다는 뜻으로 이해했다. 그 부분을 좀 더 읽다가 만약 가축처럼 새김질을 하면서도 개처럼 발톱을 지닌 채 산다면, 혹은 돼지처럼 굽이 갈라졌지만 양처럼 새김질을 하지 않고 산다면 여전히 불결한 상태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관해서 말하면서도 여전히 죄의 길을 걷는 사람은 ‘토끼’와 같고, 더러운 행실은 그쳤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여전히 모르는 사람은 ‘돼지’와 같다는 생각도 했다. 믿음의 말씀이 없다면 아무리 열심히 해도 구원받을 길이 없는 것이다(신14장참조).

 

그후 말씀을 읽으면서 깨달은 바가 있었다. 내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영화롭게 되려면 먼저 이 세상에서 그분의 부르심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 세상에서 부르심을 받아 그리스도의 말씀과 의에 참여하고, 성령의 위로와 첫 열매를 받아 누리고, 이 땅에서부터 하늘에 속한 일들에 힘써서 장차 하늘에 올라가 받을 안식과 영광의 집을 미리 준비하는 일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깨우침이 내게는 여간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깨우쳤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더욱이 내가 부르심을 받지 못했으면 어쩌나 두려웠던 것이다. 만약 내가 부르심을 받지 못했다면 그런 깨우침이 무슨 소용이 있을는지 생각했다. 주변에 회심한 한 사람 한 사람이 내 눈에 얼마나 귀하고 사랑스러웠는지 모른다. 그들을 환히 빛났다. 천국의 큼직한 인을 받은 사람들 같았다. 그들에게 줄로 재준 구역이 실로 아름다웠고, 그들의 기업이 실로 좋았다(시16:6).

 

그러나 나를 아프게 한 구절은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이었다. “또 산에 오르사 자기의 원하는 자들을 부르시니 나아온지라”(막3:13). 예수님이 원하는 자들을 부르신다는 이 구절이 나를 쇠잔하고 두렵게 했으나, 그러면서도 내 영혼에 불을 지폈다. 내가 두려웠던 것은 그리스도께서 원하는 자들을 친히 부르시는 분이므로 나 같은 사람을 좋아하지 않으실 것이라는 생각이었다.

 

주님은 내가 이런 상태로 여러 달을 지내도록 놔두신 채 아무것도 보여주지 않으셨다. 그렇게 거룩하고 천상적인 부르심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참으로 오랫동안 수없이 탄식하며 간구하던 내게 참으로 하나님의 말씀이 찾아왔다. “내가 전에는 ‘그들의 피 흘린 죄를 사해주지 아니하였거니와 사해주리니’(NKJV) 이는 나 여호와가 시온에 거함이니라”(욜3:21). 나는 이 말씀을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내게 더 참고 기다리라는 뜻에서 해주신 말씀이며, 내가 아직은 회심하지 못했으나 진리 안에서 그리스도께로 회심할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을 이 말씀이 암시해 준다고 생각했다.

 

- 존 번연, 『죄인 괴수에게 넘치는 은혜』, pp 56-6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