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교도 운동이 절정에 달했을 때에, 존 오웬의 경우에는 깊이 있고 신뢰할 수 있는 신학의 형성이었고, 리처드 백스터에게는 열정적인 전도와 목회였으며, 존 번연에게는 마음을 사로잡는 능력 있는 설교였다. 그런데 이들이 얼마나 서로 달랐는지를 생각해 보라. 이것은 청교도의 주류가 오늘날의 우리 교회들과는 달리 다른 입장들에 대해서 대체로 관용적이었음을 상기시킨다.
청교도 신학과 헌신의 유산은 때때로 비범한 설교자들과 지도자들을 산출시켰다. 스펄전은 청교도들의 후계자로 불리운다. 이것은 정확한 표현이다. 청교도의 또 다른 후계자는 로이드 존스이다 그는 청교도 서적들을 추천하였고 청교도 신학과 그들의 강해 설교 스타일을 따랐다. 그는 목회자들의 지도자로서 리처드 그린햄, 존 도드, 로렌스 채더턴과 같은 청교도 선구자들을 닮았다. 로이드 존스의 강단 사역은 다른 지도적인 청교도들의 경우처럼 저술의 바탕이 되었는데 그의 강해서는 아직도 전세계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청교도의 경건과 건전한 교리는 21세기에 들어선 우리에게 그 어느 때보다도 더 필요하다. 잉글랜드 청교도는 잉글랜드에 크리스천 가정과 주일을 주었다. 그들은 균형 잡힌 칼뱅주의자들이었다. 그래서 우리에게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건전한 교리의 모범을 남겨 주었다.
또한 그들은 포스트모더니즘의 시대에서 완전히 잃어갈 위기에 처한 성경적인 죄론을 그들의 저술들을 통해 보존하였다. 여기에 덧붙여 그들은 도덕법의 유효성을 인정하였다. 도덕법은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고 중생한 사람이 믿음의 순종으로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행위의 원칙이었다. 그리고 청교도는 우리에게 깊은 기도와 헌신된 삶을 촉구한다. 그들은 부지런히 마음을 지키는 일과 영적 전쟁의 실체와 깨어 있어야 하는 일의 중요성을 우리에게 상기시킨다.
교회 성장에 대한 청교도의 소망은 하나님 중심이었고 깨어질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에 근거하였다. 종말에 관한 청교도의 교리는 간절한 기도를 하게 하였고, 수고의 동기를 부여했으며, 인내를 일으켜 오래 참게 하였다.
청교도주의는 교리와 체험과 실제적인 적용에 있어 매우 성경적이며 균형적이다. 그래서 청교도는 경건한 자들의 마음을 끄는 힘이 있다. 앞으로 청교도가 이 세상에서 어떤 자리를 차지할는지 누가 알겠는가?
만약 청교도의 주류가 미래를 낙관한 것이 옳았다면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합2:14) 온 세상이 그리스도의 영광의 지식으로 채워질 것이다. 말래기 선지자는 이렇게 예언하였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해 뜨는 곳에서부터 해 지는 곳까지의 이방 민족 중에서 내 이름이 크게 될 것이라 각처에서 내 이름을 위하여 분향하며 깨끗한 제물을 드리리니 이는 내 이름이 이방 민족 중에서 크게 될 것임이니라”(말1:11).
- 에룰 헐스,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pp 7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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