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말씀하시길 ‘그 자신의 형상을 따라 사람을 만들자’고 하셨다. 여기서 하나님은 사람의 몸을 의미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만들어진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 안에 있었 으나 지금은 상실해버린 그 거룩성만을 의미하는 것도 아니다. 왜냐하 면 창세기 9:6에서 그렇게 말씀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무릇 사람의 사람의 피를 흘리면 사람이 그 피를 흘릴 것이니 이는 하나님이 자기 형상대로 사람을 지었음이니라”. 여기서 주요한 요점은 하나님께서 비물질성, 불멸성, 그리고 불가시성 같은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형상과 모양을 따라 인간에 영혼을 주셨다는 것이다.
인간의 영혼 속에는 이중적인 하나님의 형상이 있는데 하나는 영혼의 실체 속에 있는 것으로서 결코 상실되지 않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초자연적인 은사인데 하나님의 지식과 거룩 그리고 의의 형상이다. 그런데 이것을 전적으로 상실해 버렸다. 그러나 인간의 영혼은 하나님의 본질의 형상이다. 즉 그것은 하나님처럼 비물질적, 불멸적, 불가시적이다. 그리고 이해력과 의지를 갖고 모든 것을 이해하시고 그 기뻐하시는 대로 행하시는 하나님처럼, 인간의 영혼도 이해력과 의지를 갖는다. 당신 자신의 영혼 속에서도 하나님의 형상을 볼 것이다· 그것이 바로 하나님에 관한 논증이다.
영혼의 불멸성은 여기 지상의 어떤 것으로부터가 아닌 하나님께로부터 그 기원을 갖고 있음을 논증하는데, 즉 영혼은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반드시 하나님께로 돌아가며 지상에서 어떤 시작을 갖지 않고 하나님께로부터 와서 반드시 하나님께로 다시 돌아간다. 그러면 육체는 무엇이며 거기 어디에 영혼이 깃들어 있는가? 육신은 영혼의 상자요 껍데기이며 칼집과 같다. 그러므로 영혼은 잠깐 동안 육신을 사용하며 사람이 집안에 거주하는 것처럼 영혼이 그 안에 거주하는 곳이다. 그러나 육체가 쇠망할 때 영혼은 그 곳을 떠난다. 깨지면 버리는 그 릇처럼 영혼은 육신을 사용한다. 이용 가치가 있을 동안만 사용되는 도구와 같다. 그것이 더 이상 쓰기에 적합하지 않으면 버리는 것처럼 영혼도 육체를 내버린다. 사람이 의복을 사용하다가 그것아 낡고 헤어지면 버린다. 그처럼 영혼과 육체의 관계도 마찬가지다.
이에 대한 더 큰 증거와 그리고 영혼이 육체에 의존해 있거나 육체에서 그 기원을 가졌거나 육체에 의한 것이 아님을 증명하기 위해서 영혼의 특출한 작용을 생각해 보자. 그것은 물질의 성질로부터 야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일반 사람들 사이의 영혼에 관한 이야기에 있어서 하나님과 천사와 같은 고상한 존재에 관한 의견이나 그런 존재에 대한 생각은 결코 감각에 속한 것이 아니다. 비록 소리나 색깔이 감각에 의하여 파악되어진다 하여도, 색채를 형상화 하고 소리를 연주하는 것은 그 안에 있는 이해력으로부터 이루어진다. 지나간 일들에 관한 기억과 상호비교를 통하여 사물의 상태를 관찰하는 것도 그와 같다.
그런데 짐승들을 보면 물질의 성질로부터 야기되지 않은 행동이 없다. 물질의 성질에 따라 그것들의 기호와 욕망이 형성된다. 비록 어떤 행동이 다른 행동보다 우세하다 해도 행동은 감각의 원천을 떠나서 발생하지 않는다. 그러나 인간에게 있어서는 그의 생각과 의지에 따라 행동이 달라진다. 사실상 인간 내부에도 기호와 욕망이 있다. 이것들은 육체의 기질로 야기된다. 그러므로 육체의 다양한 기질만큼 다양한 욕망과 성벽, 그리고 감정이 있다. 이 사람은 이것을, 저 사람은 저것을 좋아한다. 이것들은 다만 감각적 욕구의 몇 가지 변화이다. 그러나 보다 높은 영혼의 부분에 이르면 인간의 의지와 이해력에 의한 행동이 있고 그것들은 보다 높은 성질에 속한다. 그것들의 행동은 인간의 육체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게다가 인간 육체의 동작을 보면 영혼이 육체를 인도하고 움직인다(뱃사공이 배를 저을 때 비록 배가 암초에 걸린다 해도 뱃사공은 안전할 수 있다).
사람에게 있어서는 욕심이 사람을 이쪽 저쪽으로 이끌려고 하지만 의지력으로 제어하며 이해력으로 사리분별을 한다. 그처럼 인간 육체의 행동은 다른 피조물들처럼 다양한 감각적 욕구로부터 야기되지 않고 의지력과 이해력에 의한다. 왜냐하면 영혼이 육체에 의존해 있지 않고 육체의 행동이 영혼에 달려 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육체가 죽을 때 영혼은 죽지 않는다. 어떤 집에 거주하는 사람이 집이 무너지면 그 집에 있지 않고 다른 집으로 가는 것처럼 영혼은 육체에 전혀 의존하지 않는다. 그런 까닭에 육체가 죽을 때 영혼도 죽는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게다가 영혼은 다른 것들처럼 쇠하거나 지치지 않는다. 육체는 지치고 정신은 피곤해진다. 육체는 의복처럼 완전히 닳아질 때까지 낡아진다. 그러나 영혼은 지치지 않고 쇠할 수 없다· 영혼의 모든 활동에 있어서 영혼 자체는 아무 손상이 없다. 영혼에 들어오는 그 무엇이든지 영혼을 타고난 완전함으로 완전하게 한다. 그래서 영혼은 보다 강하게 된다. 그러므로 영혼은 다른 것들처럼 썩을 수 없으며 낡아질 수 없다. 생각이 많아질수록 영혼은 더 완전해진다.
실로 육체는 노동으로 쇠하여지고 정신은 피곤해지나 영혼은 그렇지 않다. 영혼은 즉각적인 행동에서도 여전히 활동하며 심지어 잠들어 있을 때도 활동한다. 영혼의 활동을 보면 그것은 독립적이다. 그리고 독립성이 증가하는 만큼 영혼은 더욱 젊어져가며 더욱 강해져간다. 세월이 지나갈수록 더 새로워진다. 그래서 영혼은 썩지 않고 멸하지 않는다. 병아리가 알 속에서 점점 자라가면 껍데기가 깨지고 부화되는 것처럼 육체도 껍데기처럼 영혼을 붙들고 있다가 영혼이 완전하게 자라면 육체를 버리고 영혼은 그 창조자에게 돌아 간다.
- 에드워드 힌슨, 『청교도 신학』, pp 42-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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