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는 성령의 ‘살리시는 역사’를 통해 우리로 하여금 ‘순종의 삶’을 살게 하신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내세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하게 하려는 것이 성령님의 역사의 목적과 의도인 것이다. “우리는 그가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엡2:10).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36:26,27).
이것이 바로 생명의 원리를 영혼에 주입하시고 그 영혼을 활력있게 하시는 성령님의 역사의 직접적인 목적인 것이다. 영혼에 주입된 생명의 원리는 먼저 참된 ‘순종’의 열매를 맺게 한다. 은혜로 주입된 내면적 생명의 원리로부터 순종의 열매가 나오는 것이다. 이는 외식이 ‘외적’인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 것과는 반대의 경우이다. 외식자들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나 육신적인 이익의 영향을 받는다. 내면에서 외치는 양심의 소리는 외면하면서도 마치 자기들이 하늘에 대한 참된 소망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행동한다.
사람을 진정으로 유익하게 하는 것은 내면적 원리이다. 진실한 행실의 열매는 내면의 원리가 정서와 조화를 이룸으로 나오는 것이다. 하나님을 향해 진정 주리고 목말라하는 간절함을 가질 수 있는 사람들은 내면에 은혜가 주입된 사람들뿐이다. 영적 생명의 원리로부터 나오는 순종은 매우 큰 '탁월성‘을 지닌다. 순종이란 즐겁고 기꺼운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것이기 때문이다. 억지로 마지못해 하는 것은 참된 순종이라고 불 수 없다. 자원하는 순종은 마치 벌집에서 꿀이 흘러넘치고(아4:7), 샘물에서 물이 솟구쳐 나오는 것과도 같다(요4:14). 하나님께서는 순종을 크게 여기신다(고전9:17). 자원하는 순종만이 일관성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일관성 있는 순종은 일상적인 삶에 균형을 가져온다. 그리스도인의 삶 속에서 나타나는 순종의 일관성과 균형은 성령께서 주입하신 영적 생명의 대표적인 증거 중 하나이다.
생명의 원리를 주입하시는 하나님의 또 다른 목적과 의도가 있다. 그것은 영혼에게 하늘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할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하기 위함이다. 하늘의 기업은 거듭난 자만이 얻을 수 있다(요3:3, 벧전1:3,4). 성령으로 말미암아 주입되는 이 은혜의 원리는 장차 하늘에서 누리게 될 영광의 씨앗이다. 이 원리가 영생의 뿌리가 되어(요17:3) 영혼으로 하여금 영광스러운 날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하는 것이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영혼이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야말로 가장 큰 영광이다. 성도들은 그 영광을 통해 즐거움을 얻는다. 이것은 말로 다할 수 없는 특권이다. 은혜의 원리를 받지 못한 자들이 결코 누릴 수 없는 특권인 것이다. “이는 내 마음에 그들을 싫어하였고 그들의 마음에도 나를 미워하였음이라”(슥11:8). 영적 생명이 없는 자들에게 거룩한 의무와 규례들은 그저 무미건조한 속박에 지나지 않는다(말1:13).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결코 영광스러운 것일 수가 없다.
- 존 플라벨,『은혜의 방식』, pp 115-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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