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차녹

스티븐 차녹, 『하나님을 아는 지식』1, 2권, 부흥과개혁사, 2012

강대식 2013. 4. 12. 17:57

왜 우리는 청교도를 읽어야 하는가?

왜 오늘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가 16-17세기 청교도들의 책을 읽을 필요가 있을까요?

제임스 패커, “신약 성경 시대가 모든 시대의 모든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의 생활을 위한 모범을 제시한 것과 마찬가지로 청교도 시대는 20세기 말의 서양 기독교 세계를 가르칠 특별한 교훈을 갖고 있다고 믿는다.” 조엘 비키는 청교도들의 특징을 “성경으로 삶을 형성했으며, 교리와 실천을 완벽히 결합시켰으며, 그리스도에 집중적 관심을 두었고, 시련과 시험에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상과 천국에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참된 신앙이 무엇인지를 보여 준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청교도들은 교회사의 영적 거인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성경적 기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의 모델이다. 그러므로 오늘날에도 청교도의 저서들은 우리가 참된 기독교인, 성숙한 기독교인이 되는 법을 배우는 가장 좋은 성경의 참고서들이다.

 

이 책은 부흥과개혁사가 출간하는 청교도 대작 시리즈 두 번째 책이다.

 

스티븐 차녹은 1628년에 런던의 세인트 캐서린크리 교구의 법률가였던 리처드 차녹의 아들로 태어났다. 예비적 학습 기간을 거친 후 1642년에 차녹은 케임브리지 대학의 이매뉴얼 칼리지에 입학했고 후에 캔터베리 대주교가 된 윌리엄 산크로프트의 가르침을 사사하게 되었다. 케임브리지에 있는 동안 치녹은 그리스도 안에서 중생을 경험했고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파하고자 하는 열정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1646년에는 문학사를 취득했다. 1640년대 후반에는 한 개인 가정의 목사로 몇 년을 일한 후, 런던의 서더크에서 목회직을 맡게 되었다.

 

차녹은 옥스퍼드로 이주해서 옥스퍼드 대학의 뉴칼리지의 선임 연구원이 되었고(1650), 그곳에서 1652년에 문학 석사를 받은 후, 1654년에 학생감으로 임명되었다. 특히 그는 성경 언어와 개혁주의 신학과 스콜라 신학, 교부학과 철학에 모두 능통한 전문가적 지식을 소유한 매우 부지런하고 열심이 넘치는 학생이었다. 옥스퍼드에서 지내는 동안에는 토머스 굿윈이 주관하던 대학교회에 속해 활동하기도 했다.

 

1655년에 차녹은 헨리 크롬웰(올리버 크롬웰의 아들이자 아일랜드의 통치자)의 목사로 그와 함께 아일랜드로 떠나게 되었다. 에드먼드 켈라미는 차녹의 이곳에서의 목회 사역에 대해 이렇게 적었다 “그는 도시에 거하는 모든 상류층과 귀족 계급, 지적․인격적 수준을 갖춘 사람들을 자신의 설교와 강론의 청중으로 삼고 있었다.” 원고 없이 전하는 그의 설교들은 지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 모두에서 크고 심원한 영향을 끼쳤다.

 

1660년에 차녹은 잉글랜드로 돌아왔다. 그는 왕정복고 기간에 자신의 지위를 잃어버리고 목회직을 맡지 못한 채로 런던에서 15년간을 지냈다. 전해지기로는 그가 아울러 지니고 있던 의학과 약학에 대한 전문적 지식을 활용해서 약사로 일하며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수시로 말씀을 전하기 위해 네덜란드와 프랑스로 여정을 떠나기도 했다. 이는 부분적으로는 그가 더블린 성을 차지하려는 음모에 연루되어 있다는 정부의 억측에 근거한 체포로부터 피하기 위한 것일 수도 있다. 1666년에 차녹은 런던 대화재로 그의 모든 서재와 책을 잃기도 했다. 칼라미에 따르면, 이 연단의 기간에도 차녹은 끊임없이 연구하고 저술 작업을 진행하면서, 결국 “매우 중요하고 비중 있는 학자이자 탁월한 신학자”가 되었다. 즉, 차녹은 그의 개인적 경건과 성경 원어에 대한 비범한 구사 능력 때문에 유명해졌다.

 

1675년에 차녹은 토머스 왓슨과 함께 런던의 비숍스게이트 거리에 있던 크로즈비 홀의 비국교도 회중을 이끄는 공동 담임 목사가 되었다. 그는 그곳에서 1680년 소천할 때까지 직임을 감당했다. 말년에는 건강이 악화됨에 따라 기억력과 시력이 나빠져서 목회 사역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그는 사전에 원고를 광범위하게 작성해서 설교단에서 돋보기로 이를 참조하변서 읽어 전하는 설교를 구사했다. 당시에 차녹의 설교는 지적 수준이 높지 못한 보통 사람들이 완전히 이해하며 따라가기에는 다소 어려운 경향이 있었다. 그러나 목회자들과 분별력 있는 평신도들은 그의 설교를 통해서 시종일관 은혜와 유익을 얻었다.

 

“하나님에 대한 이 지식은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대한 이론적 지식일 뿐 아니라 구원을 일으키고, 하나님을 향한 열렬한 사랑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진정 어린 신뢰와 결합된 그런 지식이다. 고린도전서 13장 12절을 보자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즉 지금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받고 즐거워하는 것처럼 내가 사랑하고 즐겁게 해 드릴 것이다. 그것은 그의 의지 속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인 동시에 그의 본성 속에 있는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 이 둘은 반드시 함께 간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을 하나님의 본성을 통해 알아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마귀는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서는 지상에 있는 어떤 누구보다 큰 지식을 갖고 있다. 그러나 마귀는 그 뜻을 거스르는 반역자이므로 그 지식 때문에 행복해지지 않는다. 그 지식은 인과관계토 묶인 것처럼 영생으로 이끌고 필연적이며 무오한 연관관계를 갖는 그런 지식임에 틀림없다. 사색적 지식과 구원이 갖는 그런 관계가 아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는 그런 지식이며. 생각 속에 있는 빛이며 정서 속에서 열기를 뿜는 그런 지식이며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포함하는 그런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