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주권에 관한 혼란된 생각은 숙명주의, 거저 주는 복음,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다. 첫째, 숙명주의를 청교도들은 우리가 ‘은혜의 수단들’(the means of grace)이라고 부르는 것에 집중해 대처하였다. 구원하는 믿음의 주제에서 신앙고백서들은 이것이 설교를 통해서 성령이 일으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사도행전은 교회가 사도들과 신자들의 활동적인 노력으로 자라고 퍼졌음을 잘 예시한다. 조직된 전도와 선교 사역은 모든 교회의 책임이다. 이러한 노력이 없으면 교회 성장이 없다. 주권적인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활동을 통해서 목적하신 일을 성취하신다.
그런데 여기에는 죄인들의 책임도 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들이 어디에 있든지 회개하라고 명하신다(행17:30). ‘그의 계명은 이것이니 곧 그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요일 3:23). 윌리엄 그린힐은 ‘회심을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설교에서 회심하지 않은 사람의 책임을 서술하였다. 그는 겔18:32을 본문으로 잡았다.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회심하지 않은 자들은 능력 있는 사역의 영향을 받을 수 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의 음성을 듣거나 크리스천들의 삶에 복음이 끼친 영향을 주목할 수 있다. 그린힐은 회심하지 않은 자들이 말씀의 영향권으로 들어올 수 있는 이와 같은 제안을 한 뒤에 그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촉구하였다. 그들은 하나님께로 돌이켜야 한다. 그들은 좁은 문으로 들어가려고 힘써야 한다.
둘째, 거저 주는 복음에 대해서 청교도들은 회심하지 않은 자들에게 복음을 전할 때 주저하지 않았다. 예로써 리처드 백스터의 『불신자에게 주는 초청』과 조셉 얼라인의 『불신자를 향한 경고』가 있다. 청교도들은 모든 설교를 전도적인 것으로 간주했다. 물론 다루는 주제에 따라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청교도의 설교에는 항상 복음 전도의 측면이 담겨 있다.
청교도 전통을 이어받은 조지 휫필드는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책임에 대한 균형 잡힌 이해를 잘 드러내었다. 그는 상실된 죄인들을 속절없는 상태에 놓고 회개의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그런데 상실된 죄인들은 노예이다. 그들은 회개할 수 없다. 그럼에도 구원을 받으려면 반드시 회개해야 한다. 그러나 할 수 없다. 그래도 해야 한다. 죄인들의 유일한 강구책은 자신들에게서 눈을 돌려 구원해 줄 수 있는 분을 바라보아야 한다. 죄인들의 탈출구는 모두 끊겼다. 지신들 속에는 아무 도움이 없다. 유일한 희망은 오직 하나님께 자비를 구하는 것이다. 그러면 자비의 하나님이 믿음으로 자기에게 나아오는 자들을 결코 내쫓지 않으신다.
셋째,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문제이다. 만약 하나님이 선택받은 사람들만 사랑하고 선택받치 못한 사람들은 증오하신다면 죄인들이 하나님께 눈을 돌리고 믿을 수 있도록 이끌어 주는 것이 무엇인가? 리처드 백스터는 『불신자에게 주는 초청』에서 주권자로서의 주님이 사용하신 겔33:11의 말씀으로 강력하게 변증한다 “나는 악인이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의 길에서 돌이켜 떠나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우리 주님은 하나님이 우리의 원수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도 원수들을 사랑해야 한다고 분명히 가르치셨다(눅6:35). 가장 악독한 죄인들까지 포함해서 하나님이 모든 인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청교도인 존 하우는 역설하였다.
- 에룰 헐스, 『청교도들은 누구인가』, pp 186-1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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