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롬8:26)/ 루터

강대식 2013. 4. 23. 08:44

이것들은 아무도 말로 표현할 수 없고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아무도 이해할 수 없는 기도들이다. 탄식이 너무도 깊어서, “나의 모든 소원이 주 앞에 있사오며 나의 탄식이 주 앞에 감추이지 아니하나이다”라는 시편 38:9의 말씀처럼, 오직 하나님만이 그 기도들을 바르게 보시고 제대로 알아들으실 수 있다. 우리가 간구하는 제목들에 대하여 그 정반대의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고 한다면, 그것은 나쁜 징조가 아니라 가장 좋은 징조이다. 역으로 우리가 기도하는 데로 모든 것이 이루어진다면, 그것은 좋은 징조가 아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으니라”는 이사야 55:8.9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모략과 뜻은 사람의 모략과 뜻 위에 높이 우뚝 솟아있다. 그런 까닭에 우리가 하나님께 어떤 것을 요청하고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기 시작하면, 하나님은 너무도 자주 우리의 간구하는 내용들에 역행하는 경우가 많아서, 우리는 기도하기 전보다 지금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더 화가 나 계시고 우리의 간구한 것들을 전혀 들어주실 의향이 없으시다고 생각하게 된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렇게 하시는 이유는 우리 속에 있는 것(우리 자신의 지혜와 의지)을 먼저 멸하시고 근절하신 다음에 하나님의 선물을 우리에게 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방식(길)이기 때문이다. 사무엘상 2:6에서는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스올에 내리게도 하시고 거기에서 올리기도 하시는도다’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 정말 자비로우신 모략을 통해서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선물과 역사(投事)를 받기에 합당하게 만드신다. 우리 자신의 계획들이 다 무너지고, 우리 자신의 행위들이 다 멸해지고 우리가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전적으로 수동적이 된 후에야, 우리는 하나님의 역사와 모략을 받기에 합당하게 준비된다.

 

교만한 자들(불신자들)은 하나님 같이 되고자 한다. 그들은 마치 자기들이 하나님처럼 완전하기라도 한 것처럼 자신의 생각을 하나님 아래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과 나란히 두고자 한다. 그러나 그런 일은 진흙이 토기장이에게 어떤 모양으로 자기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하는 것보다 더 불가능한 일이다. 이사야 64:8에서는 “여호와여, 이제 주는 우리 아버지시니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니이다”라고 말씀한다. 그러나 자기들이 구한 것과 정반대의 일이 그들에게 일어나는 것을 볼 때에. 성령을 받은 사람들은 절망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갖는다. 하나님의 역사(投事)는 사람의 생각 및 이해와 모순되는 어떤 다른 형태 속에 감춰져 있음에 틀림없다. 그래서 하나님은 성 어거스틴의 어머니의 수많은 기도에도 불구하고 결국 그녀가 요청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그녀에게 주기 위하여 성 어거스틴이 점점 더 깊이 잘못된 생활로 빠져들도록 내버려 두셨다.

 

- 마틴 루터, 『로마서 주석』, pp 162-16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