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엘 비키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강력한 진리에 의해 정복되어야 한다/ 조엘 비키

강대식 2013. 7. 4. 05:49

청교도들은 독특한 내적 성품 또는 지성과 영혼의 구조를 갖고 사역을 감당했다. 청교도 비전의 핵심에는 경건에 대한 헌신이 놓여 있다. 토머스 브룩스, “설교자의 삶은 그의 가르치는 교리와 일치되어야 한다. 설교자의 실천은 그의 설교의 겉덮게(파트너)가 되어야 한다. 경건한 교리는 항상 경건한 삶으로 장식되어야 한다.” “설교자는 사람들의 눈이 보고, 배우고, 읽어야 할 면경(거울), 학교, 책이다”

 

청교도 복음 전도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과 하나님의 사람들과 구원받지 못한 사람들에 대한 헌신과 관심, 성경에 대한 헌신과 사람들에게 설교할 능력, 성령을 의지하는 마음과 기도로 충만한 삶 등을 갖고 있었다. 성령의 의지하는 마음과 기도로 충만한 삶, 이 두 가지 특징은, 현대 복음 전도자에게 결여되어 있고, 그러기에 특별히 더 강조될 필요가 있다.

 

첫째, 청교도들은 자기들이 말하고 행한 모든 일 속에서 성령을 깊이 의지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청교도들은 어떤 사람을 그리스도께 인도하거나 중대한 회심을 이끌어 내는 데 자기들이 철저히 무력하다는 것을 날카롭게 의식하고 있었다. 회심의 시간과 방식과 대상자를 성령의 역사에 전적으로 의존하였다. 토머스 왓슨, “목사들이 사람들 마음의 문을 두드리면 성령이 열쇠를 갖고 와서 문을 여신다.” 조셉 얼라인, “회심은 죽었던 자가 부활하는 것(엡2:1), 새로운 피조물(갈6:15,엡2:10), 절대적인 전능자의 사역(엡1:19)이다.”

 

패커, “’결단’을 촉진시키기 위해 심리적인 압력을 가하는 모든 장치는 사실상 성령의 역사를 훼방하는 주제 넘는 시도이므로 피해야 한다.” “’결단’에 닳고 닳을 때 ‘복음에 강퍅한’ 상태가 되 반대하는 모습이 된다.” “복음 전도는 환자를 가르치고 교훈하는 긴 기간의 수고로 생각해야 한다. 이 수고를 통해 하나님의 종들은 단순히 복음 메시지를 신실하게 전하고 그것을 인간의 삶 속에 적용하고, 그렇게 함으로써 성령께서 이 메시지를 통해 자신의 방식과 자신이 원하는 속도에 따라 사람들을 믿음으로 이끌도록 해야 한다.”

 

둘째, 청교도들은 복음 전도의 결과를 위해 기도에 전념했다. 그들은 무엇보다 ‘골방의 사람들’이었다. 청교도들은 자기들의 설교에 따라 복을 베풀어 달라고 하나님과 씨름한 위대한 간구자였다는 점에서 위대한 설교자들이었다. 리처드 백스터, “기도는 설교와 마찬가지로 우리의 업무가 되어야 한다. 회중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지 않는 설교자는 그들에게 충심으로 설교하는 것이 아니다. 만일 우리가 회중에게 신앙과 회개를 제공하기 위해 하나님을 설복시키지 못한다면 , 믿고 회개하라고 그들을 설복시키지 못할 것이다.”

 

로버트, 테일러, “아주 부족한 은사와 재능을 소유한 어떤 목회자들이 훨씬 탁월한 능력을 소유한 다른 목회자들보다 더 성공적인 목회를 한다. 그 이유는 그들이 더 나은 설교를 하기 때문이 아니라 더 많이 기도하기 때문이다. 많은 훌륭한 설교자들이 기도가 많이 부족한 탓에 서재에서 사라지고 만다.”

 

로버트 머리 맥체인에 대한 일화가 있다. 그의 성공의 비결인 무엇인지 알고 싶어하는 방문객에게 늙은 관리인은 맥체인의 서재로 안내했다. 맥체인의 의자에 앉아 책상 위에 손을 올려놓고 얼굴을 손에 묻고 눈물을 흘리라고 했다. 다음 교회 본당 강단으로 올라갔다. “강대상에 기대어 손을 뻗고 눈물을 흘리라”고 말했다. “이제 당신은 맥체인의 사역의 비밀을 깨달았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오늘날 교회는 개인 기도를 통해 강단 메시지의 능력을 강화시키는 설교자들을 절대적으로 필요로 한다. 청교도 목사들은 개인적인 경건의 시간을 서로 질투할 정도로 소중히 여겼다. 그들은 영적이고 영원한 실재에 삶의 우선권을 두었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깨어 있거나 기도하지 않으면 영적 재앙을 자초하게 될 것이라고 알고 있었다. 그들은 신실하고 굳건하고 진지하게 지속적으로 자신을 성찰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었고, 존 플라벨이 말한 것처럼, “객관적으로 영적인 사람이 한 평생 주관적으로는 육적인 사람일 수도 있다.”는 것을 정확히 깨닫고 있었다.

 

또 그들은 존 오웬이 지적한 것처럼, “어떤 사람도 자신의 마음에 먼저 선포하지 않으면 설교를 잘하는 것이 아니다. --- 만일 말씀이 우리 안에서 능력으로 역사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우리에게서 능력이 되어 나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믿었다. 수많은 현대의 복음 전도자들과 달리, 청교도들의 영적 생활의 수준은 균등하게 높았다.

 

그러므로 우리는 서로 간에 도전을 주어야 하리라! 청교도들과 같이 우리도 삼위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를 갈망하는가? 우리도 성경적 진리와 성경적 광채에 동기를 부여받는가? 우리도 회심을 필수적으로 요청하는 청교도의 견해를 공유하고 있는가? 누가 청교도들이 힘쓴 것만큼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의 수준을 실천하겠는가? 청교도들이 하나님을 섬긴 것만큼 우리도 섬기겠는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길에 서서 보며 옛적 길 곧 선한 길이 어디인지 알아 보고 그리로 가라 너희 심령이 평강을 얻으리라”(렘6:16).

 

우리는 하나님의 위대하고 강력한 진리에 의해 정복되어야 한다. 인생은 짧다. 조만간에 우리는 마지막으로 기도를 드리고, 마지막으로 성경을 읽고, 마지막으로 설교를 전하고, 마지막으로 친구에게 전도하게 될 것이다. 그때 중요하게 될 유일한 것은 복음이다. 확실히 임종하는 자리에서 우리의 마음 속에 가장 먼저 떠오르는 질문은 “나는 어떤 복음 전도자였던가?”일 것이다. 성경은 우리에게 다음과 같이 강조한다. “지혜로운 자는 사람을 얻느니라”(잠11:30).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빛나리라”(단12:3).

 

- 조엘 비키, [개혁주의 청교도 영성], PP 277-281, '청교도 복음 전도자의 내적 성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