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테판 차녹

하나님과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혼의 생명과 행복이다/ 스티븐 차녹

강대식 2013. 4. 15. 21:43

하나님의 진리가 영혼에 대해 갖는 관계는 음식이 육신에 대해 갖는 관계와 같다. 심지어 훨씬 더 하다. 하나님이 최고선임을 명확하게 이해할 때 오성은 만족하고 의지는 사랑으로 채워지며 영혼의 모든 갈망은 안식처를 찾는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본다는 것은 영혼의 만족이며, 이곳에서 하나님을 불완전하게 이는 지식은 우리의 불완전한 복락이다. 그것은 시간 속에서 성숙한 열매, 즉 위에 계신 이를 아는 지식에까지 자라날 영생의 뿌리다. 위에 계신 이를 야는 지식은 완전한 행복이다. 행복은 진리를 알고 선을 사랑함에서 나온다.

 

영생과 행복은 세속적인 것들, 즉 부나 명예에 있지 않다. 영혼은 사랍에게 있어서 육신보다도 훨씬 탁월한 부분이다. 영혼의 행복은 영혼의 고유한 목적에 있다. 존재라는 측면에서의 영혼이 기능이라는 측면에서의 오성보다 더 탁월하다. 복락을 지향함에서 영혼의 활동은 감각의 활동보다도 훨씬 많은 도움을 준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 못지않게 행복에 필수불가결하다. 사람이 천사만큼이나 명확하게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지고 있을지라도,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없다면 마귀만큼이나 행복에서 멀리 떨어져 있을 것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단지 결코 타락하지 않아 중보자를 필요로 하지 않는 천사들에게만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 원수됨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마땅하여 화목하게 하는 자를, 우리의 구속 때문에 구속자를, 우리의 더러움 때문에 정결하게 하는자를, 우리를 하나님께로 데려 가야할 그 거리 때문에 중보자를 필요로 하는 우리에게 필요하다.

 

그리스도를 참되게 아는 지식은 그 인격에 대한 지식일 뿐 아니라 그리스도가 파송받은 사명에 대한 지식이기도 하다. 바리새인들이 우리 구세주께, “너는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라고 물은 것은 비록 그들이 답변을 통해 꼬투리를 잡으려는 악의를 품고 그런 질문을 했을지라도 본질적인 질문이다. 우리가 만일 이 위대한 사건에서 우리 구세주가 어떤 권위로 행동했는지 모르고 생각도 안 한다면 전혀 위로를 얻지 못할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누리는 안전은 그리스도가 하나님에게 받은 권위에 있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믿음은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위임 명령을 받은 자이기 때문에 그리스도 안에서 위로를 얻는다. 그러나 하나님과 그리스도가 서로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훨씬 더 높은 위로를 얻는다.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에 능력이 있다. 하나님이 보냈기 때문에 권위가 있다. 만일 위임을 받지 않았더라면 이런 일을 할 권위가 없는 하나님의 아들이었을 것이다.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었다면 그래서 무한한 능력을 갖지 못했더라면, 하나님의 보냄을 받고 위임을 받았으되 지정된 그 일을 해내지 못했을 것이다. 그리스도는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1절)와 “아버지께서 보내신"(3절) 이 둘을, 우리 신앙의 근거로 제시한다.

 

나의 주장은 다음과 같다. 교훈 1. 하나님과 중보자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영생과 행복에 이르기 위한 필요불가결한 수단이다. 교훈 2. 하나님에 대한 참되고 구원에 이르게 하는 지식은 오직 그리스도 안에만 있고 그리스도로만 말미암는다.

 

- 스티븐 차녹, 『하나님을 아는 지식』, 1권, pp 38-4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