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강해·존스

[스크랩] 로이드 존스, 로마서강해 12권1장, 교리와 실천은 나눌 수 없다

강대식 2014. 1. 22. 11:27

 

제 1 장 로마서 12장 이하의 내용 분해

 

이 로마서 자체가 하나의 개요라는 것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드린다.

(존스 목사는 로마서를 11장까지 총 297회 강론하였으며, 각 장마다 평균 27회의 강론을 한 것이다.) 바울은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만나 날마다 이 기독교의 영광과 신비를 강론하고 싶었지만 이 기독교 신앙의 영광과 신비를 강론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이 일종의 개요를 그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써 보내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 교리의 관점에서 볼 때 로마서는 가장 위대한 걸작품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한다.

 

11장까지 거의 교리에만 집중하다가 새로운 대목에 이르게 되었다. 이제 12장에서 마지막 16장까지에 이르기까지 그 교리를 계속 적용하는 실천적인 문제로 나아간다. 이처럼 그리스도 삶의 외향적 행실과 생활에 대한 문제를 다루기는 하지만 그럼에도 바울은 끊임없이 교리를 놓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 그는 교리와 실천을 나눌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이 사도 바울의 서신들의 특성이다.

 

여러분은 이 실천적 대목이 절정에 이르는 장엄한 말을 해 놓고 어조를 내려뜨려 몇 가지 부수적인 말로 권고하는 어법에 불과할 것이라는 느낌을 가지는가? 이와 같이 우리가 교리만을 향유하고 실천적인 대목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을 두지 않을 권리가 우리에게는 전혀 없다. 또 어떤 사람들은 실천적인 대목만 좋아하고, 교리적인 대목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으려고 한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니 전체를 읽어야 한다.

 

우리가 이 실천적인 대목을 강론해야하는 이유는

첫째, 성경 전체는 다 우리를 위해서 존재하고 있다. 그러므로 성경이 계속 진행되니 우리도 계속 진행해야한다.

 

둘째, 기독교는 단순히 하나의 가르침이 아니라 하나의 삶이기 때문이다. 교리의 목적은 우리로 하여금 바로 그 교리가 요구하는 삶을 살 수 있게 하는 데 있다. 바로 그 이유 때문에 실천적인 대목이 교리적인 대목만큼 중요하다. 자연히 기독교는 하나의 체험에 불과하다는 논리가 형성되기도 하는데 체험의 목적은 우리의 매일의 삶과 생활을 변화시키는 데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일은 우리에게 지성적인 호기심을 주려하거나, 흥분이나 만족함을 주기 위한 것이 아니다. 또한 우리에게 체험만을 위한 것도 아니다. 궁극적인 목표나 목적은 백성들을 하나님을 위해서 사서 하나님을 위해서 예비하고 훈련시키는 일이다.(딛 2:14)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 존재의 총체성과 그 인격과 그 행동 전체가 바로 그 목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

 

셋째, 참된 그리스도인이 삶 속에 필연적으로 떠오르는 난제들 때문에 그 적용 문제를 계속 다루어야 하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상에 있기는 하지만 세상에 속하지는 않았다. 그리스도인의 큰 난제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세상과 상관하므로 말미암아 떠오르는 문제이다.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들은 새로운 믿음, 새로운 신념, 새로운 이해력을 가진 자들이다. 그리고 삶 전체에 그것을 명백하게 적용해야 한다. 그들은 여러 난제들과 문제들에 직면하게 된다. 만일 그리스도인이 되었다고 하는데도 그리스도인들이 알지 못하는 난제가 그 삶속에서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면 그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을 들을 수 밖에 없다.

 

넷째, 교리와 실제 사이, 믿음과 행동 사이에 친밀한 관계가 있다는 점이다. 만일 교리에 있어서 잘못되면 그 점이 삶에 영향을 미칠 것이다. 또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침륜에 빠진 자가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교리에 의문을 달기도 한다. 교리와 행실은 나뉘어서는 안 된다.

 

다섯째, 우리는 항상 염려하고 교묘하고 교활하고 무엇인가를 잘 알고 있는 원수 마귀에게 도전을 받고 있다. 마귀가 광명한 천사, 자신을 과장시킬 수 있다.(고후 11:14) 마귀가 속이는 방식은 첫째, 이 실천적인 대목은 별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우리에게 말하는 방식으로 지적인 방면으로만 시선을 돌리게 만든다. 둘째 실천적인 부분들을 무시하게 만드는 데 실패하거나, 지성적인 분위기 속에서만 즐겁게 살아가도록 하지 못하게 되면, 실천적인 부분을 지나치게 강조하도록 만든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으로서 가진 자유를 상실하여 율법주의자가 되게 하려 마귀는 무진 애를 쓰고 있다. 14장은 거의 이 문제를 다루고 있다.

 

실천적인 대목의 분해(12:-16:)

12:1-2 전체 대목에 대한 보편적인 서론으로 왜 우리가 적용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는지 그 이유를 보여 주고 있다. 그 당시 로마교회를 괴롭히고 있던 난제들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봉착되어 있는 난제들이다. 그리스도인들은 1세기나 20세기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기 때문이다.

 

12:3-21 그리스도인들과 교회의 관계를 다루고 있다.

 

13: 그리스도인들이 세상과 어떤 관계인지 국가나 관원들이나 ‘권세자들’에게 어떤 관계인지 문제를 다루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불신자와 관계가 어떠해야 함에 대하여 말하고 있다.

 

14: 다시 교회의 영역 안으로 들어와 교회의 연합을 깨뜨리려는 경향을 가진 것들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15:1-13 하나님의 백성들이 연합의 문제를 계속 다루어 나가되 교회 안에 함께 있는 유대인과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를 다루어 나가고 있다.

 

15:14-33 사도가 서신을 끝마치면서 그는 한사람의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도와 교사로서 말하고 있다. 그는 간절한 마음으로 로마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을 돕고 싶은 마음을 전하고 있다.

 

16:1-16 놀라운 문안 인사들과 그들에 대한 축언(祝言)을 담고 있다. 하나님의 이 큰 사람이 그 상세한 국면에까지 들어가 각 개개인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은 기이하다. 이 세상의 능력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는 만큼, 참된 그리스도인이면서도 별로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바울은 노예들에게도 존경심을 나타내고, 여러 경우에서 자기를 도왔던 사람들에게 존경을 표하고 있다.

 

16:17-20 거짓된 형제를 조심하라는 마지막 경고의 말씀을 목회자적인 마음으로 담고 있다.

 

16:21-24 함께한 대필자들을 무시하지 않고 그들의 문안하는 인사가 기록되어 있다.

 

16:25-27 하나님께 대한 송영으로 서신을 끝마치고 있다.

 

12장 안에서 저는 교회 안에서 생활하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나의 관점을 얻게 된다는 점을 보여주려 노력하겠다. 사도는 그 모든 것을 장악하는 원리가 있음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또한 여러 다양한 방식으로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이 받은 교리를 적용해야 함을 보여 주고 있다.

 

- 본서, pp 13-31

 

출처 : 청교도 아카데미(PBA)
글쓴이 : 야생화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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